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무장지대(DMZ)를 지키는 수색대대원과 일반전초(GOP) 경계병들은 스스로를 ‘대한민국 1%’라고 부른다. 이번 기획을 취재하면서 현장에서 만난 장병들에게 가장 자주 들은 단어 역시 ‘자부심’이였다. 우리 군을 대표한다는 긍지야말로 고된 임무를 이겨내는 원동력임을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1%에 속하기 위해서는 어떤 능력이 필요할까? 이런 물음을 안고 지난 12~14일 강원도 양구군 육군21보병사단을 찾았다. 아름다운 DMZ의 자연을 배경으로 장병들과 동고동락한 2박 3일. 기자는 질문에 대한 해답은 물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최정예 장병들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글=맹수열/사진=조용학 기자
치열한 전쟁의 무대, 가칠봉은 이미 ‘겨울’
가장 먼저 향한 곳은 21사단 천봉여단 천봉대대가 주둔하는 가칠봉이었다. 사단은 산세가 험하기로 유명한 가칠봉을 포함해 양구 일대의 작전지역을 수호하고 있다.
가칠봉은 6·25전쟁 당시 치열했던 전투로도 유명하다. 1951년 9월 4일부터 10월 14일까지 국군 5사단을 중심으로 진행된 ‘가칠봉전투’는 수많은 사상자를 낳은 혈전으로 기록돼 있다. 6번에 이르는 쟁탈전 끝에 5사단은 현재 DMZ 안쪽에 있는 ‘김일성 고지’를 제외한 가칠봉 일대 고지를 모두 장악했다. 가칠봉 전투의 승리로 ‘펀치볼 마을’로 유명한 해안면 지역을 우리 영토로 편입하는 것은 물론 양구·고성 지역 일대의 적 움직임을 빠르게 인지할 수 있는 지형적 이점을 가져오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해발 1242m, 가칠봉으로 올라가는 길은 계절의 경계에 있었다. 평지 도로를 달리며 느꼈던 초가을의 정취는 위로 올라갈수록 겨울의 풍경으로 바뀌었다. 가칠봉 중턱은 완연한 가을이었다. 아직 새파랗던 평지와 달리 나뭇잎은 갈수록 붉게 물들어갔다. “가칠봉의 10월은 이미 겨울입니다. 정상은 최저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기도 했죠. 며칠 전에는 눈이 내려 1㎝ 가까이 쌓이기도 했습니다.” 사단 홍보문화장교 민병찬 중위의 설명이다.
직전의 더위로 외투를 벗고 있던 터에 들려온 뜻밖의 이야기가 선뜻 믿어지지는 않았지만 앞서 2년 동안 천봉대대에서 근무했다는 그의 이력을 믿어보기로 하고 정상으로 향했다. 민 중위의 말은 사실이었다. 위로 올라갈수록 밀려오는 한기는 외투를 다시 걸치게 했다.
GOP 부대로 향하는 관문인 위병소 입구에는 낡은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집념과 끈기로 찾고 잡자’. 비석이 세워진 1988년 당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하는 구호였다.
화채 그릇 속 대립의 흔적
제법 높은 고지까지 올라가자 ‘펀치볼 마을’이라 불리는 해안면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펀치(Punch)라는 칵테일을 담는 대형 그릇’이라는 뜻을 가진 마을의 이름은 전쟁 때 이곳을 찾은 외국 종군기자가 노을로 물든 풍경을 보고 지었다고 한다. 이곳 사람들은 펀치볼을 우리 말로 옮겨 ‘화채 그릇’이라 부르기도 한다.
돌이켜보니 가칠봉으로 이어진 전술도로는 그릇의 가장자리에 해당했다. 올라올 땐 미처 느끼지 못했던 산간 지역 속 작은 평야를 바라보며 “이름 참 절묘하게 지었다”고 읊조렸다.
전술도로 곳곳에서는 대립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도로 옆으로 간간이 보이는 낡은 펜스가 그것. 이 펜스들은 정전협정에 따라 원래 우리 군이 쳐놓은 철책이었다. 하지만 북한이 추진철책을 앞으로 당겨 DMZ 방향으로 진출하자 우리 군 역시 추진철책을 전진시켰다. 이로 인해 가칠봉중대는 동부전선에서 북한과 가장 최단거리인 750m 앞에 자리 잡은 GOP 부대가 됐다.
