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가 사통팔달로 이어진 지금이야 그렇지 않지만, 과거 무주는 온통 첩첩이 산으로 둘러싸인 오지 중의 오지였다. 무주 출신 지인에게서 들은 이야기.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쯤, 그러니까 지인이 중학생 때 서울 친척 집에 올라와서 말로만 듣던 영화관에 갔다고 했다. 생애 첫 도시 나들이. ‘촌티’가 많이 났던가 보다. 매표소 앞에 줄을 서 있는 그에게 극장 관계자가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는 걸 보면. 무주읍에 살았지만, 혹 무주란 지명을 모를까 싶어서 그는 ‘무주 구천동에서 왔다’고 했단다.
그러자 더 묻지 않고 영화를 공짜로 보여줬다고 한다. 영화를 공짜로 봐서 신이 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문명과 동떨어진 곳에서 온 사람 취급을 당한 것 같아 씁쓸했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오지에서 살았는지’를 설명할 때면 늘 이 이야기를 꺼낸다.
지금 무주는 과거처럼 오지는 아니지만, 여전히 마을과 마을은 멀고, 인구는 적다. 무주군의 인구는 2만4000명이 좀 안 되는데 그것도 해마다, 달마다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전체 226개 기초지자체를 인구 순서로 줄을 세우면 220등. 그러니까, 뒤에서 일곱 번째다. 이웃하고 있는 충북 영동이나 충남 금산이 인구가 많은 편이 아닌데도, 무주의 인구는 그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게다가 지금 계절에는 여행자도 많지 않아 무주에서는 사람과 사람 간의 거리가 멀다. 굳이 유지하려 하지 않아도 거리두기가 저절로 되는 곳이니, 이쯤이면 코로나 시대에 이른바 ‘비대면 여행지’로 제격 아닌가.
봄날, 무주에 여행자의 발걸음이 뜸한 이유는 전적으로 ‘몰라봐서’다. 봄날의 무주는 ‘스펙트럼(分光)’이다. 봄볕이 무주를 통과하면서 다양하게 분광한다. 이를테면 지금 무주의 스펙트럼은 이른 봄과 늦은 봄 사이에 걸쳐 있다. 무주의 금강변에는 봄꽃이 지고 난 뒤 신록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늦봄 풍경이 있고, 덕유산 정상 향적봉에는 겨울 숲에 막 번져 나가기 시작한 초봄의 수채화 같은 기운이 있다. 보여주는 계절의 폭만큼 봄날 무주의 매력은 스펙트럼이 넓다. 압도적인 대표 명소가 아니라 그만그만한 매력적인 공간들이 도시와 시골, 강과 산, 자연과 인문을 아우르며 무지개처럼 여러 가지 색으로 분광한다는 뜻이다. 무주의 봄으로 떠나는 여행은, 그래서 하루하루가 길다.
# 무주에서 해야 할 일…금강변 걷기
당신이 봄날에 무주에 막 도착했다면 권하고 싶은 건 ‘걷기’다. 무주에서 걷기를 권하는 건 ‘걷는 일’을 해보라는 게 아니라, 걷는 길 위에서 ‘보고’ ‘느끼라’는 뜻이다. 방점은 걷기가 아니라, 보고 느끼기에 찍혀 있다. 지금 무주에서 보고 느껴야 하는 건 ‘봄의 색깔’이다.
무주에서 걷기를 권하는 길은, 따로 없다. 금강의 물길을 끼고 있는 길이라면 어디든 좋다. 굳이 지도를 짚어 걷기 코스를 따라가지 않아도 좋다. 차를 운전해 달리다가 강변 어디든 차를 세워두고 내키는 만큼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니 말이다.
다만 금강변을 걷고자 한다면 꼭 염두에 둬야 할 조건이 있다. 첫 번째 조건은 바람이 불지 않는 날일 것. 봄날 고요한 수면 위에 거울처럼 찍히는 신록의 강변 풍경이 아름다운 까닭이다. 신록을 거울처럼 비추는 금강의 물길을 따라 걸을 때의 느낌은, 높은 채도의 풍경화 속으로 걸어 들어온 것처럼 비현실적이다.
두 번째 조건은 해를 마주 보고 걸을 것. 역광을 받아 반짝이는 신록의 색감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아름답기 때문이다. 만일 바람이 많이 불거나 잔뜩 흐린 날이라면? 걷기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무주의 봄 풍경은 바람 부는 날과 불지 않는 날, 맑은 날과 흐린 날의 차이가 하늘과 땅이다.
