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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거 저런거/이것저것

부산 형제복지원사건 언론기사 정리

by 구석구석 2024.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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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 가장 무더웠던 1983년 부산, 야외취침 나선 소년이 납치됐다 [형제복지원 생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12년간 수용인원 총 3만 8000여명, 공식 사망자 513명. 1970~1980년대 국가 최대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던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벌어진 인권 유린 사태는 1987년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34년이 지난 지금,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이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생존자들은 지난 5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에 나섰다.

형제복지원으로 가는 차에 태워지는 시민들의 모습.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 제공.

시민회관 앞에서 잠 자다 납치된 소년, 3년간 지옥 생활

1983년 8월 부산은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로 가장 무더웠다. 그해 열 살 소년이었던 김수길(48)씨는 “밖에서 잠을 자겠다”고 집을 나서 시민회관 앞으로 갔다. 열대야를 견디려 야외취침에 나선 어르신들과 아이들이 여럿이었다. 상자를 깔고 잠을 청한 김씨가 눈을 떴을 땐 형제복지원이었다. 갑자기 찾아온 비극은 소년의 삶을 덮쳤다.

형제복지원에서 소년이 가장 먼저 배운 것은 ‘체념’이었다. 잠결에 트럭에 태워져 납치된 김씨는 “집에 보내달라”고 호소했다가 호된 매질만 당했다. 복지원 선생님에게 집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편지도 전달해봤지만 부모님과 연락이 닿지 못했다. 소년은 하는 수 없이 그곳에서 주는 대로 먹고, 시키는 대로 일하고, 때리는 대로 맞으며 3년을 보냈다.

그 와중에도 소년은 끊임없이 도망을 꿈꿨고, 시도했다. 하루는 형제원 담벼락을 뛰어 넘어 택시를 잡아탔지만 김씨가 입고 있던 수용복을 본 택시기사가 형제원으로 차를 몰았다. 또 다른 날은 운동장을 헤매다 경비에게 붙잡혔다.

미국에서 ‘박사’가 온 날 김씨는 입양을 갈 뻔 했다. 형제복지원은 당시 돈벌이 목적으로 해외 입양을 대거 추진했다. 김씨는 낯선 땅에서 ‘마루타’가 될까 두려워 뒷산으로 도망을 갔지만 똥구덩이에 빠져 경비에게 발견되면서 다시 끌려왔다.

1986년 9월 마침내 김씨는 형제원을 벗어났다. 형제원이 세간에 알려지기 3개월 전이었다. 김씨의 집 연락처를 기억하고 있던 선생님의 도움으로 뒤늦게 부모님과 연락이 닿았다. 3년 만에 마주한 소년과 부모는 온통 눈물범벅이었다.

35년이 지나 김씨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며 진술서를 썼다. 그러나 그의 진술서에는 빈 부분이 많다.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트라우마가 심해지자 ‘중도생략’을 했기 때문이다. 진술서에 담기지 못한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형제원에서 구타 당하면서 김씨는 허리가 비틀렸고 장애 5급 판정을 받았다. 가족을 건사하고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면서도, 때때로 괴로움과 불안, 분노가 치솟는다.

형제복지원 사건 어디까지 왔나

형제복지원을 운영한 고(故) 박인근 원장은 1989년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무죄가 확정됐다. 2018년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무죄 판결을 취소해 달라며 비상상고를 신청했지만 지난 3월 대법원에서 기각됐다. 다만 재판부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고 정부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당부했다.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해 국가를 상대로 첫 손해배상 소송에 제기한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현재 추가 소송 제기를 이어가고 있다. 1차 소송에 참여한 13명은 모두 입·퇴소 증빙자료가 준비돼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이러한 증거가 없어 피해사실 입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비용 부담 때문에 소송 참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해자들을 위해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다.

/ 출처 : 서울신문 2021.9 진선민 기자

불법 인권유린의 지옥 형제복지원 - 형제복지원 원생들이 작업장에 투입돼 일하는 모습. 당시 작업장에선 구타가 일상적으로 자행됐다. 서울신문 DB

ㅁ 형제복지원 국가배상 판결…수용기간 1년마다 8000만원씩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비록 1심이지만 지난해부터 피해자에 대한 배상 판결이 이어지고 있어 향후 다른 재판 결과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7부(이상원 부장판사)는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6명이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가 총 14억4000만원과 지연이자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2023년 12월2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재판을 마친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재판부는 “적법한 법령에 근거하지 않은 채 임의로 형제복지원에 수용돼 신체의 자유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침해당했다는 점이 인정되고, 국가는 이에 대한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원고는 2022년 8월부터 올해 1월까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에서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로 인정받은 이들이다. 이 같은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제기한 국가 배상 소송은 전국적으로 30건 이상으로 파악된다.

