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방방곡곡/서울 한강

강서구 양천향교 - 궁산 - 허준박물관

by 구석구석 2022. 7. 22.
728x90

 

양천향교와 궁산 소악루, 허준박물관 / 3.9km / 1시간30분

이 길을 걸으면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었던 선인(先人)들의 기개를 읽어낼 수 있을까? 더도 말고 복잡한 심사를 털어내고 그분들이 보았던 풍치나 두 눈에 고이 담아낼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강서구 최고의 전통문화 도보 코스라고 할 수 있는 이 길은 서울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양천향교와 강서구와 깊은 인연을 지닌 천재 화가 겸재 정선, 우리나라 한의학의 큰 별 허준 선생이 거쳐 가신 공간을 지난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라는 야은(冶隱) 길재의 시조를 수식어로 쓰지 않을 수 없는 길이다.
 

 
  양천향교역~겸재정선기념관 30분/0.6km

강서구에서 내세우는 옛 선인들의 발자취를 훑어 걷는 길은 지하철 9호선 양천향교역에서 시작된다. 지하철 2번 출입구를 찾아 지상으로 나온 후 가로등에 조그맣게 달린 ‘겸재정선기념관 450m’ 이정표를 보고 왼쪽으로 간다. 다시 갈림길에서 ‘겸재정선기념관 500m’ 이정표를 쫓아 오른쪽으로 가자. 겸재정선기념관은 점점 다가오는데 이정표에서는 멀어진다고 표시하니 아마 푯말을 설치할 때 실수가 있었나 보다.
 
  5분을 채 못 걸어 만나는 갈림길에서 눈에 확 띄는 금빛 사찰이 있는 골목으로 직진한다. 잠깐만 걸으면 적, 황, 청의 빛깔이 선명한 삼태극이 그려진 양천향교 외삼문에 다다른다. 향교는 유교를 바탕으로 한 조선시대의 지방교육기관으로 고려 태조 13년(930년) 평양에 향교를 설치하여 학생을 가리키고 문묘를 세워 제사를 지낸 것이 시초라고 전해진다. 성균관의 하급기관이라고 볼 수 있는 교육기관이었으나 고종 때 과거제도가 없어지면서 그 역할이 크게 줄어들었다.
 

양천향교는 서울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향교다.

양천향교의 외삼문을 들어서면 정면으로 명륜당이 보인다. 양반 자제들이 글공부를 하던 명륜당에서는 지금도 한문과 예의범절 교육을 실시한다. 평일에 명륜당 주변을 걸어보면 공부에 여념이 없는 이들을 자연스레 가까이 접하게 된다. 명륜당 뒤에 있는 내삼문 안쪽으로는 공자와 성현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이 여느 향교와 마찬가지로 가장 윗자리를 차지한다.

양천향교를 한 바퀴 돌아 나와 외삼문 밖의 계단을 내려온 후 궁산으로 가기 위해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3분 남짓이면 궁산 산책로 입구를 만나는데, 자칫 그 앞에 있는 겸재정선기념관을 놓칠 수도 있다. 궁산 입구를 등지고 오른쪽을 보면 대형 붓 모양의 석조물이 있고, 그 뒤로 현대식으로 지어진 겸재정선기념관을 볼 수 있다.
 
  겸재정선기념관은 겸재 선생이 65~70세까지(1740~1745년) 지금의 강서구 가양동 일대를 지칭하는 양천현의 현령으로 있으면서 많은 작품을 남긴 것을 기념하는 곳이다. 겸재 선생은 앞으로 걷게 될 궁산에서 바라본 한강의 모습을 많이 그렸기에 기념관터 역시 궁산 자락을 선택했다고 한다. 기념관에서는 겸재 선생과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다양한 유물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어른 기준 1000원의 관람료를 징수한다.
 

궁산 정상을 향해 걷는 길.

궁산 산책로 30분/1.0km

궁산 산책로 입구에서 궁산근린공원 종합안내도를 훑어보고 포장 산책로를 올라간다. 5분 정도 가다 왼쪽으로 나무계단이 나오면 포장길을 벗어나 그쪽으로 향한다. 얼마 안 가 사방을 조망권으로 둔 궁산 정상에 닿는다.
 
  궁산 정상 끝 부분에 있는 돛단배 모양의 전망대에 올라보자. 유장하게 흐르는 한강 하구에 펼쳐진 무한한 공간이 방화대교를 품고 행주대교를 지나 아득하다. 겸재 선생이 그린 작품 중에 <소악후월>이란 작품이 이곳에서 바라본 모습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그 작품을 그리기 위해 겸재 선생은 칠십 가까이 된 노구를 추스르며 이곳에 올랐을까? 이토록 산이 유순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궁산 정상을 한 바퀴 돌아보면 알 수 있듯이 사방으로 트인 시야가 군사 요충지로서의 역할도 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조사를 해보니 백제 때부터 이곳이 성터였다는 문헌이 남아 있으며, 임진왜란 때는 의병의 집결장소로, 한국전쟁 때는 국군이 주둔했던 전략지로 나름 명성을 쌓은 곳이란다.