가칠봉의 한문 표기는 더할 가(加), 일곱 칠(七), 봉우리 봉(峰)이다. 금강산 1만 2000봉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가칠봉을 비롯한 일곱 개의 봉우리를 더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반도를 대표하는 명산의 끝자락에 위치한 가칠봉에서 바라본 금강산은 그래서 더 특별하고 아름다웠다.
해발 1242m에서 열린 수영복 심사
가칠봉중대 입구에서 지난날 심리전의 유산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대 입구에는 푸른 칠이 벗겨진 낡은 수영장이 있었다. 지금은 족구장으로 쓰이지만, 이 수영장은 놀라운 과거를 품고 있다. 1992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출전한 미녀들은 바로 이 수영장에서 수영복 심사를 받았다.
북한은 반대로 가칠봉중대에서 내려볼 수 있는 박달봉 계곡에서 여군들이 목욕을 하도록 했다는 구전(口傳)도 있다. 수영장 근처에는 같은 시기 세워진 가칠봉 십자가 점등탑과 통일기원대탑도 있다. 남북이 가장 가까이 맞닿은 곳에서 얼마나 치열한 심리전이 오갔을지 상상할 수 있었다.
또 한가지 눈에 띄는 것은 부대 입구에서 중대본부 건물까지 약 200m 구간에 설치된 짧은 모노레일이었다. 차든 사람이든 충분히 오르내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굳이 모노레일을 설치했을까? 이런 의문은 아스팔트로 포장된 가파른 경사를 걸어 올라가며 금방 해소됐다.
생각보다 가파른 경사면은 걷는 이에게 상당한 피로감을 줬다. 실제로 이 길은 서리, 눈 등으로 자주 얼어붙는 구간이라고 한다. 사람이 미끄러지는 것은 물론 차도 올라가기 힘들기 때문에 모노레일을 설치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기자가 방문하기 며칠 전 내린 눈 때문에 경계 근무를 나가는 장병들 역시 도로 옆 작은 풀밭으로 조심조심 내려갔다는 후문도 들을 수 있었다.
기자가 도착한 시각, 중대본부 옆 측지통제점에서는 비사격 훈련이 한창이었다. 교육이라고 하면 간부들이 교관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날 훈련은 계산병 김정민 상병을 중심으로 병사들끼리 이뤄지고 있었다. 김 상병은 “간부를 포함한 부대원 전부 임무가 바쁘다 보니 매일 네 번씩 자율적으로 이뤄지는 비사격 훈련의 경우는 병사들만으로 진행할 때도 있다”면서 “워낙 자주하는 훈련이다 보니 병사들끼리 해도 큰 문제는 없다”고 설명했다.
“체력·정신력은 기본” 더 중요한 덕목은
북한과 가장 가까운 것은 물론 육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GOP인 가칠봉중대는 혹독한 환경이 가져온 고된 근무로 유명하다. 병사들 역시 “이곳에 오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가칠봉을 지키고 있는 경계병들에게 가장 필요한 미덕은 무엇일까? 차유성(중위) 부중대장의 말에서 단초를 얻을 수 있었다.
“일단 가칠봉중대에서 복무한다는 것은 체력·정신적으로 준비가 된 사람들이죠. 하지만 환경은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이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고된 근무 속에서도 작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조재현 상병 역시 비슷한 말을 했다. 자원해 GOP 경계병 임무를 맡게 됐다는 조 상병은 “가칠봉중대원 대부분은 신병교육대에서도 ‘잘 한다’는 평가를 받은 사람들”이라면서 “일단 임무수행 능력을 갖추고 있는 만큼 더 필요한 것은 가칠봉의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긍정적인 마인드”라고 말했다.
문현호(중령) 천봉대대장은 ‘최정예 GOP 경계병의 자격’ 대해 보다 상세히 설명했다. 문 대대장은 “아무리 훌륭한 자질을 갖춰도 대한민국 최전방을 지키겠다는 굳건한 의지가 없다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고 강조했다.
문 대대장에 따르면 현재 21사단의 GOP 경계병 심사는 크게 3단계로 진행된다. 먼저 신병교육대에서 체력·품성을 평가해 정예 인원을 걸러낸다. 이어 인사과장 등으로 구성된 GOP 대대 자체 평가가 이뤄진다. 신병교육대에서 미처 확인하지 못한 부분을 다시 점검하는 차원이다.