‘금강변이라면 어디를 걸어도 좋다’고 했지만 이즈음 가장 걷기 좋은 코스를 추천하기로 한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라고 정해주지 않으면 걷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다. 한 번 더 강조해 말하지만, 굳이 이 코스를 따라갈 건 없다. 무분별하게 조성된 여러 이름의 걷기 길이 겹치는 다른 지역의 걷기 길과는 달리 무주의 걷기 길은 간명하다. 무주에서 기억해야 할 길의 이름은 ‘금강변 마실길’이다.
# 마실 가던 길과 학교 가던 길
금강변 마실길의 출발지점은 도소 섬마을공원이다. 도소 마을회관을 찾으면 주변에 공원이 있다.
공원에서 출발해 금강을 따라 대소마을과 대티마을, 상굴암마을, 잠두마을을 거쳐 종점 서면마을 까지 금강 마실길이 이어진다. 전체 구간의 거리는 20㎞ 남짓. 5시간쯤 걸리는 코스니 하루를 온전히 걷기에 투자하겠다면 가장 좋은 선택이다. 중간에 점심으로 도시락까지 준비해 간다면 금상첨화다.
코스를 다 걷기가 어렵다면 부남면사무소에서 잠두1교까지 10㎞ 남짓만 걷는 것도 좋다. 길이도 절반이고, 소요 시간도 절반이다. 이것도 길다면, 하굴마을에서 잠두1교까지만 걷는 방법도 있다. ‘잠두길’이라고도 불리는 이 길은 왕복 1시간으로도 충분한 가벼운 ‘산책’ 코스다.
‘금강변 마실길’과 함께 ‘금강 맘새김길’이라 이름 붙여진 걷기 길을 하나 더 추천한다.
산을 하나 타 넘어야 하는 길이라 산책이 아닌 트레킹 코스에 가깝다. 무주 뒤편에는 향로산이 있다. 무주를 감싸듯이 안고 있는 그리 높지 않은 산이다. 무주 사람들에게는 명산으로 치는 덕유산과 적상산보다 향로산이 더 각별하다. 무주 지역의 여러 초등학교 교가에 향로산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는 것만 봐도 그렇다.
금강 맘새김길은 4개의 코스가 있다.
첫 번째 코스는 여행 가는 길, 두 번째 코스는 학교 가는 길, 세 번째 코스는 강변 가는 길, 네 번째 코스는 소풍 가는 길이다. 그중에서 두 번째 코스 ‘학교 가는 길’이 단연 최고다. 이 길은 이름처럼 1970년대 향로산 너머 금강변의 내도리에서 아이들이 읍내의 학교로 통학하던 길이다.
무주고등학교 뒤 약수터와 내도리 후도교 사이를 잇는 3㎞ 남짓의 코스로 강변길 구간과 향로산을 오르는 가벼운 등산로 구간이 이어져 있다. 오지마을의 금강변 정취도 훌륭하지만 금강이 오메가(Ω) 형상으로 흘러가며 육지를 섬처럼 만든 내도리의 지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향로산 정상 전망대에서 보는 경치가 압도적이다. 길을 걷기 전에 친절하기 짝이 없는 무주읍의 무주관광안내소에서 ‘무주 마실길’이라는 걷기 길 안내책자를 챙겨가는 게 좋겠다.
# 기행과 취벽으로 그려낸 적막의 풍경
무주는 예로부터 산이 깊고, 겨울은 춥고, 마을은 멀었다. 인구마저 적었으니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무주 출신은 그리 많지 않다. 무주 출신 인물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이 조선 후기 화단의 거장, 최북이다. 기행과 취벽으로 자유롭게 떠돌며 평생을 그림에 몰두했던 인물이다. 천재적 예술가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그는 세상과 불화했다. 돈 몇 푼에 그림을 그려주고 밥을 먹으며 평생을 곤궁하게 살았지만, 자신의 그림을 알아봐 주지 않는 이들을 경멸했고 아무렇게나 그린 그림에 큰돈을 쓰는 양반들을 조롱하기도 했다. 그는 뜨거워 데일 것 같은 광기로 예술혼을 불태웠다. 하지만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때는,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의 기인다운 면모가 엿보이는, 전해지는 이야기 한 토막. 어떤 벼슬아치가 그림을 그려 달라고 했다가 최북이 거절하자 ‘가만두지 않겠다’며 협박했다. 그러자 최북은 ‘내 눈이 나를 저버린다’며 스스로 한 눈을 찔렀다. 극도의 광기와 섬뜩한 자기 파괴적인 행동이다. 최북을 흔히 ‘조선의 고흐’라 부르는 이유가 이 이야기 속에 있다. 조선 후기 화가 이한철이 그린 초상화에는 긴 수염에 왼쪽 눈만 뜨고 있는 최북의 모습이 있다.
