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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서울 한강

서울 수유동 화계사계곡 삼성암 본원정사

by 구석구석 2007.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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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계사계곡 한글맞춤법 통일안이 집필된 화계사

  

서울특별시 시도유형문화재 제65호인 화계사 대웅전 현판은 광화문 현판을 쓴 조선 후기 명필인 정학교가 썼고, 주련(기둥 글씨)은 추사 김정희의 수제자인 신관호가 썼다. / 오마이뉴스

고려 광종 때 법인대사 탄문이 지금의 화계사 인근인 부허동에 보덕암을 창건하였다. 이 암자를 조선 중종 때 신월 스님이 지금의 자리(당시에는 화계동)로 이건하면서 '화계사'라 이름을 바꾼다. 화계사(서울시 강북구 수유동)의 밋밋한 창건 내력이다.

 

삼각산 한줄기, 작은 터전에 대웅전, 명부전, 삼성각이 몇 걸음 간격으로 서 있어서 절구경은 아주 짧게 끝난다. 이들 전각을 모두 참배해도 10여 분 남짓 걸릴 뿐이고, 찬하 거사가 20년 동안 조국광복을 염원하며 조성했다는 천불오백성전의 생김새가 저마다 다른 500나한을 찬찬이 보아도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오마이뉴스
화계사를 제대로 만나려면 대웅전 맞은편에 있는 화장루(華藏樓) 낮은 마루에 앉아 봐야 한다. 대웅전과 명부전, 천불오백성전과 삼성각이 한눈에 들어와서 이들 전각의 특징을 비교해볼 수 있다. 앞면 3칸, 옆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지붕인 대웅전은 가장 화려하게 장엄하고, 명부전은 대웅전을 향하여 합장하고 서 있는 듯 배치하였다.
 
1933년, 조선어학회 주관으로 최현배, 이희승 등의 국문학자 9명이 이 대웅전에 기거하면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집필한다. 그리하여 같은 해 10월 29일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발표하게 된다. 오늘날 우리들이 누리고 있는 말과 글의 풍성한 혜택은 이분들의 노력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다.

 

보물11-5호인 동종과 범종각/오마이뉴스

흥선대원군이 아들이 왕위에 오르기를 염원한 화계사. 그래서 그 염원이 가장 절실하게 깃든 명부전의 현판과 주련이 흥선대원군의 친필이고 머무르며 기도했을 화장루에도 친필이 2점이나 남아 있다. 
자료-오마이뉴스 김현자
 

화계사에서 삼성암으로 향하는 계곡을 향하여 출발하려고 하니 화계공원 지킴터 옆에 큰 나무와 함께 조그만 계곡에서 많은 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계곡에 들어서니 냉기가 도는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이곳이 더운 여름 천국이 아닌가 할 정도로 시원함을 느꼈다.

 

조금 오르니 등산 시작 지점에는 산을 오르기 전에 시원한 물 한 모금을 먹고 가라고 약수가 있다. 약수터에는 깨끗한 물이 졸졸 흘러내리고 있다. 옆에는 폭포에서 떨어지는 듯한 물이 떨어지고 있다. 보기만 하여도 시원하다.

 

화계사계곡/박하용

약수터에서 더 오르면 쉬어갈 수 있는 장소가 있다. 그곳에서 계곡을 바라보니 조그마한 폭포가 즐비하다. 금방이라도 계곡에 들어가고픈 마음이 들 정도로 시원하다.

 

화계사계곡 / 박하용

이곳에 오르는 길옆 표시판에는 숲이 우리에게 주는 효과에 대해 설명을 하여 놓았고 물이 많은 계곡을 건너갈 때 편리하도록 징검다리도 놓여 있다. 계곡을 지나 오르니 큰 돌에 부처님을 새겨 놓았다. 그 아래에는 더운 여름 쉬면서 물을 마실 수 있도록 하여 놓았다.

 

삼성암에 이르기 전 적송이 즐비한 곳에는 누가 쌓아놓은 지 모르는 돌탑 사이로 스님의 부도가 눈에 들어온다. 부도를 보니 오래되어 보이지는 않았다.

 

대웅전과 나리꽃/박하용

이 암자에서는 수학능력시험을 대비해서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웅전의 꽃살 출입문이 보기가 좋다. 연꽃 위에 쓰인 남무석가모니불(南無釋迦牟尼佛) 주련이 마음에 다가온다. 대웅전 근처에는 아름답게 핀 나리꽃과 도라지꽃, 천인국, 벌개미취 꽃을 볼 수 있다.

 

수유동 본원정사

화계사길 - 한신대 앞 우회전 - 국립재활원 방향 좌회전 본원정사   

 

 

본원정사 명부전에 모셔져 있는 나무로 만든 지장보살상은 삼각산 태고사에 있었는데 한국전쟁 때 태고사에 불이 나 본원정사로 옮겨졌다고 전한다. 고개를 약간 숙이고 앉아 있는 이 지장보살좌상은 신체에 비해 얼굴이 다소 넓적하고 큰 느낌이 있으나 전체적으로 단정하면서도 균형이 잘 잡혀 있어 안정감을 준다. 몸체가 그다지 큰 편은 아니지만 양감이 잘 표현되었다. 두 어깨를 모두 감싼 옷은 자연스러운 옷주름을 만들면서 흘러내려 온몸을 감싸고 있다. 지장보살좌상의 손 부분은 원래의 것이 불에 타 다시 갈아 끼운 것이다. 이 목조지장보살좌상은 규모나 조각 수법, 양식적인 특징 등은 조선 후기 목조각을 대표할 만한 것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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