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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전라남도

순천6대관광지 낙안읍성 금전산 금둔사 납월매 낙안온천

by 구석구석 2007.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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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6대관광지인 낙안읍성

 

낙안읍성 살구꽃

 

전남 순천시 낙안읍성(樂安邑城) 민속마을은 4월에 살구꽃이 한창이다. 낙안읍성을 두르고 지나가는 지방도로변에도 살구꽃이 흐드러진다. 살구꽃은 벚꽃이나 매화와 구분이 쉽지 않다. 살구꽃이라고 하면 으레 분홍색으로 알지만, 실은 매화나 벚꽃처럼 분홍빛을 띈 흰색이다. 꽃 모양도 비슷하다. 매화가 조금 일찍, 그 다음이 살구, 이어 벚꽃이 핀다.

낙안읍성은 조선시대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마을. 1983년 민속마을(사적)으로 지정돼 민가가 복원됐고, 1996년까지 성곽과 성문 등 주요 건축물이 보수·복원됐다. 성곽 높이 4m, 총길이 1410m. 천천히 걸어도 20분이면 한 바퀴 충분히 돈다. 108세대가 실제로 생활하는, 살아있는 마을이다.

 

남문과 서문 사이에 있는 민가들은 대부분 민박을 받는다. 하룻밤 3만원. 호텔 수준은 아니지만 샤워시설이 갖춰있고 방이 깨끗하다. 주말에는 몰리니 문화관광과에 미리 연락해 예약해야 안전하다. 낙안읍성 민속마을 관광안내 (061)749-3347, 3893 www.nagan.or.kr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싶다면 낙안온천으로 간다. 낙안읍성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금전산 중턱에 있다. 유황과 게르마늄이 많아 피로회복과 피부질환 치료 효과가 있다고 한다. 어른 5000원, 7세 이하 아동 3000원. (061)753-0035

스포츠조선 김성윤기자

낙안읍성마을

 삼한시대 마한땅, 백제때 파지성, 고려때 낙안군 고을터이며 조선시대 성과 동헌 객사 임경업군수비 장터 초가가 원형대로 보존되어 성과 마을이 함께 국내 최초로 사적제302호로 지정되었다.

수문장 교대식

주말과 휴일엔 수문장교대식 등 역사체험 프로그램이 더해져 조선시대 체험여행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읍성입구에서 펼쳐지는 수문장 교대식은 당시 성곽을 지키던 병사들의 임무교대의식, 색다른 볼거리로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조선태조6년(1397) 왜구가 침입하자 기 고장 출신 양혜공 김빈길 장군이 의병을 일으켜 토성을 쌓아 방어에 나셨고 300년후 인조4년(1626) 충민공 임경업 장군이 33세때 낙안군수로 부임하여 현재의 석성으로 중수했다. 

다른지역성과는 달리 넓은 평야지대에 1~2미터 크기의 정방형의 자연석을 이용하여 높이4미터, 너비3~4미터, 성곽 총길이가 1,410미처로 동내 남내 서내등 41,000평에 달하는 3개마을 생활근거지를 감싸은은 듯 네모형으로 견고하게 축조되어 400년이 가까운 지금도 끊긴데가 없고 웅장하기 이를데 없다. 지금도 성안에는 108세대가 실제 생활하고 있는 살아숨쉬는 민속고을의 전통마을로서 민속 학술자료는 물론 역사의 산교육장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읍성민속마을(T749-3837, 입장료2,000원)


 
6만8천여평으로 초가는 초라한 느낌마저 들지만 조상들의 체취가 물씬 풍겨 친근한 정감이 넘친다. 남부지방 독특한 주거양식인 툇마루와 부엌,토방, 지붕,섬돌위의 장독과 이웃과 이웃을 잇는 돌담은 모나지도 높지도 않고 담장이와 호박넝쿨이 어우러져 술래잡기 하며 뛰놀던 어린시절 마음의 고향을 연상케 하며 마당 한켠의 절구통마저도 옛 스럽다. 

