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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강원도

강릉 7번국도-노암동 강릉단오제 김윤기가옥 홍국영

by 구석구석 2007.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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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을 대표하는 축제 즐기기, 강릉 단오제 & 강릉 단오문화관

강릉 단오제는 단오(음력 5월5일)를 전후하여 음력 5월3일부터 7일까지 5일간 열리는 전통 민간 축제로 고대 부족국가의 제천의식과 농경의례에서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화합과 우의를 다지며 건강과 풍년을 기원하는 것이 축제의 목적.

 

단오제가 열리는 강릉시 노암동 남대천 단오장 입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높다랗게 매어 있는 그네가 눈에 띈다. ‘단오의 꽃’이라고도 불리는 이 그네는 웬만한 사람은 혼자 타기 힘들 정도로 묵직하다. 줄의 길이도 3m에 이른다. 그런데 강릉 사람들은 그 묵직한 그네 위에 올라타 날렵한 폼으로 줄을 민다. 그네가 올라가고 줄과 하늘이 수평이 되었다가 다시 반원을 그리며 내려와 땅 위를 스치면 보는 사람의 손에 땀이 배어날 정도. 이곳의 아이들 역시 어른 못지않은 솜씨로 그네를 탄다.

 

 그네를 돌아 단오장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굿당이 나온다. 굿당에서는 단오제에서 모시는 세 신의 제를 올린다. 범일 국사와 김유신 장군이 죽어서 되었다는 대관령국사서낭신과 대관령산신, 범에게 물려간 정씨 처녀가 대관령국사서낭신과 혼례하여 생겼다는 여서낭신이 바로 그들. 모두 신라시대에 살았던 인물들로 단오제가 천 년이 넘는 오랜 역사를 지녔음을 증명한다.

단오장에서는 단오날 빼놓을 수 없는 창포물에 머리감기 체험과 손가락 굵기의 창포뿌리를 연필 깎는 칼로 깎아 비녀를 만들어볼 수 있다. 한 해의 건강과 번영을 기원하는 단오부적 찍기 체험도 가능하다. 부적이 새겨진 인장에 붉은 인주를 묻혀 황색 한지 위에 찍어주는데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끊이지 않는다.

 

강릉 단오제에서는 독특한 먹을거리도 맛볼 수 있다. 단오 즈음에 많이 나는 수리취를 찹쌀과 함께 섞고 떡메로 쳐서 만드는 수리취떡은 단오에 ‘수릿날’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붙여준 주인공. 예부터 마을이 번성하기를 기원하며 해먹던 수레바퀴 모양의 떡이다.

 

강릉 단오제는 축제장이 워낙 넓고 행사 내용도 다양해 무작정 찾아가면 축제의 진면목을 보지 못하고 돌아오기 쉽다. 노암동 단오장 입구에 자리한 ‘단오문화관’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곳. 중요무형문화제 제13호인 단오제를 널리 홍보하고 전승하기 위해 지난해 초 문을 열었다.

 

 지하 1층, 지상 2층짜리 건물인 단오문화관은 전시동과 공연동으로 나뉘어 있다. 전시동에서는 옛 단오장의 모습을 재현해놓은 미니어처, 단오제 제례에 사용되는 도구들, 관노가면극에 쓰이는 가면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앞서 열렸던 단오제를 찍은 동영상물이 상영된다. 이 외에도 단오부적 찍기, 관노가면 써보기, 단오 굿거리 장단 치기 등을 직접 해볼 수 있는 체험공간이 마련돼 있다. 공연동에서는 상설공연과 주민을 대상으로 문화교실이 열린다. 자세한 공연일정은 월별로 달라지므로 미리 확인해보는 것이 좋다.

 

단오문화관 개방시간은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 9시~오후 6시, 토요일 오전 9시~오후 1시다. 일요일은 휴무. 입장료는 없다. 문의 033-640-4951. 강릉 단오제에 대한 문의는 단오제위원회(033-648-3533)로 하면 된다.

 

강릉단오제는 축제이다.  축제에는 흥겨움이 있다. 강릉단오제의 흥겨움은 천년을 이어온다. 이제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나누는 문화교류의 현장이 되었으며 전세계인이 함께 하는 축제로 성장, 발전하고 있다.

 

강릉단오제의 역사는  강릉문화의 시작과  그 명맥을 같이해 왔다.  백두대간과 동해에 둘러싸인 지형적인 요인으로 문화의 축적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그 문화의 축적과 결집은 강릉단오제로 형상화 되었다. 

 

 

노암동 300번지, 12대문집으로 불리는 문화재자료 58호 김윤기가옥

 

소나무가 우거진 낮은 뒷산을 배경으로 아늑하게 배치돼 있는 이곳은 전형적인 한옥건물이다. 드라마 이산에서 홍국영이 마지막 유배생활을 했던 곳이라고 알려지면서 관광객들의 발길도 부쩍 늘었다. 말년 벽파의 횡포속에 정조를 보호한 공로로 영조와 세손의 신임을 얻어 정조즉위 후 동부승지, 숙위대장, 도승지, 이조판서를 맡으며 조선시대 세도정치의 대명사로 일컬어졌던 홍국영.

그러나 1780년 순정왕후가 정조의 후궁인 누이동생 원빈을 독살했다고 여겨 왕비의 음식에 독약을 넣다가 발각, 집권 4년 만에 가산을 몰수당하고 지방으로 추방돼 지금의 강릉 김윤기가옥에서 2개월간 살다가 병으로 숨졌다. 드라마 ‘이산’으로 인해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김윤기 가옥은 역사적인 이유도 있지만 전형적인 한옥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한 집으로도 눈여겨 볼만하다. 

 

가옥 옆 언덕 위로 올라가면 소나무에 둘러싸인 가옥의 전체적인 전경도 볼 수 있다. 돌계단을 올라 집에 들어서면 홍국영이 심었다고 전해지는 백일홍 나무가 보인다. 안채를 중심으로 우측 사랑채, 좌측에 참방이 있고 참방에 이어서 ‘ㄱ’자 배치형태의 동별당이 있다. 안채의 정면에 행랑채가‘ㅁ’자 형태로 배치돼 있고 행랑채 마당을 건너 문간채가 있는 70칸이 넘는 대가를 형성하고 있다.

참방 뒤편의 동별당은 자식들이 분가하기 전 집안의 생활습관을 익히기 위해 사용된 장소. 안채와 마주하여 행랑채가 있고, 높은 기단이 쌓인 마당을 지나 대문간채가 있다. 대문간채는 솟을 대문을 중심으로 판벽으로 된 2칸의 곳간, 2칸의 행랑방, 마구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김윤기 가옥은 근대한옥에 있어서 대표적 건축물로 꼽힌다.
기능성이 강조된 복도가 새로이 등장한 것 하며, 공간이 확장되어 방이나 대청의 규모가 커진 것도 그 이유. 외부로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창호나 대청의 문양이 화려하다는 것이다.

 

강릉에서는 선교장 다음으로 규모가 큰 집이어서 6·25 전쟁 당시에서는 강원대학교 분교로도 활용된 바 있다.
특히 김윤기 가옥에서는 매년 단오제가 열리기 전 예림회 회원들이 모여 진달래술을 담고 음식을 장만하기도 했었다.  마당 너른 집에 많은 아낙들이 모여 음식을 장만하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즐거운 풍경이다. 또 가을이 되면 나무벽과 돌담 아래로 쌓인 장작과 한옥기와의 묘한 조화가 아름다워 지역 사진가들의 단골 촬영장소가 되기도 한다. 

/ 강원일보 2008.5 조상원/사진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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