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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광주광역시

광주 광산구-소촌동 박용철시인생가 송정공원

by 구석구석 2014.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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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촌동 363-1 박용철시인 생가 062-944-1340 광주광역시기념물 13호(1986.02.07 지정)

광주 지하철 1호선 송정공원역 3번 출구 하차 - 약 460m 직진 - 영광통 교차로에서 우회전 - 약 730m 직진 - 소촌산단 삼거리에서 우회전 - 약 410m 직진 - 우회전 후 좌회전 - 약 80m 직진 - 우회전 - 약 100m 직진 - 용아생가 

 

이 집은 우리나라 현대 문학의 개척자 중 한 사람으로 초창기 시단을 빛낸 시인 용아 박용철(1904∼1938)선생의 생가이다. 선생은 이 곳에서 새로운 문명을 소개하고 자주독립 정신을 일깨워 주기도 하였다.

김영랑, 정지용, 정인보, 변영로 등과 문학 동인으로 활동하였으며, 1930년 「문예월간」을 창간하여 외국문학을 소개하였다. 1931년에는 김영랑, 정지용 등과 함께 순수시 전문지인 「시문학」을 발간하여 창간호에 대표작인 「떠나가는 배」「밤기차에 그대를 보내고」등을 발간하였고, 극예술연구회의 동인으로 신극운동을 전개하였으며, 해외 시의 이론을 번역하여 소개하기도 하였다. 이 무렵 문단은 프로문학에 깊은 영향을 받았으나, 그는 김영랑 등과 함께 순수시 운동을 펼쳤다.

 

정렬적이고 남성적인 그의 시세계는 30년대 서정시 발전에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선생이 시를 통하여 마음을 가다듬어 곱게 바치려 한 것은 티끌없이 향 맑은 시혼의 순정 세계였다. 그러나 그는 1938년 35세의 젊은 나이에 병사하였다.

1939년 「박용철 전집」을 간행하였는데, 서두에는 그의 대표작 「떠나가는 배」가 실려 있다. 후에 그의 아름다운 시 정신을 기리기 위해 후배들이 광주 공원에 시비를 세워 기념하고 있다.

용아의 생가는 1970년대 새마을 사업으로 초가지붕을 시멘트 기와와 슬레이트 등으로 개량하였으나 1995년 문화재 복원 사업을 실시, 다시 초가 지붕으로 복원하여 관리하고 있다. 본채와 사랑채, 행랑채, 사당, 서재 등이 남아 있다. 본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높다란 막돌 기단 위에 세웠다. 왼쪽은 부엌이며, 중앙 2칸은 방인데, 4개로 나누어 열리는 문을 갖고 있다. 나머지 2칸은 2개로 열리는 정자 살문이다. 사랑채도 5칸인데 오른쪽부터 부엌, 방, 마루의 차례로 되어 있다. 사당은 정면 3칸 ,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이다. 행랑채는 4칸으로 사랑채로 들어가는 대문이 있다.

이 집은 용아의 고조부가 지었다고 전해지나 19세기 후반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소촌동 산4-1 송정공원

송정주민과 광산구민의 휴식공간인 송정공원은 왜정 때 일인들이 금봉산자락 일대를 다듬어서 신사(神社, 일본이 자기 황실의 조상이나 국가에 큰 공로가 있는 사람을 신으로 모신 사당)를 세웠는데 해방 후 그것이 금산사(金仙寺)라는 사찰로 바뀌게 되었다.

일본의 왕조 천조대신과 불교의 석가모니가 자리바꿈을 한 셈이다. 광산구의 영지로서 현충탑, 노인당, 공립 송정도서관이 있으며 봄이면 온 산을 벚꽃이 뒤덮어 상춘객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으며 여름에는 녹음이 좋고 가을 단풍 또한 버릴 수가 없다.

 

송정공원내 광주송정도서관

관장실 062-940-8910, 관리과 062-940-8922, 상담실 062-940-8910

 

광주광역시교육청 산하 공공도서관으로, 지역주민이 원하는 다양한 정보를 신속히 제공하며 교육·문화공간으로서의 소임을 다하고 있다. "오늘날 나를 있게 한 것은 우리 마을의 작은 도서관이었다"라는 빌 게이츠의 말처럼 이 지역을 대표하는 평생교육기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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