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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제주시

제주 애월읍-하가리 연화못 오당빌레 더럭분교

by 구석구석 2007.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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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내에서 일주도로(12번 국도)를 따라 서쪽으로 20km쯤 차를 몰면 길 왼쪽에서 애월읍 고내리 마을에 있는 고내봉을 발견할 수 있다. 이 고내봉에 채 이르기 전에 하가리(下加里) 마을 입구임을 알리는 표석 앞에서 좌회전하여 길을 따라가면 하가리에 이를 수 있다.

 

하가리에는 고려시대부터 화전민이 모여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 후 이곳에 현씨, 차씨, 주씨가 모여 살게 되면서 인구가 증가하였다. 그러다가 조선조 태종 18년(1418) 판관 하담 목사가 재임하던 시절 지리적 조건과 인구증가로 인해 고내봉을 가운데 두고 그 북쪽은 고내리로 그대로 두고, 남쪽을 고내리로부터 분리하여 가락리(加樂里)라 불렀다.

 

 하가리마을입구 표지석/오마이뉴스

 

애월읍 하가리에 있는 하가 연화(蓮花)못은 3천700여 평의 넓이를 자랑하는 제주 제일의 봉천수 연못이다.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고려왕조 25대 충렬왕(1275∼1309) 때에 마을 연하지에는 야적(野賊)들의 집터로서 연못 한가운데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을 짓고 살면서 이 마을을 지나는 행인들을 농락하고 재물을 약탈하는 일이 빈번했다고 한다.

   

하가1경인 연화못/오마이뉴스 장태욱연화못

의 제일 자랑거리는 역시 연꽃이다. 언제 심어졌는지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이 연못에는 연꽃이 가득하다. 마을 유래에 의하면 19세기 중엽 제주목사 한응호가 지방 순시 중 이곳에 들러 연꽃잎으로 술을 빚어 마시고 시를 읊었으며 양 어머니로 하여금 연꽃을 지켜 가꾸도록 했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연화못의 연꽃은 그 전래시기가 19세기경으로 짐작하고 있다. 

팔각정과 생태관찰로/오마이뉴스

연하못에는 수련이 자라고 있다. 한때는 수련도 빨간색 꽃잎이 피는 적수련과 백색꽃이 피는 백수련, 노란꽃이 피는 황수련이 있었으나 현재는 적수련만이 남아 있다. 그 외에도 개구리밥 부레옥잠 용버들 등의 다양한 수중식물들이 연못을 가득 채우고 있다.

 

오래전부터 연하못 가운데는 육각정(六角亭)이 있었다. 과거에는 육각정이 섬처럼 연못의 가운데에 있어 아이들이 수영해서 육각정에 올라가곤 했다고 한다. 하지만 작년(2006년)에 육각정이 새로 지어지고 이 육각정에 쉽게 갈 수 있도록 관찰로가 만들어졌다. 이곳을 방문하는 아이들에게 생태학교로 손색이 없고, 연인들이 밀애를 나누기에도 더 없이 좋은 곳이다.

 

오당빌레공원표지석과 할망당/오마이뉴스

이 마을의 북쪽은 일주도로(12번 국도)와 접하고 남쪽은 중산간도로(16번 국도)와 접한다. 이 중산간 도로와 만나는 곳에는 '오당빌레'라는 공원이 있는데 이곳은 마을 주민들뿐만 아니라 중산간도로를 지나는 여행객들에게 좋은 휴식처가 되는 곳이다.

 

'오당빌레'에 인접한 북쪽에는 '할망당'이 있다. 오래된 고목이 그 오래된 역사를 말해주고 있었는데, 할망당에는 최근에도 주민들이 이곳에서 당제를 지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과거 제주에는 '당 오백, 절 오백'이라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신당이 도처에 산재해 있었다. 마을마다 본향당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는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곳을 일컫는 말이다. 과거 제주사람들은 구좌읍 송당리에 있는 주신인 백주할망의 자식들이 제주의 각 마을마다 유명한 당신들로 좌정하고 있다가 백주할망의 조종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하가리는 마을 어디를 가나 제주의 돌담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이 돌담길을 따라 마을 안쪽에 이르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몇십 년 뒤로 시간 여행을 온 것처럼 과거 제주의 골목길을 만날 수 있다. 그 골목을 따라가면 오래된 팽나무가 행인들에게 그늘을 제공하기도 하고, 긴 올래(길에서 마당에 이르는 진입로)가 뉘 댁인지 모르지만 한번 방문해보고 싶다는 유혹을 선사하기도 했다. 

