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방방곡곡/경상남도

함안 원북마을 조려선생 서산서원 채미정 고바우

by 구석구석 2022. 11. 10.
728x90

경남 함안 군북면 원북마을이 마을에는 어계 조려 선생의 생가가 있다.

어계 생가는 대문채와 원북재라 불리는 재실 및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3칸으로 중앙에 솟은 솟을대문과 양측에 방이 있으며 주 건물인 원북재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일자형 평면으로 비교적 단순하다. 이는 살림집이라기보다는 재실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사당은 비교적 크고 화려하다.

▲ 어계 조려선생의 생가 / 오마이뉴스

고택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59호인 어계생가다. 어계 조려(1420-1489)는 조선시대 생육신의 한 사람이다.

좌측에 있는 건물은 어계 조려 선생의 종가집이다. 이 집은 본관이 창녕인 조설자(78) 할머니가 58년째 홀로 집을 지키고 있다. 할머니의 남편은 6·25 전쟁 때 군대에 가서 여태껏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한다.  

고택의 옛 자취는 모두 스러지고, 사랑채 또는 별당채로 쓰였음직한 원북재만 남아 있다. 어계 조려는 검박하고 단출한 이곳에서 바깥세상과 절연한 채 철저히 은둔했다. 

원북마을은 조선 초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에 반대하여 절의를 지키고자 낙향한 어계(漁溪) 조려(趙旅)와 그 후손들이 일군 집성촌으로 경상남도 함안을 대표하는 인물인 어계 조려는 김시습, 이맹전, 원호, 성담수, 남효온과 더불어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고 있는 조선초 유학자이다. 

마을이 등을 기대고 있는 야트막한 방어산 고개를 넘으면 순천과 부산을 잇는 남해고속도로가 뻗어있고, 마을 앞에는 경전선 철로가 가로지르고 있으니 번잡하고 요란할 법도 하건만, 대낮인데도 가문 실개울 물소리가 들릴 만큼 한적한 시골이다.  

서산서원은 단종 선위에 즈음해서 절의를 지키신 어계 조려 선생께서 은둔하셨던 곳이다. 숙종(1703년)때 창건되었으며 1713년에 서산서원으로 사액되었다.

▲과수원 길에서 들여다본 서원의 안 풍경은 정원수가 잘 다듬어져 있고, 고색창연한 옛 고택은 선비들의 기품이 서려 있어서인지 보는 이의 마음을 압도한다. 서원 담장 기와 사이로 뿌리 내린 개나리는 노랗게 손을 흔들고 있다.

'고려 전서공 금은 조열선생의 신도비'다. 담쟁이 넝쿨의 실핏줄이 담장에 얼기설기 뒤엉켜있다. 함안 조씨 시조인 조열 선생은 고려대장군 원윤공 조정의 9세손으로 고려 말기 공조전서 현상공장관의 벼슬을 지냈으며 조선태조 이성계의 등극으로 불사이군의 중절을 지킨 고려 말의 충신이다.

거문고와 그림에 뛰어난 당대의 금화가로 달 밝은 밤에 거문고를 선생이 타면 그 소리가 수리에 들렸다고 전해져온다.

▲ 충의공 대소헌 조정도 선생 열녀등정부인 정의 이씨 쌍절각

바로 곁에는 충의공 대소헌 조정도 선생 열녀등정부인 정의 이씨 쌍절각이 있다. 조정도 선생은 생육신 정절공 어계 조려 선생 오세손 중종32년(1537년)에 함안 원북동에서 출생하여 선조32년(1597년) 정유재란 당시 안의 황석산성에서 왜적과 싸우다가 음력 8월 18일 장렬하게 순절하고 부인 전의 이씨도 이날 함께 자결하였다. 선생의 출생지인 원북동에서는 쌍절각을 지어 만고에 충절을 기리고 있다.  

채미정에는 수령이 500년이나 된 20미터 높이의 은행나무가 있다. 소나무 숲의 벚꽃에 둘러싸인 누각이 그림 같다. 어계 조려가 낙향한 후 낚시와 소요로 여생을 보냈다는 채미정(採微亭)과 청풍대(淸風臺)는 이미 지붕이 내려앉을 듯 퇴락했고, 들어가는 철문조차 녹슬어 열리지 않아 찾는 이들의 발길이 끊어진지 꽤 오래됐음을 짐작케한다.  

주나라 때 백이와 숙제가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캐먹으며 살았다는 고사를 인용해 이름 붙인 채미정에는 어느덧 서글픈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어계 조려의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개가, 퇴락한 건물처럼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흡사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듯 느껴진다.

채미정은 낙향한 후 어계 조려가 낚시와 소요로 여생을 보낸 곳으로 담벼락 앞에 차도와 육각지붕의 정자인 청풍대 아래로 기찻길이 놓여 있어, 무척 어수선하다.

충절을 보여준 선비의 은둔은 후대 뭇 백성들로부터 존경과 흠모를 받을지언정 가문의 몰락과 가난이 따르는 법, 어계 조려의 삶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마을 뒷산 대숲에 숨어있는 어계 조려의 옛집이 그것을 보여준다.  명문가의 고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소박하다. 

 

 

철로 주변의 넓은 들판이 온통 황금빛으로 뒤덮힌 풍경에 눈이 시리다. 그림같은 풍경 앞으로 기차가 들어서면서 절경에 마침표를 찍는다. 기차와 황금들판이 어우러진 풍경은 그 어떤 풍경화보다도 매혹적이다/김정수

하림마을 하림2교 다리 밑을 지나 철길 아래를 통과하면 고바우가 나온다. 암벽이 병풍을 두른 듯 아름다운 소나무동산이다. 삼선교 아래를 흐르는 개울물은 청경수다. 고바우 암벽에는 연분홍 진달래가 피어있다.  

고바우 바위는 책을 쌓아 올려놓은 듯 켜켜이 층을 이루고 있다. 서산이라 새겨진 바위에는 연좌대에 앉은 부처상이 새겨져 있다. 자세히 살펴봐야 그 형상이 드러난다. 사람 같기도 하고 짐승의 모습이 연상되기도 하는 독특한 얼굴을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조찬현 서부원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