   

 
구불구불한 골목길, 돌을 쌓아 올린 담장, 마른 짚 냄새가 풍기는 초가지붕 등 우리네 옛 정서가 마을 가득 피어오른다. 그렇다고 민속촌이나 향토박물관처럼 옛 모습을 그냥 재현해 놓은 전시용 가옥이 아니다. 안동 하회마을과 같이 양반마을도 아니다. 그저 우리 서민들이 살아왔던 옛 그대로의 모습이다. 주민들이 실제 초가에서 생활하면서 민박집, 주막 등을 운영하고 있다. 하여 조상들의 체취가 물씬 풍겨 친근한 정감이 넘친다.
 
  
민속마을 / 오마이뉴스 이돈삼 
평상시 볼거리도 푸짐하다. 마을 노인들이 새끼를 꼬고 짚신과 맷방석 짜는 것, 아낙들이 물레로 하는 길쌈 작업 등이 그것이다. 대장간에 가면 풀무질은 물론 농기구와 각종 생활도구 제작과정도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옷을 입어보는 복식체험과 조랑말 타보기 그리고 꼬마장승 옷 입히기, 새끼 꼬기, 황토염색 체험 등은 덤이다.

 
 
낙안읍성 남도음식문화큰잔치 
전국의 내로라하는 식도락가들이 남도음식문화축제에 맞추어 남도로 가을여행을 준비하는 10월. 낙안읍성 민속마을에서 일주일가량 축제가 매년 열리고 있다. 
 
 
 
2007년 14회를 맞는 남도음식문화큰잔치는 다양한 먹을거리와 볼거리 등 영양가 만점의 프로그램으로 준비되고 있다. 기획전시 행사로는 도내 22개 시·군의 대표음식을 전시하는 ‘남도음식나들이’를 비롯해 상으로 보는 일생음식, 세계 특이음식전, 야채카빙전, 춘하추동 음식전, 남도음식 변천사 등이 마련된다.
 
임금님 수라상, 남도명가 브랜드음식전, 남도미향전, 남도친환경농업관 등 전시·판매행사도 다채롭다. 향토음식 경연, 외국인 요리경연, 전국 대학생과 고등학생 요리경연, 남도음식체험, 남도음식 별미나눔, 오방색 다식 등 요리경연 행사도 눈요기 감이다.
 
 
상달제를 위한 입장식 / 오마이뉴스 이돈삼 

전통과 현대, 국내와 국외를 망라한 다양한 공연도 준비돼 있어 여흥을 돋운다. 서울시 국악관현악단과 전남도립국악단 공연, 마당극, 콘서트 등 다양한 장르의 무대공연도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관광객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는 ‘

상달제’는 개막 퍼포먼스로 진행된다.
 
방문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남도별미로 이름 난 돌산갓김치와 유자차, 고들빼기, 발효식품, 홍탁삼합 등은 남도음식에 대한 이해를 높여줄 것이다. 전통의 복식과 혼례식, 목공예, 소달구지 체험 등은 가족단위 방문객을 위한 교육형 체험프로그램으로 준비된다.
 
부대 행사를 찬찬히 뜯어보는 것도 남도음식문화큰잔치를 유익하게 즐기는 한 방법. 수문장 교대식과 사또 민정순시 등이 그것이다. 성곽 밟기, 소망등 달기, 달집태우기 등도 이색적인 체험이 될 것이다.

 일요일에 만나는 낙안읍성 투계 

낙안민속마을 입구에서는 2004년 부터 매주 일요일이면 닭싸움(鬪鷄)이 벌어지고 있다. 순천낙안민속닭놀이 보존회(회장 김영태.58)가 민속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행사를 열고 있다.
 
마치 스포츠 중계를 보는 듯 원형 경기장 안에서 진행되는 닭들의 치열한 싸움을 생생하게 중계하는 해설자의 입담이 그만이다. 
 
보존회에는 12농가가 투계용 닭을 키우며 매주 선수로 출전시키고 있다. 보존회는 경남 진주와 자매결연을 해 양 지역 축제때면 친선 경기도 갖는다. 시합에 출전하는 닭은 모두 수컷들로 몸무게는 4-6kg 정도. 20분 경기로 한쪽이 이길때까지 하고 무승부로 끝나면 주심 1명이 경기 내용으로 봐 우세승을 선언하게 된다. 
 
