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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전라남도

여수 제도 풍물굿

by 구석구석 2022.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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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4월 19일은 음력 3월 3일로 삼월 삼짇날입니다. 삼짇날은 농어민이 풍년과 풍어를 기원하는 날입니다. 또 봄을 알리는 날로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날이라고 하여 가정에서 화전, 국수, 쑥떡 등 여러 가지 음식을 장만하여 시절음식을 즐기는 날이기도 합니다.

 

19일 아침, 농협 화정면지소 백형선 소장과 함께 전남 여수시 화정면 제도(濟度)로 향합니다. 제도 동쪽에는 돌산이, 동남쪽에 개도가, 북서쪽에 하화도가, 북쪽에는 백야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섬의 형태가 제비모양으로 생겼다고 하여 젤섬 또는 제비여, 제리도 등으로 불리다 제도라 부르고 있습니다.

 

100여 호 300여 명이 살던 가구가 어느 새 60여 호로 줄었습니다. 여느 섬처럼 제도도 주민의 70%가 노인입니다. 아이들 울음소리가 끊긴 지 오래 되었고, 50대가 청년, 60~70대가 중년, 80대가 장년입니다.

 

제도는 그동안 도당굿으로 무사안녕과 풍어, 풍작을 비는 산신제를 지내왔으나, 지금은 그 명맥을 찾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과거에는 음력 3월 초이튿날 새벽 2시쯤에 상당부터 하당까지 멧밥을 지어 산신제를 올리고 3월 3일에는 마을 주민이 중당에 모여 농악놀이 등으로 하루를 즐겼다고 합니다.

 

그러나 새마을운동 이후 차츰 이런 놀이들도 '미신'이라고 사라져 중당만 덩그러니 남고 상당과 하당은 없어졌다고 합니다. 하여, 이번 삼짇날은 꽹과리ㆍ징ㆍ장구ㆍ북ㆍ소고(매구북)와 태평소로 구성된 여수우도풍물굿보존회(이하 보존회)의 '찾아가는 문화행사 섬으로의 풍물여행' 풍물 매구 당산제로 대신합니다.

 


풍물굿, 나쁜 귀신을 몰아내는 '매귀'

매구 풍물 가락은 굿거리 자진모리, 타령형, 나모리형 등으로 이뤄지는데, 아침에 일터로 갈 때부터 저녁에 놀을 등지고 귀가할 때까지 행해졌다고 합니다. 매구는 당산제, 도제, 당제, 새미굿, 길굿, 마당굿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또 명절과 마을 행사에 동원되어 민중들의 솔직한 감정과 정서를 악기와 몸짓, 춤으로 표현해 누구나가 즐길 수 있는 민중음악입니다. 호남에서는 '굿친다'고 하는데 굿은 '모인다'는 뜻으로 공동체를 나타냅니다. 매구, 매굿, 매귀 등으로 불리며 '나쁜 귀신을 몰아낸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선창에 굿패를 기다리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모여 있습니다. 노인회관에는 젊은 사람들이 없어 할머니들이 음식 준비로 분주합니다. 풍물 매구 소리가 온 마을을 울립니다. 마을을 둘러봅니다. 폐쇄된 공동우물터에는 잡초가 우거지고 약재로 쓰는 작약이 꽃을 활짝 피우고 있습니다.

"순지네 성님. 아적 안가고 뭐한가?"
"빨래해."
"오늘 아니믄 빨래헐 시간이 업써서 지금 빨래 한당가?"
"알랏써."

 

목을 담장으로 쭉~ 빼고 말을 건네는 할머니 모습에 웃음이 나옵니다. 오랜만에 귀한 풍물굿이 왔는데 좋은 구경거리 놓치지 말고 보라는 배려겠지요. 우스갯소리로 "심순애의 남편인 김중배 명인이 전북 정읍에서 예까지 태평소(일명, 날라리)를 불러왔다"며 소개합니다. 선창에서 걸쭉한 풍물놀이가 진행됩니다.



길굿으로 어르신의 무병장수를 빌다

할아버지들은 "소리가 척척 맞고 잘헌다"고 칭찬입니다. 할머니 한 분이 장구 치는 아낙에게 "아이, 어찌 이리 장구를 다 배왔쓰까~ 잉" 합니다. 신수자(54)씨는 "하다 봉께 14년이나 됐어요. 스트레스 풀어서 좋구요. 할머니도 늦지 않으니 이제라고 한 번 해보세요?"라고 합니다. 무표정으로 보시던 어르신들 조금씩 어깨도 들썩이고, 손뼉도 칩니다.

 

선창에서의 우도풍물굿을 접고, 골목골목을 돌며 액운을 막아주는 길굿을 합니다. 그들을 따라 다니며 속으로 '영감, 할멈 아프지 않게 해 주시고', '아프더라도 바로 낳게 해 주소서', '생선 많이 잡게 해 주시고', '가두리 고기 판로 좀 넓혀 주시고', '사료 값 안 비싸게 해 주소서'… 등을 빌어봅니다.