이 과정에서 대대는 GOP의 작전 환경, 복무 여건 등을 상세히 설명하고 복무 의사가 있는지를 재차 묻는다. 마지막으로 사단 신상관리위원회의 빈틈없는 3차 검증을 통과해야 GOP를 수호하는 명예로운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말년 병장’, GOP 생활을 말하다
문 대대장과의 이야기를 나눈 뒤 천지중대 A소초로 자리를 옮겨 군장검사 모습을 지켜봤다. 한수완(중위) 소초장을 중심으로 한 근무자들은 저녁부터 새벽까지 이어지는 경계 작전에 앞서 개인 장비와 임무를 확인하고 있었다. 장병들의 흐트러짐 없는 부동자세는 평소 소초의 엄정한 군기를 상징하는 듯 했다. 장병들은 한 소초장으로부터 귀순자 유도 배낭에 절단기, 케이블 타이 등 각종 장비를 꼼꼼히 챙겨 넣었다.
전역 전 휴가를 5일 앞둔 김세현 병장은 이날도 어김없이 야간경계 작전 준비를 마쳤다. 김 병장은 입대 전 GOP 경계병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고 자원했다고 한다. “휴가가 많다고 들어서 자원한 것”이라며 웃던 그는 인내심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 했다.
“뒤돌아 생각해보면 GOP 생활이 그리 나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힘들기도 하지만 그만큼 즐거운 일도 많죠. 다만 경계 임무를 수행하려면 인내심은 필수인 것 같습니다. 사회에서도 체력이 나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산을 오르내리는 일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입니다. 그래도 꾹 참고 이겨낸 결과 지금은 체력검정에서 특급을 받을 정도로 더 성장했죠.”
한 소초장은 부하들의 ‘주인의식’을 높이 평가했다. “자원해서 온 만큼 능동적이고 하려는 의지가 강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매일 같은 임무를 수행하다 보면 권태로울 수 있는데 그런 매너리즘을 이겨내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나 역시 부하들이 마음을 다잡고 임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꾸준히 격려하며 작은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심은 없다…GOP 경계병의 자세
준비를 마친 소초원들을 따라 야간 철책점검에 나섰다. 어느새 어스름이 어둠이 깔린 비포장길. 21사단 철책길은 가파른 것은 물론 유난히 돌이 많기로 유명해 장병들의 순찰 난도 역시 높다. 여기에 일교차로 생긴 이슬·서리가 더해지면 한층 더 고된 순찰길이 된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언제인지 모르게 돌계단에는 하나, 둘씩 폐철판을 박히기 시작했다. 미끄러짐을 방지하기 위한 생활의 지혜다.
험한 산길을 뚫고 나가다 보니 과연 이런 곳을 노리고 침투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강천빈 병장의 생각은 달랐다. 강 병장은 “충분히 적이 침투할 가능성이 있다”고 잘라 말했다.
“1983년 북한 신종철 대위의 귀순 사례로 볼 때 이 곳은 여전히 안심할 수 없는 지역입니다. 항상 침투 가능성을 상정하고 긴장에 끈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기존 침투 양상으로 볼 때 주간보다는 야간에 침투할 확률이 더 높습니다. 저희가 야간 경계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야간투시경을 통해 전방을 바라보는 강 병장의 눈빛은 더욱 빛났다.
준비된 수색대대원 “체력보다 중요한 건 사회성”
다음날 이른 새벽. DMZ는 여전히 어두웠지만 있었지만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군장을 살펴보는 사단 수색대대 장병들의 하루는 이미 시작됐다.
수색대대 천지작전소대 장병들은 천지중대 B소초 옆 건물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다. 이들은 일정 주기로 이 곳에 상주하다 교대하는 방식으로 근무 중이다. 하지만 교대하고 대대로 내려간다고 해서 바로 휴식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다른 구역 수색·매복 작전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곳에서는 이틀에 한 번 꼴로 작전에 투입되고, 또 다른 곳에서도 같은 임무를 반복하다 보니 숙련도가 엄청나게 쌓이게 된다는 설명이다.
천지중대장이 주관하는 1차 군장검사를 앞둔 송병하 병장은 여전히 굳은 표정이었다. 늘 하는 군장검사지만 여전히 긴장을 놓을 수 없다는 그는 입대 전 체육을 전공한 ‘준비된 자원’이었다고 한다.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DMZ, 그 중에서도 아무나 될 수 없는 수색대에 대한 동경이 있었습니다. 14개월이 지난 지금도 수색대는 여전히 멋진 부대라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통문을 보는 기분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느낄 수 없죠.”
