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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추천 테마여행

[한국관광공사] 10월의 가볼만한 동구릉 양산 진주 순창구림

by 구석구석 2022.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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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공사가 추천하는 10월의 가볼만한 4곳

 푸른 하늘과 대비된 빨간 단풍이 사람들을 손짓하는 요즘, 어디론가 떠나지 않는다면 뭔가 억울한 기분마저 든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광고 속 카피처럼 떠나고 싶지만  넘쳐나는 차들과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뤄 발길이 차마 떨어지지 않는 것도 사실. 어디 한적하게 가족들과 다녀올 수 있는 근사한 가을관광지 없을까?
관광공사는 이런 딜레마에 빠진 사람들을 위해 10월의 가볼만한 곳으로 경기 구리· 충북 영동· 경남 진주· 전북 순창 등 4곳을 각각 선정해 자세한 정보를 제공중이다. 
관광공사가 이름을 걸고 자신있게 추천하는 전국 곳곳에 숨겨진 보물 같은 비경들을 소개한다.
<정리 이정은 기자>

 

조선왕조의 역사, 여기에 묻히다 -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주말의 교통체증을 피해 아이들과 호젓이 하루를 쉬고 싶다면 구리시 동구릉을 추천한다. 청량리에서 자동차로 불과 20여분이면 동구릉에 도착할 수 있다. 
동구릉은 말 그대로 서울의 동쪽(구리시)에 있는 아홉 개의 능이 모여 있는 곳으로 국내 최대 규모를 형성하고 있다. 

아홉 개의 릉의 구성을 살펴보면 제일먼저 조선조를 일으킨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을 비롯 제5대 문종과 그 비 현덕왕후를 모신 현릉·14대 선조와 그 비 의인왕후, 계비 인목왕후를 모신 목릉·16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를 모신 휘릉·18대 현종과 그 비 명성왕후를 모신 숭릉·20대 경종의 비 단의왕후를 모신 혜릉·21대 영조와 그 계비 정순왕후를 모신 원릉·23대 순조의 세자인 추존왕 익종과 그 비 신정왕후를 모신 수릉·24대 현종과 그 비 효현왕후, 계비 효정왕후를 모신 경릉으로 구성된다. 속칭 구릉으로 불리지만 이같이 왕과 비 등 총 17위를 모시고 있다.


구릉내로 입장하고 바로 시작되는 산책로는 아름드리 갈참나무와 잘생긴 적송으로 9개나 되는 능을 연결하는 순환로를 그대로 따라 걷다보면 30분은 넉넉히 삼림욕을 즐길 수 있다. 
어린이를 데리고 나온 소풍객은 태조 이성계의 능이든 선조왕릉이든 9개의 능 중 맘에 드는 곳을 골라 널찍한 잔디밭에 자리를 깔고 쉴 수 있다. 


입장료는 어른 1000원 청소년500원, 개장시간은 새벽6시∼오후 5시반 까지다. 
한편 동구릉에서 5km도 안되는 곳에 있는 구리시 환경사업소는 환경과 생태계 교육의 장으로 꼭 들려볼 일이다. 구리탑과 곤충생태관이 볼만하다. 


구리탑은 쓰레기 소각장의 100미터 높이의 굴뚝에 360도 전망이 가능한 전망시설을 설치한 것으로, 엘리베이터로 올라보면 한강과 남산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조명 등 전체 사용전력을 쓰레기 소각 열을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연중 나비가 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곤충생태관까지 둘러보면, 동구릉의 역사교육에 이어 환경과 생태교육까지 겸할 수 있는 완벽한 1일 교육코스가 된다. 이 가을이 다가기 전에 꼭 둘러봐야할 스포트로 구리시의 동구릉을 추천한다. 

<여행정보>
인터넷 웹사이트 : 구리시청 (www.guri.go.kr)
동구릉 관리소 : 031-563-2909

동구릉숲길

조선14대임금 선조와 비운의 두 왕비 목릉(穆陵)에 잠들다 

목릉

정자각 바로 뒤로 선조의 능침이 보인다. 선조(宣祖 1552~1608, 재위 1567~1608)는 중종의 일곱 번째 왕자 덕흥군(선조 즉위 후 덕흥대원군으로 추숭)의 셋째 아들이다. 군호는 하성군(河城君)이었다.

