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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상남도

남해 상주리 금산 보리암

by 구석구석 2022.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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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은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초당을 짓고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뒤 산 이름을 보광산이라 하고 초암을 보광사라 불렀다. 조선시대에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조선왕조를 연 것에 감사하는 뜻에서 산 전체를 비단으로 덮어 주겠다 약속했고 이름에 ‘비단 금(錦)’자를 쓰게 됐다.

명승39호 금산 / 남해1경 금산 보리암

쌍홍문의 바위 터널을 지나면서 제석봉, 상사암 등 이른바 ‘금산 38경(景)’이라 불리는 기묘한 기암괴석과 수려한 경치가 펼쳐진다. 우람하게 보이는 상사암에 닿자, 발아래로 남해의 비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평탄한 길을 따라 바다에서 불어오는 따스한 봄바람을 맞으며 보리암으로 길을 이어간다.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선 곳에 절묘하게 자리한 보리암. 바다를 향해 선 해수관세음보살상 앞에서 저마다 소원 하나씩을 빌어본다.

금산은 이름을 부르는 방법이 따로 있다. 산보다 동네를 먼저 불러줘야 한다. 남해 금산. 경남 남해에 있는 건 알겠는데, 왜 남해를 먼저 부를까. 남해 사람도 연유는 모른다고 했다. 사람 이름 앞에 성(姓)을 붙여 부르는 것처럼 금산은 꼭 남해를 앞세워 호명한다. 입에 붙어서 그런지, 왠지 그래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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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의 내력도 범상치 않다. 금산(錦山)이란 이름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지었다. 금산에서 100일 기도를 올린 뒤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했다. 과업을 이룬 보답으로 이성계가 산에 비단을 내리려 했다. 하나 산 전체를 비단으로 덮을 수 없어 이름에 비단을 내려줬다. 사실이든 전설이든, 임금이 이름을 하사했다는 산은 남해 금산이 유일하다.

금산은 높은 산이다. 해발고도가 681m이다. 681m인데 높다는 게 아니라 681m이어서 높다. 해발은 해수면이 기준이다. 섬 산은 대부분 해발 0m에서 시작한다. 금산은 가파르기도 하다. 자동차가 중턱까지 올라가지만, 원래 산행 코스는 2시간쯤 걸린다. 돌계단 이어진 탐방로가 고약하다. 경사가 심해 무릎이 고생한다. 금산은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유일한 산악 공원이다.

제석봉에서 보는 상사암.남해 금산의 기암괴석 중 단연 돋보이는 건 상사암이다. 금산 오른쪽 자락 비쭉 돋은 자리에 솟아 있다. 상사암에서 남해 금산이 가장 잘 드러난다. 보리암을 가운데 품고 양쪽으로 날개를 펼친 듯한 산세가 장쾌하다. 풍수를 몰라도 천하 명당 금산이 보인다. 상사암에는 슬픈 전설이 전해온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루지 못한 사랑 얘기다. 그 전설이 이성복의 절창 남해 금산을 낳았다.

금산은 큰 산이다. 차 타고 올라가 보리암만 들어갔다 나오면 작은 산이다. 하나 금산에는 무려 38경(景)이 전해 내려온다. 관동 지방의 명승 8곳을 일러 ‘관동팔경’이라 하듯이, 금산 자락에는 38개나 되는 명승이 있다. 명승마다 전설이 서려 있고, 역사가 배어 있다. 중국 진시황의 전설이 내려오는 터도 있고, 신라 불교의 양대 산맥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참선했다는 자리도 있다. 비둘기(천구암), 두꺼비(천마암), 닭(천계암), 용(용굴), 돼지(저두암), 사자(사자암), 거북이(요암)도 있다.

보리암은 흔히 ‘3대 관음 성지’로 통한다. 관음보살을 모시는 사찰 중에서 내력이 깊고 유명한 세 곳을 이른다. 강원도 양양 낙산사의 홍련암과 강화도 보문사, 그리고 남해 금산 보리암. 각 동해와 서해, 남해의 관음 도량을 대표한다.

 

보리암 해수관음상이 서 있는 자리가 명당 중의 명당이다. 관음상 앞에 삼층 석탑이 서 있는데, 이 자리가 제일 기가 세다고 한다. 서재심(56) 남해군 문화관광해설사가 석탑에 나침반을 갖다 대니 바늘이 미친 듯이 춤을 췄다. 석탑 안에 사리가 모셔져 있다는 얘기도 있고, 석탑을 이루는 바위가 인도에서 건너왔다는 얘기도 있다.

남해 금산과 보리암은 경계가 모호하다. 걸어서 산을 오르다 보면 커다란 동굴 두 개와 맞닥뜨린다. 왼쪽 동굴을 통과해 조금 오르면 보리암에 들어선다. 쌍홍문(雙虹門)이라 불리는 이 동굴이 보리암의 일주문 역할을 한다. 사찰 일주문의 나한상이 험상궂은 것처럼, 보리암 쌍홍문도 해골바가지처럼 무섭게 생겼다. 금산이 보리암이고, 보리암이 금산이다.

상주은모래비치에 조성된 소나무 숲길을 걷고 있는 김장실 한국관광공사 사장과 이남철 상주번영회장.

1980년대까지 남해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는 상주 해수욕장이었다. 바다하면 빠지지 않는 부산에서도 상주 해수욕장으로 바캉스를 왔었단다. 1973년 남해대교가 개통하기 전까지는 부산에서 배를 타고 미조항에서 내렸었단다. 멸치 어항으로 이름난 미조항이 상주 해수욕장에서 멀지 않다.

상주 해수욕장은 문자 그대로 백사장이 펼쳐져 있다. 은빛 모래로 늘 반짝인다. 전국의 해수욕장이 모래가 유실돼 애를 먹는다지만, 상주 해수욕장은 여전히 드넓은 백사장을 자랑한다. 그 명성을 이어받아 지금은 상주은모래비치로 이름이 바뀌었다. 상주 해변을 끼고 상주마을이 있고, 상주마을 오른쪽에 김장실 사장의 고향 금전마을이 있다. 소년 김장실은 여름마다 부산에서 놀러 오는 형과 누나를 보며 성장했다.

 

 

"소원 하나는 꼭 들어준다" 보리암 관음보살의 전설

남해 금산에 올랐다.

ww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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