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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충청북도

괴산 능촌리 괴강 김시민장군 취묵당 김득신

by 구석구석 2023.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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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군 괴산읍 충민사길 46 / 김시민장군 충민사 

충민사는 김시민장군을 모신 사당으로 충무교를 건너기 전에 주차를 하고 다리를 도보로 건너야 한다.

충민사 바로 옆에는 “취묵당”으로 향하는 힐링 산책코스가 별도로 조성되어 있고 괴강을 따라 달래강 2코스로 연결되는 산책길은 약 400m로 괴산의 자연을 사계절 언제든지 즐길 수 있게 조성되어 있다.

충북도기념물 제12호로 지정된 충민사에는 김시민장군과 그의 숙부인 문숙공(文肅公) 김제갑의 위패가 봉안돼 있으며 달천강과 빼어난 자연경관 속에 자리해 가족단위 방문객들이 즐겨 찾는 지역 관광명소중 하나로 매년 5천여명의 방문객이 찾고 있다.

충민사 일원은 너무나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한다. 충민사는 사당으로서는 아주 희귀하게도, 1994년에 다리가 놓이기 이전까지는 배를 타고 괴강을 건너가서 참배했던 모양이다. 지금도 강 양쪽 둑에는 배를 타고 내리는 접안 시설이 남아 있다. 게다가 충민사 일대의 괴강은 푸른 물과 휘굽은 물길, 자동차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고요함, 맑은 바람 등등 흔히 떠올리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어느 하나 빼놓지 않고 모두 갖추고 있다.

ㅇ 1592년 10월 5일부터 10일까지 엿새 동안 왜적과 조선군 사이의 대혈전이 진주성에서 벌어졌다. 일본군은 약 3만, 아군은 약 8천6백여 명, 숫자로는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다. 게다가 일본군은 오롯이 정예병이었고, 아군은 방금 농사를 짓다가 삽을 들고 쫓아온 의병까지 모두 합한 숫자였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 아군이 이겼다. 한산대첩, 행주산성 대첩과 더불어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로 칭송받는 1차 진주성 전투가 탄생한 것이다. 

진주성 1차 공격의 참패는 일본으로서는 임진왜란 기간 중 가장 치욕적인 패배로 역사에 기록하고 있다 한다. 장군은 왜군의 이동 경로를 감지하고 이미 병기를 수리하고 성을 구축시켰으며 수성군을 모집하여 `진주성을 사수하자' 며 맹훈련을 시켰다 한다.

직접 성내를 순회하여 임전태세를 점검하고 군림이 아닌 자신도 병사와 같이 동고동락하고 솔선수범하여 군사들이 감복하여 혼연일체가 되어 죽기를 무릎 쓰고 싸우게 되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3대 대첩의 한곳인 진주성

 

ㅇ 김시민장군 430주기 추계제향 봉행 2023. 10. 16

임진왜란 당시 진주대첩의 구국 영웅 김시민 장군을 기리는 추계제향이 충민사(원장 김병준)에서 거행되었다. 초헌관은 김춘수 괴산문화원장, 아헌관은 김영복 괴산수력발전소장, 종헌관은 후손 김재석 씨가 각각 맡아 진행되었다.

김시민 장군의 자는 면오(勉吾), 시호는 충무(忠武), 구암공 지평 김충갑의 아들로서, 1578년(선조11)무과에 급제하여 1591년(선조24) 진주판관이 되었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진주목사로 부임해 사천·고성·진해 등에서 왜적을 물리치고 경상우도(慶尙右道) 병마절도사가 되었다. 이후 진주성에서 적과의 치열한 교전을 벌이다 장렬히 전사했다. 1604년(선조37) 2등 선무공신(宣無功臣)에 추록되고 후에 영의정에 추증됐다.

괴산 충민사 김시민 장군 430주기 추계제향 헌관들. 왼쪽부터 종헌관 김재석 씨, 초헌관 김춘수 괴산문화원장, 아헌관 김영복 괴산수력발전소장. 출처 : 세계뉴스통신

/ 세계뉴스통신 2023. 10 이상탁기자

 

 

괴산 괴산읍-19번국도-능촌리 김시민 솔밭관광농원

김시민장군-충민사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진주대첩의 명장 김시민 장군은 충북 괴산 사람으로, 그의 묘소와 사당이 괴산읍 능촌의 괴강가에 있다. 김시민 장군은 임진왜란중인 1592년 8월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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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군 괴산읍 충민사길 45 / 취묵당

취묵당은 백곡(栢谷) 김득신(金得臣·1604~1684)이 지은 정자로 김시민장군의 충민사에서도 걸어 갈 수 있고 충민사 반대편 마을쪽에서는 차량으로 접근할 수 있다.

