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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광주광역시

광주 남구-사직동 광주공원

by 구석구석 2014.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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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 21-1번지 일원 광주공원(구동공원)

 

광주공원은 광주시의 제1호 공원이다. 옛날에는 성거사가 있었으며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인들의 신사가 있던 곳인데 현재는 현충각과 광주시립 박물관, 시민관 등이 자리하고 있다.

 

광주공원은 1935년 신사를 개조하면서 원 형태가 많이 변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에 일본은 물론이고 멀리 몽고, 만주, 대만 남양 등의 아시아 여러 곳에서 많은 종류의 나무를 옮겨 심어 광주지방에서는 가장 많은 수종과 희귀한 나무가 밀집되어 있었으며, 마치 식물박물관과 같은 곳이었다. 그러던 것이 해방 후의 혼란으로 한때 공원이 황폐화하였다. 그러나 그 뒤 계속 식수를 하고 관리에 철저를 기하여 요즈음에 와서는 점차로 숲이 우거지고 있다. 현충탑을 중심으로 한 공터는 노인들의 휴식처로 애용된다. 광주공원은 장수의 상징인 거북이 형상을 하고 있다. 지금 이곳에는 1974년 새로 설립한 광주시립 국악원과 조선조 이래의 생활도구를 전시한 민속관이 광주시립박물관에 병설되어있다.

 

구동 22 광주향교(光州鄕校) 유형문화재 제9호 / 1985년 2월 25일 지정

 

광주시 구동 광주공원과 사동 사이 에 위풍있게 도사리고 있는 한무리의 한식 기와집의 군락이 유서깊은 광주향교(062-672-7008)이다. 원래 1398년 무등산 장원봉 아래 세워졌으나 호환이 잦 다고 하여 광주 동문 밖(지금의 동 명동)으로 이전 했는데, 1488년 홍수로 수해를 입게 되어, 광주 현감 권수평이 지금의 구동 자리에 세웠다.

 

그뒤 정유재란 때 왜군들에 의해 불타버렸는데, 다행히도 대성전 안 위패는 권일제가 화를 피해 안전한 곳에 보존하고 있다가 건물을 재건한 뒤에 다시 봉안하였다. 당시의 향교 이건 사적은 성종때의 문신 성현이 자세히 써서 남겼는데, 역사가 벌어지자 서민들이 마치 아버지 일을 돕는 아들들처럼 서둘러 불과 수 개월에 일을 마쳤다고 전하고 있다. 이때 완성된 향교가 대성전, 동서무, 명륜당, 사마제, 동서제, 전사청 등 현재의 규모와 거의 비슷한 것이었다.

 

 

 

구동 16-2  광주서오층석탑(光州西五層石塔) 보물 제109호 / 1963년 1월 21일 지정

 

 이 탑이 있는 곳은 원래 성거산 또는 성구강이라 불 리웠으며, 산의 모양이 거북 처럼 생겼다고 전해진다. 거북이 광주를 이롭게하는 상서로운 동물이라 생각하 여 광주를 떠나지 못하도록 거북의 꼬리 부분인 현향 교 위치에 성거사를 지을 때 완성 단계에서 무너지곤 했는데, 도승의 말을 듣고 거북의 목 위치에 오층석탑을 세운후로 절이 허물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탑의 상륜부는 모두 없어졌으나, 전체적인 상태는 매우 양 호한데, 통일 신라 시대의 이중기단 양식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 준다. 탑의 오층 몸체부 중 초층을 다섯개의 돌로 짜맞춘 것이 다른 탑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독특한 특징이며, 지붕돌의 추녀와 몸체부의 알맞은 비례, 상층으로 올라가면서 줄어드는 각층의 비율이 크지 않아 전체적으로 높게 보이면서도 튼튼한 안정미와 수려함이 넘치는 고려시대 탑 으로서, 뛰어난 수작이라 할 수 있다.



광주서오층석탑의 기단부는 통일신라 시대의 탑이 대체로 2층기단으로 되어있는 것과는 달리 고려시대 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단층으로 간략화되고 있다. 탑신부는 1층의 옥신석만 빼고 각층마다 옥신석과 옥신석이 모두 한 개의 돌로 만들어졌는데, 각층의 체감율이 적어 탑의 인상이 날렵하고도 높게보인다.

 

1층 옥신석은 2단의 별석으로 짰 는데 하단은 4매의 돌을 깎아 맞추었고 상단은 한개의 돌을 다듬어 만든 이형탑이다. 이런 형식은 고려시대의 탑에서만 볼수 있다. 옥개석은 추녀가 넓은 편이며 추녀 네귀의 위 아래가 모두 뒷쪽으로 되바라지도록 전각을 주고 있고, 층받침은 고려탑의 정형대로 모두4매이다.

 

옥개석은 받침마다 모서리에서 10㎝씩의 턱을 주어 체감에 균형미를 주고 있다. 2층 옥신석도 옥개석과 마찬가지로 1층 옥신보다 높이가 현저하게 줄고있다. 탑신 위에 있었던 상륜부는 모두 상실되었다. 이 탑은 1961년에 해체,보수했는데, 이때 2층 옥신석의 윗쪽에 사리공이 발견되었고, 그속에서 원형이 잘보존된 금동전각형 사리 장엄구를 찾아 냈다. 이 사리구는 현재 국립광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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