신병교육대에서도 체력등급 1급, 군 생활 중에도 특급을 놓치지 않았던 송 병장이지만 수색대는 그저 체력만 강하다고 오는 곳이 아니라고 힘줘 말했다. 그는 “DMZ 매복 작전을 완수할 수 있는 근본적인 힘은 나라를 지키겠다는 신념”이라면서 “이와 함께 팀원들과 한 몸처럼 움직일 수 있는 사회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고, 의지가 될 수 있는 유대감이 없이는 작전에 임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어둠 속 DMZ 수색·매복 작전…“반드시 승리한다”
김건일(대위) 천지중대장은 작전 브리핑을 받은 뒤 군장검사에 돌입했다. 특히 작전팀장은 물론 모든 수색대대원들의 장비 하나 하나를 꼼꼼히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들의 절도 있고 신속한 움직임은 그 동안 이들이 얼마나 숙달됐는지를 방증했다. 김 중대장은 “최근 심상치 않은 안보 상황 속에서 실제 작전에 돌입하는 이들이기 때문에 한 치의 소홀함도 용납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1차 군장검사는 국방 관련 뉴스를 소개하는 것으로 끝났다. “유사시 적을 섬멸해 반드시 승리하고, 안전히 돌아오길 바랍니다.” 김 중대장의 당부는 짧지만 큰 울림을 줬다.
출발 전 총기안전검사는 3중 체계로 이뤄지고 있다. 먼저 일반 총기검사와 같은 육안 점검을 한 뒤 전자 저울을 이용한 무게 측정이 진행된다. 마지막으로 폐쇄회로(CC)TV로 탄약 수급절차를 실시간 확인하며 팀장과 상황실 근무자가 교차 점검까지 해야 비로소 검사가 끝난다.
1시간 뒤 통문 앞에서는 2차 군장검사가 실시됐다. 2차 군장검사의 대부분은 문 대대장이 직접 맡고 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문 대대장은 매일 통문으로 와 군장검사를 직접 주관한다고 한다.
문 대대장 역시 김 중대장과 마찬가지로 군장 상태를 세밀히 살폈다. 1차 검사에서 이미 통과했으니 느슨할 법도 한데 그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었다. 엄격한 검사지만 대원들을 일일이 격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군장검사 결과 이상이 없음을 확인했습니다. 오늘도 정상 작전을 시행하겠습니다.” 문 대대장의 말이 끝나자 장병들은 다시 적이 눈치챌 수 없는 어스름한 어둠 속으로 집결했다. 문 대대장은 수색대대원들에게 긴장감과 자신감, 자긍심을 강조했다.
“우리의 작전은 일반 군인들이 절대 수행할 수 없는 곳에서 이뤄집니다. 어제 이상이 없었다고 오늘도 이상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작전은 반드시 실패합니다. 우리는 적이 지금 도발하더라도 언제든 응징,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런 자신감을 가지고 작전에 임해주시기 바랍니다. 50만 군 장병 가운데 이 시간에 DMZ에서 작전을 하는 인원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가장 위험한 시간, 위험한 장소로 향하지만 여러분이 있어 대한민국이 편히 쉴 수 있다는 숭고함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안전·완전작전에 임해주시기 바랍니다.”
‘구름 바다’ 위 GOP의 하루
어둠 속으로 빨려들 듯 사라진 수색대대 장병들을 배웅한 뒤 아침 해를 보기 위해 다시 가칠봉으로 향했다. 이 시기 가칠봉에서 내려다 본 펀치볼 마을의 하늘은 운해(雲海), 즉 구름바다로 뒤덮여 있는 날이 잦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펀치볼 마을은 흰 구름이 가득했다. 마치 그릇 위에 하얀 크림을 뿌려놓은 것 같은 장관이었다. 신기하게도 산을 사이에 두고 북쪽인 DMZ 지역은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했다. 이 기묘한 풍경은 구름이 분지를 둘러싼 산을 넘지 못할 때 생기는 현상이라고 한다. 온통 운무로 뒤덮이는 여름과 달리 가을에는 운해의 웅장한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는 것이 부대의 설명이다.