싸움을 끝낸 닭들은 온통 상처 투성이로 바로 주인의 응급 치료를 받는다. 보존회 김영태 회장은 “낙안읍성 인근에는 오공재(蜈蚣嶺)와 빈계재(牝鷄嶺)가있는데 상극인 지네와의 싸움을 위해 닭을 키우던 것이 그 유래”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순천시 낙안면 동내리 산 3-1 낙안민속 자연휴양림 061-754-4400
전라선과 경전선이 교차하고, 남해고속도로와 호남고속도로가 통과하는 교통의 요충지로서 접근성이 매우 양호하고, 낙안읍성 민속마을에서 약 2㎞ 지점에 위치한다. 낙안읍성과 주변 경관이 수려하여 휴식공간으로는 최적지일 뿐만 아니라 인근에 송광사, 선암사 등 전통고찰과 서산의 저녁노을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주암호, 상사호가 있으며, 순천만의 갈대와 해변, 그리고 낙안읍성 민속마을의 각종 문화축제를 즐길 수 있는 관광명소들이 많아 사계절 이용이 가능하다.
낙안민속자연휴양림은 순천~낙안간 지방도변에 위치한 규모가 소박하면서도 아담한 일반가정의 정원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국립 자연휴양림으로서 배산임수의 지리적 요건을 갖추고 있으며, 휴양림 좌우로 낙안의 2대 진산인 금전산(667.9m)과 오봉산(591m)이 휴양림 배후를 감싸고 있고 특히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금전산자락 휴양림의 숨은 비경인 처녀폭포가 기암사이로 폭포수를 힘차게 내뿜는 모습이 아름다운 장관을 이룬다.

또한 매년 순천지역의 민속축제인 낙안민속문화축제(4월말~5월초)와 남도음식축제(10월)가 휴양림에 가까운 낙안읍성민속마을에서 해마다 열리고 있고 주변 여수시에서는 진달래축제 및 거북선축제(4월~5월)가 열리고 있으며, 가까운 보성군에서는 다향제 및 일림산 철쭉제가 역시 5월에 열리고 있다. 

 
* 숲속의집 6인(36㎡) 3동 - 비수기.주중 40,000원 / 주말.성수기 70,000원
* 휴양관 4인(23㎡) 8동 - 비수기.주중 32,000원 / 주말.성수기 55,000원
* 휴양관 7인(43㎡) 4동 - 비수기.주중 50,000원 / 주말.성수기 85,000원
* 야영장 - 2,000원
 

 
넉넉한 낙안들판과 읍성 내려다보는 전망 일품 / 낙안 금전산

금전산 정상으로 오르는 코스는 오공재 코스, 금강암 코스, 불재 코스, 휴양림 코스 4개가 있다. 이중 가장 많이 이용하는 대표적인 코스는 낙안온천에서 시작하는 금강암 코스다. 낙안온천~형제바위~금강암~정상이 산행시간만 1시간쯤 걸리지만, 낙안들판 조망을 즐기다보면 시간이 길어진다. 정상~동릉~쌀바위~불재는 1시간10분쯤 걸린다. 산행시간만 총 2시간10분쯤 걸린다.
 
낙안온천 주차장에서 시작해서 금전산(金錢山·667.9m)을 오르는 산길은 그다지 급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완만하지도 않았다. 산행 출발 전에 낙안읍성에서 올려다볼 때는 초가 너머로 암봉도 제법 보이긴 했으나 처음부터 숲이 짙어 과연 조망이 어떨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출발한 지 단 5분만에 기우였음이 드러났다.

“그거 보세요. 제가 걱정 붙들어매라고 했지요. 금전산은 조망 하나는 끝내주는 산이랍니다.”





순천대산악부 출신인 김귀진씨(34)와 박원표씨(28)는 대학시절에 암벽코스를 개척하기 위해 구석구석을 다닌 이력이 있어 금전산 등산로를 손금 보듯 훤히 알고 있었다.

낙안읍성 북쪽에 솟은 금전산은 낙안의 진산이다. 옛 이름은 ‘쇠산’이었는데, 전하는 말에 의하면 100여 년 전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동여지도에 금전산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서 한자로 바뀐 지는 좀더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듯싶다.

