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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상북도

왜관 한티가는 길 1코스 가실성당

by 구석구석 2022.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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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 한티가는 길

순례자가 되어 길을 따라 걷는다. 길이 끝나는 곳엔 언제나 또 길이 있다. 그 곳에서 길이 되는 사람들을 만난다. 길은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길이 된다. 저절로 사랑이 되어 순례자들을 맞는다.

저수지 고운 풍경에 자꾸 빠져든다. 연못과 노송과 벚꽃의 조화가 일품이다.
도암지의 소나무 / 충북일보

작은 터 위에 서 있는 가실성당 본당 풍경이 동화 같다. 로마네스크 양식이 제법 드러난다. 고전의 색채미가 더해져 고아하다. 붉은 벽돌이 맑은 하늘과 어울린다.

작은 성당이 아늑하고 고즈넉하다. 잘 가꿔진 정원이 편안함을 더한다. 하늘에서 내린 빛이 생명을 가꾼다. 소박한 고혹미에 한 번 더 반한다. 자연과 위대한 영적 유대를 갖는다. 성당을 둘러싼 벚꽃향이 코끝을 스친다. 잠시 멈춰서 꽃 향을 즐긴다.

가실성당

정원의 성모마리아상을 둘러보고 여정을 시작한다. 성당 뒤편 후문 쪽으로 길을 잡는다. 길은 성당을 나서며 바로 마을길로 이어진다. 공장지대를 지나는 초기 구간은 다소 단조롭다. 낮은 언덕을 벗어나니 평지로 든다. 포장도로가 끝나고 숲길로 이어진다.

가실성당 정원

제법 긴 소나무 길이 펼쳐진다. 가장 고운 자연의 액자가 눈앞으로 들어온다. 온 자연이 하나 돼 봄 색칠을 한다. 더해질 것도 덜어낼 것도 없이 담백하다. 파란 하늘 아래 잿빛 바위마저 조화롭다. 전망쉼터와 바람쉼터가 여행자들의 땀을 씻어준다.

한티가는 길의 테마인 '그대 어디로 가는가'

지금은 스러지고 만 숯 가마터와 옛 기도터를 지난다. 봄볕 아래 고요하게 걷는 맛이 좋다. 봄의 한복판으로 들어서는 계절의 맛을 즐긴다. 걷는 내내 모자람이 없다. 시원한 바람이 묘한 감동을 일으킨다. 청량한 울림이 숲 가운데로 조용히 흐른다.

솔 숲길

산이 뿜어내는 생명의 숨이 좀 더 가빠진다. 그 열기로 때 묻지 않은 봄꽃들이 피고 진다. 격렬한 몸짓으로 빚어내는 4월의 봄 풍경이다. 숲길로 들어서니 편안하다. 산벚꽃과 개복숭아꽃이 솔숲에 점점이 숨는다.

수수하면서도 예쁜 색깔이다. 걷는 내내 새 소리가 길안내를 한다. 요란하지 시끄럽지도 않다. 낮은 소리로 지저귀는 기분 좋은 데시벨이다. 길옆엔 보랏빛 고깔제비꽃이 함초롬하다. 금무봉 나무고사리 화석 산지에 닿는다. 생소한 이름이 낯설다.

순교자묘지

길옆으로 망자(亡者)의 무덤들이 널린다. 삶의 무상과 허무를 수없이 생각한다. 가끔은 명당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죽어서 스스로 명당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삶과 죽음의 아이러니를 생각한다. 사는 동안 복 짓고 업 짓는 일이 뭘까.

순례길1코스종착지로 십자가형상의 한옥지붕인 신나무골성지본당

한티 가는 길은 순례길이다.

칠곡군 동명면 득명리에 있는 한티성지를 찾아 가는 길이다. 한티는 19세기 초 천주교 박해 때 천주교인들이 피신한 순교성지다. 칠곡군이 국·공유지와 천주교 재단법인의 토지를 이용해 2016년 만들었다.

순교자들은 박해를 피해 한티에서 살았다. 포졸들을 피해 살다 죽고 묻힌 곳이다. 어떻게 보면 교우들이 박해를 피해 함께 모여 살던 곳이다. 무명 순교자들은 깊은 숲속에서 미사나 고해성사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이 묻혀 있는 성지다.

길은 모두 5구간으로 나뉜다. 1구간은 '돌아보는 길'이다. 2구간은 '비우는 길'이다. 3구간은 '뉘우치는 길'이다. 4구간은 '용서의 길'이다. 5구간은 '사랑의 길'이다. 가실성당을 나서며 바로 이어진다. 전체 테마는 '그대, 어디로 가는 가'다.


한티 가는 길은 45.6㎞의 100리 길이다. 걸으면서 수없이 이 물음의 답을 찾게 된다. 길옆 순교자 묘지 앞에 서면 더욱 또렷해진다. 죽음으로써 신앙을 지켰던 믿음을 보기 때문이다. 종교를 떠나 내 인생 행로에 대해 한 번씩 되돌아보게 한다.

모든 순례자들은 길 위의 사람이다. 믿음의 길을 사랑의 발걸음으로 걷는다. 걸을 수 있음을 기적으로 여긴다. 숙연해져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길은 일방통행로가 아니다. 모두 함께 걷는 마주 오는 길이다. 만나는 길이다.

아무튼 한티 가는 길은 순례길이다. 종교를 떠나 모든 사람에게 치유의 숲길이다. 서로 오가며 만나는 길이다. 순교의 고결함을 느낄 수 있다. 고귀하고 경건한 걸음으로 걸어야 한다. 그래야 올바로 느낄 수 있다. 영적 체험을 할 수 있다.

짧아 보이지만 결코 만만치 않다. 1구간만 해도 산을 3개나 넘고 저수지를 하나 끼고 돌아가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산티아고 가는 길을 닮았다고 전한다. 그래서 어떤 순례자들은 이 길은 '한티아고 순례길'로 부르기도 한다.

성인(聖人)들의 삶 속에서 나를 찾아보려 한티로 간다. 무욕(無慾)으로 산을 오르내리듯 삶도 그렇게 가꿔보리라. 그대 어디로 가는가.

[충북일보 2021.4 황우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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