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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강원도

강릉 죽헌동 오죽헌 선교장 김시습기념관 해운정 서지초가뜰

by 구석구석 2022.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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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이이 - 오죽헌

신사임당은 조선시대 현모양처의 본보기가 되는 인물로 뛰어난 여류 예술가였고, 아들 이이를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루는 훌륭한 학자로 키웠다.

이이는 13세에 진사 초시에 합격하고, 생원시와 식년문과에 급제하는 등 아홉 차례 과거에 모두 장원하여 '구도장원공'이라 일컫는다. 황해도 관찰사, 대사헌, 이조ㆍ형조ㆍ병조판서를 역임하며 기호학파를 만들었고 붕당 조정은 물론 10만군대의 양병을 주장할 만큼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도 뛰어났다.

강릉시 죽헌동에 있는 오죽헌(烏竹軒)은 입구에 연못이 있는 초충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경치가 아름답다. 자경문을 들어서면 오죽헌과 문성사가 맞이한다. 오죽헌은 신사임당(1504∼1551)과 율곡 이이(1536∼1584)가 태어난 유서 깊은 집이다.

오죽헌(보물 제165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맞배지붕 양식으로 문신이었던 최치운이 지었다. 이이가 출생하던 날 신사임당이 흑룡이 바다에서 집으로 날아 들어와 서리는 꿈을 꿔 아명을 현룡이라 하고 산실을 몽룡실이라 했다.

율곡 이이가 태어난 몽룡실은 조선 전기 민가의 별당에 해당하는 건축물로 4면을 굵은 댓돌로 높이고 그 위에 자연석의 초석을 배치하여 네모기둥을 세웠다. 우리나라 주택 건축물 중에서 비교적 오래된 건물로 유서 깊은 역사를 지닌 문화재이다.

경내에는 오죽헌을 비롯하여 문성사(文成祠), 사랑채, 어제각, 율곡 기념관, 강릉 시립박물관 등이 있다. 문성사는 율곡 이이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시호를 따서 문성사라 이름 지어졌고 현판은 박정희 전대통령이 직접 쓴 글씨다. 어제각과 안채도 복원된 건물이다. 신사임당과 율곡이 아꼈다는 배롱나무(목백일홍)와 매화가 이곳에 있는데 모두 수령이 600년이 넘었고 배롱나무는 강릉 시화로 지정되었다.

장자 우선이던 조선 후기의 상속제와 달리 조선 전기는 모든 자녀들에게 재산이 고루 분배되고 부부간에도 상속받은 재산을 따로 관리했다. 몽룡실 옆에 자라고 있는 오죽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전해진다.

사임당의 어머니 이씨는 다섯 딸에게 재산을 물려주면서 둘째 딸의 아들 율곡 이이에게는 조상의 제사를 받들라는 조건으로 서울 수진방 기와집 한 채와 전답을, 넷째 딸의 아들 권처균에게는 묘소를 보살피라는 조건으로 기와집과 전답을 주었는데 권처균은 외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집 주위에 까마귀와 같은 검은 대나무가 무성한 것을 보고 자신의 호를 오죽헌이라고 했으며 그것이 오늘날의 오죽헌이 되었다.

오죽헌과 오죽 사이로 난 길로 들어서면 안채와 바깥채가 있다. 안채는 안주인이 생활하던 곳이고 바깥채는 바깥주인이 거처하던 곳이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새겨 놓은 주련이 바깥채의 툇마루 기둥에 걸려 있다.

오죽헌의 가장 왼편에 있는 어제각은 원래 문성사 자리에 있었다. 1788년 정조임금이 벼루와 격몽요결을 궁궐로 가져오게 해 친히 벼루 뒷면에는 율곡의 위대함을 찬양한 글을 새기고 책에는 머릿글을 지어 돌려보냈다. 어제각은 당시 임금의 명을 받은 강원도관찰사가 보물 제602호인 격몽요결과 어린시절 사용했던 벼루를 보관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현재 격몽요결 원본은 강릉시립박물관에 있다.

율곡기념관에는 풀과 벌레를 생동감있게 묘사한 초충도를 비롯해 신사임당과 맏딸 매창, 셋째 아들 율곡, 막내 아들 옥산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기념관 앞에 오천원짜리 지폐의 배경이 되는 오죽헌의 모습을 그대로 촬영할 수 있는 장소가 표시되어 있다. 상주하고 있는 문화유산 해설사를 만나면 오죽헌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늙으신 어머니를 고향에 홀로 두고/ 홀로 한양으로 떠나는 외로운 이내 마음/ 돌아보니 북촌마을은 아득하니 멀고/ 해 저문 산에 흰 구름만 흐르네'
연로하신 시어머니를 만나러 서울로 가는 길, 첫 번째 고갯마루에서 고향집 강릉에 홀로계신 친정어머니를 생각하며 읊조린 시 한수에 마음이 아련해진다. 