부산 형제복지원에 수용된 어린 원생들이 부동자세로 아침 점호를 받는 장면. 당시 모든 원생들은 새벽에 일어나 4열 종대로 인원 점검을 받고 열을 맞춰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었다. 형제복지원진상규명을위한대책위원회 제공

앞서 지난해 12월21일 서울중앙지법은 피해자 26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 대해 국가가 145억8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고, 올해 1월31일에는 피해자 16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 대해 국가가 45억3500만원을 배상하라고 결론냈다. 수용기간 1년마다 8000만원씩 계산한 것으로 모든 소송에서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 

정부는 재판에서 다른 형제복지원 손해배상 소송에서처럼 시효가 완성돼 배상받을 권리가 소멸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과거사정리법상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에 해당하므로 민법(10년)과 구 예산회계법(5년) 등에 따른 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부는 앞선 판결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항소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통상 중요 국가 소송에서는 법규의 해석과 적용에 관한 법원의 의견을 확인하고 다른 사례에도 적용될 수 있는 선례로서 법해석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대법원까지 판단을 구하는 사례가 많다.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 관계자 등이 지난 1월 3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국가배상 손해배상 소송 선고공판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형제복지원 사건은 1960년 7월20일부터 1992년 8월20일까지 경찰 등 공권력이 부랑인으로 지목된 사람들을 민간 사회복지법인 형제복지원에 강제수용하고 강제노역과 폭행, 가혹행위를 일삼은 사건이다. 일부 피해자들은 수용 중 사망하기도 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2022년 8월 이 사건을 국가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판단했다. 정확한 수용규모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형제복지원이 매월 발간한 ‘새마음’지에 따르면 1975년부터 1986년까지 3만8000여명이 수용된 것으로 전해진다. / 출처 : 농민신문 2024.8.9 박병탁기자 

형제복지원 옛모습 / 국제신문

 

ㅁ 형제복지원 3번 끌려간 피해자 김대우씨 암 투병 중 숨져

(부산=연합뉴스) 2024.9.9 박성제 기자 =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의 피해자가 국가로부터 사과와 배상을 끝내 받지 못한 채 숨을 거뒀다. 9일 형제복지원사건 피해 생존자 모임에 따르면 전날 오전 부산 자택에서 형제복지원 사건의 피해자 김대우 씨가 53세를 일기로 숨졌다.

김씨는 식도암으로 병원에서 치료받은 후 집에서 요양하던 중 숨졌다. 1971년 부산진구에서 태어난 김씨는 1981년 형과 함께 놀다가 '따라오라'는 경찰의 말에 파출소를 거쳐 형제복지원으로 끌려갔다.

진상 규명을 위해 투쟁하던 김대우(왼쪽)씨 생전 모습 / 형제복지원사건 피해 생존자 모임 제공.

김씨는 퇴소와 입소를 반복하며 1981년, 1982년, 1983년 등 세 차례나 형제복지원에 수용됐다. 김씨는 형제복지원에서 고춧가루 고문 등 온갖 가혹 행위를 견뎌야 했다고 생전 진술했다.

올해 초 법원은 형제복지원 인권 침해에 대한 국가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했다. 김씨를 포함한 형제복지원 피해자는 국가와 부산시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일부 금액이 인정됐다. 그러나 1심 판결에 국가가 항소하면서 김씨는 국가 사과와 배상을 받지 못한 채 숨을 거두게 됐다.

한종선 형제복지원사건 피해 생존자 모임 대표는 "피해 배상은 뒤로 미룬다고 할지라도 국가가 피해자에 대한 최소한의 사과는 해야 했다"며 "진상 규명도 채 되지 않은 상태에서 피해자가 돌아가 안타깝다"고 말했다.

수용자들을 동원해 부산시 주례동 국유림에 형제복지원 시설을 짓고 있는 공사 현장 모습. 형제복지원 운영자료집.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제공

형제복지원 사건은 1970∼1980년대 경찰 등 공권력이 부랑인으로 지목된 사람들을 민간 사회복지법인이 운영하는 부산 형제복지원에 강제수용한 사건이다. 1975~1986년까지 3만8천여명이 수용됐으며, 이 가운데 657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진실화해위는 2022년 8월 이 사건을 국가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판단했다. 김씨 장례는 가족과 형제복지원사건 피해 생존자 모임이 단체장으로 치른다. 빈소는 부산 동래구 착한전문장례식장에 마련됐다.

