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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전라북도

고창 23번국도-신재효고택 동리국악당 판소리박물관 고창읍성 박미애자수전수관

by 구석구석 2007.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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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내리 453-2 신재효고택 중요민속자료39호 063-560-2761

판소리를 집대성, 국문학사에 뛰어난 족적을 남긴 동리 신재효 선생(1812~1884)의 고택이다. 판소리박물관 바로 뒷편으로, 뒷뜰은 동리국악당(동리는 신재효의 호)과 모양성(왜구침입에 대비, 1453년 세운 자연석 성곽. 일명 고창읍성)에 대고 있다. 중요 민속자료 제 39호로 지정된 신재효의 고택은 1850년 경에 지어졌으며, 현재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로 지어진 사랑채와 오동나무, 우물 등이 남아 있다. 

 

판소리문학의 이론가, 연출가이자 광대의 지휘자라는 평을 듣고 있는 신재효 선생은 1812년에 신광흡의 1남 3녀 중 외아들로 이곳 읍내리에서 태어났다. 동리 신재효는 애초 소리꾼이 아니라 재산이 넉넉한 중인 출신이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부를 기반으로 집안을 번창시키면서 판소리의 발전에 남다른 애정을 쏟았다.

 

동리가에서도 노래했듯이, 그는 "시내 위에 정자 짓고/ 정자 곁에 포도시렁/ 포도 곁에 연못이라…"를 읊을 줄 알았던 풍류가객이기도 했다. 동리선생은 말년까지 이집에 살면서 노래청을 두고 수많은 제자를 불러 명창들을 길러냈으며, 토끼타령, 박타령, 심청가, 적벽가, 춘향가, 가루지기타령 등 6마당의 판소리 사설을 편술했다. 여섯 마당 판소리 중 가루지기타령(변강쇠타령)은 너무 음탕하다고 하여 부르기를 꺼려 왔던 바람에 그 가락이 잊혀지고, 오늘날 다섯 마당만이 전수되어 오고 있다.

 

신재효 고택은 1979년에 보수, 정화되었다. 선생을 기리기 위해 이 고택 뒤에는 동리국악당(063-564-6949)을 개관, 고창군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고택을 한바퀴 돌아보는 동안 국악당에서 틀어놓은 판소리가 내내 귓전을 울린다.

 

생가 뜨락 한 켠, 우물 뒷편 담벼락에는 그의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동리와 얽힌 재미난 에피소드 중의 하나가 <도리화가>라는 노래에 담겨 있다. 이 노래는 제자이면서 애인이었던 진채선이 대원군의 인정을 받아 운현궁의 기생이 되어 돌아오지 못하자 그이를 그리면서 지은 것이다.

 

또한 판소리 연구학자들은 동리 선생이 귀명창이었다고 평한다. 실제 소리는 못했으나 소리를 이해하고, 사설과 소리의 궁합을 맞출 정도로 뛰어난 음악적 소양을 지닌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신재효 선생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는 일은 동리국악당 탐방으로 이어진다. 고택 바로 뒤의 이 건물은 신재효 선생을 기념하고 국악발전을 위해 건립된 곳으로 가야금, 판소리, 민요, 농악 등을 교육하고 있다.

 

판소리를 중흥시킨 동리(桐里) 신재효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98년 신재효 고택 자리에 판소리박물관이 설립됐다. 고택은 현재 사랑채만 복원되어 남아 있으며, 바로 옆에는 동리 국악당이 있다. 박물관에서는 신재효의 유품과 고창지역의 명창 및 판소리 자료 1천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을 제외하고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관한다.

 

관람료는 어른 800원, 12세 이상 청소년 500원이다. 12세 미만 어린이와 65세 이상 노인은 무료다. 고택은 신재효가 1850년에 지어 1884년 여생을 마칠 때까지 기거한 초가집이다. 신재효는 이 집에서 판소리 여섯마당인 '춘향가' '심청가' '박타령' '가루지기타령' '토끼타령' '적벽가'를 정리했다. 또 이 집에 노래청을 마련해 많은 명창을 가르치고 후원했다. 1979년 중요민속자료 제39호로 지정됐다.

