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선 동쪽 끝은 강원 고성이고 서쪽 끝은 인천 강화다. 휴전선 155마일(약 250km)의 대부분은 육군이 지킨다. 육군이 방어하는 철책선의 서쪽 끝은 경기 파주다. 서해로 이어지는 파주 서쪽 한강 하류는 중립구역이다.
군사분계선을 둘러싼 육지의 비무장지대처럼 이 지역에서는 남북한 상호 접근이 금지되고 강변을 따라 철책선이 쳐져 있다. 육상의 휴전선이 강안(江岸)으로 연장된 것이다. 경기 김포와 강화에 걸친 강안 휴전선은 베트남전쟁에서 맹활약한 청룡부대의 후신인 해병대 2사단이 경비한다.
■ 해병대2사단 5여단(상승여단) / 강화도를 주로 방어
경기 서북부지역의 해안을 담당하는 해병대 2사단 예하여단(여단장 대령)으로 국방개혁에 따라 연대에서 여단으로 개편되었다.
파월 청룡부대의 후신으로 전군을 통틀어 근무여건이 안좋기로 손에 꼽히는 부대이다.
ㅇ 직할대에 정보 통신 외포리기동대가 있다.
ㅇ 51대대 / 불사조대대
본부중대, 화기중대, 1중대(선봉), 2중대(독사), 3중대(무적)
ㅇ 52대대
본부중대, 화기중대, 5중대(박쥐), 6중대(지옥), 7중대(살인)
ㅇ 53대대 / 기습특공대대
본부중대(황금독수리), 화기중대, 9중대(붉은무리척살), 10중대(황소), 11중대(신화를남긴악어), 12중대(코끼리)
ㅇ1959년까지만 해도 해병대 제1사단은 경기도 파주군 금촌에 사단 본부가 있었고 예하의 연대가 김포에 주둔하며 서부전선을 방어하고 있었다. 1사단이 본격적인 상륙부대로 발돋움하고자 포항시로 이전하기로 결정되었고, 이에 따라 해병대 제1사단을 대신해 경기 서북부 쪽의 경계/방어를 맡을 부대가 필요했다.
1959년 2월 26일에 해병대 제1사단 1연대를 근간으로 한 제1임시여단이 새로 창설되어 김포 지역에 남아서 주둔하며 서부전선 경계와 방어를 맡게 되었고, 나머지 1사단 병력은 포항으로 이전하였다. 1966년 11월 23일에 해병대 1사단에서 모집한 인원으로 제5여단을 창설하였고, 1967년 1월 23일에 김포의 제1임시여단과 김포 경비 임무를 교대하였다.
이때부터 김포엔 신설된 해병대 5여단이 주둔했고, 그때까지 김포에 있던 1임시여단의 병력은 해병대 1사단으로 돌아와서 1사단의 각 부대로 배치되었고 1임시여단이라는 부대는 사라졌다.
서울은 휴전선 및 한강하구 NLL과 가까운데 그래서 이쪽을 지키고 있는 해병2사단의 경계 및 방어 임무의 중요성이 막중하다.
서울 강북으로는 고양시, 파주시에 제1군단예하 서울 근교 육군 사단이 몰려 있지만 서측방 한강 하구 지역은 육군이 제9보병사단+제1보병사단을 두고 철통경계하는 임진강-한강 축선인 일산-파주 쪽이 아닌 김포-인천 축선은 빈 거나 마찬가지인데 그 공백을 메워주는 부대가 해병2사단이다.
ㅁ 51대대 / 불사조대대
본부중대, 화기중대, 1중대(선봉), 2중대(독사), 3중대(무적)
ㅇ 해병2사단 불사조대대가 ‘무박 3일’ 일정으로 소부대 전술훈련을 실시하며 필승의 대비태세를 확립하고 있다. 이번 소부대 전술훈련은 7일부터 9일까지 주둔지 일대에서 전개되고 있다. 부대는 장병들이 싸우는 기풍을 확립한 가운데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배양할 수 있도록 이번 훈련을 마련했다.