외아들 순회세자가 13살에 죽은 지 4년 후인 1567년(명종 22), 명종은 후계자 없이 세상을 뜬다. 명종비 인순왕후는 2년 전 남편이 갑자기 쓰러져 병석에 있었을 때 받아두었다는 전지에 따라 하성군을 후계자로 정한다. 하성군은 승하한 명종의 양자가 되어 왕위에 오른다. 16살의 어린 나이로 즉위해 처음에는 왕대비 인순왕후의 수렴청정을 거치나 이듬해 친정을 시작한다.


선조는 41년이라는 오랜 기간 왕위에 있었다. 훈구세력의 쇠퇴에 이어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등장한 신진 사류들 간의 당쟁으로 얼룩진 시기였다. 사림 김효원과 외척 심의겸의 대립은 1575년(선조 8)에 이르러 동인(東人)과 서인(西人)의 분당으로 이어진다.

1591년(선조 24)에는 세자책봉 문제로 동·서인 사이에 또다시 당쟁이 일어난다. 이때 선조의 노여움을 사 실각하게 된 정철 등 서인에 대한 논죄를 두고 동인은 다시 남·북으로 갈라졌다. 이처럼 당쟁이 이어진 가운데 국력은 날로 쇠약해졌으며, 마침내 1592년(임진)과 1597년(정유) 두 차례의 왜란을 겪게 된다.

선조는 1608년 2월 1일(음) 57세를 일기로 갑자기 세상을 떴다. 그의 묘호는 당초 선종(宣宗)으로 정해졌으나 광해군 8년 선조(宣祖)로 바뀌었다. 능호는 처음에는 숙릉(肅陵)으로 정해졌다. ‘숙(肅)’자가 태조의 증조모 정숙왕후의 능인 숙릉(淑陵)의 ‘숙’자와 음이 같다는 이유로 목릉(穆陵)으로 고쳤다. 당쟁과 전란에도 불구하고 선조 치세에 활약한 신진 사류들 가운데는 이황, 이이 등 걸출한 문인 학자들이 많아 이 시기를 그의 능호를 따 ‘목릉성세’(穆陵盛世)라 일컫기도 한다.

정자각 뒤편 오른쪽 언덕으로 향하는 신로(神路)를 따라 의인왕후(懿仁王后 1555~1600)의 능으로 향한다. 선조의 첫 번째 왕비 의인왕후는 반성부원군 박응순의 딸이다. 15살 때인 1569년(선조 2) 왕비로 책봉되어 가례를 올렸다.

의인왕후는 결혼 초부터 후궁 공빈 김씨(광해군의 생모)와 인빈 김씨에게 밀려 평생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특히 선조가 가장 총애한 후궁 인빈 김씨가 자신의 둘째 아들 신성군을 왕세자로 만들려 했기 때문에 광해군을 자신의 양자로 들인 의인왕후와는 정적 관계일 수밖에 없었다.

임진·정유 두 차례의 왜란 때 선조가 후궁인 인빈 김씨를 데리고 피난을 떠나면서 정작 중전인 그녀는 두 번 모두 임금과 떨어져 피난길에 올라야 했다. 연이은 피난으로 쇠약해진 탓인지 의인왕후는 1600년(선조 33) 46세의 나이로 소생 없이 세상을 떠났다. 이때 그녀의 시호는 의인, 능호는 유릉(裕陵)으로 정해졌다.

의인왕후 능침

수복방 ▷

정자각으로 되돌아와 다시 오른쪽으로 길게 이어지는 신로 끝에 인목왕후(仁穆王后 1584~1632)의 능이 있다. 죽은 의인왕후에 이어 계비가 된 인목왕후는 연흥부원군 김제남의 딸이다. 19살 때 왕비에 책봉됐는데, 이때 선조의 나이 51세였고 세자 광해군은 28세로 계모인 그녀보다 9살이나 더 많았다.

선조, 광해군을 거쳐 인조 때까지 살았던 인목왕후는 흔히 ‘인목대비’라 불린다. 그녀의 대비 시절 존호는 소성대비 또는 소성정의대비(昭聖貞懿大妃)였다. 인목은 죽은 후에 받은 시호다.

1606년(선조 39) 인목왕후는 선조의 14 왕자 중 13번째 왕자로, 유일한 적통인 영창대군(永昌大君)을 낳았다. 그러나 선조가 죽고 광해군이 즉위한 후 1613년(광해 5) 대북(大北) 세력의 음모로 일어난 계축옥사로 친정아버지와 형제들이 죽임을 당했다. 이듬해에는 강화에 유배됐던 8살짜리 아들 영창대군마저 잃는다.