ㅁ 정부, ‘과거사 피해회복’ 권고 묵살…떠넘기거나 되레 ‘항소’

국민학생이던 9살 때 형제복지원에 끌려갔다가 12년간 강제 노역과 학대를 당한 황정복(58)씨는 40여년 흐른 2022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진실규명을 통해 국가폭력 피해자로 인정됐다.

당시 진실화해위는 보건복지부에 피해자들에 대한 ‘피해 회복 조치’를 마련하라고 권고했는데 복지부는 지금까지 아무런 계획을 제출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2월 진실화해위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간첩 조작 사건에 연루돼 평생 고문 후유증과 ‘간첩’ 낙인에 시달리다 숨진 한삼택씨에 대해서도 진실규명을 결정하며 정부에 ‘재심 등’ 명예 회복을 위한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법무부는 유족이 제기한 재심에서 한씨에게 무죄가 선고되자 되레 ‘항소’로 응답했다.

형제복지원 수용자들이 강제 노역을 하고 있는 모습. 피해자 황정복씨 역시 형제복지원 건물을 짓는 노역을 강요받고 각종 가혹행위를 당해야 했다. 피해자 황정복씨 제공

진실화해위는 진실규명 결정 이후 해당 정부 부처에 과거사 피해 회복을 위한 권고 결정을 내리고 있지만, 6일 한겨레 취재 결과 일부 부처들은 이를 어떻게 이행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조차 제대로 제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제출된 이행계획 역시 부실투성이거나 권고와 배치되는 경우가 많았다.

진실화해위 권고 미이행은 1기 진실화해위 때에도 논란이 됐다. 2010년 활동을 마무리한 1기 진실화해위는 정부 부처에 1271건의 권고를 내렸지만, 12년 뒤인 2022년까지도 258건(20%)의 권고가 이행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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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2월 국회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과거사 기본법)을 통과시켰다. 지난해 9월22일부터 시행된 개정안에는 행정안전부 장관이 매년 상반기와 하반기 2차례 발간되는 ‘진실화해위 조사결과 보고서’에 담긴 권고의 이행을 관리하도록 책임이 부여됐다.

또 권고를 받은 각 정부 부처는 진실화해위가 조사보고서를 국회와 대통령에게 보고한 시점에서 3개월 안에 이행계획을 행안부 장관에게 제출하도록 규정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진실규명 결정을 내린 서산개척단의 강제 노역 자료사진. 보건복지부는 서산개척단 사건과 관련한 국가 사과, 피해 회복 조치에 대한 이행계획을 제출하지 않았다.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제공

2020년 12월 출범한 2기 진실화해위는 지난해 상반기까지 102개 사건에 대해 503건의 세부 권고를 내렸다. 이에 행안부는 지난해 9월22일 각 정부 부처에 503건에 대한 이행계획을 같은 해 12월21일까지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행안부에서 제출받은 ‘진실화해위원회 권고사항 이행계획’ 자료를 보면, 24건(국방부 15건, 보건복지부 9건)의 이행계획이 아직도 제출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국방부는 지난해 12월21일까지 총 83건의 이행계획을 제출해야 했지만 이 가운데 15건(18%)을 제출하지 않았다. 보건복지부 역시 진실화해위가 권고한 12건의 이행계획 중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등 9건(75%)을 미제출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우리 부처 소관이 아니어서 해당 사건의 이행계획을 제출하지 않았다. 진실화해위에 소관 부처 조율을 요청한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복지부 관계자 역시 “형제복지원 사건 등은 행정안전부에서 이행하는 게 맞다”며 “진실화해위에 여러 차례 담당 부처를 바꿔달라고 요청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에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조율 계획을 잡고 있다”고 밝혔다.

제출된 479건의 이행계획도 부실하긴 마찬가지다. 일부엔 진실화해위 권고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내용마저 포함됐다.

총련 관련 간첩 조작 사건으로 진실규명 결정을 받은 고 한삼택씨에 대한 법무부의 권고 이행계획이 대표적이다. 진실화해위는 법무부에 한씨의 명예 회복을 위한 ‘재심 등 조치’를 권고했는데 법무부는 “이미 2021년에 유족이 재심을 청구했다. 지난 1월 무죄가 났으며 검찰 항소 여부 검토 중”이라는 이행계획을 냈다. 이행계획을 실제로 수행하는 이행률 역시 높지 않다. 지난해 12월을 기준으로 전체 이행계획의 이행률은 19% 수준인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의 과거사 사건에 대한 무성의한 태도는 국가폭력 피해자에게 또 다른 고통이 되고 있다. 고령에 갖은 고초를 겪어 건강마저 좋지 않은 과거사 피해자들은 배상도, 사과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등지고 있다. 4·3항쟁이나 5·18 민주화운동처럼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특별법을 통한 보상 등 대안을 마련한다면 피해자들의 개별 소송은 확연히 줄 수 있다.