조선통신사의 수행원으로 일본을 다녀오기도 했고, 당대의 명필 이광사와 함께 단양의 명승지를 유람하면서 산수화를 그리기도 했지만, 그는 낮은 신분의 아웃사이더였을 따름이었다. 사대부 출신의 문인화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얽매이는 것이 싫어 도화서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도화서의 화원은 그림을 그려 녹봉을 받았는데, 그는 오로지 그림을 그려서 생계를 유지한 ‘조선 최초의 직업화가’였다. 최북이 호를 ‘호생관(毫生館)’으로 썼던 건 이런 ‘프로페셔널 정신’에 대한 자부심이리라. 호생관이란 ‘붓(毫)으로 먹고산다(生)’는 뜻이다.
그림을 팔아 돈을 벌었다고 했지만, 그래 봐야 그게 얼마나 돈벌이가 됐을까. 최북은 술을 좋아했다. 돈이 생기면 술을 마셨는데, 하루에 대여섯 되의 술을 마셨다고 전한다. 돈이 떨어지면 모든 것을 팔아 술을 받아왔다. 만주로, 일본으로 다니면서까지 그림을 그렸음에도 그가 늘 쪼들렸던 이유다.
그의 그림 중에 대표작으로 꼽히는 것이 ‘공산무인도(空山無人圖)’와 ‘계류도(溪流圖)’ 그리고 ‘풍설야귀도(風雪夜歸圖)’다. 공산무인도는 ‘빈 산엔 사람이 없으나 물은 흐르고 꽃이 피네(空山無人 水流花開)’라는 소동파의 시를 화제(畵題)로 썼다. 문학적인 향기를 그림으로 담아낸 역작으로 꼽힌다. 계류도에는 ‘세상의 시비하는 소리 들릴까 늘 걱정해, 흐르는 물로 온 산을 에워싸게 했노라’는 글을 적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시끄럽다.
풍설야귀도는 그의 광기와 열정이 그대로 드러난 그림이다. 이 그림은 붓이 아니라 손끝에 먹을 묻혀 그린 ‘지두화(指頭畵)’다.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겨울밤 깊은 산골 길을 지팡이를 든 선비가 걸어가는 모습을 그렸다. 손가락과 손톱으로 강풍에 부러질 것 같은 나뭇가지와 칼날 같은 바위산을 그렸다. 엄동의 산길을 걷는 쓸쓸한 선비처럼, 지독한 가난과 신분의 제약 속에서 살았던 그의 마지막은 비참했다. 말년에 지독한 가난에 시달렸던 그는 어느 겨울밤, 술에 취해 성벽 아래서 얼어 죽었다.
# 등나무운동장과 대중목욕탕, 그리고 노란 리본
최북이 무주 출신이라지만 그의 흔적은 무주 어디에도 없다. 최북의 삶에서도, 그림의 화풍에서도 지역성이 희미하다. 하지만 무주는 최북의 이름을 내건 미술관을 짓고 그를 기린다. 세상에 불화하고 비극적 최후를 맞았던 그를 끝내 기억하는 곳은, 고향인 셈이다.
무주에는 ‘예체문화관’이 있다. 문화·예술·체육 분야를 아우르는 이른바 다기능복합공간이다.
영화관과 체육관, 운동장, 건강체험관 등을 들여놓았다. 이 부지에 전통문화 자원과 관광의 의미까지 보태 지은 전통공예문화촌을 지으면서 최북미술관(무주읍 최북로 15 / 063-320-5636)과 무주 출신 문학평론가 김환태문학관이 문을 열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최북미술관에서는 최북의 일대기와 조선 회화의 흐름, 그리고 최북의 작품 등을 두루 볼 수 있다.
미술관에는 최북이 그린 다섯 장의 원본 그림이 있다. 각기 다른 세 장의 산수도, 기이한 돌을 그린 괴석도, 그리고 ‘공한(空閒)’이란 화제의 산수화다. 원본 그림과 함께 대표작을 복제본으로 전시하고 있는데, 복제본이라 아쉽긴 하지만 작품의 매력을 느껴보는 데 큰 불편함은 없다.
