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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충청북도

보은 37번국도 말티고개 말티재자연휴양림 정이품송 속리산오리숲 법주사

by 구석구석 2007.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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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보은군 내속리면

 

말티고개(해발 850m)는 속리산의 첫 고개로 800미터높이에 있다. 이 고갯길은 넓고 얇게 뜬돌, 즉 박석을 깔아 놓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 박석은 고려 태조 왕건이 속리산에 구경오면서 고개를 넘어가기 위해 엷은 돌을 3~4리나 깔았다고 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다.

 

 

1924년 충북지사 박중양이 처음으로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을 개설하였고 1967년 도로폭을 15미터로 확장개수하였으니 열두 굽이를 뱀처럼 굽이돌아 고개마루에 이르러 굽어보는 전망은 장관이며 특히 아침 해뜰 대의 속리산 방향의 아침놀과 해질녘에 보은쪽의 저녁 노을은 가히 절경이다.

 

말티고개는 조선 세조가 속리산으로 행차할 때에 타고 왔던 가마를 말로 갈아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말'의 어원은 '마루'로서 높다는 뜻이니, 말티재는 '높은고개'라는 뜻이다.

 

말티재의 자연휴양림은 저수지와 ?은 숲이 잘 어울리는 휴양림으로 저수지가 바로 지척이라 여름엔 더할 나위 없이 시원함을 즐길 수 있어 웬만한 휴양림은 갖추지 못한 장점을 지니고 있다. 장재저수지에서 휴양림을 바라보는 경치는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2002년 개장되었으며 수용인원은 최대하루 300명으로 시설물 대부분 장재저수지로 흘러드는 계류근처에 길게 자리잡고 있다. 통나무로 지은 7평형 산막 11동은 단층구조로 개별 전기난방이다.

 

정이품송은 1962년 12월 23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문화재로 수령 600년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높이 15미터, 둘레 4.5미터, 가지길이는 동쪽으로 10미터 서쪽으로 9미터 북쪽으로 10미터인 노거수로 속리산으로 들어가는 길 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정이품송은 원래 삿갓 또는 우산을 편 모양으로 단정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지만 병충해와 강풍으로 인해 현재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강풍에 의해 부러진 가지는 검게 변했고 지주대를 받친 채 힘겹게 버티고 서 있어 한쪽 가지가 부러진 상태로 균형이 맞지 않는 보기 흉한 몰골을 하고 있다.

 

 

1980년대 초에는 솔잎혹파리의 피해를 입은 데 이어 1993년에는 강풍으로 서쪽의 큰 가지가 부러져 그 모습이 많이 상한 바 있다. 또 최근에는 지난 3월 28일 갑자기 불어 닥친 강풍을 이겨내지 못하고 한쪽 가지가 부러지고 말았다.

1464년(세조 10년)에 신병을 앓던 세조가 법주사로 행차할 때 타고 있던 가마가 이 소나무 아래를 지나게 되었는데, 가지가 아래로 처져 있어 가마가 가지에 걸리자 세조가 "가마가 걸린다"고 말하니 소나무가 자신의 가지를 위로 들어 무사히 지나가도록 하였다고 한다. 또 세조가 서울로 돌아갈 때는 이곳을 지나다가 이 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했다고 한다. 이리하여 세조는 이 소나무가 신기하고 기특하여 그 충정을 기리기 위해 정이품(현재의 장관급)의 벼슬을 내렸고, 그래서 이 소나무를 정이품송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정이품송 균형잡인 위치에서 찍은것과 주차장 매점옆의 느티나무

 

속리산오리숲은 법주사의 진입로이며 법주사에 들어서려면 좌우로 수령 백년이상의 참나무와 소나무등이 어우러진 울창한 숲을 지나게 되는데 숲의 길이가 2키로미터에 달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떡갈나무, 단풍나무, 소나무 숲이 터널을 이루어 계절에 따라 펼쳐지는 풍광이 일품이다.

 

 

 

 

속리산 법주사

국보제55호 '팔상전'으로 우리나라 유일의 5층 목조탑

수정교를 건너면 금강문에 이르고 천왕문을 거쳐서 팔상전에 이른다. 천왕문을 넘어서자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5층 목조탑인 팔상전이 보이고 그 뒤로 거대한 가람이 모습을 드러낸다. 법주사는 A.D.553년 의신스님에 의해 창건된 이후 진표 및 영심 스님 시절의 중창 등 8차례의 중수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지금의 팔상전은 임진왜란 이후에 다시 지은 것을 1968년에 해체·수리한 것이다.


이 전각에 팔상전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석가모니가 도솔천에서 내려오는 장면에서부터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하는 장면까지 부처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그린 팔상도를 사방 각면에 두 폭씩 그려 놓았기 때문이다. 팔상도 앞 불단에는 각각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데 그 앞에 3줄로 모셔져 있는 작고 하얀 오백나한상이 무척 귀엽다. 