운해를 뚫고 해가 뜨기 시작한 이른 아침. 가칠봉중대의 하루도 시작됐다. 장병들은 보급품을 나르고, 철책을 점검하며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특히 이날은 불모지 작업을 나온 파견 병력을 위해 증가 초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철책 밖 불모지 작업은 철책 주변의 시야를 넓히는 것이 주목적이다. 우거진 수풀이 철책을 가리면 어디로 적이 올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모든 GOP 부대가 힘을 기울이는 작업이다.
가칠봉중대에서는 그 동안 본 불모지 작업과는 조금 다른 양상이 펼쳐졌다. 앞서 다른 부대들은 중장비 등을 동원해 광활한 불모지를 개척했지만 이 곳에 동원된 장비는 지뢰탐지기와 호미 정도. 지형이 협소하고 경사가 가파르기 때문에 중장비를 동원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장병들의 안전과 작업여건 보장에 힘을 쏟고 있다고 한다.
전날 본 모노레일을 실제 가동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장병들을 위해 배달된 생수가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무거운 물건을 들고 걸어 올라가기 쉽지 않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발도 흔들 수 없는 최전방…“주어진 임무를 할 뿐”
취재 마지막 날인 14일은 수색대대의 훈련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부대를 찾았다. 이날은 새벽에 벌어진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로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한 시점. 최전방 부대의 분위기는 오히려 차분했다.
“매일 실제 작전을 수행하다 보니 이 정도 도발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는 않게 됩니다. 늘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저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를 완벽히 수행하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김성일(중위) 수색2중대 1소대장의 말이다.
험한 산을 올라가 훈련장에서 만난 수색대대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묵묵히 오늘의 훈련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이날 훈련은 수색·매복작전 과정을 그대로 수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지뢰만 없을 뿐 DMZ와 유사한 환경을 조성해 실전성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두 조로 나눈 장병들은 이동, 경계를 반복하며 매복지에 도착했다. 이어 귀순자를 발견한 상황을 상정, 귀순자 유도 절차를 다시 한 번 재점검했다. 차분히, 그러면서도 신속하게 산길을 헤쳐 나가는 장병들의 뒷모습은 그 동안 통문 앞에서 지켜본 유려함 그 자체였다. 대대는 훈련을 통해 귀순자 유도는 물론 지뢰탐지, 유기물 점검·조치 등 다양한 상황에 대한 현장 조치 능력을 키우고 있다.
수색대대는 ‘멀티 플레이어’를 원한다
‘수색대대 출신’이라는 타이틀은 전역 후에도 자랑거리가 되곤 한다. 그만큼 힘들고 위험하지만 영광스러운 임무를 수행한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렇다면 수색대원이 되는 과정은 어떻게 진행될까? 김 소대장은 먼저 ‘팀원 자격 인증 평가’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팀원 자격 인증 평가는 DMZ의 환경, 완수 신호, 군장 품목, 매복작전의 정의 등을 완벽히 숙지하고 있는지가 주가 됩니다. 이 밖에도 개인화기, 공용화기, 통신장비 운용 능력도 확인하죠. 유사시 다른 팀원의 임무도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종합적인 능력을 모두 평가합니다. 체력은 물론 암기력, 장비를 다루는 손재주 등 수색대대원이 되기 위해 필요한 요소는 다양하죠.”
평가에 합격한다고 바로 수색대대원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합격자는 3번의 DZM 동반 수색작전을 하면서 지형을 숙지하고 다른 팀원들과의 호흡을 확인받은 뒤 비로소 정예 수색대대의 일원이 된다.
이들은 동료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로 ‘인성’을 꼽았다. 박형빈 병장은 “수색·매복작전은 팀 단위로 이뤄지기 때문에 팀원들과 두루두루 잘 지낼 수 있는 팀워크가 필수”라면서 “언제 총알이 빗발쳐도 이상하지 않은 DMZ 안에서 다른 팀원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전했다.
2박 3일간의 취재 결과 ‘1%의 자격’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대대장부터 병사까지 입을 모아 말한 것은 바로 ‘마음가짐’. 소중한 DMZ와 우리 땅을 반드시 지켜내겠다는 의지야 말로 최정예 장병에게 필요한 자질이다. 이는 과거 가칠봉을 탈환하고 사수하기 위해 몸을 던진 순국선열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 과거를 넘어 현재로 이어진 이 덕목은 미래에도 DMZ를 지키는 굳건한 힘이 될 것은 자명했다.
/ 출처 : 국방일보 2022.10.27 맹수열 기자 < guns13@dema.mil.kr > 조용학 기자 < catch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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