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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서울 한강

성북 회기동 천장산 연화사

by 구석구석 2020.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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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시단봉(동장대)에서 칼바위 능선을 따라 동남쪽으로 마구 뻗은 가지산이 다시 갈라져 화계사의 주봉을 이루고 수유리 고개를 지나 번동의 서울 드림랜드가 있는 오패산을 이룬다. 여기서 다시 동남쭉으로 뻗은 구릉 줄기는 장위동 고개를 넘어 해발 140m의 천장산(天藏山)을 이룬다. 그 서남쪽 가지산은 회묘터(懷墓址:경희대 의료원 자리)를 서쪽으로 감싸돌아 다시 안화현(安禾峴:회기동 고개)를 넘어 청량사의 뒷산 봉우리인 바리봉을 이루며 다시 동남쪽으로 떡전고개(餠店峙)를 넘어 배봉(拜峯:110m)을 만들고 중량천과 청풍계천(청계천)을 만나 산줄기는 끝이 난다. 이렇게 북한산에서 뻗어 서울의 동쪽 외곽을 에워싼 한가닥의 산줄기 중간에 자리한 회기동과 청량리동에 걸쳐 천장산이 있다. 

‘천장산 연화사 삼성각의 상량문’에 따르면 “진여불보(眞如佛寶)의 청정법신(淸淨法身)이 시방삼세에 두루 하지만 드러나 보이지 않으므로 가람의 뒷산을 ‘천장산’이라 부른다”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불교사찰의 입지유형 가운데 가장 빼어난 명당터로서 “하늘이 숨겨놓은 곳”이라는 산이름을 얻었다.

일찍이 고려조에는 지리도참설을 크게 신봉한 예종이 오늘날의 서울인 남경(南京)에 친히 행차, 당시 문벌가문 출신의 거사 이자현(李慈賢)을 불러 삼각산 가지산인 천장산의 천장사에 머물게 하고 욕심없는 마음을 가르침받았다. 또한 조선조 초기부터 왕실의 능터로 주목받았으며 이와 더불어 능(陵)의 원찰을 자리잡게 했다. 

 

회기동 천장산에 자리한 연화사는 그야말로 번잡한 대학가 속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사찰이다. 경희대 캠퍼스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데다 사격이 크지 않아 수년 전만 해도 눈에 잘 띄지 않았지만 최근 들어 지역 사회에 활력을 불어 넣는 문화 중심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1499(연산군 5) 연산군이 생모인 폐비 윤씨의 명복을 빌기 위해 원찰로 세운 것이 바로 지금의 연화사다. 연산군은 억울하게 죽은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폐비 윤씨의 묘역인 회묘를 회릉으로 높이고 나무와 꽃을 심었다. 1950년까지 연화사 주변은 자연 속 사찰을 간직했다.

 

연화사에서 운영하고 있는 ‘회기마루 작은도서관’은 사찰도서관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상당한 부지와 비용을 들여 지은 도서관은 3000권의 장서와 36석의 열람석을 갖춘 규모를 자랑한다. 마루를 통해 방과 방이 연결되는 것처럼 도서관을 통해 주민들이 서로 소통한다는 의미로, 도서관 옆엔 인근 지역 중고등학생과 학부모를 위한 공부방, 카페 등 휴식 공간도 함께 마련했다.

2013년 문을 연 시민선방은 해가 갈수록 인기를 더하고 있다. 1주일 총 5회에 걸쳐 선원장 무심스님 지도에 따라 참선 지도가 진행되는데 평일 낮 시간 뿐 아니라 야간반까지 개설돼 있다. 한 달 평균 참가자가 150명에 달한다. 지난해 동안거 해제 후 떠난 인도 순례에 참가 인원만해도 약 50명.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尹)씨의 묘가 이 천장산을 주산으로 양지바른 곳에 자리잡았으며 뒷날 연산군이 회릉(懷陵)으로 고쳐 왕릉 규모를 갖추기도 하였다. 아울러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쫓겨난 연산군의 비 신(愼)씨의 묘역도 한때 회묘 경내에 마련한 적이 있다.  그 부근에 연화사(蓮花寺)를 원찰로 했으며 경종(景宗)의 의릉(懿陵)을 마련하면서 왕릉의 조포사로서의 기능을 했다. 때문에 천장산 남쪽 기슭의 청량리, 회기동 등의 땅이름을 낳게 한 계기가 된다. 그 뒤 조선조 말기에는 고종의 계비인 엄비(嚴 )의 영휘원, 영왕(英王)의 왕세자 진(晋)의 숭인원 등이 자리하여 조선조 왕실의 가족묘가 자리잡기도 하였다. 

 

오늘날에 이르러 임업시험장이 들어선 이래 한국개발연구원,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국산업기술정보원, 국방연구원, 한국산업연구원, 농촌경제연구원, 임업연구원과 경희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고려대학교, 광운대학교, 영화진흥공사,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등이 자리하여 명실공히 천장산이라는 땅이름에 걸맞게 하늘이 감춘 학문과 정보, 기술의 첨단 벤처밸리로서 그 기능을 발휘하고 있으니…. 또 한가닥의 가지산을 따라가노라면 배봉산 자락으로 영무원과 휘경원 터가 있고 서울시립대학교가 그 위용을 뽑내니 천장산의 지기(地氣) 탓일까! 

 

의릉 성북구 석관동 산1-5(사적 제204호)


조선제20대 경종과 계비 선의왕후 어씨(1705-1730)를 모신 는이다 경종은 숙종의 첫째 아들로 자손이 없이 즉위 4년만인 37세에 돌아가셨다 선의왕후는 함원부원군 어유구의 딸로 숙종 44년 (1718)에 세자빈이 되었다 경종이 왕위에 오른 후 왕비가 되엇으며 자손이 없이 26세에 돌이가셨다 이 능은 쌍릉으로 풍수지리설에 의해 왕과 왕비의 봉분을 앞뒤로 나란히 배치한 독특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자료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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