금전산이라는 이름의 한자를 풀면 ‘금(金)으로 된 돈(錢) 산’이 된다. 산에 금은보화가 묻혀있을 리는 만무하고, 아마도 보배는 낙안들판을 내려다보는 조망이 아닐까 싶다.

낙안읍성을 기준으로 보면 드넓은 낙안벌 너머로 북쪽은 진산인 금전산, 동쪽은 좌청룡인 오봉산(592m), 서쪽은 우백호인 백이산(584m), 그리고 백이산에서 동남쪽으로 얌전히 흘러내린 안산인 옥산(97m)이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형국이다.




물줄기는 금전산 동남에서 흘러들어오는 동내와 서남에서 흘러나오는 서내가 있는데, 모두 성벽의 바깥동면을 따라 흘러 옥산 앞을 지나 들판을 훑고 바다로 이어진다.

풍수로 보면 ‘옥녀산발형(玉女散髮形)’의 명당. 이는 ‘옥녀가 장군에게 투구와 떡을 드리려고 화장하기 위해 거울 앞에서 머리를 풀어헤친 형국’이다. 낙안읍성 남쪽에 있는 평촌리 평촌못은 옥녀의 거울에 해당한다. 그래서 낙안 고을엔 옛날부터 미인들이 여느 지역보다 유난히 많다고 전한다.

다시 숲을 지나 얼마쯤 가자 본격적으로 시야가 트이기 시작했다. 서쪽으론 조계산에서 고동산을 거쳐 백이산으로 이어지는 호남정맥 마루금이 넌출거리고, 남쪽으론 풍요로운 낙안들판이 펼쳐져 있다.

낙안온천을 출발한 지 35분만에 집채만한 바위에 도착했다. 높이가 5~10m 정도 되는 이 바위 한 쪽엔 키가 비슷한 두 개의 바위가 사이좋게 나란히 붙어있어 형제바위라 불린다. 그러나 1980년대 태풍이 불던 어느 날 밤에 아래쪽 동생바위가 허물어져 형님바위만 남았다. 하나만 남은 바위 생김새가 조금 날카로워 칼바위라고도 한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면 조심해서 올라갈 수 있는 형제바위 정상에서 땀을 식히며 내려다본 조망은 정말 일품이었다. 아침 안개가 접시 모양의 낙안들판을 뒤덮으면 옥산이 섬처럼 솟는 장관을 만날 수도 있는데, 애석하게도 이런 날은 일 년에 며칠밖에 안 된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형제바위를 지나 짧은 숲길을 벗어나자 문득 큰 암봉들이 눈앞에 나타난다. 동쪽 암봉은 동대, 서쪽 암봉은 서대인데, 절집에선 동대를 원효대, 서대를 의상대라고도 부른다.

산길은 두 바위 사이를 지나 서대인 의상대로 이어진다. 잠깐 오르자 금강암의 일주문 역할을 하는 바위굴이 나타났다. 지리산의 통천문 비슷한 바위굴엔 극락문이라는 글자가 한자로 새겨져 있다.

바위굴을 나서자마자 왼쪽으로 맑은 석간수가 반긴다. 시원한 샘물로 목젖을 적시고 산성 같은 예쁜 돌계단을 지나면 여염집처럼 보이는 금강암(金剛庵)이다. <승주향리지>에 의하면 ‘위덕왕 30년(583)에 금둔사가 창건되었고, 그후 의상대사가 금강암 문주암 등 30여 암자를 가진 큰 절로 중건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금강암 쇠북소리…” 김귀진씨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무슨 노랜가 했더니 낙안초등학교 교가라고 한다. 낙안에 있는 학교 치고 금전산과 금강암이 등장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금전산은 낙안 사람들에게 성스러운 산으로 여겨지고 있다. 김씨는 낙안초등학교 출신이다.

