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경주시 감포읍 - 31번국도
경부고속도로 경주 IC에서 계속 직진, 4번 국도를 타고 감포 쪽으로 달린다. 추령터널을 통과해 14번 국도와 만나는 안동리 사거리에서 좌회전하면 기림사 가는 길. 이정표가 잘 돼 있어 찾기가 수월하다. 감은사지는 기림사에서 나와 안동리 사거리에서 좌회전. 어일리 사거리 못 미쳐 감은사지 표지판이 보인다. 문무대왕릉은 감은사지에서 바다 쪽으로 조금 더 달리면 된다. 31번 국도에서 우회전하면 문무대왕릉, 좌회전하면 이견대가 나온다.
오감을 자극하는 여행으로는 '감포바다'가 제격.
탁 트인 시야,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 검푸른 바다 빛이 아늑함을 연출하는 감포에는 특히 입맛 당기는 싱싱한 횟감들이 한가득이다.
경주에서 30분 정도 동해안으로 빠져 나가면 감포가 나오는데 가는 길도 꼬불꼬불 재미나 드라이브의 낭만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나정해수욕장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좌회전해 4km정도 들어가니 푸른 빛깔을 머금은, 탁 트인 감포항이 한눈에 들어왔다.
시원하게 목으로 와 감기는 바닷바람, 푸른 빛깔이 채 보이기도 전에 비릿한 바다 내음이 먼저 달려든다. 죽은 뒤에 용으로 화해 내 땅을 지키겠다던 문무왕의 의연한 정신이 전해지는 듯 하다. 제법 많은 고깃배들이 드나드는 감포항에는 포구 특유의 비릿한 내음과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소음이 더해 활기가 넘친다.
움푹하게 땅으로 비집고 들어선 바다, 바다를 향해 뻗은 방파제. 그 끝에 새빨간 등대 하나가 서 있다. 거기서 다시 좀 떨어진 바다에 콘크리트와 바위를 쌓아올린 등대섬. 빨간 등대가 마치 방파제의 그것과 쌍둥이를 이루며 마주보고 있다. 몽글몽글한 자갈이 햇살에 반사돼 구슬처럼 반짝인다. 끝없이 밀려드는 거센파도와 활기찬 갈매기떼는 옥빛 하늘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같다.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파도에 쓸려 한방에 사라지는 기분이다.
포구의 활기를 뒤로하고 감포항을 빠져나왔다. 감포항에서 약 10㎞ 지점에 있는 대왕암을 향해 31번 국도를 내달렸다. 죽어서도 왜구를 막겠다는 유언에 따라 신라 문무왕의 무덤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내려오는 곳이다.
동해의 해안선을 따라 세로로 뻗은 큰 축인 7번 국도는 해안에 접해 있다가 해안쪽으로 이어지는 31번 국도를 만들어 낸 것이라고 한다. 감포항에서 4km 정도 남하하면 경주 시내로 들어가는 4번 국도로 갈라지는 전촌 삼거리가 나오고, 여기서 남으로 곧장 달려 6km 정도 더 내려가면 대왕암에 이른다.
전촌 삼거리부터는 그야말로 해안선에 바싹 붙어서 도로가 나 있기 때문에 바다와 나란히 달리는 묘미를 한껏 느낄 수 있다. 달리는 내내 차창 밖으로 보이는 올망졸망 들어선 바닷가 마을이 정겹기만 하다.
맨 먼저 나타나는 것은 이견대. 여기서 700m를 더 내려가면 봉길리앞바다에 바위섬이 보이는데 바로 대왕암이다.
이견대 사적 제159호
대왕암을 의미 있게 눈여겨 볼 수 있는 곳이 두 군데 있다. 대본초등학교 앞쪽에 있는 이견대와 동해구(東海口)라는 표지석 아래 '나의 잊히지 못하는 바다'라는 기념비가 서 있는 자리이다.
이견대는 화려한 능묘를 마다하고 동해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고 한 문무왕이 용으로 변한 모습을 보였다는 곳이며 그의 아들 신문왕이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보배 만파식적을 얻었다는 유서깊은 곳이다. 이견대라는 이름은 '주역'의 '비룡재천 이견대인(飛龍在天 利見大人)'이라는 이름에서 따온 것이며 현재의 건물은 1970년 발굴조사 때 드러난 초석에 근거하여 최근에 지은 것이다.