/ 자료 - 오마이뉴스 변종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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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오죽헌시립박물관(031-640-4457)

율곡기념관에는 ‘율곡전서’를 비롯 율곡의 저서와 간찰이, 신사임당의 유품으로는 습작매화도 초서병풍 초충도병풍 등이 전시돼 있다. 초충도에서는 사임당의 사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얼마나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는가를 살펴볼 수 있다.

 

역사문화관 내 고분문화실 

지난 1992년 11월 15일에 개관된 박물관은 5천2백 평의 부지에 연건평 496평 의 지상1층, 지하1층으로 꾸며진 전시실을 갖추었고, 97년 10월 26일 같은 모양의 건물이 하나 더 지어져 두 동의 건물은 각각 역사문화관과 향토민속관으로 구분되어 효율적으로 전시 관리되고 있다.

먼저 역사문화관을 들어가 보면 선사문화실, 불교문화실, 건축문화실, 역사자료실로 구성되어 있다. 선사문화실은 강릉지역에서 출토된 구·신석기, 청동기, 철기시대의 각종 유물과 고분, 안인진에서 발견된 집터 등이 복원되어 꾸며져 있다.

불교문화실에서는 신복사지 출토유물, 한송사지 출토 석조보살좌상 등을 볼 수 있고, 건축문화실은 강릉지방을 대표하는 건축문화재인 임영관의 모형이 50분의 1로 축소되어 전시돼 있다.

역사자료실은 강릉지역 고지도, 족보, 난설헌문집, 각종 계첩과 교지, 상서 등과 역대 명필가의 서예작품으로 꾸며져 있으며, 영동지방에서 출토된 각종 선사·역사유물과 불교미술품, 도자기, 고문서, 전적, 서화류 등이 전시되어 있다. 

각종 민속자료와 기증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 향토민속관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생활용품과 생업도구들을 볼 수 있다. 전시실을 들어서면 먼저 전통염색을 한 의복이 걸려있고, 그 옆으로는 저고리, 전복, 마고자 등 어린이들의 의복과 여성들의 화장용구와 장신구가 전시되어 있다.

대표적인 장신구로는 호화로운 노리개를 들 수 있고, 전시물 중에는 부부의 금슬과 해로·화목을 기원하는 뜻으로 사용된 혼례용품 목기러기도 눈길을 끈다.

이밖에 강릉지역의 전통민가를 재현하여 당시의 생활상을 현장감 보여주고 있다. 부엌에서는 전통한복차림의 아낙네가 가마솥에 밥을 짓고, 안방에서는 남편이 돗자리를 짜고 있는 정경과 짚으로 엮은 지붕, 꼴바구니, 선인들의 손때가 묻은 수염 빗, 설피, 옛 연장 생활용구 등 전시품은 노인층 관람객의 옛 추억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이밖에 중요무형문화재 제 13호인 강릉 단오제 과정과 문화재 11-라호 강릉 농악을 디오라마로 연출한 작품도 돋보인다. 박물관이 보유하고 있는 각종 유물은 서화류, 토도류, 피모지직류, 목초칠류, 금속류, 옥석류, 골각패류 등 모두 3,543점에 이른다.

두 곳의 전시관외에도 우리나라 여성의 사표인 신사임당과 역사상 위대한 경세가이자 대학자로서 학문과 정치에 큰 업적을 남긴 율곡 이이(李珥)선생이 태어난 몽룡실과 그의 영정을 모신 문성사 등 오죽헌은 둘러볼 것이 많고, 휴가철 엔 지척에 있는 경포대도 빼놓을 수 없는 명소이다.
한편 6월1일부터 7월1일까지 한달 간은 조선황실 그림글씨 특별전도 현재 열리고 있어 볼거리도 풍부하다.

/ 자료 - 한지호 자동차여행가

 

운정동 431  선교장 033-648-5303

조선말기의 전형적인 사대부의 저택으로 안채, 사랑채(열화당), 별당(동별당,서별당), 정각(활래정), 행랑채등 민가로서 거의 모자람이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 조선후기의 주거생활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안채는 1700년 이전에 건립된 건물로 세종의 형인 효령대군의 10대손인 이내번이 창건한 것으로 선교장 건물 중 가장 서민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며 안방과 건너방이 대청을 사이에 두고 있으며 부엌이 안방에 붙어 있다. 