금강암을 왼쪽으로 돌아가면 의상대로 오를 수 있다. 의상대 펑퍼짐한 바위엔 어른 키를 넘는 돌탑 한 기가 서있고, 그 옆 바위벽엔 최근에 새긴 듯한 마애불이 낙안들판을 굽어보고 있었다. 의상대 마애불의 눈길을 따라가 보니 과연 의상대사가 수도했다는 말이 허언이 아닐 정도로 장관이 펼쳐진다. 낙안들판과 금전산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임을 명확히 알 수 있다.





금강암 의상대는 최고의 전망대




마애불에겐 죄송하지만 배낭에 싸온 간식을 먹기에도 의상대는 최고의 자리였다. 김귀진씨가 내놓은 간식은 걸쭉한 요구르트와 게맛살처럼 찢어먹는 스트링 치즈였다. 김씨는 2년 전 금전산 동쪽의 불재 정상에 목장을 마련하고 유가공업에 뛰어들었다. 김씨는 “고객들에게 요구르트와 치즈의 맛이 ‘따뜻한 봄날의 낙안들판 같다’는 평을 들었다”며 자랑하곤 쑥스러운 듯 웃음을 터뜨린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 ‘너는 내 운명’의 목장 장면을 자신의 목장에서 촬영했는데, 당시 전도연씨도 요구르트와 치즈 맛에 반했다고 덧붙인다.


의상대를 벗어나 정상을 향해 오른다. 산길은 암자를 왼쪽으로 돌아서 나있었다. 10여 년 전만 해도 금강암에서 정상 오르는 길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그러나 요즘엔 등산객들이 늘어났고, 금강암 스님이 길을 다듬은 덕에 제법 널찍해졌다.

금강암을 떠난 지 20분만에 헬기장이 있는 전위봉이고, 여기서 평탄한 길을 2~3분 더 오르자 돌탑이 서있는 금전산 정상이 나왔다. 정상은 잡목숲에 가려 있어 조망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다.

정상을 지나면 산길은 오공재, 그리고 불재로 내려가는 두 갈래로 나뉜다. ‘오공재 2.44km, 불재 3.4km'라 쓰인 삼거리에서 잠시 고민에 빠진다. 김씨는 오공재로 내려서는 길은 있으나 그다지 좋지 않고, 도중에 금둔사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있긴 해도 금둔사측에서 산길을 폐쇄했다고 한다.

 우리는 애초에 계획한 대로 동릉을 타고 불재로 내려서기로 했다. 그러나 만약 낙안온천에 주차해 놓은 차 때문에 회귀산행을 해야 한다면 정상에서 다시 올라온 길을 되짚어 내려가야 할 것이다.

동릉은 숲이 짙어 조망은 그다지 좋지 않았으나 부드러운 내리막에 호젓한 산길이 계속 이어졌다. 콧노래를 부르며 정상을 떠난 지 20분만에 궁굴재 삼거리에 도착했다. 팻말엔 ‘금전산 정상 1.2km, 불재 1.3km, 휴양림 1.2km'라 써있었다. 여기서 낙안민속 자연휴양림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경사는 약간 있으나 부드럽다.


고갯마루에서 직진해 오르막을 5분쯤 오르자 비로소 시야가 트였다. 휴양림 아래의 낙안저수지 너머로 낙안들판이 살짝 보였고, 그 너머 멀리 벌교 고을이 어슴푸레 나타났다. 다시 15분만에 동남릉의 마지막 봉우리 정상에 도착했다. 이젠 내리막만 남았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쌀바위까지는 길이 제법 가팔라 초등학교 저학년은 조금 위험할 듯싶었다. 그래도 경치는 좋았다. 금강암 오름길에 잘 안 보이던 구절초도 눈에 많이 띄었는데, 남도의 꽃답게 꽃송이가 제법 큼직했다.

마지막 봉우리에서 15분만에 도착한 쌀바위. 텐트 두어 동 칠 수 있을 만큼 평평한 터 한 쪽에 서있는 쌀바위는 높이가 4~5m 정도 되었는데, 욕심 많은 스님이 쌀을 많이 나오게 하려고 쌀구멍을 쑤셨으나 그 후로는 오히려 쌀이 나오지 않았다는 전설이 전하는 바위다. 쌀바위 오른쪽 아래 바위굴 속엔 처사샘이라는 석간수가 있다.

