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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전라북도

정읍 1번국도-피향정 성황산 태인미륵불교

by 구석구석 2007.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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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고속도로와 나란히 이어지는 1번국도

 

 

태인면 태창리 1-6 피향정은 호남 제일의 정자를 자처하는 곳이다. '이불 피' 자에 '향기 향' 자를 써서 피향정이라 부른다. 이불을 덮어도 연꽃 향기가 난다는 뜻인가? 옛적엔 이 정자에 딸린 연지가 두 곳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하연지 밖에 남아 있지 않다. 하연지도 그리 작은 연지는 아니다. 꽃이 진 연지가 쓸쓸해 보인다.

 

신라 시대 최치원이 태산 군수로 있을 때, 이곳 연지가를 소요하며 풍월을 읊었다는 전설이 있지만 이 정자가 언제 세워진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조선 시대 중기의 건물이다. 정면 5칸, 측면 4칸 크기의 팔작집이다. 4면이 모두 개방되어 있고 주위에는 계자난간이 둘러져 있다. '호남제일정'이라는 현판이 있는 남쪽에 정자로 오르는 돌계단이 있다.

 


천장을 올려다보니 서까래 아래엔 '피향정'이란 현판이 붙어 있다. 연등천장의 합각 밑에 설치한 작은 우물천장이 특히 아름답다. 옛 사람들이 '호남제일정'이라고 호기를 부렸던 원인이 있다면 이 우물천장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곳에 올라 하연지에 비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는 일도 운치 있긴 하지만.

정자 우측 마당 구석을 바라보니, 여남은 개 남짓 되는 '불망비' 혹은 '선정비'가 일렬로 늘어 서 있다. 담장의 가장 구석진 곳에 있는 비가 고부 군수 조병갑의 아버지인 태인 군수 조규순의 '영세불망비'다. 조병갑이 자신의 아버지의 영세불망비를 세운다는 명목으로 고부 농민들로부터 1천 량을 수탈하여 세운 것이 바로 이 비다.
 
글 오마이뉴스 안병기

 

성황산은 전봉준 장군이 이끄는 동학농민군 주력부대의 최후 격전지로 알려진 곳이다. 원평 싸움에서 패하고 나서 이곳으로 쫓겨와 진을 친 동학농민군은 1894년 11월 27일, 스즈키가 이끄는 일본군과 관군을 맞아 싸웠으나 무참하게 패한 뒤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태인 전투 패배 후 이곳저곳을 전전하던 전봉준은 김개남이 은신하고 있는 태인 산내면 종성리로 오다가 순창군 쌍치면 피노리에 이르러 왕년의 친구 김경천의 밀고로 체포되고 만다. 1894년 12월 2일(陽 12월28일)의 일이다.

 

태인면 태흥리 태인미륵불교

 

정인표가 1938년 태인면 태흥리에 창설한 교단이다.
교주 정인표는 1897년 전라북도 완주군소양면 대성동에서 출생하였다. 출생시 태아는 일월포로 둘러 쌓였고 산실에는 향기가 가득하여 서기가 집안에 둘러 하늘에 닿았으며 등에는 수덕이라는 두 글자가 뚜렷하게 씌어져 있었다 한다.

9세때에는 서당에서 공부한지 수일만에 퇴학하고 말았으니 한자를 전혀 모르는 것은 불문가지였다. 1934년 전주 미륵암에서 수도 끝에 득도하였고 1938년 7월 15일 교도 이진호 집에서 신도공사를 강론하는 자리에서 일본에 死자를 붙이고 조선에 生자를, 소화에 落자를 각각 붙이고 일망무지(日亡無地)라 하였다.
즉 일본은 죽고 조선은 살고, 소화는 땅에 떨어지고 일본은 망한다는 뜻이었다. 천자는 선한 자에 복을 주고 악한 자에 화를 주나니 일본은 결국 패망한다.
우리는 조국 광복을 위하여 성심껏 기도를 계속 실행하자고 하였다.

그러나 당시 첩자였던 김병환의 밀고로 1940년 12월 15일 김제경찰서에 체포되어 왜황실불경죄륙해군형법 치안유지법위반(倭皇室不敬罪陸海軍刑法 治安維持法違反)을 적용하여 8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광복 후 1950년 2월에는 교당을 세웠으며 1951년 명륜고등공민학교를 인수하고 1954년 3월 25일에는 명륜고등공민학교를 태인기술학교로 개칭했다. 이 자리는 태인면 태흥리 도창치로 조철제의 무극교가 자리하고 있었던 곳이다.

현재 태인우체국 옆에서 천일당 한약방을 경영하는 이종도(67세)씨가 대표로 있다.
교당내 성전인 대성미륵대장전에는 중앙에 미륵불, 좌측에 석가불, 우측에 공자의 3성을 봉안하고 구천미륵불하강지위, 석가여래불응감지위, 대성지성문선왕응감지위라는 위패를 모셨다.
미륵불은 증산천사를 의미한다. 따라서 유·불·선을 융합한 교단임을 바로 알 수 있다. 수덕전에는 정인표를 동상으로 모시고 주세아미타불이라는 신표가 모셔져 있다.
이외에 보살전, 명부전 그리고 칠성전과 관리실이 있다.

교본소를 둔 태인면 태흥리는 입암면의 대흥리와 의미상 같은 말로 보천교 본소가 있는 입암의 대흥리와 견줄 수 있는 지명으로 생각된다. 우리말을 한자로 옮겼을 때 어의가 같거나 음이 같으면 취해서 공사를 행한 것은『증산천사공사기』나『대순전경』에서도 많이 찾아 볼 수 있는 경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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