동해구 표지석 아래로 내려가면 우현 고유섭선생의 반일 의지를 기리기 위해 1985년 제자들이 세운 기념비 '나의 잊히지 못하는 바다'가 보인다. 일제 시대 명백한 침략을 내선합일이라는 명목으로 정당화하려는 일본의 우격다짐에 쐐기를 박듯, 이미 통일신라시대에 왜구의 침략을 경계한 문무왕의 호국의지를 돌이켜 생각하며 고유섭이 지은 '대왕암'이라는 시와 '나의 잊히지 못하는 바다'라는 기념비가 대왕암이 바라다 보이는 자리에 나란히 세워져 있어 뜻이 더 깊다.
문무왕은 신라의 위대한 왕이다. 아버지 대의 백제 정벌(660년)에 이어 고구려 정벌(668년)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후 당나라 군대를 기벌포(금강 하구)에서 격파하고 삼국통일을 완성했다. 대업을 마친 문무왕은 이렇게 유언했다. “이때까지 우리 강토는 삼국으로 나뉘어 싸움이 그칠 날 없었다. 이제 삼국이 하나로 통합돼 한나라가 되었으니 민생은 안정되고 백성은 평화롭게 살게 됐다. 그러나 동해로 침입하여 재물을 노략질하는 왜구가 걱정이다. 내가 죽은 뒤에는 용이 되어 불법을 받들고 나라의 평화를 지킬 터이니 나의 유해를 동해에 장사 지내라. 화려한 능묘는 공연한 재물의 낭비이며 인력을 수고롭게 할 뿐 아니라 죽은 혼은 구할 수 없는 것이다.”<삼국사기>
문무대왕릉은 그냥 바라보기에는 바닷가 근처에 흔히 보이는 그런 작은 바위섬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섬에 가까이 다가가면 바위 한가운데에 못처럼 패어있고, 둘레에는 암석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기둥처럼 세워져 있었다. 죽어서도 동해의 용이 돼 나라와 백성을 지키겠다는 문무왕의 높고 귀한 뜻이 서려 있기 때문인지, 대왕암 주변의 바다에는 유난히 안개가 자주 깔린다. 짙은 안개에 휩싸인 대왕암 위로 붉은 태양이 솟아오르는 광경은 경외감과 신비감마저 불러일으킨다.
한 변의 길이가 약 3.5m가 되는 못 안에는 거북이 등처럼 생긴(길이 3.6m, 폭 2.85m, 두께 0.9m, 무게50톤) 돌이 얹혀져 있는데, 못 안의 바닷물은 돌을 약간 덮을 정도로 촐싹일 뿐, 아무리 거센 파도가 치더라도 늘 맑고 잔잔하게 흐른다.
물안개가 신비스러운 일출 경주 대왕암
물안개가 낀 일출 풍경이 일품이라 사진작가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대왕암 위로 솟아오르는 해는 웅장하고 장엄하게 느껴진다. 또 갈매기가 유난히 많은데 붉게 물든 바다 위로 나는 모습도 장관이다.
11월과 12월에는 문무대왕릉 앞바다에 평소에는 쉽게 볼수없는 바다에 피어오르는 해무를 보기위해 몰려들고 있다. 일교차가 심한 맑은 날에 이곳을 찾는다면 어렵지 않게 볼수있을것이다.
감포방조제
벵어돔과 망상어가 일정한 포인트의 구별없이 주로 낚이는데, 1월 중순부터는 숭어가 낚이고 학공치도 씨알이 굵다. 남쪽(200m)과 북쪽(300m)에 두개의 방파제가 놓여 있는데, 처음 찾는 이들은 시간을 살펴 밀물에는 남쪽, 썰물에는 북쪽 방파제를 찾는 것이 요령이다. 북쪽 방파제 옆 갯바위 (송대 끝)에서도 9월에서 11월까지 감성돔 낚시를 자주하며 씨알이 굵게 낚 인다. 파도가 약간 있는날 조황이 두드러진다. 파도가 심할 때는 내항쪽 3m 수심을, 약할때 는 4m안팍의 수심을 노린다. 두 방파제 모두 마리수는 비슷하며, 벵어돔의 경우 북방파제가 약간 우세하다.
문무왕이 삼국을 통일한 이후 이제는 쌍탑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처음으로 나타나는 탑이 바로 양북면 용당리에 있는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국보 제112)이다. 양탑은 거의 같은 규모로 신문왕 2년(682)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1959년 12월 서탑을 해체 복원한 이후에 동탑도 1996년 4월 25일 해체하였는데 사리공과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어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현재도 서탑의 보수 공사가 진행중인데 곧 마무리될 예정이다.