 

하가리 마을에 잣동네라는 곳에 이르면 민속자료로 보존되어 있는 '잣동네 말방아'를 볼 수 있다. 제주도에는 마을마다 평균 30가구에 1기씩 '말방아' 혹은 '말방에'라 부르는 연자매가 있었다. 연자매는 제주 고유의 가옥형태에 따라 지붕은 띠로 이고, 둘레는 돌담을 쌓아 뱅 둘러친 연자매간(말방에집, 말가레집) 안에 설치되어 이용되었다. 제주도의 재래적인 주곡은 조와 보리 및 잡곡이었는데, 이를 장만하는 데 연자매가 이용되었다.

 

하가리 마을에 잣동네라는 곳에 이르면 민속자료로 보존되어 있는 '잣동네 말방아'를 볼 수 있다. 제주도에는 마을마다 평균 30가구에 1기씩 '말방아' 혹은 '말방에'라 부르는 연자매가 있었다. 연자매는 제주 고유의 가옥형태에 따라 지붕은 띠로 이고, 둘레는 돌담을 쌓아 뱅 둘러친 연자매간(말방에집, 말가레집) 안에 설치되어 이용되었다. 제주도의 재래적인 주곡은 조와 보리 및 잡곡이었는데, 이를 장만하는 데 연자매가 이용되었다.

  

연자매가 있는 말방아간(좌)과 전통초가(우). 잣동네에는 말방아와 더불어 제주의 전통 초가가 보존되어 있다. 이 집은 '안거리'와 '밖거리' 로 이루어진 '두거리집'이다. 거기에 가축이 기거하는 목거리가 부속으로 갖춰져 있다. 안거리에는 주로 어른이 살고, 밖거리에는 결혼한 자녀가 살았던 것이 보통이다. /오마이뉴스


 

연자매의 구조는 알돌(바닥돌)과 웃돌(맷돌)이 주축을 이룬다. 판판하고 둥근 커다란 석판이 알돌이며 알돌 위를 구르는 둥근 돌이 웃돌이다. 알돌은 땅바닥에 고인 기초석 위에 얹혀지며, 알돌의 중심부에 박힌 중수리를 중심으로 마소나 인력을 이용하여 웃돌을 돌렸다.

 

17세기 제주로 유배되었다가 41세의 나이로 사사되었던 조선의 왕족 이건(李健)은 제주 유배도 중 '제주풍토사기'라는 기록을 남겼다. 제주풍토사기에는 방아 찧는 제주 여인들에 대해 '여인들이 방아를 찧을 때는 군취하고 힘을 합하여 절구공이 노래를 제창하면서 찧으므로 경각에 두어 휘의 곡식을 능히 장만할 수 있으나, 그 노래 소리가 슬프고 처량하여 차마 들을 수가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애월 더럭분교

064-799-0515

하가리 연화못 인근 남쪽에는 도시 아이들이 마음속에 간직할 만한 작지만 아름다운 학교가 있다. 이 학교 울타리 담벼락에는 아이들이 심고 키우는 조롱박과 콩이 탐스럽게 영글어가고, 정원에는 코스모스와 해바라기가 예쁘게 피어나 자라고 있다.
 
전통음악공연과 문고/오마이뉴스 장태욱

이 학교 입구에는 학교의 나이를 짐작케 하려는 듯이 이끼가 파랗게 끼어있고, 조그만 글씨로 ‘애월초등학교 더럭분교장’이라고 적혀있다. 그리고 정문 옆에는 오래된 해송들이 점잖은 자태를 뽐내고 있다.

 

더럭분교(좌), 분교내 쉼터(우)/오마이뉴스 장태욱

해방 이듬해인 1946년에 하가공민학교로 인가를 받고 설립되고 1948년 11월 무장대를 토벌하기 위해 서북청년단과 응원경찰이 이 마을에 주둔하면서 1949년 2월 5일에 이 학교는 무장대의 공격을 받아 건물이 전소되었다가 1950년 6월에 복구되었고 그후 1954년 6월에 학교 이름이 ‘더럭국민학교’로 바뀌었다. 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 애월읍 ‘상가리’와 ‘하가리’인데 이 두 마을이 이전에는 ‘더럭리’라는 한 마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이 두 마을의 인구가 감소하면서 ‘더럭국민학교’는 10여 년 전 ‘애월초등학교 더럭분교’로 바뀌었다.

 

학교에는 1학년이 5명, 2학년 3명, 3학년 7명, 4학년 2명, 5학년 7명, 6학년 4명 등 총 28명의 아이들이 다니고 있다. 수학여행을 갈 때도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모두 같이 가게 되고, 가을 운동회를 할 때에도 모든 아이들이 참가하기 때문에 훨씬 재미있는 운동회가 된다고 했다. 그런 활동 속에서 참여의지가 자라고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이 저절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오마이뉴스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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