최근엔 정부 부처뿐 아니라 진실화해위 자체도 논란이 되고 있다. 뉴라이트 출신의 김광동 위원장이 취임한 뒤 진실화해위가 퇴행을 거듭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건영 의원은 한겨레에 “국가폭력으로 인한 희생의 진실을 밝히겠다는 진실화해위의 출범 취지가 무너진 것 같다”며 “진실규명이라는 대원칙에 걸맞은 위원회 운영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 출처 : 한겨레 2024.8.7 장현은기자

 

형제복지원 '지옥을 기록하다'

ㅁ "형무소보다 못한…" 자서전에 써 내려간 '형제복지원 참상'

(서울=연합뉴스) 2024.1.10 최원정 기자 =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갖가지 인권유린이 자행된 부산 형제복지원의 처참한 강제수용 과정과 의료 실태를 확인할 수 있는 피해자의 자서전을 확보했다고 10일 밝혔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고(故) 임모 씨는 1984년 형제복지원에 강제 수용돼 이듬해 탈출할 때까지 부산 시내 파출소를 돌며 수용자들을 데려오고 새로 온 수용자의 인적 사항을 기록하는 역할을 맡았다.

고(故) 임모 씨의 자서전 중 일부 / 진실화해위 제공

이후 임씨는 1994년 자서전을 통해 형제복지원의 수용 과정과 생활상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임씨는 "각 파출소에서 전화가 오면 (수용자들을) '부랑아 선도'라고 쓰인 봉고차에 태워 이튿날 조서를 작성시켰다"며 "정신질환자로 보이면 일단 의사가 진찰하는 동안 며칠간 정신병동에 보낸다"고 썼다.

그러면서 "(신입 수용자와 면담하며) 정신질환자, 알코올 중독, 성격장애 등 정신 문제를 캐냈다"며 "의사가 다녀간 뒤 진단을 보면 내가 먼저 작성한 내용과 거의 동일했다"고 적었다.

이렇게 정신질환자로 분류된 이들은 복지원 내 병동에 갇혀 정신과 약물을 강제로 투약해야 했다. 진실화해위는 수용자를 통제·관리하기 위해 약물을 투약해 무기력하게 만드는 '화학적 구속'을 시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씨는 자서전에 "형무소는 형을 마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나 이곳은 가족이 데려가지 않으면 나갈 수 없으니 형무소보다 못하다"고 쓰기도 했다.

부산 형제복지원 전경 / 연합뉴스

진실화해위는 임씨의 아들이 제출한 이 자서전을 바탕으로 임씨가 서명하거나 날인한 형제복지원 신상기록 카드 19건을 찾아냈다. 일부 수용자의 입소 경위에는 '정신관찰', '정신환자' 등의 내용이 기록되기도 했다.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임씨의 자서전은 형제복지원 수용자에 대한 의학적 판단이 의사의 체계적 진단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졌음을 보여준다"며 "자신이 만난 피해자 개개인의 사연과 강제수용 과정을 자세히 기록해 조사 활용 가치가 높다"고 평가했다.

고(故) 임모 씨가 작성한 신모 씨의 신상기록 카드 '정신관찰'이라는 기재사항과 함께 임모 씨의 도장이 날인되어 있다. 1984년 12월 25일 입소한 신모 씨는 1985년 1월 11일 사망하였다. / 진실화해위 제공

진실화해위는 이번 조사에서 임씨를 포함해 153명의 형제복지원 피해 사례를 추가로 밝혀냈다.

앞서 진실화해위는 2022년 8월과 지난해 2월 형제복지원 사건을 두 차례 진실규명하며 모두 337명을 피해자로 인정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장애인과 고아 등을 불법 감금한 권위주의 정권 시절 대표적 인권유린 사건으로 꼽힌다. 이곳에서 1960년부터 1992년까지 강제노역과 구타, 성폭행 등 각종 인권침해도 모자라 암매장까지 자행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진실화해위는 전날 전체위원회를 열어 임씨 등 형제복지원 사례와 더불어 1968년 성매매 여성과 부랑인 수용 시설로 설립된 '서울동부여자기술원'에서도 폭행과 강제 수용 등 중대한 인권침해가 있었던 사실을 확인하고 11명을 피해자로 인정했다.

여성 수용시설 인권침해 사건과 관련해 진실화해위에서 진실규명 결정이 이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당시 경찰과 보건소, 행정기관은 법적 근거 없이 단속에 나서 피해자들을 시설에 강제 수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진실화해위는 '덕적도 어민 부부 불법구금 사건', '방동규 씨 긴급조치 위반 불법구금 사건' 등 5건에 대해서도 진실규명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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