겸재 정선이 올라 앉아 그림을 그렸다는 소악루.

  궁산 정상을 한 바퀴 돌아 동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겸재 선생이 한강을 바라보며 화폭을 채웠다는 소악루 정자와 만난다. 언덕 위에 자리한 소악루 그 자체도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데 그 누각에서 바라보는 한강의 풍치는 더 기가 막히다. 정자 안에는 겸재 선생이 이곳에서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진경산수화>를 현재의 모습과 비교할 수 있도록 해두어 흥미를 유발시킨다. 예전과 크게 달라진 점이라면 하늘공원과 노을공원이라는 이름으로 덧씌운 커다란 쓰레기 산이 생기면서 그 뒤로 보이던 진짜 산들이 가려졌다는 것이다. 거대한 쓰레기 산에 가로막힌 시야가 새삼 인간의 무자비함을 일깨운다.
 
  소악루를 거쳐 나오다 소악루의 역사를 설명하는 안내문을 읽어본다. 안내문에 따르면 지금의 소악루는 1994년, 주변 경관과 지세 등을 고려하여 새로 지은 것으로 원래 소악루의 위치는 지금과는 조금 다르다고 한다. 겸재 선생이 앉았던 바로 그 자리가 아니라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이제는 궁산을 내려간다.

공암나루공원~가양역 50분/2.3km
 
  소악루에서 남쪽으로 3분 정도 내려가다 갈림길을 만나면 왼쪽으로 간다. 이후 계속해서 걸어가면 버스차고지 철망을 끼고 돌아 나오게 된다. 궁산에 진입하며 보았던 궁산근린공원 종합안내도에 따르면 이곳이 궁산 ‘부출입구-1’에 해당하지만 현장엔 아무런 표식도 없다. 올림픽대로와 직접 연결되는 램프에서 건널목을 건너 맞은편 공암나루공원으로 넘어간다.
 
  공암나루공원은 올림픽대로와 아파트단지 사이에 조성된 녹지공원이다. 1.5km에 달하는 긴 산책로에는 우레탄이 깔려 있고, 벚나무와 자귀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드리운다. 왼쪽으로 올림픽대로가 나란히 달리고 있어 고속으로 질주하는 자동차 소리가 매우 거칠게 귀를 잡아끌 것으로 예상되지만, 몇 년 전에 설치한 고성능 투명 차음막 덕분에 이 벽을 타고 넘는 자동차 소음은 거의 없다. 오히려 투명 차음막 너머로 무섭게 질주하는 자동차들은 컬러 무성영화를 보는 듯 이채롭다.
 
  쉼터와 운동시설 등 다양한 편의시설이 구비된 공암나루 산책로를 10분 정도 걸으면 공원관리사무소 건물이 나온다. 건물 주변으로 화장실과 식수대가 있으므로 잠시 다리쉼을 하며 에너지 충전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걷는 거리는 짧지만 볼거리들이 많으므로 다리가 조금 아플 수도 있다. 관리사무소를 지나 다시 또 그만큼 가면 오른쪽으로 구암공원 입구가 보인다.
 
  구암공원 안으로 들어가면 연못 위에 특이한 모양의 바위가 우뚝 솟아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광주에서 떠내려 왔다는 전설이 있어 광주암이라고 부른단다. 그래서 광주군에서 이 바위를 빌려간 값으로 해마다 싸리비 몇 자루씩을 양천에서 받아갔단다. 그러다 양천에서 이 바위는 필요 없으니 도로 가져가라고 하여 그런 일이 없어졌다는 옛이야기가 구전된다.
 
  예전 택지개발사업을 하면서 이곳이 땅으로 메워지고 광주암마저 사라질 위기에 처했었다. 다행히 이곳을 원형대로 보존하기 위해 새로운 호안을 구축하고 공원을 조성해 지금의 광주암이 보존될 수 있었다. 이토록 풍채 좋고 잘 생긴 바위가 수장될 뻔했다니,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광주암이 있는 연못을 돌아 허준박물관 방향으로 나와 큰 길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곧 한국한의사협회와 맞붙은 허준박물관에 닿는다. 허준박물관에서는 이 지역에서 나고 생을 마감한 허준 선생의 자료를 전시한다. 또한 허준 선생이 활동하던 조선시대의 내의원과 한의원을 재현하여 전시하고 있다. 그 밖에도 한의학과 관련된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어른 기준 800원의 관람료를 징수한다.
 
  허준박물관도 보았으면 박물관 정문 앞에 있는 건널목을 건너 왼쪽으로 가다 곧바로 오른쪽 ‘등촌1-10단지’ 이정표를 따라간다. 길 옆으로 화단이 정성스럽게 가꾸어져 있어 쾌적한 걷기가 가능하다. 이 길의 끝에는 오두막 쉼터까지 있어 코스를 마무리하는 차원에서 쉬어가기에 좋다. 오두막 쉼터가 있는 사거리에서 홈플러스 쪽으로 길을 건너면 5분 만에 가양역을 만나게 된다.

/ 월간조선 윤문기 (사)한국의길과문화 사무총장ㆍ도보여행전문가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