봉길리 초입의 대본삼거리에서 14번 국도를 따라 경주 쪽으로 0.5km쯤 가면 감은사지 어귀에 도착한다. 문무왕의 아들 신문왕이 682년 완공했다는 감은사의 옛터에는 한 쌍의 삼층석탑만이 우두커니 서 있다. 현재 대대적인 해체복원 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제 모습을 감상하기 어렵다.
완벽한 조형미를 갖추어 신라 탑의 전형으로 불린 감은사탑이 있는 곳이다. 우리 고미술사의 기틀을 마련한 우현 고유섭 선생이 ‘경주 기행의 일절’이라는 글에서 “신라에 가거든 문무왕의 유적을 찾으라. 구경거리의 경주로 쏘다니지 말고 문무왕의 정신을 길러보아라”라고 했던 그 탑이다.
감은사탑은 웅장하다. 높이는 13.4m. 지금까지 남아 있는 신라 탑뿐 아니라 삼층석탑 중에서도 가장 크다. 감은사지를 찾았을 때는 해 질 무렵. 하늘은 깨어질 듯 푸르렀고 감은사탑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거대한 실루엣으로 서 있다. 더할 것도 없고 뺄 것도 없는 완벽한 조형미는 보는 이를 감탄하게 만든다. 높이 3.9m의 쇠찰주에는 왜구를 향한 시퍼렇고 날카로운 전의가 서려 있다.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왕의 호언이 가슴으로 전해지는 듯하다.
학자 중에는 감은사지를 ‘경주 답사 여행의 클라이맥스’라고 강조하는 사람도 많다. 감은사는 문무왕이 세우기 시작했는데 완성은 아들 신문왕이 이루었다. 문무왕의 위업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신문왕이 감은사라 이름 붙였다. 감은사탑은 동탑과 서탑, 두 기가 있다. 현재 서탑은 보수 중이다.
/ 자료 - 경남일보 2007, 4 황선혜 기자 / 프라이데이 editor 최갑수 photographer 장영수
감포 나정해수욕장
감포읍 전촌삼거리(전촌숲)에 이르며 여기서 우(남쪽)회전하여 송림숲을 지나 교량을 건너면 좌측이 나정해수욕장이다.
넓은 백사장의 잔잔한 모래와 동해의 청정해역, 여유있는 주변 공간과 인근의 갖은 편의시설이 있고 동해의 바닷물을 이용하여 온천을 즐길 수 있는 해수탕이 있어 새로운 체험을 할 수 있고, 해수탕 옆은 주차공간과 송림이 개방되어 있다. 또한 모터보트, 바나나보트 등 수상 레저를 즐길 수 있다.
전촌리 전촌해수욕장
청정 바다와 해양 레저, 연접한 전촌숲의 송림, 인근 감포항과 많은 활어 횟집들, 그리고 남측으로 5분 거리에는 동해의 바닷물을 이용한 온천해수탕 등 피서지의 여건을 고루 갖추고 있으며, 또한 도심을 훌쩍 떠나 쉽게 피서지에 닿을 수 있는 대중교통의 이용이 편리하고 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를 함께 할 수 있는 곳이다.
감포 해운대회식당 복어국과 회국수 054-744-3322
여행지로서 경주의 매력 중 하나는 바다가 있다는 점이다. 보문에서 30여분을 내달으면 동해 일출의 명소 감포 바다가 열린다. 경주의 대표 해변인 감포에는 횟집이 즐비하다, 그 중 감포수협 공판장 앞 '해운대회식당'은 경주 토박이들 사이 '푸짐함'으로 정평 난 곳이다.
특히 속 풀이에 좋은 복어국, 아구탕이 일미인데, 큼직한 국그릇에 가득 담겨 나오는 맛깔스런 음식에 먼저 기가 질릴 정도다. 가자미 세꼬시와 야채를 곁들여 매콤하게 비벼먹는 회국수도 계절을 불문한 베스트셀러. 고동구이와 궁합이 곧잘 맞는 막걸리도 판매한다. 아구탕 1만원, 아구수육 3만원(3인 기준), 생복어탕 1만2000원, 회비빔국수 1만원, 고동구이 1만원.
