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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충청북도

괴산 3번국도 연풍성지주변 연풍동헌

by 구석구석 2007.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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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풍은 괴산군 칠성면ㆍ장연면, 충주시 수안보면, 경북 문경시 문경읍ㆍ마성면ㆍ가은읍에 둘러싸여 있고 주변에 조령산, 백화산, 희양산, 구왕봉 등이 솟아있어 평지가 협소한 산간지역이다. 연풍은 험준한 산지이지만 이화령을 넘는 3번 국도가 경유하고 중부내륙고속도로가 개통되며 문경ㆍ괴산ㆍ충주 방면은 물론 북부와 남부지방으로의 교통이 편리해졌다. 또 양잠, 사과, 고추, 곶감의 생산지이기도 하다.

 

연풍에 가면 꼭 들러야 할 곳이 연풍초등학교다. 운동장의 한 편에 있는 연풍동헌(延豊東軒)과 학교 바로 앞에 있는 연풍천주교성지를 둘러보기 위해서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로 꼽히는 단원 김홍도, 이화령 아래 충북 괴산군 연풍면, 유서 깊은 고을에 그가 지내던 자취가 남아있다. 김홍도는 정조의 어진을 잘 그린 것에 대한 포상으로 연풍현감으로 제수되었다. 풍광이 좋은 연풍에 가서 좋은 그림을 마음껏 그려오라는 정조의 뜻이었다고 한다. 연풍은 백두대간 아래 오지로, 모두가 꺼리는 임지였으나, 김홍도는 조금도 마다하지 않았다. 연풍현감에 부임하자 김홍도는 절경을 찾아다니며 화폭에 담기에 더 많은 공을 들였으니, 멀리 이웃한 청풍과 단양까지 건너가 옥순봉과 도담삼봉을 그리기도 하였다.

김홍도의 옥순봉

연풍면 행촌리에 있는 연풍초등학교를 찾아가면 학교 운동장에 오래된 건물이 남아 있는데, 바로 연풍현 동헌에 쓰이던 풍악헌(風樂軒)이다. 김홍도는 1792년부터 3년여를 이곳에서 현감으로 있으면서 정사를 돌보기보다는 풍류에 취하고, 그림그리기에 빠져 있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중매나 일삼고 사냥이나 다닌다'라고 지적을 받아 연풍을 떠나게 된다.

 

충북유형문화재 제162호인 연풍동헌은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연풍동헌은 1766년(영조 42) 현감 이덕부가 이전의 건물 남쪽에 새로 지은 풍악헌(豊樂軒)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겹처마 목조 기와집이다. 

1972년 현재의 자리로 이전한 연풍동헌은 1912년에 개교한 연풍보통학교가 1920년부터 교사(校舍)로 사용하면서 ‘흥영관(興英館)’이란 편액을 달았고, 1965년에 중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삼풍리 연풍성지

 새도 쉬어 간다는 문경새재 서쪽 기슭의 고지에 자리 잡고 있는 연풍은 종교의 탄압을 피해 은신처를 찾는 순교자들에게 지리적으로 좋은 피난처였다. 그래서 일찍부터 신도촌이 형성되었다.

 

연풍성지입구 형틀과 갈매못에서 순교한 다섯 성인/오마이뉴스

 

이곳에서 논과 집터 정리 작업을 하면서 박해 때 순교자들을 죽이는 도구로 사용된 형구돌이 3개 발견되었다. 지금 절두산 성지에서 전시되고 있는 형구돌이 그중 하나다. 형구돌은 병인박해(1866년) 때 흥선대원군의 명으로 순교자들을 소리 없이 죽이기 위해 만든 것으로 순교자의 목에 밧줄을 걸어 앞 구멍에 놓이게 하고 반대편 구멍에서 줄을 잡아 당겨 죽이던 잔혹한 형구이다.

 

 

시계방향으로 사도요한, 형구돌, 성모상,순교헌양비/오마이뉴스

 

한국천주교 103성인에 속하며 1968년에 충남 보령 오천의 갈매못성지에서 순교한 황석두(黃錫斗)의 고향이 연풍으로 드러나며 성지 개발이 본격화되었다. 1982년 황석두의 유해를 문중의 산에서 이곳으로 이장해왔다.

 

 

 

성지 내에는 옛날 지방수령을 보좌하던 자문기관인 연풍향청(충북문화재자료 13호) 건물과 높이 8.5m의 십자가상, 황석두의 입상과 묘가 있다. 십자가상 왼쪽에는 갈매못성지에서 순교한 5인의 성인상과 순교현양비(殉敎顯楊碑)가 서있고, 문 앞에는 처형석을 전시하고 한국인 최초의 주교인 노기남 대주교의 동상을 세웠다.

 

순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연풍성지 가까운 곳에 원풍리마애불좌상(보물 제97호), 입석리 소나무(천연기념물 제383호), 연풍향교(충북유형문화재 제103호), 수옥폭포, 조령 삼관문 등이 있다.

 

자료 - 충청북도 괴산군청 / 여성동아 한은희가족여행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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