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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추천 테마여행

일간스포츠-꼭한번 봐야할 한국의 매화

by 구석구석 2007.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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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들이 아끼고 사랑하던 매화.

우리나라 여기저기에 오래되고 이름난 매화가 산재해 있다.

꼭 한번 보아야 할 매화를 찾아 떠난다.

 

 선조들이 사랑했고,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매화의 곧은 절개와 지조를 찬양하지만, 이름난 매화들이 제대로 대접받은 적이 없어 안타깝다. 조선 효종 때 영의정을 지냈던 백강 이경여가 심은 충남 부여 백마강변의 ‘백강매’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받은 유일한 매화였다. 그러나 이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에 의해 지정된 것이고, 현재는 나무가 죽어버려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문화재청은 2007년 3월 20일부터 우리나라 곳곳의 고매(古梅)와 명매(名梅)에 관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기 위한 실사를 시작한다고 한다. 늦은 감이 있지만 반가운 소식이다. 일반적으로 고매(古梅)는 나무의 나이가 100년 이상인 것, 명매(名梅)는 이름난 인사들이 심고 가꾼 것으로 역사성을 갖춘 매화를 이른다.

 

국내 매화 중 호남 5매(湖南5梅), 산청 3매(山淸3梅)가 유명하다. 호남 5매는 현재 호남지방에 살아있는 다섯 매화를 이르는 것이다. 장성 백양사의 고불매, 전남대학교 대명매, 담양 지실마을 계당매, 선암사 백매, 소록도 국립명원의 수양매를 말한다. 산청 3매는 경상남도 산청군 관내에 있는 정당매와 남명매, 분양매를 말한다. 이외에도 안동과 강릉에도 이름난 매화가 있다. 이는 일본이 자랑하는 규슈 3매(九州3매)나 중국의 원매(元梅), 명매(明梅)등과 같이 명성을 돋보이도록 하기 위해 이름을 붙인 것이다.  

 

광주 전남대학교 대명매(大明梅)

광주 전남대학교 용봉캠퍼스 대강당 앞에 있는 홍매다. 1621년 월봉 고부천 선생이 진문사서상권으로 명나라에 갔을 때 희종황제로부터 홍매 1분을 증정 받아 고향인 담양군에 심어 기르던 것을 그의 11대 손자인 고재천 선생이 농과대학장을 할 때 현재의 자리에 옮겨 심었던 것이다. 원래 농과대학 구내에 있었는데 1976년 대강당 앞으로 옮겨졌다. 약간 뾰족한 듯 봉긋한 수형의 형태가 아름답다.

 

대학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대명매는 꽃을 피웠다. 꽃은 3월 셋째 주까지 피어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호남고속도로, 남해 고속도로를 이용해 용봉IC로 나와 이정표를 따라 약 5~10분 정도 가면 전남대학교 용봉캠퍼스에 닿는다.

전남대 용봉캠퍼스 총무과 062-530-1152

 

담양 지실마을 계당매(溪堂梅)

가사문학의 본 고장인 담양군 남면에 지실마을이 있다. 마을은 장원봉과 성산 기슭에 위치했다. 가사문학관과 식영정 등이 있는 이 마을은 조선시대 선비의 집산지였다. 또 별뫼(성산) 주변의 절경을 찬미한 식영정 18경과 성산별곡을 낳은 곳이기도 하다.

 

마을에는 송강의 넷째 아들이 살던 계당(개천 위에 지은 집이라 해 붙은 이름이다) 터가 있다. 그가 심고 가꾸었다는 홍매화와 백매화, 두 그루가 지금도 자태를 뽐내고 있다. 지실마을 정희용 이장에 따르면 아직 꽃은 피지 않은 상태. 그는 3월 셋째 주에 매화가 꽃을 피워 약 1주일간 갈 것으로 예상했다. 

 

호남고속도로 창평IC로 나와 고서면까지 간 뒤 고서사거리에서 가사문학관 이정표를 따라 가면 된다. 가사문학관이 있는 마을이 지실마을이다. 마을 안쪽에 계당 터가 있고, 그 주변에 매화나무가 있다.

담양군 남면사무소 061-380-3784

 

장성 백양사 고불매(古佛梅)

백양사 선원인 향적전(香績殿) 앞에 매화가 있다. 백양사의 어른 스님들은 이를 고불매(古佛梅)라 부른다. 청정하고 모범적인 고불총림의 기상과 분위기를 표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매화는 향적전 담장과 경계를 이루며 서 있다.