대본리 해송정횟집
전복은 예나 지금이나 흔치 않은 미식거리이다. 요즘 상에 오르는 것들은 대게가 양식전복이다. 따라서 웬만한 미식 수준에 오르지 않고서는 자연산과 양식을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전복은 일단 그 맛이 자극적이지 않아 '바로 이 맛!'이라는 감동이 덜하다. 특히 회집이나 일식집 등에서 무슨 고명처럼 얇게 썰어둔 생전복을 대했을 때에는 전복의 깊은 맛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그저 귀하고 비싸기 때문에 맛있게 여기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산지에서 갓 잡은 전복을 통째로 베어물면 비로소 '아하! 이 맛이로구나' 진미를 느끼게 된다. 먼저 전복을 적신 짭짤한 듯 간간한 해수가 입안에 침을 듬뿍 고이게 한다. 이후 어구적 어구적…, 오들거리는가 싶더니 금새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는 부드러운 속살은 생생한 미각으로 다가온다.
경북 동해안 지방을 찾으면 이런 전복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경주 감포 인근 대본리를 찾으면 물질로 갓 따온 싱싱한 참전복을 맛볼 수 있다. 어른 주먹만한 6~7년산 자연산 전복도 흔치않게 볼 수 있다. 대본리 앞바다에서 40년째 물질을 해오고 있다는 김임순씨(58)는 "전복은 봄-가을 미역을 묵으러 올라오는 놈들이나 겨울철 잡아 올린 기가 맛있다"며 "감포 앞바다에는 아직도 싱싱한 전복이 쌔비렸다"고 자랑이다.
물질에 식당까지, 억척스럽게 일상을 꾸리고 있는 김씨는 전복 전문점(해송정회집)으로도 유명세를 얻고 있다. 김씨에 따르면 감포 주변 전문점에서는 참전복을 쓴다고 한다. 흔히들 전복은 제주, 완도, 경남 지방 등에서 나는 말전복이 주를 이루는데, 위도상 울산 위쪽에서는 참전복이 난다는 것.
해송정회집에서는 전복탕, 찜, 죽, 구이, 회 등을 맛볼 수 있다. 값이 비싼 게 흠이지만 물질을 해서 잡아 온 자연산을 쓴다는 자부심에 결코 비싼 것만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 집의 별미는 전복탕. 전복에 통마늘, 대추를 넣고 1시간 이상 푹 끓인 후 마지막에 참기름 한 방울을 떨어뜨려 투가리에 담아내는데, 국물 맛이 시원 고소하다. 4만원(1인 기준). 해삼 무침 또한 이 집의 특미. 잘게 썰은 해삼에 배, 오이, 풋고추 등을 썰어 넣고, 깨, 식초, 김 가루, 마늘 다짐, 참기름 등을 섞어 비벼 내는 게 별미다.
스포츠조선 2009.1
오류리 588-3 송대말등대 054-744-3233
삼국통일을 이룩하고 죽어서도 龍이 되어 동해를 지키겠다는 유언을 남긴 문무왕의 수중릉인 대왕암에서 멀지 않은 곳에 경관이 수려한 감포항이 있다. 항구 북단에는 끝없이 펼쳐지는 동해 망망대해를 지키는 송대말(松臺末) 등대가 자리잡고 있다. 송대말에는 수령 300년∼400년 정도의 소나무숲이 무성하다. 감포항 인근 해역에는 암초들이 길게 뻗어 있어 작은 선박들의 해난사고가 빈번하자 암초들의 위치를 표시하기 위해 1933년 2월 감포어업협동조합에서 등간(燈竿)을 설치하였다. 그러다 감포항 이용 선박이 점차 늘어나게 되면서 감포항 북쪽 송대말(松臺末)에 1955년 6월 30일 무인등대를 설치했다. 그후 육지표시 기능의 필요성이 제기돼 1964년 12월 20일 기존 등탑에 대형 등명기를 설치해 광력을 증강하고 유인등대로 전환했다. 원래 등탑은 백색의 원형이었으나 지난 2001년 12월 등대를 종합정비하면서 신라시대를 대표하면서 문무왕의 은혜를 기리는 의미를 지닌 ‘감은사지 3층 석탑’을 형상화한 모습으로 건립하였다. 또한 전시실을 마련하고 등대 및 바다와 관련된 자료들을 전시해 두어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포항방면과 울산방면으로 갈라지는 전촌삼거리(전촌숲)에서 좌측 포항 방면(31번국도)으로 10분 정도 계속 직진하여 고개를 넘으면 우측에 바다가 보이며 오류해수욕장에 이른다.
오류해수욕장은 모래가 부드러워 모래 찜질이 유명하다. 1km의 백사장과 1.5m 안팎의 수심, 우거진 소나무 숲과 민물에 접해 있어 가족단위 캠프를 하는데 아주 좋다. 낚시배도 20여 척이 있어 주변에서 바다 낚시도 인기가 대단하며, 바닷가에서 맛보는 전복, 오징어, 도다리, 우럭이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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