 

마을 정자에서 풍물굿 보존회를 이끌고 있는 김영씨는 "말해라 하믄 못하는데 꽹과리만 잡으믄 정신을 못차린다. 옛날에는 정월대보름과 삼짇날은 큰 굿하는 날이었다. 건강하시고 고기도 많이 잡길 바란다"면서 구성지고 찰진 노래 가락으로 인사말을 대신합니다.

 

앉아서 하는 사물놀이가 펼쳐집니다. 웃으며 몸짓으로 장단을 맞추는 공연자들의 가락이 바다를 휘돌아 휘모리로 돌아드니 어르신들 박수와 어깨춤이 절로 나옵니다. '얼~쑤' 소리도 들립니다. 추임새를 넣어본 솜씨입니다. 아니 추임새가 어디 있으랴! 그냥 몸을 움씰움씰 움직이면 추임새인 걸….

 

삼짇날 먹었다던 '쑥전'

 

점심식사가 이어집니다. 군부, 부채손, 비말, 조개, 돔, 우럭, 떡, 가오리회, 돼지고기, 쑥전, 문어, 오징어회, 김치…. 개미있고(깊은 맛이 있다는 전라도 방언) 맛깔스러운 음식들이 푸짐합니다. "할매들 (음식하느라) 고생헌디 밥이 너머 갈까?"하면서 저마다 자리에 앉습니다. 삼짇날 먹었다던 쑥전이 입맛을 돋웁니다.

 

놀이패에서 자비로 건넨 비용으로 맛스럽게 차린 음식을 즐겁게 먹습니다. 이중 지역 특산물인 군부, 부채손, 비말은 할머니들이 손수 바다에서 따 음식을 만들었다 합니다. 우럭 지리 매운탕이 술을 부릅니다. 한 순배씩 술이 돌고 어르신들 얼굴이 점차 홍조를 띠어갑니다.

 

마을 정자에서 풍물 뒷마당이 벌어집니다. 어르신들 아픈 다리를 약주에 의지하여 춤을 덩실덩실 추어댑니다. 과거 유명했던 제도농악 상쇠로 활동하시며 왕년에 한가락 하셨던 배상준(74) 어르신과 그 꾼들이 보존회의 악기를 뺏어(?) 들고 '우주절매구' 옛 솜씨를 뽐냅니다. 드디어 마을 축제가 펼쳐집니다.

 

우주절매구를 듣던 김영 씨 "전라좌도굿 우도굿을 별로 따지지 않지만 좌도굿인 벙어리 삼채가락이다"며 "여수의 섬들과 고흥에서 희미하게 남아있는 좌도굿 가락 흔적을 간혹 들을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우주절매구 상쇠로 드날렸던 배상준 어르신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지금은 맥이 끊어진, 제도농악

 

"와, 잘 치시네요!"
"잘 허긴. 그동안 안 허다 보니 허리가 아파 못치것써."
"가락이 심상찮은데요?"
"동네에서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던 제도농악 가락이여. 옛날 십분의 일도 못해."
"유명하다는 제도농악 지금은 안 하세요?"
"지역이 좁아 헐 때가 업써. 배울 사람도 업꼬 해서 지끔은 대가 끈겨 부럿써. 어려서부터 어른들 따라 댕기믄서 귀동냥으로 배웠는디 판굿허는 건 유도 아니여. 다른 동네로 다니믄서 허는 걸구굿도 많이 했지. 매구 잘 친다고 여그저그 댕김시롬 술도 꽤 따 무것꼬."

 

먹고 살기 힘든 판에 마을에 젊은이도 없고, 돌아가면서 하던 제관도 없는 마당에 매구를 전수받을 이 얼마나 있겠나 싶습니다. 늦게라도 전수해야겠다 싶은데도 다 늙어 허리 꼬부라져 연습해야지, 여기저기 경연대회와 공연 다니려면 비용도 만만찮은데 누가 그것을 감당하겠습니까.

 

어르신들의 잠시잠깐의 번개 공연 후 제도의 번창과 어르신들의 건강을 기원하는 김영씨의 살풀이, 액풀이, 축원덕담 등의 비나리와 그 유명한 설장구 공연이 이어집니다. 이제 완전히 마을 축제가 벌어졌습니다. 덩실덩실 흥겨운 어깨 춤사위에 어르신들 너나없이 모여듭니다.

 

오후 1시 30분, 일행을 실을 배가 다가옵니다. 가락을 멈추고 짐을 챙깁니다. "워~매. 놀만헌데 갈라허네." 어르신들 아쉬움이 무척 큰가 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놀이판이 또 언제 벌어지겠습니까?

 

그나마 지킴이들이 있어 다행이지만 사라져 가는 우리 옛것을 어찌해야 할까요? 흥겨움과 즐거움을 안고 어르신들과 아쉬움의 손을 흔들고 삶터로 돌아옵니다.

[자료 - 오마이뉴스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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