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낙동강 물길 따라 ‘문화생태탐방로’ 100리를 걷다
[여행스케치=구미 안은미여행작가]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계절이 되면 땅은 심하게 몸살 앓듯 열이 난다. 땅에서 뿜어내는 열기는 온 대지를 적시고 그 훈훈함에 꽃들이 꽃망울을 터트린다. 구미를 가로지르는 40km의 낙동강은 이 계절이 가장 아름답다.
지천에 널린 노란 금계국은 강에서 불어오는 안개로 샤워를 하고 아침마다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 그 모습을 보기 위해 아침잠을 포기하고 새벽안개 속으로 달려가기를 몇 번이나 했는지….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을 지나 구미시 옥성면에서 시작하는 낙동강 우안을 따라 걸어보았다. 구미시 승마장에서 시작하여 물길 따라 내려가는 길이다. 출발지인 구미시 승마장은 국제공인 승마장으로 전국대회가 열리기도 하고, 개인승마강습과 체험승마 등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특히 낙동강을 바라보며 말을 타고 달릴 수 있는 승마길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물길 따라 펼쳐지는 역사 속으로
강물을 바라보며 걷다보면 자그마한 언덕처럼 생긴 산을 만나게 된다. 여기서부터 숲길이 시작되는데, 시원한 나무 그늘이 반갑게 느껴진다. 옛날에는 이 길을 따라 한양을 갔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길 중간에 서낭당의 흔적도 볼 수 있다.
이 길에는 임진왜란 때 절개를 지키기 위해 ‘노자암’이라는 바위에서 낙동강으로 몸을 던진 세 명의 부인을 기리는 ‘삼열부사’가 있다. 산모퉁이를 돌아가면 세 개의 무덤이 있고 비석에는 ‘삼열부의 묘’라고 적혀있다. 절벽 아래 까마득히 보이는 낙동강을 바라보며 잠시 과거로의 회상을 해본다.
길은 다시 강으로 이어지고 햇살을 받으며 묵묵히 걷는다. 한때는 모래사장으로 유명했던 낙동강이 4대강 사업 이후 곳곳에 나무를 심고, 꽃들을 가꾸어 걷기 좋은 길과 쉼터가 생겼다.
한 시간쯤 가면 ‘송당정사’가 나오는데,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정자다. 이곳은 조선 전기 무신이었던 송당 박영 선생이 관직을 물러난 후 지내던 곳으로, 낙동강을 바라보며 낚시도 하고 학문을 연구하였다고 한다.
이곳은 지금도 낚시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며 ‘송당정사’ 마당에 펼쳐진 잔디밭에서 강물을 바라보며 앉아 있으면 세상 모든 시름을 잊게 만드는 풍경이 펼쳐진다.
다시 강을 따라 내려간다. 낙동강에 최초로 만들었다는 일선교를 지나고, 낚시인들의 성지라 알려진 생곡ㆍ독동습지를 지난다. 일출로도 유명한 곳인데, 신라 최초의 사찰인 도리사를 품은 냉산에서 떠오르는 해를 낙동강이 받아서 다시 반사한다.
습지에 고사된 나무들은 백로와 가마우지 등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고, 봄이면 붕어와 잉어들이 산란하는 생태계의 보고이다. 저 멀리 어느 먼 행성에서 왔을법한 우주선처럼 생긴 조형물이 보인다. 바로 구미보이다.
구미보는 구미의 상징인 거북이의 모습을 형상화했다고 하는데, 특이하게 보 중간에 전망대가 있어 강을 조망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구미보 근처에는 구미에서 가장 큰 ‘금오서원’이 있다.
이곳은 고려 말 삼은 중에 한 사람인 야은 길재 선생을 비롯하여 김종직, 정붕, 박영, 장현광 등을 추가로 배향하여 5현의 위패를 모셨다.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철(毁撤)되지 않은 47개의 서원 가운데 하나로 강학을 하던 정학당과 사당인 상현묘는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INFO 구미시 승마장 054-482-3014 / 구미시 옥성면 선상동로 1174-7
천혜의 신비를 간직한 생태습지를 따라
금오서원 앞을 흐르는 감천이 낙동강과 만나 모래톱을 이루는데, 이곳에는 겨울이면 재두루미가 날아와 월동을 한다. 천연기념물인 두루미, 재두루미, 흑두루미 등은 우리나라 철원과 주남저수지, 순천만 등에서 겨울을 나고 날씨가 따뜻해지면 러시아 시베리아와 중국 만주지방으로 날아가서 번식을 한다.