 

백양사 박물관장인 법선 스님께 매화의 내력에 대하여 들은 적이 있다. “1960년대 후반에 향적전을 보수할 때 담장도 새로 만들게 되었다. 담장 한가운데에 고불매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여러 스님들이 이 매화를 베어버리자고 했지만 당시 종무소임을 맡고 있던 지선 스님이 담장의 위치를 바꿔서라도 매화나무를 살리자고 했단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가 이 매화향기를 맡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때 향적전 앞에 백매화도 한 그루 있었다. 백매화는 그만 죽고 말았는데, 지선스님은 백매화를 구하지 못한 것을 항상 안타까워하고 있단다.

 

고불매는 지상 30cm의 위치에서 동남쪽으로 한 줄기를 뻗었고, 다시 지상 62cm에서 두 줄기를 뻗었는데 하나는 서쪽을 향한다. 다른 하나는 주간(主幹)을 이루고 있다. 고불매는 전체적으로 균형 있게 잘 자랐으며 고매의 품격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호남고속도로 백양사IC에서 국도 1호선을 타고 장성방향으로 간다. 북하면 소재지에서 891번 지방도로를 따라 복흥 방향으로 가면 왼편에 백양주유소가 나온다. 주유소 맞은편 길을 따라 4km 정도 가면 백양사다.

백양사종무소 061-392-7502

 

순천 조계산 선암사 백매(白梅)

선암사는 서기 529년 백제 성왕 7년에 아도화상이 개산한 절이다. 통일신라의 말엽 9세기 후반경 도선 국사가 호남지방에 창건한 삼암사(三岩寺, 영암 용암사, 광양 운암사, 순천 선암사) 중 하나다. 고려 때 대각국사에 의해 대대적인 중창이 이루어졌다.

 

한때 선암사 주지였던 지허(指墟) 스님에 의하면 고려 때 중건한 상량문에 와룡송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 때 소나무와 함께 매화나무(백매)와 영산홍, 자산홍, 차나무도 심었다고 한다.

 

선암사 팔상전 뒤, 10평 정도 되는 축대 위에 백매가 있다. 나무높이는 11.5m이고, 수관폭은 16m에 이른다. 줄기는 지면의 60cm 높이에서 두 줄기로 자라다가 다시 두 줄기로 뻗은 형태이며, 줄기 밑둥치의 직경이 82cm다. 수령은 약 620년생이며 꽃 색깔은 백색이다.

이 밖에도 선암사에는 모두 22그루 매화가 있다.

 

운수암으로 올라가는 길가 돌담 옆에는 높이 12m, 수관폭 14.5m, 직경이 83cm인 홍매가 있다. 수령이 약 550년가량이다. 줄기의 기부에서 세 갈래로 뻗어 올라간 형태를 띠고 있다. 종무소 관계자에 따르면 3월 셋째 주 정도에 만개한 매화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선암사 칠전선원 뒤편의 1만여 평에 이르는 차밭도 우리의 전통차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호남고속도로 승주IC로 나와 857번 지방도로를 따라 가면 된다.

선암사 종무소 061-754-5247/5953

 

소록도 수양매(垂楊梅)

어린 사슴과 같은 지형이라 붙은 이름 소록도. 1916년 도립 자혜병원으로 출발해 국내 최대 규모의 국립 나환자 요양병원이 이곳에 있다. 역사의 애환은 섬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곳이 중앙공원이다.

 

중앙공원은 소록도의 제4대 원장이었던 일본인 수호(周防正秀)가 1933년부터 8년 동안 재임하면서 나환자들에게 온갖 가혹행위를 일삼아 조성한 곳이다. 그는 나환자들에게 인근 완도와 거제도 등에서 집채만 한 바위를 옮겨 오도록 했으며, 환자들의 재산을 강제징수해 자신의 동상을 세우고 매월 20일에 자신의 동상에 참배토록 강요하기도 했다.

 

1942년 6월 20일, 이날도 수호는 환자들을 자신의 동상 앞에 집합시켜 놓고 갖가지 공갈 협박으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각종 개발사업의 실적부진을 질타하고 있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환자 중 한 명이인 이춘상은 손가락이 문드러져 없어진 무딘 팔목에 미리 준비한 칼을 헝겊으로 동여맨 후, 훈시를 하고 있던 수호를 향해 단상으로 뛰어 올라가 그를 찔렀다. 수호는 그 자리에서 죽고, 일본군에 체포된 그는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지금 중앙공원에는 편백과 솔송나무, 향나무 등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그리고 국내에서 가장 큰 수양매 한 그루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마치 이춘상의 혼이 형상화한 듯이 말이다. 높이 6.8m이고 수관폭은 동서로 13.4m, 남북으로 5.8m이며 직경은 66cm인 백매화다. 지상 62cm의 줄기에서 서남 방향으로 11m 가량 옆으로 뻗어나간 가지는 마치 용트림을 하는 것처럼 12개의 곡선을 형성해 자랐다.