열화당(悅話堂)은 남주인 전용의 사랑채로서 내번의 손자 후가 순조15년(1815)에 건립하였으며 당호인 열화당은 도연명의 귀거래사 중 열친척지정화(悅親戚之情話)에서 따왔다고 한다. 열화당은 3단의 장대석 위에 세워진 누각형식의 건물로 아주 운치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동별당(東別堂)은 안채와 연결된 주인 전용의 별당 건물로 이근우가 1920년에 지은 ㄱ자형 건물이다. 동쪽에 2개, 서쪽에 1 개의 온돌방을 만들고 앞면에는 넓은 툇마루를, 뒷면과 동쪽은 좁은 툇마루를 돌렸다.  

활래정(活來亭)은 선교장 정원에 판 인공연못 위에 세운 정자로 순조16년(1816) 열화당을 세운 다음해에 세웠다. 정자명은 주자의 시 관서유감(觀西有感) 중 "위유두원활수래(爲有頭源活水來)"에서 땄다고 한다. 이 건물은 마루가 연못 안으로 들어가 돌기둥으로 받친 누각형식의 ㄱ자형 건물이다. 활래정은 벽면 전부가 분합문의 띠살문으로 되어 있으며 방과 마루를 연결하는 복도 옆에 접객용 다실이 있다.

안채와 열화당 사이에 서재겸 서고로 사용하던 서별당이 있는데 소실되었다가 1996년에 다시 복원하였으며, 건물의 전면에는 행랑채가 있다. 또한 건물의 측면에는 원래 창고였으나 개화기때 신학문을 가르치던 동진학교(東進學校)터가 있다.

 

운정동 288-1번지 / 매월당 김시습기념관  033-644-4600

김시습 기념관은 전통한옥 형태로 부지 3,117㎡에 건축면적 358㎡규모로 건립되어 있다.

 김시습(金時習 1435~1493년)은 조선초기의 문인이며, 생육신의 한 사람이다. 본관은 강릉, 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동봉(東峰),벽산청은(碧山淸隱),췌세옹(贅世翁) 법호는 설잠(雪岑)이다. 유저(遺著)로는 금오산, 매월당집, 매월당시사 유록 등이 있다.

고서중 대표적인 전시작품으로서는 김육(金堉, 1580~1658)이 쓴 기묘록(己卯綠)과 1796년 목판본으로 인쇄된 장릉사보(章陵史補), 1800년대 쓴 것으로 추정되는 동학사지(東鶴寺誌)등이다. 매월당문집 영상자료 3개 시설과 김시습 관련 다큐멘터리 금오산신화 애니메이션 영상실을 갖추고 잇다. 김시습의 나이 3살때 지은 시를 그래픽화해 직접 영상체험을 할 수 있는 2개 시설이 설치되어 있어 보다 쉽게 이해하고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수 있게 되어 있다.

 

운정동 256  해운정 (보물183호 1963.1.21)

1530년에 어촌 심언광(沈彦光) 선생이 강원도 관찰사로 있을 때 지은 것이라 전한다. 정자의 편액인 해운정(海雲亭)은 송시열이 쓴 것이고, 기문은 권진응이 지은 것이며 이 외에도 율곡 등 여러 명사들의 시문판이 보관되고 있다. 해운정은 전체적인 형식은 양반가옥의 틀을 따르고 있으나 고방의 구성, 마루의 형식 등은 민가형식의 표현이 짙게 배어 있다.

강릉 지방에는 별당형 정자 건축이 많이 분포하고 있는데, 해운정은 조선 상류가옥의 별당형식의 정자건축에 속하는 목조건물로, 강릉지방에서는 오죽한 다음으로 오래된 건축물이다. 1963월 1월 21일 보물 제 183호로 지정된 해운정은 정면 3칸, 옆면 2칸의 단층 팔작집이다. 정면 3칸 중 우측 2칸은 대청마루로 하고 좌측 1칸은 온돌방으로 되어있다. 해운정은 경포호 서안에 있는 별당 형식의 목조건물로 1530년에 어촌 심언광(沈彦光) 선생이 강원도 관찰사로 있을 때 지은 것이라 전한다.

 

창녕조씨 종가집상차림 그대로 서지초가뜰 033-646-4430

100명 가까이 동시 식사 가능. 설날과 추석에만 쉬고 연중 영업. 주차장 50대.