 

꽃들이 만발한 봄철 성곽 트레킹 '고창읍성' 

 모양성. 사적 145호다. 기록에 의하면 단종 원년(1453년)에 왜적의 침입을 막아내기 위하여 전라도민(제주도도 그때에는 전라도였음)들이 힘을 합해 쌓은 자연석 성곽이다. 모양이란 이름은 '보리 모' '볕 양'이다. 보리가 잘 자라는 고장이라는 뜻이다. 비산비야(非山非野)인 고창은 옛날부터 다양한 산물이 나는 곳으로 유명하다 / 오마이뉴스

 

 고창읍성(高敞邑城)은 조선 단종 원년(서기 1453년)에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성한 자연석 성곽이다. 백제시대 고창의 지명이 모양현이었던 데서 유래해 모양성(牟陽城)이라고도 불린다. 전국에서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자연석 성곽으로 1965년 사적 제145호로 지정됐다. 이 성은 전남 장성의 입암산성(笠岩山城)과 연계돼 호남 내륙을 방어하는 전초기지로 만들어졌다. 자녀들과 함께 여행에 나섰다면 반드시 둘러볼 것을 권한다. 고창읍성은 다른 읍성들이 대개 평지에 축성된 것과는 달리, 산비탈을 따라 성벽이 만들어졌다. 읍성이면서도 읍을 둘러싸지 않고 산성처럼 축성됐다. 주민들은 모두 읍성 밖에서 살다가 전쟁 등 유사시에만 성 안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모양성의 성 밟기는 옛날부터 아주 이름이 나 있다. 특히 윤달에 성을 밟으면서 돌게 되면 무병장수한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 머리에 돌을 이고 성을 한 바퀴 돌게 되면 다리 병이 모두 나아진다고 하였다. 그리고 두 바퀴를 돌게 되면 무병장수하게 되고 세 바퀴를 돌게 되면 극락문이 열려 영원히 편안해진다는 것이다.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져 있다. 적의 공격을 대비하여 머리에 이고 온 돌들을 한 곳에 무어두었다가 비상시에 사용한 것이다. 

 

고창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자리잡고 있어 전망이 뛰어나고 봄이면 벚꽃과 철쭉이 만발해 봄철 성곽 트레킹 코스로 안성맞춤이다. 성의 둘레는 약 1.7km. 높이가 4~6m, 면적이 5만200여평에 이른다. 성의 정문인 북문의 옹성이 연결된 왼쪽 성곽을 시작으로 한 바퀴 돌면 대략 1시간 정도 걸린다. 

 

또한 성 안에는 소나무와 대나무가 많아 경관이 뛰어나다. 이 때문에 관광객들은 대규모 정원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현재 옹성과 치성은 물론 성곽 위 문루와 성 안의 관청 건물 들이 대부분 복원되어 있고, 조선 말 쇄국 정책의 자취인 척화비와 이곳을 거쳐 간 수령들의 공덕비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바삐 서두른다고 해도 족히 두세 시간은 걸린다.

 

성 동쪽 사면에는 중국에서 건너온 관상용 대나무인 '맹종죽' 군락이 잘 가꾸어져 있는데, 간벌을 한 듯 족히 셋 중 하나는 잘려 나갔음에도 세 뼘 남짓으로 굵은 데다 워낙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숲 안에 들어가면 밤처럼 어둡습니다. 대숲에서 잔잔히 이는 바람 소리에도 봄이 가득합니다.

 

  고창자수의 진수 맛보기, 박미애자수전수관

고인돌을 보고 난 후 고창군청으로 향하면 군청 건너편 현대서점 2층에 자리한 박미애자수전수관이 나온다. 고창자수의 깊은 매력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얼마 전 문을 연 곳이다. 고창자수는 천연 염색된 수실을 사용해 색이 고운 것이 특징. 또한 베개 속을 여섯 등분해 채워 광목으로 겉을 싸서 완성하는 육골침은 고창자수의 명물이다.

 

‘고창자수 5남매’로 잘 알려진 박미애씨 가족은 모두 고창자수 전수자들. 박미애씨는 3대를 이어 지켜온 고창자수의 아름다움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고자 했던 어머니의 뜻을 이어 전수관을 열었다고 한다.

 

고창자수는 박씨의 외할머니인 강지산 할머니에게서 어머니인 최인순씨에게로 전수되면서 발전해왔다. 박씨는 대를 이어 전통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현대화한 자수기법이 수백 가지에 달한다고 말한다.

 

“원래 우리 전통 수놓기 기법은 굉장히 다양했어요. 지금은 전문가나 전통자수 관계자가 아니면 놓지 못하는 기법들도 꽤 많아요. 이런 전통자수가 점점 사라져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박미애자수전수관에서는 자수와 매듭 두 가지를 체험할 수 있는데 자수 체험은 작은 수틀에 천을 끼우고 고운 오방색 수실을 끼워 수를 직접 놓아보는 것이다.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잠자리매듭 묶기부터 매듭 체험을 시작하는데 시간이 거듭될수록 다양한 매듭을 묶어낼 수 있다. 체험료는 1인당 1만원 선. 자수에 얽힌 흥미 있는 얘기를 들으며 체험하려면 사전 예약은 필수. 문의 및 예약 063-564-6992

 

/  자료-여성동아 한은희가족여행가

 

고창읍 읍내리 69-1 오거리당산 중요민속자료 제14호 (1969년 12월 15일 지정)

마을의 다섯 곳에 위치한 당산이다. 당산은 민간신앙에서 신이 있다고 믿고 섬기는 것으로, ‘당’ 혹은 ‘신당’이라고도 한다. 중심부의 중앙동과 마을의 동·서·남방향의 상거리·하거리·중거리에 각각 1쌍의 당산이 있고, 마을 북쪽의 교촌리에 3당산이 있다. 이곳에서는 각 쌍의 당산을 할아버지당, 할머니당으로 부르는데, 그 이름에 따라 외형을 구분할 수 있는 특징은 없다.