이후 대비를 궁궐에서 쫓아내 죽이려는 대북의 ‘폐모론’ 끝에 광해군은 1615년(광해 7) 대비를 경운궁(현 덕수궁)에 유폐(遺廢)한 채 자신은 창덕궁으로 옮겨간다. 이어 1618년(광해 10)에는 대비의 호칭을 없애고 ‘서궁’(西宮)으로 부르도록 한다.

창덕궁 서쪽에 있어 서궁이라 불렸던 곳이 바로 경운궁이다. 대비를 사실상 후궁으로 격하시키면서 그녀의 칭호도 아예 궁호인 ‘서궁’으로 부르게 한 것이다. 어린 딸 정명공주와 함께 유폐된 대비는 문에 자물쇠를 걸고 출입을 막아 식사도 문틈으로 받아야 했다.

그 후 1623년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돼 유배됐다. 유폐됐던 대비는 복호되고 대왕대비의 자리에 올랐다. 그녀는 “친히 광해군 부자의 목을 자르고 싶다”고 할 정도로 광해군에 대한 원한이 깊었다. 하지만 1632년(인조 10) 49세로, 광해군보다 먼저 세상을 떴다. 그녀의 시호는 인목, 능호는 혜릉(惠陵)으로 정했다.

홍살문

목릉, 조선왕릉 유일의 동원삼강릉

현재의 목릉 능역은 1600년 의인왕후 박씨가 묻힌 곳이다. 당시엔 유릉이라 했다. 그러다 1608년 선조가 묻히면서 목릉으로 바뀌었다. 당초 선조의 목릉은 태조의 건원릉 서편 산등성이, 지금의 경릉(헌종의 능)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1630년 원주목사 심명세가 ‘물이 차고 자리가 좋지 않다’고 상소함에 따라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동원이강릉 형태가 됐다.

막상 목릉을 천장하고 보니 물이 솟는다던 상소 내용은 사실과 달랐다. 그 후 1632년 인목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그녀의 능(원래 능호는 혜릉)을 목릉 동편 언덕에 만들면서 현재와 같이 동원삼강릉(同原三岡陵)을 이루게 됐다. 세 능을 합쳐 목릉으로 부르게 되었다.

/ 한국아파트신문 유병갑

 

한적한 가을 드라이브 명소가 여기에 - 충북 영동군 양산면

 

영동은 금강 상류의 맑은 물과 소백준령이 맞닿아 있는 고장이어서 천혜의 자연풍광을 갖추고 있으며 그 속내에는 어김없이 명찰이 자리잡고 있다. 영동을 따라 즐기는 드라이브는 가족과 연인에게 추억을 선물할 것이다.


기암괴석의 천태산은 ‘충북의 설악’이라고 불릴 정도로 명산이어서 가족등반코스로 적당하며 양산팔경 중 제 1경인 영국사는 석탑, 탑비, 부도 등 화려한 보물을 품고 있다. 특히 천년수령의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든 가을철이 가장 볼만하다. 신라가요 양산가의 발생지인 송호 국민관광지는 금강상류에 위치한 명승지로 선녀가 내려와 목욕했다는 강선대, 용바위 등 아름답고 풍성한 강변 풍경을 접할 수 있으며 100년 이상 된 울창한 송림 속에서 가족들과 삼림욕을 즐기며 조각품까지 감상 할 수 있다. 난계국악박물관은 우리나라 3대 악성에 속하는 난계 박연 선생의 업적을 비롯해 국악 관련 자료가 전시되어 있으며 근처에 있는 옥계폭포는 충청지역에서 가장 아름답고 웅장한 폭포로 유명하다. 

<여행정보>

인터넷 웹사이트 
영동군청 홈페이지 (http://yd21.go.kr)
문의 영동군청 문화공보과 043)740-3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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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태워 세상을 밝히네 - 경남 진주시


진주에 가면 볼거리가 넘친다. 비봉산과 망진산 가운데로 굽이굽이 흐르는 남강을 따라 기이한 병풍 절벽이 펼쳐지며 그 절경위로 진주성과 촉석루가 사뿐히 내려 앉아 있다. 임진왜란의 3대 대첩인 진주대첩의 현장인 진주성은 석성으로서의 위엄있는 외관도 볼만하지만, 성내에 다양한 문화유적이 보존되어 있다.  조선시대 3대 누각중 하나인 촉석루에 오르면 진주시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고장에서 꽃밥이라 불리우는 진주 전통 비빔밥과 유난히 정감있는 진주 사람들의 인심도 맛볼 수 있다. 