과거에는 합격하지 못했으나 시를 잘 써 시명이 높았다. 택당 이식이 ‘당대 최고의 시인’이라고 했을 정도이다. 진사에 합격했을 때는 선비들이 그의 시를 베껴가며 감상했다. 1644년 백의의 신분이었지만 문장이 뛰어나 명나라로 떠나는 사신의 제술관에 임명됐다. 그러나 그 해에 명나라가 망하는 바람에 장도에 오르지도 못했다. 첫 벼슬이 이렇듯 허망하게 끝났다.

이듬해 음서로 숙녕전 참봉에 임명됐으나 죽은 왕후의 신위를 지키는 참봉일이 고달프기만 했다. 사직하고 여러 차례 과거에 응시했으나 줄줄이 고배를 마셨다. 김득신이 시로 이름을 날리고도 벼슬을 못하자 사람들은 시가 사람을 곤궁하게 한다는 뜻으로 ‘시능궁인(詩能窮人)이라 불렀다.

나이 59살에 마침내 문과에 합격했다. 성균관 학유를 시작으로 승문원 병조 공조 예조에서 일하다 홍천 현감, 정선 군수 등의 외직을 맡았지만 벼슬살이도 괴로웠다.

팔작지붕에 목조 기와집으로 내면은 통간 마루를 깔고 난간을 둘렀다. 정자건축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출처 : 경북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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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묵당은 김득신이 59살에 문과에 합격하던 1662년에 지었다. 괴강이 활처럼 굽어 흐르는 괴산읍 능촌리 강 언덕, 그가 유년시절을 보낸 곳이다. 취묵당은 민가도 없는 한적한 곳이다. 네비게이션도 찾지 못해 차선이 하나 밖에 없는 콘크리트 농로를 한참 돌아다녔다. 취묵당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김득신의 조부인 김시민을 배향하는 충민사가 있는데 이 일대가 그의 집안 전장이 있던 곳인 모양이다.

정자는 팔작지붕의 목조 기와집으로 안쪽에 마루를 깔고 난간을 둘렀다. 괴강의 아름다운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 조망이 뛰어난 곳이다. 김득신이 정자를 지을 당시에는 고깃배들이 들락거리고 어시장이 서는 풍경도 발아래 펼쳐졌다고 한다.

정자 안에는 취묵당 중수기 취묵당기 독수기 등의 현판이 빼곡히 걸려 있는데 취묵당 편액도, 그가 억만재라고 지은 편액도 없다. 정면 네 개의 기둥에 김득신의 대표작인 ‘용호(龍湖)’가 주련으로 걸려 있다. ‘용호’는 효종이 “이 시는 당나라의 시 속에 넣어도 부끄럽지 않다”고 칭찬했을 정도로 뛰어났다.

취묵당은 백곡 김득신이 만년을 보낸 독서재다. 억만재라고도 한다. 출처 : 경북일보

그는 취묵당에 앉아 주변 경관을 8경시로 노래했다. ‘옹암에서 보는 꽃( 甕巖看花)’ ‘불암의 눈 감상(佛巖賞雪)’ ‘강어귀의 장삿배(江口商船)’ ‘나룻머리의 고기잡이 불빛(渡頭漁火)’ ‘들판 다리를 건너가는 행인(野橋行人) ’모래사장에서 놀라 날아가는 기러기(浦沙驚雁)‘우협의 아침 아지랑이(牛峽朝嵐)’ ‘용추의 저녁비(龍湫暮雨)’등이다. / 경북일보 - 굿데이 굿뉴스

 

[정자] 99. 괴산 취묵당(醉默堂) - 경북일보 - 굿데이 굿뉴스

취묵당은 백곡(栢谷) 김득신(金得臣·1604~1684)이 지은 정자다. 김득신을 찾아 가는 길에 ‘노둔(魯鈍)하다’라는 낯선 단어를 만났다. 사전적 의미는 ‘둔하고 어리석으며 미련하다’이다. 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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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군 괴산읍 충민사길 46 / 김시민장군 충민사 

충민사는 김시민장군을 모신 사당으로 충무교를 건너기 전에 주차를 하고 다리를 도보로 건너야 한다.

 

괴산 괴산읍-19번국도-능촌리 김시민 솔밭관광농원 (tistory.com)

 

괴산 괴산읍-19번국도-능촌리 김시민 솔밭관광농원

김시민장군-충민사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진주대첩의 명장 김시민 장군은 충북 괴산 사람으로, 그의 묘소와 사당이 괴산읍 능촌의 괴강가에 있다. 김시민 장군은 임진왜란중인 1592년 8월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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