 

소록도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멀리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서 온 파란 눈의 천사들이 있었다. “눈 뜨면 한국생각 잠들면 소록도 꿈”만 꾼다는 마리안 수녀(71)와 “소록도를 떠나던 날 점점 멀어지는 섬과 쪽빛 물결을 바라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는 마가레트 수녀(70)다. 20대 후반에 소록도에 와서 40여 년간 환자들을 돌보았던 그들이다. 더 이상 환자들을 돌볼 수 없어 미안하다는 것이 그들이 떠난 이유다. 마음만은 소록도에 남겨두고 말없이 조용히 떠나간 천사와 같은 수녀님들, 그들의 고마움을 잊을 수 없어 소록도 사람들은 지금도 밤마다 기도회를 갖는다.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해 일단 고흥까지 간다. 고흥읍 녹동항에서 배를 타고 약 5분 정도 가면 소록도에 닿는다. 배편은 약 10분에 한 대 꼴로 있다. 현재 녹동항과 소록도, 거금도를 잇는 연륙교가 공사 중이다. 올해 10월이면 완공될 것으로 보인다.

고흥군 문화관광과 061-830-5114, 국립소록도 병원 061-844 0561/061-840-0507

 

꼭 한번 보아야 한국의 3대 매화 - 산청 3매(山淸3梅)     

 

산청 단성면 운리 정당매(政堂梅)

경남 산청군 단성면 운리의 단속사 터 뒷길을 따라 약 50m 올라가면 정당매가 있다. 시, 서, 화의 삼절로 꼽히고, 우리나라 최초의 원예서인 양화소록(養花小錄) 쓴 인제 강희안 선생의 증조부인 통정 강회백이 소년시절 글공부를 하기 위해 단속사에 들어갔을 때 심은 매화나무다. 수령이 무려 650년이나 됐다.

 

강회백이 훗날 문과에 급제해 그 벼슬이 정당에 까지 이르게 된 것 때문에 정당매라 불린다. 경상남도에서 도 지정 나무로 보호 관리하고 있지만 나무의 세력이 몹시 쇠약해진 상태라 안타깝다. 꽃 색은 백색이고, 향기가 짙다. 단성면 사무소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꽃이 핀 상태. 부지런을 떨어 이번 주에 떠난다면 꽃을 볼 수도 있겠다.

 

대전-진간 고속도로 단성IC로 나와 우측 덕산 방향으로 약 5분 정도 차로 가면 입석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운리 방향으로 약 5분 더 가면 탑동 근처에 단속사지 이정표가 있다.

단성면 사무소 055-970-7281

 

산청 단성면 남사리 분양매(汾陽梅)

단성면 운리에 도착하기 전, 예담촌이라는 푯말이 있는 곳이 남사마을. 이곳 진양 하씨의 종택으로 33대 째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고택이 있다. 고려말 원정공 하집이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원정공(元正公)이란 의미는 의를 행하여 백성을 기쁘게 하는 것이 원이요, 정의로서 남을 복종케 하는 것이 정이라는 뜻이다.

 

분양고가(汾陽古家)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 집은 명문 고택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원정구려(元正舊廬, 원정공의 옛집)’라는 대원군의 친필 편액이 보관 되어 있는 사랑채 앞 뜰에 600년 동안 묵묵히 고택을 지켜온 고매가 있다. 줄기의 용트림이 괴기하고, 분홍의 꽃빛이 아름다운 이 매화는 중국이 자랑하는 10대 명매 가운데 하나인 운남성의 보조사 고매와 그 모양새가 비슷한 점이 많다. 운리의 정당매와 마찬가지로 현재 꽃을 피운 상태다.   

 

대전-진주 고속도로 단성IC로 나와 우측 덕산 방향으로 약 5분 정도 차로 가면 입석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운리 방향으로 가면 운리 도착하기 전 예담촌이라는 표지판이 나오는데 이곳이 남사마을이다. 마을에서 물어보면 진양 하씨 종택을 찾을 수 있다.

단성면 사무소 055-970-7281

 

산청군 시천면 남명매(南冥梅)

산청군 시천면의 산천제(山天齊)는 호남학파의 수장으로 영남학파의 퇴계 이황과 함께 쌍두를 이루던 남영 조식 선생이 말년을 보낸 곳이다. 조식 선생은 일생의 마지막 도장으로 지리상 천왕봉이 바라보이는 이곳에 산천제를 짓고 후학을 양성하며 만년을 맞이한다.

 

산천재 앞뜰에 평소 남명이 아끼고 사랑했던 매화가 있다. 그의 호를 따 남명매로 불린다. 매화는 목질이 빙골이라 하여 얼음처럼 냉철하고, 휘어지지 않는 강직함을 가지고 있다. 백성을 사랑하고 임금에게 목숨을 걸고 올바른 이야기를 할 정도로 강직했던 조식의 기백가 용기와 정신을 빼닮았다. 1555년 조식이 단성현감의 벼슬을 사양하면서 당시 명종에게 올린 단성소(丹城疏)는 유명하다.