▲ 호국충절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진주성

남강변에 자리한 진주성은 진주의 역사와 문화가 집약되어 있는 진주의 성지이다. 임진왜란의 3대 대첩 중 하나인 진주대첩을 이룬 곳이며 의기 논개의 얼이 서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진주성 내에는 충절의 여인 논개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 의기사, 임진왜란 때 순절한 39명의 신위를 모신 창렬사, 호국사 및 다수의 문화재급 유적지와 유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 병풍산을 두른 진양호

진주성을 지나 10여분을 달리면 도심 시가지는 끝이 나고 어느새 병풍산을 두른 진양호를 만나게 된다 .댐 건설에 따라 조성된 진양호는 인공호수이며 차분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자연생태 종합학습교육장, 경상남도수목원

진주도심에서 마산방면으로 20분 정도를 내달리면 아름다운 꽃과 숲의 향기가 가득한 경상남도수목원에 닿을 수 있다. 17만평의 면적에 우리 자생종과 외국 수종 중 보존가치가 있는 식물 1,500여 종을 보유하고 있으며 산림박물관·열대식물원·수생식물원·야생동물원등 주제별 다양한 공간이 마련돼 있다.

▲청곡사

자동차로 10분이면 번화한 진주시내를 벗어나 월아산 청곡사와 마주할 수 있다. 청곡사 경내 곳곳은 대숲·동백·야생차나무가 어우러져 있으며 대나무와 동백으로 겨울에도 푸른빛을 간직하는 아름다운 사찰이다. 

<여행 정보>

인터넷 홈페이지-진주시청 문화관광  (http://tour.jinju.go.kr)  
진주시청 문화관광 담당관실055-749-5107



남도의 단풍 여기서 완성되다 - 전북 순창군 구림면, 동계면 

 

노령산맥의 숱한 산봉우리들 중 하나인 순창 회문산은 구한말 의병들의 본거지이자 한국전쟁 당시에 빨치산 전북도당사령부가 자리잡았던 역사현장이다. 회문산 자연휴양림이 문을 연 뒤로 외지인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오늘날에도 아픈 역사의 흔적들은 곳곳에 남아 있다. 


회문산자연휴양림은 이처럼 분단과 이념대립의 아픔을 간직한 역사적 현장에 조성되었다.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울창해진 숲에는 숲속의 집·산림문화휴양관 등의 숙박시설을 비롯해 정자, 전망대, 잔디광장, 산책로, 출렁다리, 야외교실, 물놀이장, 어린이놀이터, 약수터 등의 각종 편의시설이 곳곳에 들어서 있다. 휴양림의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계곡에는 사시사철 맑은 계류가 흘러내린다. 울창한 숲과 맑은 물, 그리고 쉼 없이 들려오는 새소리와 바람소리가 방문객들로 하여금 한없는 평화와 여유로움을 느끼게 한다. 


이어서 임실군 덕치면 장산마을에서 천담마을과 구담마을을 거쳐 순창 동계면의 장군목으로 흘러드는 섬진강 물길은 그림처럼 아름답고 서정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이 물길을 따라가는 강변길은 억새의 은빛물결이 넘실거리고 오색단풍이 화사한 가을철에는 꿈길 같은 드라이브코스로 변신한다.


이곳 주변의 강변과 마을 풍경은 마치 시간을 30∼40년 전으로 되돌려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강바람에 하늘거리는 미루나무가 있고, 때로는 물길도 되고 사람 길도 되는 길이 강줄기를 따라 끝없이 이어진다. 강기슭에는 산자락이 내려앉고, 강물은 산허리를 끊임없이 어루만지며 흘러내린다. 처음 찾은 사람들도 언젠가 오랫동안 머물렀던 곳처럼 아늑하고 따뜻하다. 이곳이 <아름다운 시절>, <춘향뎐>, <이것이 법이다>, <허준> 등 영화나 TV드라마의 주요 촬영지가 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여행 정보>

인터넷 웹사이트 : 순창군청(http://www.sunchang.go.kr)
문의 전화 : 순창군 문화관광과 (063-650-1364)
            

자가운전정보 
 호남고속도로 태인나들목-30번 국도-칠보-산내-섬진강댐-강진교 삼거리(순창 방면으로 직진)-27번국도-일중리 사거리(우회전)-회문산자연휴양림-일중리 사거리(장산신촌 방면으로 직진)-강변길-천담-천담교(건너자마자 우회전)-717번 지방도(임실순창 경계 부근에서 우회전)-내룡마을-장군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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