이후로 경사는 완만했고, 산길도 제법 널널했다. 2~3분 정도 내려서니 천막 두른 약수암이 나왔고, 임도 같은 산길을 10여 분 더 내려가자 새하얀 억새와 보랏빛 쑥부쟁이가 반기는 불재 정상이었다. 



 
낙안면 상송리 상송마을 뒤 금둔사 061-754-6942 geumdunsa.org

금전산(金錢山) 기슭에 자리한 백제고찰로 낙안민속마을에서 선암사와 서울순천간 호남고속도로 승주 IC쪽으로 2km 지점의 지방도에 인접하여 교통이 매우 편리한 산중 사찰이다. 송광사와 낙안민속마을로 연결되는 관광벨트 중심에 위치하여 경관이 수려할 뿐만 아니라 규모도 상당히 크다.

 
금둔사를 맨 처음 창건한 스님은 백제 위덕왕 30년(서기 583) 담혜화상이었고, 신라 때 의상대사를 거쳐 구산선문 가운데 사자산문의 철감국사와 그의 제자 징효대사가 주석하여 종지를 펴던 선종가람이다. 그 전통과 사상은 보물로 지정된 경내의 3층석탑(보물 제 945)과 석불비상(보물 제 946)를 비롯하여 1999-2002년까지 국립순천대학교 발굴팀에 의하여 8-9세기의 아름답고 정교한 무 늬의 암ㆍ수막새 등 다량의 유구가 발굴된 것만 보아도 그 당시 금둔사의 사풍이 어떠했는 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후 금둔사는 조선시대 정유재란으로 낙안성이 함락되면서 전소되었으나, 숭유억불정책의 불리한 당시의 현실 속에서도 오롯한 선맥을 유지하여 오다가 17세기 후반에 와서 완전 폐사가 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1983년 선암사 칠전선원에 주석하던 수행승 지허대선사가 종단 을 초월한 태고선원을 개설하고, 현재 웅대한 대웅전과 태고선원 등 10여동의 전각을 세웠다. 금둔사의 1월 홍매는 우리나라에서 야생 매화꽃이 가장 일찍 피는 사찰로도 유명하다.


석탑의 후편(동편)에는 석불입상이 있으며, 이들은 서로 연관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같은 시대로 추정) 동국여지승람에「금전산에 금둔사가 있다.」고 하여 이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석탑의 전면(全面)(서편(西便))으로는 배례석이 있는데 각면에는 2추씩의 안상이 조각되었다. 도괴되어 있던 것을 1979년 7월 10일 복원하였다. 
  
■금둔사 납월매
무릇 매화는 청매나 백매가 제맛이다. 고고한 자태에 있어 홍매는 화려하나 격조가 떨어진다. 또한 홑꽃이 겹꽃보다 단아하다. 비장미에서도 두껍게 무장한 겹꽃이 봄바람 한번 살랑여 꽃잎 흩어질 듯한 홑꽃에 뒤진다. 순천 금둔사 납월매는 꽃잎이 진분홍 겹꽃이다. 탐매 등급으로 치자면 열성(?)인 셈이다. 그런데도 출사객들이 금둔사에서 앞다퉈 봄을 찍는다. 가장 먼저 꽃망울을 터뜨리는 뜻이 귀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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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동설한에도 맨 처음 봄기운을 알아차린다는 납월매를 지켜보는 금둔사 지허 스님. 옛 스님들은 매화를 보며 수행의 기품을 읽었다. 부산일보 임태섭기자

납월매는 꽃망울을 일찍 틔운다. 음력 섣달부터, 그러니까 대개 양력 1월부터 꽃이 핀다. 납월매라 불리는 연유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음력 섣달을 불가에선 납월(臘月)이라 한다. 여느 매화보다 지하 봄기운을 빨리 알아차리는 납월매는, 정작 봄날에 꽃을 닫는다. 백매와 청매가 한창 만개하는 3월 말 그 무렵이다. 해서 납월매는 '속된 꽃술이 봄철 붉은 꽃에 물드는 것 싫어서 신선 사는 요대로 학 타고 날아가는' 고려시인 이인로의 매화를 닮았다.