최북미술관 말고도 예체문화관에서는 눈여겨볼 만한 것이 제법 많다. 꼭 보고 와야 할 것이 ‘등나무운동장’이다. 정기용(2011년 작고) 건축가가 햇볕 아래서 먼지를 뒤집어쓰는 무주군민을 위해 등나무를 심어 관중석에 그늘을 만들어내는 이른바 ‘그림자 프로젝트’를 볼 수 있는 운동장이다.
건축이 시멘트나 철 구조물의 조형미보다 사람들이 진짜 필요로 하는 것을 만들어주는 것이란 사실을, 이 운동장은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운동장의 등나무는 건축가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한 해 한 해 무성해지며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치렁치렁 피어나고 있는 보라색 등나무꽃이 이번 주말쯤 절정을 맞는다.
‘감응의 건축’을 지향했던 정기용은 무주 곳곳에 31개의 건축물을 세웠는데, 여기 등나무운동장 못잖은 감동을 주는 곳이 면사무소다. 그가 설계한 면사무소는 절반이 대중목욕탕이다. 대중목욕탕이 없어서 멀리 대전까지 다니던 주민들의 불편을 덜어주고자 공공기관 건물에다 과감하게 목욕탕을 넣은 것이다. 무주의 면사무소는 건축적 미감도 깃들어 있다. 시간을 따로 내서 면사무소를 둘러볼 것까지는 없다고 해도, 기왕 지나치는 길이라면 면사무소를 슬쩍 들러보기를 권한다. 도시의 모더니즘 건축이 잃어버린 자연과 인간의 교감과 감성을, 오지의 중소 도시에서 작은 불씨처럼 피워낸 건축가의 정신이 그곳에 있다.
예체문화관 마당에는 최근 보물로 지정된 누각 ‘한풍루(寒風樓)’가 있다. 전주 한벽당(寒碧堂), 남원 광한루(廣寒樓)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누각인데, 이들 누각이 모두 ‘찰 한(寒)’ 자의 이름을 가졌다고 해서 셋을 묶어 ‘삼한(三寒)’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한풍루의 정취도 정취지만, 아름드리 느티나무 가지마다 가득 묶어놓은 수천 개의 노란 리본에 더 눈길이 간다. 한풍루의 보물 지정을 기원하는 군민들이 두 손 모아 소원을 적은 리본이다. 한낱 행정의 일로 치부될 법한 일에도 주민들이 저마다 소원 리본을 매다는 곳이라면, 제 이익이 되지 않는 작은 일에도 마음을 모으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살기 좋은 곳’이란 건 틀림없는 것이 아닐까. 덧붙이는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 살기 좋은 곳은, 여행하기에도 좋다.
/ 국민일보 박경일전임기자
무주의 카페 명소
전국의 내로라하는 여행지마다 독특한 콘셉트의 카페가 속속 들어서고 있다. 변화의 속도가 느린 무주에도, 새로 문 연 감각적인 느낌의 카페가 몇 곳 있다. 안성면의 ‘정원산책’은 완만한 구릉 가장 높은 자리의 밭을 정원으로 잘 가꿔놓고 유럽풍 건물을 들여놓았다. 정원이 아름답다. 평화롭고 잔잔한 느낌의 전망도 좋다. 무주읍의 ‘전북제사 1970’은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내는 제사공장을 빈티지 감성으로 꾸민 독특한 카페. 진짜 창고를 개조해 만든 적상면의 ‘무주창고’도 도시 여행자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숙식(지역번호 063) 무주읍내에 모텔이 여럿 있다. J모텔(322-8686), 덕화리버사이드모텔(322-6900), 무주이리스모텔(324-3400) 등. 무주구천동계곡 쪽으로 가면 펜션과 콘도 등이 즐비하다. 덕유산국립공원 쪽에도 숙소가 꽤 많다. 무주덕유산리조트(322-9000), 무주토비스콘도(322-6411), 일성무주콘도 (324-5381), 무주심산유곡리조트(322-8011), 덕유산자연휴양림(322-1097) 등.
무주에서 가장 별미는 금강에서 잡은 민물고기로 만든 어죽과 도리뱅뱅이, 매운탕 등이다. 도리뱅뱅이는 1만 원선, 어죽은 6,000원 정도. 큰손식당(322-3605), 강나루식당(324-2898), 섬마을식당(322-2799), 앞섬마을식당(322-2799) 등. 구천동별미가든(322-3123)은 산채정식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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