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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서울 한강

성북구 정릉동 정릉 국민대

by 구석구석 2022.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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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2동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정릉 / 사적208호(1970.5.26)

정릉은 정릉길 또는 아리랑고개 쪽으로 온 후 아리랑시장을 찾으면 쉽게 들어올 수 있다. 아리랑시장에서 정릉까지 700m 정도. 관리사무소를 지나 왼편 양지바른 곳에 능이 안치되어 있다. 능 맞은편엔 나무가 우거져 그늘을 드리운 넓은 공간이 있어 방문객에겐 둘도 없는 휴식처. 정릉은 사적지라는 특성상 자전거, 인라인스케이트, 배드민턴 등의 스포츠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아이들이 안심하고 뛰어놀 수 있다.

매점을 지나 언덕길로 오르면 숨이 차지 않을 정도의 산책로가 나타난다. 1시간 이내에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아담하다.

 

정릉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후비 신덕왕후 강씨의 묘소이다. 태조는 고려의 풍습대로 향리와 서울에 각각 부인을 두고 있었는데, 강씨는 바로 서울에 있는 부인이었다. 고향에 둔 부인 한씨(韓氏)는 태조 등극 전에 죽었고, 등극과 더불어 왕후의 자리에 앉은 것은 현비(顯妃) 강씨로서 방번(芳蕃).방석(芳碩) 두 형제를 낳았다. 왕자의 난으로 이방원에 의해 현비(강씨) 소생의 두 왕자가 죽자 태조는 정사에 뜻을 잃고 태상당으로 있으면서 자주 정릉에 가서 불공에 정성을 기울였다. 그 후 능역의 광대함이 의정부에서 논란이 되었고, 태조가 죽은 뒤로는 정릉에 대한 박대가 노골화하였다가, 태종의 뜻대로 도성 밖 현재의 자리로 이장하였다.

청계천 광통교에 쓰인 거꾸로 놓인 정릉 병풍석 출처 : 한국아파트신문(http://www.hapt.co.kr)

정릉관리사무소 02-914-5133 / 09:00~18:30, 매주 월요일 정기 휴일 

광통교

1410년(태종 10) 홍수가 나 흙으로 만든 청계천 광통교(廣通橋)가 무너졌다. 돌다리로 새로 만들 때 그간 파묻어놓았던 정릉의 옛 석물을 사용하게 한다. 광통교는 당시 도성 안에서 가장 넓은 다리이자 가장 붐비는 다리였다. 태종은 신덕왕후 구릉의 석물들을 백성들이 밟고 지나다니도록 한 것이다. 신덕왕후에 대한 그의 미움이 얼마나 컸는지 알 만한 대목이다. 



/ 자료 - 한국아파트신문 / 프라이ㅣ데이 변선욱 / 한국관광공사

  

정릉동 국민대박물관 02 910 4212

국민대학교 박물관은 역사와 문화를 지식으로 하기 위한 종합교육의 장소이다. 우리 박물관은 학문적 전문성과 보편성을 추구하고, 지역문화 창달의 역할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천하고 있다. 박물관의 전시는 선사실, 고대실, 고려실, 조선실, 서화실, 민속실, 암각화실, 종교미술실, 특별기획실 등으로 구분하여 유물과 역사정보를 전시하고 있다.

특히 우리 박물관이 가지고 있는 고문서와 암각화는 다른 박물관이 갖추지 못한 자료로서, 그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현재 박물관의 모든 전시물과 수장유물은 디지털 이미지와 데이터베이스로 구축되어 보다 풍부한 정보 접근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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