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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인천광역시

인천 연안여객터미널-팔미도 팔미등대

by 구석구석 2007.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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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미도는 서울 시청역에서 전철로 50분, 다시 배를 타고 50여분 남짓이면 닿을 수 있다. 넉넉잡고 두어 시간 발품을 팔면 한나절 바닷바람을 쐴만한 호젓한 섬이다. 인천연안여객터미널 현대유람선 선착장에서 팔미도까지는 유람선(199t급 '용주 2호')을 이용한다. 뱃길 중간에는 서해의 명물 인천대교를 만난다.


 

전국 아름다운 등대 16경에 포함된 '팔미도등대'사주에 의해 연결된 두개의 섬이 마치 여덟팔자처럼 양족으로 뻗어 내린 꼬리와 같아 팔미도라 불려졌다고 한다. 팔미도는 '조선왕조실록'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익명의 섬이었다. 그러나 고산자 김정호의 '청구도'에는 팔미로 '대동여지도'에는 팔산으로 불리어 왔고, 인천사람들에게는 팔미귀선, 즉 낙조에 팔미도를 돌아드는 범선의 자취가 아름다워 인천8경으로 꼽았던 해상 경승지였다.1902년 해관등대국을 설치하고 1903년 6월에 무인도인 팔미도에 우리나라  최초로 세워진 등대

 

팔미도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다. 전철을 통해 닿을 수 있는 물리적 거리로는 지척이지만, 주민이 살지 않은 호젓한 섬 분위기는 절해고도 못지않다. 팔미도는 그간 일반에게는 그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때문에 그 사실만으로도 신비감이 물씬 풍기는 곳이다.

 70년대 초중반 팔미도등대는 아름다운 모래사장이 있었다. 이 당시 인천에 주둔해 있던 미군은 주말만 되면 상륙정에 가족을 잔득 실어와서 바비큐 파티도 하고 해수욕도 했다.70년대 중반에는 여객선이 해수욕장을 찾는 이들을 매려놓곤했다. 그렇게 아름답던 팔미도는 80년대부터 서서히 모래가 사라졌다. 아마 인천 연안부두를 매립하면서 부터 였던 것 같다.

 

정부는 전국 유인등대 41곳을 찾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2007년 7~9월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인천 팔미도·소청도 등대를 비롯해 부산시 오륙도·영도 등대, 강원도 속초 등대 등 전국 16곳을 아름다운 등대로 꼽았다. 이들 등대는 역사·문화·관광 자원의 가치와 대국민의 인지도, 상징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각 지역을 대표하는 유인 등대로 선정됐다. 인천일보

 

 

 

 

105년 만의 만남 … 인천 팔미도 시민 품으로  1903년 우리나라의 첫 등댓불을 밝힌 팔미도가 105년 만인 2009년 1월 1일부터 시민들 품으로 돌아온다. 인천시와 군 당국은 2007년 8월 섬 내 부대 주둔지를 보안펜스 등으로 차단하는 조건으로 팔미도를 일반에 개방키로 합의했다.
팔미도는 사주(砂洲·바닷가 모래 퇴적층)로 연결된 두 섬이 여덟 팔(八)자 모양이라고 해서 그 이름이 붙여졌다. 석양을 받으며 돛단배들이 팔미도를 돌아드는 아름다운 풍경을 ‘팔미귀선(八尾歸船)’이라 하여 예로부터 인천 팔경의 하나로 꼽혔다.

면적 8만㎡ 작은 섬 팔미도는 은둔의 섬답게 울창한 산림과 해안 절벽, 백사장 등이 잘 보존돼 있다. 섬 옆으로는 내년에 개통되는 인천대교가 서해바다를 가로질러 달리고, 다리 아래로는 인천항을 향하는 대형 선박들이 드나들어 장관을 연출한다.
 인천 팔미도의 두 등대. 앞쪽의 작은 등대는 1903년 세워진 국내 최초의 등대로 인천시문화재 제40호로 지정돼 있다. 뒤쪽 등대는 2003년 옛 등대가 퇴역하고 새로 세워졌다. [중앙포토]

 

팔미도 등대는 우리나라 제1호 등대다. 한반도를 놓고 러시아와 각축전을 벌이던 일본은 러일전쟁에 대비해 대한제국에 등대 설치를 압박했다. 1903년 6월 1일 대리석과 콘크리트 구조의 팔미도 등대에서는 석유등으로 첫 불을 밝히게 된다.

인천상륙작전 때도 팔미도는 격랑의 중심에 있었다. 맥아더 사령부의 명령을 받은 켈로(KLO)부대가 팔미도에 침투해 1950년 9월 15일 0시 정각에 등댓불을 밝히면서 수백 척의 함정이 인천만으로 돌진할 수 있었다.

석유등에서 가스등으로, 다시 전등으로 한 세기를 밝히던 팔미도 옛 등대(인천시문화재 제40호)는 100주년을 맞은 2003년 퇴역했다. 바로 옆에 세워진 팔미도 새 등대는 위성항법시스템까지 갖춘 첨단 등대다.

인천해양수산청은 시민들을 맞기 위해 산림욕장·산책로 등을 다듬어 놓았다. 내년 초 인천시는 연안부두를 출발해 월미도-영종도-인천대교 등을 들르는 연안 크루즈선의 항로에 팔미도를 포함시킬 계획이다. 중앙일보 정기환 기자
인천방문의 해를 맞아 ‘100년의 기다림, 함께 할 미래’란 주제로 열린 2009년 1월 해맞이 행사에는 안상수 인천시장과 고진섭 시의회 의장, 해군 인천방위사령관 등과 시민 1천200여 명이 참여해 가슴 벅찬 새해 첫날을 맞이했다. 이들은 이날 오전 6시 연안부두와 월미도에서 여객선에 나눠 타고 40여 분간 15.7㎞의 뱃길을 달려 팔미도에 도착했다. 팔미도는 106년 만에 처음으로 일반인에게 이날 개방돼 새로운 희망의 메신저역할을 톡톡히 했다.

 

'팔미도 파수꾼 정창래'

팔미도에는 민간인이 두엇뿐이다. 팔미도 등대를 지키는 이들이다. 등대지기들의 정식 명칭은 '국토해양부 인천해양항만청 해양교통시설과 팔미도 항로표지관리소 기사'. 단 번에 알아듣기 힘들 만큼 긴 직함이다. 항로표지 관리 기사로 13년째 일해오고 있다는 정창래씨(48)는 "아휴, 팔미도야 바람 쐬기 딱 좋죠.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에 이렇게 조용한 곳이 있으니…"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팔미도 자랑을 늘어놓는다. 인천항을 오가는 무역선, 도서 여객선의 길잡이 구실에 큰 보람을 느낀다는 정씨의 애로점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 "항로표지관리소 기사(등대지기) 인기가 생각보다 좋아요. 경쟁률이 수십 대 1일 입니다. 오지 근무수당, 자녀 교육비 혜택 등 복지도 좋습니다. '신이 감춰 둔 직장' 정도는 아니지만 파리판 닦기, 등명기 점검 등 기본에 충실하면 자기 시간 보내기도 그만이지요."  스포츠조선 김형우기자

 

먹을거리: 팔미도에는 식당이 없다. 때문에 인천 연안여객터미널 주변 해양센터, 일명 밴댕이거리를 찾으면 된다. 그중 오성식당은 물메기 탕과 지리(각 6000원)를 곧잘 끓인다. 게장백반(8000원), 밴댕이회(1만5000~2만5000원), 조기매운탕(1만5000~2만5000원) 등도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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