 

처음에는 당산 5곳 모두 자연석이었지만, 풍수지리설에 따라 중앙과 남·서방향에만 기의 원활한 흐름을 위해 화강암을 기둥모양으로 다듬어 세웠는데, 이것이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중앙동·중거리·하거리 할아버지당이다. 

 

매일시장 내에 위치하는 중앙동 할아버지당은 6각 기둥 정상에 둥근 갓을 쓴 모습이다. 중거리 할아버지당이 서 있는 곳은 예전의 당산터로, 4각의 돌기둥 위에 네모난 돌갓을 쓰고 있고, 하거리 할아버지당은 동네소유의 넓은 당산터에 위치하는데 세 당산 중 가장 높은 돌기둥으로 역시 갓을 올린 모습이다. 이들이 쓰고있는 갓모양을 본 떠 ‘삿갓비석’, ‘갓당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당산제는 매년 음력 정월에 지냈으나 지금은 없어진지 오래고, 다만 뜻 있는 개인이 정성을 드린다고 한다. 각각의 돌기둥에 새겨진 기록으로 보아 모두 같은 해인 조선 순조 3년(1803)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만들어진 연대를 뚜렷이 알 수 있는 기록이 남아있는 민속신앙물은 드문 예로, 마을을 다섯 방위에서 지켜주고, 허한 맥을 메워주는 방위수호의 역할을 한다고 믿음으로써 돌에 신성함을 부여하여 섬기는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고창읍성 앞에서 석정온천 이정표를 보고 동쪽으로 200m쯤 가면 왼편의 다은회관 063-564-3304

원래 구이, 죽을 비롯한 백합 음식은 부안이 이름났다. 하지만 새만금 물막이 공사가 끝난 뒤 백합 채취량이 절반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다은회관은 고창 심원면 만돌리의 청정 갯벌에서 나는 백합을 갖다 쓴다. 회, 구이, 탕으로만 실한 백합 15~16개가 오르고 무침, 죽도 따라 나오는 백합정식이 1만8000원이다.

 

먼저 생 백합부터 한 점, 달큰하다. 그만큼 싱싱하다는 얘기다. 마침 5월이라 절정에 오른 맛과 영양이 생생하게 혀에 와 닿는다. 은박지로 싼 '구이'는 사실 솥에 쪄내는 찜이다. 은박지 사이로 김이 모락모락 새나온다. 은박지를 들춰내자 "툭"하고 뚜껑을 열어 속살을 드러낸다. 조갯살에서 우러나 은박지에 자박자박 고인 국물은 꼭 먹어줘야 한다. 짭쪼름한 진국이다.



탕은 양념 일절 안 하고 파, 고추만 썰어 넣었는데도 백합 제 몸에서 뽀얗게 우러난 우윳빛 국물이 시원하다. 고추의 칼칼한 맛이 조개의 비린 맛을 덮는다. 새콤달콤 초무침도 입맛을 돋운다. 죽은 참깨와 녹두를 갈아 넣고 참기름을 뿌려 혀에 착착 감겨든다. 처음에 상을 받으면 이걸 언제 다 먹느냐는 생각부터 들지만 결국엔 남김없이 비우게 된다.

/ 스포츠조선 오태진기자

 

고창읍 석정리 540-2  고창 석정온천 063-564-4441

석정온천은 프랑스의 루르드 온천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발견된 게르마늄온천이다. 게르마늄 온천수를 편안한 마음에서 천천히 마시고 목욕을 즐기면, 질병에 대한 자연치유력을 높여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게르마늄 성분 외에도 인체내의 노화된 부분을 회생시키는 고단위 토코페롤 영양소 세르늄 성분을 포함하고 있어 고혈압, 당뇨병, 신경통, 만성류마티스, 관절염, 협심증 등 각종 성인병에 뛰어난 효능이 있다고 한다. 

 

1990년 온천지구로 지정받았으며, 94년말 관광지 기반조성공사를 하여 모든 계층의 관광객이 이용할 수 있는 요양 및 휴양을 위한 전원형 온천 관광지를 조성하였다. 1992년 3월에 개장한 온천욕장(지하 2층, 지상 2층)에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주변에 내장산 국립공원, 백양사, 구시포 해수욕장, 선운사, 금산사, 고창읍성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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