훈련은 해·강상으로 적이 침투한 상황을 부여하며 시작됐다. 부대는 상황을 접수한 즉시 비상소집을 발령하고 초동조치부대를 현장에 출동시켜 이동차단작전에 나섰다. 이동차단작전이 종료된 후에는 전면전으로 확대한 상황을 가정해 전시전환절차를 반복 숙달했다.
장병들은 이후 사흘간 별도의 취침 시간 없이 소부대 공방훈련을 진행하게 된다. 이를 통해 체력·정신력 한계를 극복하며 완전한 대비태세 확립에 매진할 계획이다.
부대는 공방훈련 중 적 포탄·화학탄 낙하 등 전시 발생 가능한 다양한 상황을 임의로 부여해 장병들의 상황 대처능력과 생존성 보장능력을 평가할 예정이다. 아울러 훈련 전 과정을 평가 점검표에 기반해 기록하고, 통제관이 평가한 내용을 토대로 보완·발전사항을 도출해 훈련 효과를 극대화할 방침이다. / 출처 : 무적해병신문 2023. 2
[주간동아 취재기 - 말도의 해병대 마지막 초소]
말도는 면적 1.45㎡에 지나지 않은 자그마한 섬이지만, 조선시대부터 군사적 요충지이자 서해와 한강을 잇는 뱃길의 주요 길목이었다. 현재 주민은 12가구 13명. 가게가 없기 때문에 생필품과 식료품은 육지로 나가 구해 와야 한다. 일주일에 세 차례 들르는 행정선이 육지와 연결하는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선착장에서 군용차로 옮겨 타고 15분쯤 언덕길을 오르자 말도 소초가 나타난다. 이곳에 주둔하는 해병은 40여 명. 녹음기(綠陰期)엔 병력을 증원한다. 소초장 윤종현 중위와 함께 초소를 둘러봤다. 초소 아래에 철조망이 쳐져 있다. 주둔지 방어용이다. 조수 간만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개펄이 바다 한가운데까지 진출해 있다.
바다 건너 정면에서 왼쪽으로 기다랗게 뻗은 지형은 북한의 연백염전으로 말도에서 8km 떨어졌다. 연백염전은 종종 귀순 통로로 이용된다. 간조 때 3km만 헤엄치면 걸어서 말도까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오른쪽 동북 방면으로는 서검도가 보이고 그 뒤로 교동도가 있다. 서남쪽으로는 연평도에 인접한 우도가 있다.
입대한 지 6개월째인 김욱 일병은 “초병의 눈으로 나라를 지킬 수 있어 영광”이라며 자연과 가까워지는 것을 섬 근무의 매력으로 꼽았다. “도시에서 도저히 맛볼 수 없는 신선한 공기가 있다. 밤에는 반딧불과 별똥별을 실컷 볼 수 있다.” 김 일병은 “초소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같은 땅이지만 다른 나라라는 사실이 실감난다”며 “하루빨리 평화통일이 이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말도에 머무른 시간은 채 한 시간이 안 됐다. 하지만 격오지 부대 장병의 노고를 가까이에서 지켜봤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휴가를 떠나는 장병 몇 명이 말도를 떠나는 배에 함께 올랐다. 그들의 들뜬 표정이 보기 좋았다. 갑판에서 병사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3개월간 진행한 휴전선 취재의 대장정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말도 소초는 상황실과 생활관 모두 지하에 설치된 기이한 구조로 지어졌다. 지상에는 소초와 포상, 헬기장 등 작전에 필요한 시설과 식당, 도서관 등 일부 복지시설만 존재한다.
이는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전의 영향을 받은 것. 서북도서를 위협하는 북한에 대응해 해병들의 생존성을 보장하기 위해 내린 결단이었다. 다소 불편해 보였지만 장병들은 "마냥 나쁘지만은 않다"는 반응이었다. 해병대의 의도대로 소초 내부는 ‘작은 지하 요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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