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시 오학동 무이숲

ㅁ 여주시 도예로 247 (오학동) / 무이숲 ☎ 031 8051 2900

무이숲은 여느 카페와 다르다. 천년 고찰 신륵사가 있는 남한강 북쪽 여주 시내를 벗어나 한적한 도로를 5분쯤 달리면 왼편으로 거대한 유리온실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발달장애를 지닌 청년 농부 40여 명이 방울토마토와 표고버섯을 재배하는 일터이자 자동 개폐 장치 등 첨단 시설을 갖춘 스마트팜인 ‘푸르메여주팜’이다. 유리온실 건너편에 베이커리 카페 ‘무이숲’이 있다. 무이숲은 이처럼 스마트팜과 교육문화센터, 베이커리 카페를 아우르는 농업회사법인이자 복합 문화 공간인 푸르메소셜팜의 일부이다.

여주의 대형 베이커리 카페 무이숲

스마트팜과 너른 잔디밭을 지나 나지막이 재즈 선율이 깔리는 카페에 들어서서 사방을 둘러싼 초록에 시선을 맡기는 것만으로도 일상의 번뇌들이 뒷걸음질을 친다. 연면적 1553㎡(470평)에 이르는 2층 공간은 넓고 쾌적하다.

서가에는 출판사 13곳(글항아리, 길벗어린이, 마음산책, 민음사, 부키, 북이십일, 비룡소, 사계절, 샘터, 시공주니어, 위즈덤하우스, 창비, 푸른숲)에서 기증한 책 3000여 권이 빼곡하다. 무엇보다 음료와 빵이 맛있다. 신선한 재료와 비정제 설탕, 벌꿀에서 우러나는 건강한 맛이다.

이상훈, 장춘순 부부가 1만1800㎡(3600평) 농지를 기증하면서 역사가 시작되었다. 푸르메재단은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스마트팜의 꿈을 실현할 땅이 필요했고, 발달장애인 아들을 둔 부부는 아들의 자립을 위해 힘겹게 운영해오던 농장을 성장시킬 계기가 필요했다.

인근 이천에 본사가 있는 SK하이닉스와 한국지역난방공사, 한국장애인고용재단 등의 출자와 기부로 100억원이 넘는 자금이 모였다.

선례가 없던 ‘장애인 컨소시엄형 표준사업장’을 출범시키기 위한 행정을 지원하고 조례를 개정한 여주시의 숨은 노력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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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팜에서 발달장애 청년 농부들이 재배한 방울토마토를 갈아 만든 ‘방울토마토주스’와 디저트 /양세욱 제공

연이은 작은 기적들이 쌓여 탄생한 농장에서는 40여 명의 발달장애 정규직 청년 농부들이 비장애인과 어울려 방울토마토와 표고버섯을 재배하고 선별, 가공, 포장하는 일을 한다. 어른 키 두 배를 훌쩍 넘는 넝쿨에 주렁주렁 달린 방울토마토를 수확하는 모습은 벅찬 감동이다.

카페에서도 장애 청년 여럿이 빵을 굽고 음료를 준비한다. 건너편 농장에서 수확한 방울토마토는 신선하다. 당도와 산도의 배합이 절묘하고 육질은 두껍고 단단하다.

이 방울토마토를 갈고 벌꿀을 넣은 방울토마토주스(7000원)는 무이숲의 대표 메뉴. 방울토마토는 토마토피자빵(5000원)에서도 존재감을 과시한다.

커피 전문 기업의 장비와 기술 지원으로 볶아낸 두 종류 커피도 진하고 그윽하다. 여주 사과와 당근이 들어간 사과당근주스, 여러 종류의 에이드(레몬, 자몽, 사과)와 스무디(곡물, 딸기, 애플망고), 허브차에서도 정성이 느껴진다.

팥빵, 소금빵, 밤식빵, 통밀무화과빵, 올리브치즈식빵, 몽블랑, 베이컨칩에그샐러드빵, 에그치아바타샌드위치, 그리고 토핑이 다양한 치아바타와 크로아상, 스콘(피칸, 우유생크림, 얼그레이무화과), 쿠키(흑임자, 쑥크럼블, 호두크림치즈프레즐, 버터베이첼, 코코넛누룽지, 아몬드누룽지) 등 신선한 재료와 비건 우유, 비정제 설탕, 벌꿀이 어우러진 메뉴마다 개성이 넘치고 풍미는 고유하다.

무이숲의 무이(無異)는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놀라운 마법이 펼쳐지는 ‘위저드 베이커리’이자 기적의 카페인 무이숲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이는 없다. 역할의 다름이 있을 뿐이다.

‘교육은 벽을 문으로 만드는 행위’라고 말한 이는 간디의 제자이자 맨발의 평화 운동가로 불리는 비노바 바베이다. 푸르메소셜팜과 무이숲을 한 바퀴 둘러보며 유리온실의 이 거대한 벽이야말로 발달장애 청년들이 배우고 일하고 성장해가는 넓은 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 출처 : 조선일보 2023.12 양세욱 인제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