지역마다 민가에 전해 내려오는 전통 음식들이 있다. 특정지역 주민들이 즐겨온 음식이 있는가 하면 특정 집안에 전해 내려오는 음식도 있다. 집안에 전해져 오는 음식이란 주로 권세 있던 양반 가문의 여성들에게 대물림돼 온 음식이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규범 있는 상차림과 정갈한 손맛을, 끊임없이 되풀이되며 이어지는 시어머니-며느리 관계를 통해  전승시켜 온 것이다. 엄중한 위계질서 속에서 혹독한 훈련을 통해 전수되는 손맛이다. 이른바 ‘종갓집 맏며느리’란 이름 속엔 동전의 양면처럼 ‘명예’와 ‘멍에’가 함께 존재한다. 우리나라 ‘고난의 여성사’를 대표하는 이 숙명적 이름 아래, 가문의 흐트러짐 없는 상차림과 정갈한 손맛도 대물림되며 우리 땅 참맛의 한 졸가리를 이뤄온 것이다.

강릉시 난곡동의 서지초가뜰이란 음식점도 이런 대물림 손맛을 바탕으로 차려진 한정식집이다. 난곡동 서지마을은 창녕 조씨가 10대째 살고 있는 곳이다. 최영간씨는 이 집안 9대 종손 맏며느리다. 시어머니 김쌍기(86)씨로부터 집안 대대로 전해지는 음식과 손맛을 이어받았다. 그가 차려내는 음식들은 집안에 대물림되는 빼어난 손맛을 바탕으로 강릉지역 양반가 상차림의 전형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9년 전 집 앞의 농막을 고쳐지어 서지초가뜰이란 간판을 걸고 음식점을 시작했는데, 그가 처음부터 관심과 정성을 기울여 내건 상차림이 못밥과 질상이었다. 못밥이란 무엇인가. 모내기철 일꾼들을 위해 음식을 장만해, 광주리에 함지박에 이고 가 들판이나 논두렁에 펼쳐놓고 먹던 들밥이다. 모내기하고 수확하느라 바쁜 시기에, 두레·품앗이 등으로 이웃끼리 서로 도우며 살던 우리 민족의 미풍양속에서 비롯한 독특한 식문화다.

질상이란 이름은 이웃끼리 모내기를 도울 때 꾸려진 한 무리의 일꾼을 한 질이라 부른 데서 나왔다. 대개 논 주인의 부인이 남편과 일꾼들을 위해 음식을 장만한 뒤 마을 당산나무 밑이나 숲속 널찍한 곳에 모여앉아 풍년을 기원하며 먹고 마시는 자리였다. 때에 따라선 일꾼들이 저마다 한두 가지씩 마련해 온 음식을 함께 나눠먹기도 했다고 한다.

곁들여지는 부새우탕은 강릉지역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음식이다. 경포호에서만 잡힌다는 부새우(작은 민물새우)를 끓여낸 탕이다. 초당두부 또한 강릉지역의 대표적인 전통음식이다. 여기에 갖가지 나물들과 해산물, 묵은김치, 장아찌 등 10여가지 반찬이 따라 나온다.

한 등급 더 높은 상차림으로 진지상이 있다. 말린 송이버섯, 삶은 문어 등 지역 특산물 요리에다 갈비찜 등이 곁들여지는 강릉지역 전통 한정식이다. 이 집의 또 다른 독특한 음식으로 황태와 대추, 부추, 능이버섯, 더덕 등 몸에 좋고 약이 되는 다섯 가지를 데친 곰취에 싸서 먹는 서지오약쌈, 명태포를 썰어 넣고 찹쌀밥과 무, 고춧가루, 엿기름을 섞어 삭힌 포식해 등이 있다.

조씨 집안에서 300년을 전해 내려온다는 송죽두견주도 빼놓을 수 없다. 댓잎, 솔잎과 다섯 가지 곡식을 섞어 빚은 약주로, 마실 때 진달래꽃잎을 띄워 송죽두견주로 부른다. 가을철엔 국화꽃을 띄우는데, 이땐 송죽국화주가 된다. 은은한 솔향과 쌉쌀한 맛이 어우러진 기품 있는 술이다. 반주로 곁들이면 음식 맛을 한결 돋워준다.

농막을 고쳐 지은 음식점 뒤쪽엔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창녕 조씨 종택이 있다. 조선 말기 강릉지역 양반가옥의 전형을 보여주는, 아름답게 낡은 한옥이다. 최씨에게 손맛을 전수한 김쌍기 할머니가 지금도 살고 있다. 서지마을이란 이 지역이 ‘상서로운 기운을 간직한 땅’이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마을이 ‘쥐가 곡식을 물어와 저장하는 형세’인 데서 연유했다고도 한다. 

/ 자료 - 한겨레 이병학 여행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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