 

대불과 사모지붕의 희견보살(좌), 보물1417호 희견보살(우) / 오마이뉴스

 

팔상전을 나와서 미륵도량인 법주사를 상징하는 거대한 금동대불 쪽으로 다가간다. 1964년에 시멘트로 조성한 것을 붕괴 직전에 이르자 1990년에 청동대불로 다시 태어났다. 2000년 들어 원래 제 모습을 찾아주자고해서 금동미륵불 복원 공사를 했다. 3mm 두께로 황금을 입혔는데 모두 80kg이 들어간 거대한 불사다. 
 

보물916호 원통보전

 

사모지붕이 아름다운 원통보전. 앞면 3칸·측면 3칸 규모의 정사각형 건물이다. 지붕은 중앙에서 4면으로 똑같이 경사가 진 사모지붕이다. 원통전이란 관세음보살을 모신 집을 뜻한다. 전각 안에는 앉은 키만 2.8m된다는 목조 관세음보살상을 모셔져 있다.

관세음보살은 적절한 비례를 한 불신에 원만한 얼굴이다. 소리란 본래 귀로 듣는 것이다. 그러나 관세음보살은 소리를 듣는 게 아니라 바라본다. 관세음보살은 소리를 바라보지 않고 지그시 눈을 감고 있다.

 

국보5호 쌍사자석등(좌), 대웅보전앞 보물15호 사천왕석등(우)/오마이뉴스

 

대웅보전에서 팔상전에 이르는 앞마당에는 신라시대의 걸작인 쌍사자석등이 서 있다. 중대석을 두 마리의 사자가 앞발을 높이 치켜들어 상대석을 떠받치는 독특한 양식이다. 둥근 앙련석을 받들고 있는 두 마리 사자의 조각이 매우 힘차고 정교하다.

 

대웅보전 앞에도 높이 3.9m에 이르는 또 하나의 석등이 있다. 넓적한 돌 네 장을 맞춰서 네모지게 지대석을 만들고 그 위에 팔각의 기대석을 놓았다. 화사석 8면 가운데 앞 뒤 양면 4면에 화창이 뚫려있고 나머지 4면에는 사천왕상을 돋을 새김했다.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든 채 악귀를 밟고 선 사천왕상이 매우 사실적이고 생동감 있다.

 

보물915호 대웅보전

 

대웅보전은 정면 7칸, 측면 4칸인 2층 건물이다. 높이가 19m에 이르는 거대한 건물이다. 대웅보전 기단에는 2개의 사자상이 있다. 사자는 몸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큰 팔 다리에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다.
바깥에서 보면 2층이지만 안으로 들어가서보면 위 아래 층이 한층으로 트여 있다. 안에 앉아 있어도 전혀 답답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대웅보전이란 이름과는 달리 안에 모신 주불은 비로자나불이다. 본래 대웅대적광전이라 불렀는데 흥선대원군 시절 당백전을 주조하기 위해 미륵장륙존상을 헐어갈 무렵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금강문 왼쪽에 자리한 보물 제216호 마애여래의상을 보기 위해 천왕문을 빠져나온다. 도중에 철당간지주를 살펴보고나서 국보 제64호로 지정된 석연지를 들여다 본다. 석연지는 높이 2m, 둘레가 665cm에 이르는 이 거대한 조형물이다. 이게 무엇에 쓰던 물건인고? 어떠한 용도로 쓰였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연꽃 모양으로 조성된 연못이라는 뜻에서 연지라고 부르는 것이다.

보물 제216호 마애여래의상. 의상이란 보통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말하지만 이 마애불은 의자 대신 연화대좌 위에 엉거주춤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다. 양식상의 특징으로 미루어 미륵불이 아닌가 싶다.

전체 높이는 5m로서 머리에 불룩한 나발이 있고 목에 삼도가 표현되었다. 꾹 다문 입술에 생각에 잠긴 얼굴이다. 사실성이 부족하긴 하지만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다. 반드시 반가사유상이 아니라도 뭔가를 깊이 생각하고 있는 모습은 아름답다. 생각한다는 건 삶의 찌꺼기를 걸러내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마애여래의상 왼쪽 아래에도 2가지 음각이 있다. 짐을 싣고 있는 말과 그 말을 끌고 있는 사람이 그 하나이다. 이 음각은 법주사의 창건주인 의신 조사가 인도에서 경전을 싣고 돌아와 법주사를 창건했다는 설화를 조각한 것이다. 다른 하나의 음각은 말 앞에 무릎 꿇고 앉은 소의 모습이다. 절의 중흥조였던 진표 율사가 금산사에서 법주사로 오는 도중에 소가 진표 율사에게 무릎 꿇고 경의를 표했다는 설화를 나타낸 것이다.

마애여래의상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금오선사 부도가 있다. 금오 태전(1896∼1968) 스님은 근래 법주사에서 가장 큰 발자취를 남긴 분이다. 스님의 법을 이은 상좌로는 월산, 범행, 탄성, 혜정, 월주스님 등이 있다. 한국불교 현대사의 큰획을 그으신 기라성 같은 스님들이다.

 

 

자료 - 보은군 문화관광과 / 오마이뉴스 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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