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양면 원등산길 386 / 원등사 063-244-9430
‘청량산’이란 이름은 여러 곳에 있다. 봉화의 청량산이 이름났지만, 인천에도, 마산에도, 완주에도 청량산이 있다. ‘청량’이란 이름의 절집은 더 많아서 ‘청량사(淸凉寺)’는 전국 곳곳에 있다. 청량이란 이름은 중국에서 왔다. 중국 산시(山西)성 동북부 우타이(五臺)현에 청량산(3058m)이 있다. 불교 삼대 영장(靈場)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산이다. 중국 청량산에는 다타사(大塔寺), 칭량사(淸凉寺), 진가오사(金閣寺) 등의 이름난 절이 있다. 불교가 배경이 된 이름이니 우리 청량산에도 불교의 자취가 새겨 있는 건 자명한 일이다.
전북 완주의 청량산 눈썹 아래쯤에 천년고찰 원등사가 있다. 신라 때 체징이 창건한 천년고찰로, 신라말에 도선국사가 중창하고 조선 선조 때 일옥이 절을 크게 늘렸다고 전한다. 원등사는 본래 사찰이 아닌 ‘목부암(木鳧庵)’이란 암자였다. ‘나무 목(木)’에 ‘오리 부(鳧)’ 자를 쓴 건 체징이 날려 보낸 나무로 만든 오리가 앉은 자리에 세운 암자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원등사는 6·25전쟁 당시 공비토벌을 위해 국군이 지른 불로 사찰 전체가 다 불탔다. 1985년 이수련 보살이 사라져버린 절집의 자취를 더듬어 벼랑에 법당을 들여 법맥을 잇고 있지만, 워낙 높고 깊은 산중에 있어서 외지인들은 물론이고,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도 원등사를 아는 이가 거의 없다.
청량산은 원래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의 보처이다. 원등사라 쓴 푯말 아래서 사찰을 바라보면 마음이 맑은 사람의 눈에는 원등사를 지키는 부처님의 모습이 보인다고 한다. 바로 그 부처님은 진묵대사가 본 그대로의 부처님인 것이고, 다음에 이곳을 찾을 맑은 영혼의 사람들이 보게될 그 부처님일 것이다. 부처님께 합장을 드리고 좀더 가까이서 뵙고자 원등사까지 오르는 것은, 진리를 찾아가는 길을 한발짝 내딛는 것이다.
원등사까지는 차로 오를 수 있다. 가파르고 좁은 시멘트 도로를 따라 오르는 길이다. 운전에 익숙하지 않다면 내내 간담이 서늘해질 만한 길이다. 교행이 거의 불가능한 좁은 산길이라 차량이 마주치면 자칫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어 산 아래 길 입구에 차단기를 설치해뒀다. 바리케이드 앞에 적어둔 전화 번호로 문의하면 문을 열어준다. 불자든 아니든 상관없이 찾아오는 이들에게 문을 활짝 열어준다.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이나, 등줄기를 타고 내리는 땀도 원등사에 석굴법당에서 불어오는 청량한 한줄기 바람에 금새 날아가 버린다. 원등사는 바로 그런 곳이다. 더욱이 대웅전 터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산 아래 마을이나 자연의 오묘한 모습에 절로 두 손 모아 합장을 하게 된다. 그만큼 원등사는 가는 길도 아름답지만 도착해서 내려보는 모습 또한 아름답다.
원등사에서 대번에 눈길을 끄는 건 바위 동굴에 들보와 지붕을 달아서 지은 약사전
동굴 내부는 뭐 별다를 게 없지만, 법당의 건축과 동굴의 자연이 이렇게 잘 어울릴 수 없다. 절집 자리가 청량산 정상 바로 아래라 전망도 탁월하다. 가파른 벼랑에 강관 지지대를 받쳐서 테라스처럼 법당 앞마당을 만들어놓았는데, 여기에 서면 절반은 완주 시내의 도시 풍경이, 그리고 절반은 첩첩한 산중의 경관이 동시에 펼쳐진다.
대기가 청명한 날이면 이곳에서 좀처럼 믿기 어려운 경험을 할 수 있다.
전북 부안의 격포 앞바다가 바라다보이는 것. 전주에서도 한참 동쪽인 완주 땅에서 서해가 보이다니…. 그러고 보니 원등사라는 절 이름도, 전북 부안 월명암에서 수도하던 이가 이곳을 바라봤을 때 멀리 등불이 보였다고 ‘멀 원(遠)’에 ‘등잔 등(燈)’ 자를 써서 지은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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