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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제주시

제주 오라동-연미마을 초코릿체험장 마카엘농원 방선문계곡

by 구석구석 2007.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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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초등학교가 들어서 있는 사평마을에서 남쪽으로 난 좁은 찻길을 따라가면 연미마을에 당도할 수 있다. 연미마을은 제주시내 도심권에 가까이 있으면서도 겉으로 보기엔 한적한 시골 농촌과 같은 이미지를 던져주는 곳이다. 한없이 평화롭게만 보이는 이 마을이 제주 4·3 과정에서 학살의 전주곡이라 할 수 있는 '오라리방화사건'의 현장이었다.

4.3당시 오라리 방화사건의 현장/오마이뉴스

1947년 3월 1일에 관덕정에서 수만 명의 인파가 모여 3·1절 기념식을 열었다. 그런데 경찰은 기념식 인파에 총을 쏴 6명이 사망했다. '3·1절 발포사건'이다. 이후 주민들은 총파업으로 저항했고, 경찰은 주민들에 대한 대대적인 체포와 구금을 단행했다. 1948년 4월 3일 새벽 1시 한라산과 제주지역 89개의 오름에서 일제히 봉화가 오르면서, 1500여 명의 ‘인민자위대’가 도내 20개 경찰지서 가운데 10개를 공격하는 민중봉기를 일으켰다.  

이후 9연대장 김익렬은 유격대 사령관 김달삼에게 평화협상을 제안하여 양측은 4월 28일에 "72시간 이내에 전투를 완전히 종결하고, 무장해제는 점진적으로 하되 약속을 위반하면 즉각 전투를 재개한다"는 협상안에 합의했다. 

 

50년대에 지어진 초가/오마이뉴스

하지만 3일간의 평화를 끝으로 5월 1일에 오라리방화 사건이 일어났다. 이날 밤 12시 괴청년 30여 명이 오라리 연미마을에 들어와 12채의 집에 불을 놓으면서 사건은 시작되었다. 불이 난 시간에 마을 남쪽에 있는 민오름에서 유격대원 20명이 이 광경을 목격하고 마을로 급히 내려왔지만, 괴청년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유격대원들이 돌아간 뒤, 다시 경찰들이 총을 난사하며 마을로 들어왔다. 그리고 9연대 군인이 도착하자 경찰은 사라져버렸다.

 

당시 경찰은 방화의 주범을 유격대라 하였지만, 현장을 답사한 김익렬 연대장과 정보참모 이윤락은 이들을 무장대로 위장한 경찰이라고 하였다. 미군정은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에서의 메이데이>란 영화를 만들어 제주 민중의 잔인함을 부각시키고, 경찰의 잔인한 토벌을 정당화시켰다.

 

오라2동 초콜릿체험장(마카엘농원) 064-744-0093 http://www.chocolatejeju.kr/

 

 

방선문계곡 주변 6만6000㎡ 용지에 연면적 2800㎡ 규모의 초콜릿 체험장은 전시장, 판매장, 체험농장으로 나눠 운영되는데 전시장에는 초콜릿에 대한 역사와 유래 및 다양한 초콜릿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체험 공간에서는 원료 초콜릿을 녹이는 '탬퍼링', 틀에 초콜릿을 붓는 '몰드' 등의 제작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 특히 감귤, 백련초, 파인애플 등 제주의 1차 농산물을 가공해 만든 제주초콜릿 5가지도 음미하고 직접 만들어 볼 수도 있다. 이밖에 과자나 과일 등을 초콜릿에 찍어 먹는 퐁듀체험과 초콜릿 보물찾기, 무농약 감귤 따 먹기 체험도 할 수 있다. 전문 판매장에서는 국내 초콜릿은 물론 벨기에, 스위스, 미국, 일본 등 150여개국의 유명 초콜릿과 수제 초콜릿이 있다.

 

제주시 오라동 종합경기장에서 남쪽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정실마을에 이르면 방선문을 알리는 표지를 볼 수 있다. 이곳에서 제주교도소를 끼고 남쪽으로 뻗은 포장도로를 1.6Km쯤 따라 올라가면 방선문 계곡이 나온다. 방선문은 한라산 탐라계곡과 열안지오름 동쪽에서 내려오는 계곡이 만나는 지점으로, 제주시 용연(龍淵)으로 흐르는 한천의 상류에 해당한다.

 

이곳에서 용연으로 이어진 한천은 비가 오지 않을 때는 바닥을 드러내는 건천이다. 설령 비가 내리더라도 이곳에서 용연에 이르는 길이 약 7Km의 하천바닥이 우수를 흡수하여 하천이 범람하는 것을 막아주는 완충역할을 한다.

 

방선문계곡/오마이뉴스

방선문 계곡에는 큰 바위로 지붕이 덮여있는 바위 그늘이 있는데, 대문을 열어놓은 것처럼 앞뒤로 트여있어 마치 터널을 보는 듯하다. 150명 이상이 들어가 앉을 수 있을 만큼의 넓이를 지닌 이 터널을 두고 ‘방선문(方仙門)’이라 불렀다. '신선이 방문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과거에 이 일대를 영구(瀛丘)라고 부르기도 했다. 제주참꽃이라 불리는 철쭉꽃이 계곡 전체에 덮였는데, 이것이 맑은 계곡물에 비쳐서 계곡바닥까지 온통 꽃으로 덮인 듯 하였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을 영구춘화라 하여 영주십경 중 하나로 자랑한다.

 

 거대한 바위로 만들어진 터널(바위그늘)이 방선문이다. 이 바위그늘 안쪽에 150명이 들어가 앉을 수 있다고 한다. /오마이뉴스

 

봄철에는 제주에 부임한 목사들이 육방관속과 관기를 거느리고 방선문에서 시도 읊고 봄놀이도 즐기며 마음을 다스렸다. 과거의 그런 풍습으로 인해 판소리 소설인 <배비장전>의 무대가 되었다.  