먼 거리를 이동하기 위해 중간에 기착지를 정해 쉬어가기도 하는데 그중 한곳이 낙동강 유역 구미 해평ㆍ강정습지다. 수 십만 평의 해평ㆍ강정습지는 다양한 동식물이 공존하는데, 특히 쇠제비갈매기, 흰꼬리수리, 고니 등 희귀한 새들과 메타쉐콰이어 길을 따라 끝없이 펼쳐지는 금계국이 유명하다.
강정습지가 끝나는 지점에 매학정이라는 아름다운 정자가 있다. 이곳은 봄이면 제일 먼저 매화가 피는 곳으로 조선 중기 초서의 대가였던 고산 황기로 선생이 지은 정자다.
노년의 고산은 고아읍 예강리에 정자를 짓고, 풍류를 즐기며 시(詩)와 서(書)로 세월을 보냈는데, 정자 뒤쪽으로는 고산이 있고 앞뜰에는 매화를 심고 학을 길렀다고 전해진다. 아들이 없었던 황기로는 이 정자를 사위인 옥산 이우에게 물려주었는데 이우는 신사임당의 넷째 아들이자 율곡 이이의 아우이다.
강을 따라 걷는 길은 비슷한 듯 다른 모습으로 눈을 즐겁게 한다. 매학정을 지나서 걷는 길은 끝없이 펼쳐진 몽골의 초원을 생각나게 한다. 시선이 머물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하다가 겨울의 흔적과 함께 초록으로 다시 태어난 갈대와 억새에게서 비로소 멈춘다. 앞서 간 세대가 후대에게 물려줄 것은 잘 자랄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따뜻함이라는 것을 갈대에게서 배운다.
광야를 지나서 가다보니 인도와 자전거길, 그리고 자동차길이 함께 있는 잘 꾸며진 길을 만나게 된다. 길 가에는 커다란 잎의 플라타너스가 끝없이 팔랑거리고, 그 사이로 스며든 햇살은 괜히 유년시절의 기억으로 끌어들여 기분 좋은 미소를 짓게 한다.
INFO 매학정 / 경북 구미시 강정4길 63-6
강이 주는 휴식,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삶
여기서부터 낙동강체육공원이다. 낙동강체육공원은 많은 시민들이 찾는 휴식의 장소로 캠핑장과 운동장이 마련되어 있고, 여름에는 물놀이장,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을 운영한다.
주말이면 아이들과 함께 공도 차고, 자전거도 타고, 사진도 찍으며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이제 우안의 마지막 코스로 접어든다. 이곳은 비산나루터가 있던 곳인데 지금은 수상데크길이 조성되어 강 위를 걸으며 물소리, 새소리를 들을 수 있다.
비산나루는 신라시대부터 물물교환이 있었고, 조선시대에는 선산부의 남부지역 관문 역할을 하면서 물자교역을 위해 각 지역에서 몰려드는 사람들의 교통 요충지였다.
부산 등지에서 소금과 해산물을 싣고 온 상선과 내륙지역의 농산물과 수공업품 등을 가져온 상인들로 이곳에는 갈뫼시장이 형성되었다. 특히 인동에서 생산된 도자기 등을 교역하며 지역 상거래의 중심으로 20세기 전반까지 번성하였다. 갈뫼는 큰 산, 혹은 큰 마을이라는 뜻으로 강가의 활기찬 모습이 느껴지는 이름이다.
비산나루를 지나 남구미 쪽으로는 강둑을 따라 벚꽃나무가 터널을 이루는 아름다운 길이 펼쳐진다. 40km 구미 낙동강 문화생태탐방로 마지막에는 남구미대교 전망대가 있다.
이곳을 지나면 경상북도 왜관이다. 강물의 흐름대로 천천히 따라서 걷다보니 어느새 구미의 끝부분에 다다랐다. 산업도시, 공단도시라는 이미지의 구미를 낙동강을 따라 걸으면서 새롭게 보게 되었다. 선사시대부터 이어져 온 역사와 문화, 그리고 천혜의 습지와 그곳에 깃들어 사는 생물들은 구미의 보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출처 : 여행스케치 2024.6 안은미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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