 

산천제의 남명매는 한때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공연된 바 있는 ‘시골선비 조남명’이라는 연극 무대에도 등장했다. 연극이 끝날 때 까지 무대를 지키고 서 있던 매화나무 같이 남명의 기상을 지닌 체 지금도 산천제 앞뜰에 묵묵히 서 있다.

 

대전-진주 고속도로 단성IC로 나와 중산리 방향으로 약 15분 가면 시천면 소재지가 나온다. 산천제는 시천면 소재지 내에 있다.

시천면 사무소 055-970-7272  

 

꼭 한번 보아야 한국의 3대 매화 - 그 밖의 매화

 

안동 도산서원 도산매(陶山梅)와 서애매(西厓梅)

매화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고장이 안동이다. 매화를 가장 사랑한 인물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퇴계 이황의 도산서원이 있다. 퇴계는 벼슬을 해 나랏일을 볼 때는 동헌 마당에 매화를 심어놓고, 아침마다 매화와 더불어 대화(對梅話答)하고 그 가운데서 지혜를 얻었다 또 술상을 가운데 놓고 매화(분재매화)와 마주 앉아 매화를 형이라(爲兄) 부르며 밤이 새도록 술 바리를 비우며 감상에 젖기도 했다.

 

원래 도산서원 광명실 앞에는 도산매라 이름 붙은 매화가 있었다. 퇴계 선생이 풍기군수를 할 당시, 두향이라는 관기가 있었다. 그녀는 인품이 높은 퇴계와 가까이 지내고 싶어서 여러 가지 선물을 했지만 강직한 퇴계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두향은 퇴계가 매화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매화를 선물했다. 다른 선물과 달리 퇴계는 매화를 받아 동헌 마당에 심어 두고 길렀다. 그러다가 관직을 버리고 도산서원으로 오면서 그 매화를 옮겨 심었는데 이것이 도산매다.

 

하지만 안타깝게 도산매는 지는 1986년에 죽었다. 후계목도 없어 그 모습을 영원히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도산서원 학예담당 김준규 씨에 따르면 현재 남아있는 매화는 1970년, 서원을 보수할 때 심은 것들이라고 한다. 서원 내에 약 15그루가 심어져 있다. 이중 가장 오래된 것은 약 60년 된 것이라고. 현재 매화는 막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3월 셋째 주면 만개한 매화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그가 전했다. 매화를 사랑한 퇴계 선생을 기리기 위해 올해 진입로 주변에 약 30여 그루의 매화나무를 심을 계획이라고 한다.

 

한편, 풍산 유씨가 600여 년 동안 대를 이어 살아 온 하회마을에는 서애 유성룡이 거처했던 충효당(보물 제414호)이 있다. 충효당 우측 뒤편에 있는 영목각 앞에는 연분홍빛 꽃색이 아름다운 매화가 있다.

 

중앙고속도로 서안동IC로 나와 국도 34호선을 타고 안동 시내로 간다. 이정표를 따라 국도 5호선, 국도 35호선을 차례로 타면 도산서원에 닿는다. 이정표가 잘 돼 있다. 하회마을로 가려면 서안동IC에서 안동 시내를 거쳐 풍산읍을 지난다. 중리마을 3거리에서 하회마을 이정표를 따라간다.

도산서원관리사무소 054-840-6576, 하회마을관리소 054-854-3669

 

강릉 오죽헌 율곡매(栗谷梅)

오죽헌은 우리나라 현존 주택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조선 조선중기 성리학을 집대성한 대유학자인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루던 율곡 이이가 태어난 몽용실(夢龍實)이 있다. 신사임당은 ‘검은 용이 동해에서 날아와 침실에 서려있는 꿈을 꾼 뒤 율곡 선생을 낳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이 몽용실이다. 몽용실 왼쪽 처마 끝에 수령 600년이 넘는 율곡매가 있다. 분홍의 꽃을 피우며, 실한 열매를 맺는다. 큰 열매는 크기가 아이 주먹 만 하다. 

관리 사무소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매화는 꽃봉오리가 진 상태. 3월 셋째 주 정도에 꽃을 피울 것으로 전망했다.

 

영동고속도로 강릉IC로 나와 경포대 이정표를 따라 간다. 국도 7호선과 만나는 사거리에서 우회전해 500m 직진하면 오죽헌 입구가 나온다.

오죽헌 관리사무소 033-640-4457

 

/ 일간스포츠 editor 김성환 writer 안형재(한국매화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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