대원군의 폭정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제주에 유배왔던 면암 최익현은 유배에서 풀려나게 되자 고종 12년(1875년) 3월 27일에 일행 15명을 거느리고 한라산을 등반했다. 당시는 한라산 등반이 일반화되지 않을 때라 등반로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는데, 그들은 방선문 계곡으로 한라산을 올랐다. 면암은 당시 방선문 계곡을 본 소감을 이렇게 표현했다.

 

"3월 27일, 남문(南門)을 출발하여 10리쯤 가니 길가에 시냇물이 흐르는데, 이는 한라산 북쪽 기슭에서 흘러내리는 물들이 모여서 바다로 들어가는 시내였다. 언덕 위에 말을 세우고 벼랑을 따라 수십 보를 내려가니 양쪽 가에 푸른 암벽이 깎아지른 듯이 서 있고, 그 가운데에 큰 돌이 문 모양으로 걸쳐 있는데 그 길이와 넓이는 수십 인을 수용할 만하며, 높이도 두 길은 되어 보였다. 그 양쪽 암벽에는 '방선문등영구(訪仙門登瀛丘)'란 여섯 자가 새겨져 있고… 수단화와 철쭉꽃이 좌우로 나란히 심어져 있는데 바야흐로 꽃봉오리가 탐스럽게 피어나고 있어 이 또한 비길 데 없는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나는 이런 풍경에 취해 한참 동안 발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 최익현의 <유한라산기> 중 일부

 

지금은 이 계곡에 물이 흐르지 않지만 면암이 한라산을 등반할 당시에는 방선문 계곡에 물이 흘렀으며 철쭉이 계곡 좌우를 가득 수놓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방선문 바위 곳곳에는 방문객들이 기념으로 바위에 남겨놓은 글귀들이 남아있다. 이를 마애명이라 하는데 지금 남아있는 마애명이 홍중징의 한시 '등영구' 등을 비롯해 37개가 된다. 예나 지금이나 게시판에 '리플'을 달고야 속이 풀리는 것은 타고난 민족성인 모양이다. 지체 높은 양반들이 체면 구겨가며 높은 바위에 대롱대롱 매달려 글씨를 썼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면암 최익현도 방선문 계곡을 지날 때 한라산 등반길을 안내하던 이기온의 이름과 자신의 이름을 나란히 바위에 새겨 놓았다. 이기온은 광해군 때 인목대비의 폐위를 반대하다 유배를 왔던 간옹 이익의 후손이다. 이기온은 최익현의 위정척사 사상을 이어받아 제주 유림에게 전파했고 이것이 제주 의병운동의 정신적 초석을 이루었다.

 

 

계곡 동남쪽에는 병풍바위 위에 우선대가 있다. 옛날 효성이 지극한 나무꾼이 나무를 하는데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 이 나무꾼을 만나서 사랑을 속삭였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곳이다. 면암 최익현도 방선문 계곡을 지날 때 한라산 등반길을 안내하던 이기온의 이름과 자신의 이름을 나란히 바위에 새겨 놓았다. 이기온은 광해군 때 인목대비의 폐위를 반대하다 유배를 왔던 간옹 이익의 후손이다. 이기온은 최익현의 위정척사 사상을 이어받아 제주 유림에게 전파했고 이것이 제주 의병운동의 정신적 초석을 이루었다.

 

계곡 동남쪽에는 병풍바위 위에 우선대가 있다. 옛날 효성이 지극한 나무꾼이 나무를 하는데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 이 나무꾼을 만나서 사랑을 속삭였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곳이다. 오마이뉴스 장태욱

  

▲제주 10경 중 영구춘화로 유명한 방선문 계곡에서 '2009 방선문 계곡 음악회'가 열려 많은 도민들이 시원한 계곡 그늘에서 음악감상을 하고 있다.제주일보

 

한라산에 위치해 제주도 정치 물씬풍기는 오라CC

그랜드호텔을 운영하고 있는 오라관광(주)의 오라칸트리클럽은 지난 79년에 개장했으며, 한라산 자락에 위치해 제주도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고, 공항과 시내 모두 인접해 선호가 높은 편이다.
코스는 동코스 9홀, 서코스 9홀, 남코스 18홀로 총 36홀로 이뤄졌다. 보통 18홀로 구성된 다른 골프장과 달리 오라C.C만으로 구성된 상품도 판매가 활발하다. 또 비수기에는 1일 라운드 18홀 외에 무료 9홀을 추가해주는 이벤트를 운영하기도 한다.


동코스는 계곡과 숲으로 이뤄진 마운틴코스. 반면에 페어웨이가 구릉이 있으면서 상당히 넓은 편으로 부드러운 인상을 준다. 또 효과적으로 배치돼 있는 벙커와 해저드, 요소요소의 그린에서 나타나는 착시현상 때문에 플레이하기에는 까다로운 편. 서코스는 페어웨이가 비교적 평탄하고 자연스럽게 조성돼 있어서 평화로운 초원을 연상케 한다. 반면에 코스 공략 면에서는 정확한 공략과 안전한 플레이가 요구되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남코스는 남성적이고 호쾌한 전망이 매력적이다. 그린표면의 기복과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최대한 살린 코스로 추천한다. 페어웨이 거리가 동코스에 비해 길게 느껴지고 바람의 영향을 많이 곳이기도 하다. 골프장은 클럽하우스를 비롯해 각각 동, 서, 남쪽에 각각 티하우스를 운영한다. 약 8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연회장도 있다. 또 그랜드호텔과 인접해 셔틀버스가 운행 중이다. 여행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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