납월매는 농사 작물로는 수익성이 형편없다. 벌과 나비가 활동 안 하는 엄동설한이니 열매 맺지 않을 때가 많다. 그나마 열매란 게 제멋대로 못생겼다. 하나 납월매는 향이 짙다. 추위가 뼈에 사무쳐 얻은 향기니 비할 바가 없다. 납월매 아래에 서면 은은한 향이 햇살처럼 퍼진다.


금둔사 납월매는 원래 절집 태생이 아니다. 씨를 얻어 와 키웠다. 1980년대 초, 지허 스님이 낙안읍성의 한 민가에서 우연히 납월매 고목을 발견했다. 꽃절인 선암사에서도 못 봤던, 붉은 빛을 띠지만 흔한 홍매화와 다른 품종이었다. 종자를 구했다. 싹 틔우는 건 쉽지 않았다. 몇 차례 실패 끝에 겨우 살린 게 여섯 그루다. 어미 나무는 진즉 고사했다. "납월매는 전국을 통틀어 이 여섯 그루가 전부일거야." 지허 스님 설명이다.

 

상송리 105-3번지 낙안온천 061-753-0035 www.naganspa.co.kr

낙안면 상송리 일원에 면적 1,444,000㎡를 2003년 3월 5일 전라남도 고시 제 2003-25호로 온천원 보호지구로 지정받아 본 개발계획 (대온천장, 놀이시설, 숙박시설, 요양시설 등) 이전에 중탄산 나트륨을 비롯하여 유황과 게르마늄 및 인간의 건강에 도움을 주는 다양한 광물질이 함유된 온천수를 홍보하고자, 낙안민속마을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금전산 중턱에 낙안온천 시욕장을 건설하였다. PH(수소이온)의 높은 농도(10.1mg/ℓ)로 인해 매끄러우며 유황, 게르마늄, 칼슘 등 13가지 성분이 어우러진 온천수로서 무좀, 습진, 비듬, 아토피성 피부염 개선에 효과가 있으며 만성질병인 관절과 신경계통외 각종 질환에도 효험이 있다.

* 낙안온천의 특징


1) 중탄산나트륨 온천-양이온인 나트륨(Na)과 음이온인 중탄산(HCO3)이 결합한 중조천에 목욕을 하면 피부의 지방을 분해시켜주므로 비만치료 및 물리치료에 적합하다.
2) 게르마늄 온천-체내의 바이러스를 억제시키는 인테페론을 증가시키므로 항암 및 노폐물을 제거하는데 도움을 준다.
3) 유황 온천-피부각질을 연화용해하고 말초 모세혈관 및 각종 동맥을 확장시켜주므로 피부질환 치료에 도움을 준다.
4) 강알카리성 온천-피로할때 산성에 가까운 몸을 알카리성 온천에 담가 온천욕을 즐기면 몸이 알카리성으로 바뀌면서 피로가 회복되고 체내지방이 제거된다.

 

 

낙안 팔진미 : 낙안의 별미는 이순신 장군이 낙안읍성을 방문했을 때 백성들이 대접했다는 팔진미(八珍味)다. 이는 금전산 석이버섯, 백이산 고사리, 오봉산 도라지, 제석산 더덕, 남내리 미나리, 성북리 무, 서내리 녹두, 용추천의 물고기로 요리한 음식이다. 낙안읍성 안에는 낙안 팔진미를 차리는 식당이 여럿 있다. 1인분에 10,000원.   보리밥 : 주말의 낙안읍성은 매우 번잡하다. 이럴 때는 차라리 성밖에서 요기를 하는 것도 괜찮다. 성밖엔 보리밥을 전문으로 하는 집이 눈에 많이 띈다. 보리밥 한 그릇을 시켜도 반찬 올려놓을 상이 비좁을 정도로 푸짐하다. 고사리, 버섯, 도라지 등 산에서 나는 것은 물론이고, 게장·갈치젓에 벌교 꼬막까지 올라온다. 무청과 상추 등의 푸성귀에 밥을 싼 다음 이런 저런 반찬을 올려놓은 뒤 한 잎 삼키면 배는 저절로 부르다. 고향보리밥(061-754-3419)이 잘한다. 1인분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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