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방방곡곡/서울 한강

서울 서소문동 정동길 덕수궁 서울광장

by 구석구석 2022. 12. 7.
728x90

 

태평로1가 시청앞 서울광장 02-731-6611

서울광장은 3.1운동, 6월 민주화운동 등 한국현대사의 한 획을 긋는 역사적 사건의 무대였으며 2002년 월드컵 기간에는 시민들의 축제의 마당이었다. 시청광장의 역사는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했다가 월산대군 개인집(덕수궁)으로 돌아온 1897년부터 시작된다. 황제의 자리에 오른 고종은 나라의 기틀을 새로이 하기 위해 덕수궁 대한문 앞을 중심으로 하는 방사선형 도로를 닦고 앞쪽에는 광장과 원구단을 설치하였다. 이때부터 대한문 앞 광장은 고종보호 시위, 3.1운동, 4.19혁명, 한일회담 반대시위, 6월 민주화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의 주요무대가 되었다.

 

 

 

도심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으며 주변에 역사문화자원들이 산재하여 국가적 상징성 및 역사성을 지닌 장소로 서울의 대표적인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으나 사람을 위한 광장이 아니라 자동차를 위한 교통광장으로 상습적인 교통혼잡과 정체로 몸살을 앓아오던 곳이었다. 또한 지하상가 및 지하보도로만 횡단이 가능하여 보행접근성이 매우 불리했고 장애자, 노약자에 대한 보행권 배려가 전무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보행공간으로 조성해달라는 시민단체들의 끊임없는 요구와 함께 시민여론조사에서도 광장조성에 대한 수요가 파악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서울광장이 붉은 악마의 응원의 메카로 부각되면서 시민결집과 커뮤니케이션 공간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본격적인 광장조성 논의가 진행되었다.

 

 

소공동87-1 원구단 

 

 조선호텔 내에 자리 잡고 있는 구한말의 대표적인 유적이다. 원구단은 조선시대의 제단으로 천자가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제천단을 말하는데 원단이라고도 한다. 조선 초기에는 제천의례를 억제함으로써 세조 때 원구제가 폐지되었다가 조선을 대한제국이라 하고 원구단은 1897년 고종의 황제 즉위식과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옛 남별궁 터에 원단을 만들어 조성한 단지이다.

 

화강암으로 된 기단 위에 3층 8각 지붕의 황궁우를 1899년에 축조하고 1902년 고종 즉위 40주년을 기념하는 석고단을 황궁우 옆에 세웠다.

 

세계적인 도시 서울의 혼잡한 도심 한가운데서 오아시스 같은 곳이 몇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덕수궁 입구에서 경향신문사까지 이어져 있는 정동길이다. 이 길은 특히 가을에 어울리는 길이지만 언제 걸어도 아름다운 길이다.

 

문인 이어령씨가 문화부장관 시절 '낙엽 쓸지 않는 길'로 지정하기도 했던 이곳은 바쁜 서울생활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게 해주는 작은 숲과 같다. 중간중간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돌의자는 돌담과 함께 이곳의 분위기를 한층 살려주고 있다.

 

덕수궁 돌담길은 조금 나이가 지긋한 이들에게는 추억의 장소이다. 이 길은 지금 덕수궁 돌담길보다는 정동길로 많이 부른다. 이곳은 자동차들이 속도를 내지 못하도록 경주 포석정의 물길처럼 만든 길 때문에 차량 통행도 줄어들었고 사람들이 걸을 수 있는 공간도 넓어져 제법 산책을 즐길 만 하다.

정동길 일대는 시립서울미술관과 정동극장, 스타식스 영화관 등이 모여 있어 문화벨트로 손색이 없다. 특히 최근에 이곳으로 이사와 문을 연 서울시립미술관도 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옛 대법원 건물을 손봐 문을 연 시립미술관은 고풍스런 분위기와 잘 정돈된 전시 공간이 잘 어울려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해내고 있다.

시립미술관 옆으로 나오면 옛 배재고등학교 자리에 만들어진 배재공원에 들를 수 있다. 입구를 들어서면 작고 아담한 높이의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제법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 그늘 아래서 미술관 관람에 팍팍해진 두 다리를 쉬게 할 수 있다.

 

배재공원 곁에는 100년 넘은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회인 정동교회(貞洞敎會)가 자리잡고 있다. 1887년 10월 선교사였던 아펜젤러가 정동에 있던 '벧엘기도실'이라는 그의 집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문을 연 이 교회는 우리나라 건축사에 있어서도 의미가 깊은 곳이다.

지금의 정동교회 건물은 사적 제256호로 1895년 12월에 착공하여 이듬해 9월에 준공된 붉은 벽돌 건축물로 기단(基壇)은 석조이고 종탑만은 3층이다.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이 교회는 종탑으로 가는 분위기 있는 계단, 이국적인 종탑 등이 있어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신혼 부부들이 많다.

 

정동교회와 길 하나 사이에 정동극장이 있다. 정동극장은 한국 최초의 근대식 극장인 원각사를 복원하겠다는 의도로 1995년에 건립하였다. 극장 건물은 460여 평의 대지 위에 지상 2층, 지하 3층의 철골 트러스 구조로 지어졌으며, 객석은 400석이다. 무대 시스템은 전통예술, 음악, 무용, 연극 등 모든 장르의 공연예술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되어있다.

 

발걸음을 신문로 쪽으로 계속 옮기면 정동문화벨트의 끝자락이라고 할 수 있는 난타전용극장에 닿게 된다. 정동교회에서 신문로의 정동스타식스 극장에 이르는 이 길에는 길 양옆에 은행나무가 늘어서 있어 단풍이 물들 무렵이면 노란 은행잎이 눈처럼 내리고 발 아래는 낙엽이 수북히 쌓인다.

 

정동스타식스 극장 안에 있는 난타전용극장에서는 이색적인 퍼포먼스인 난타를 즐길 수 있다. 해외에서는 'COOKIN'이라고 더 알려진 '난타'는 주방기구들을 우리 가락인 사물놀이의 리듬에 맞게 신명나게 두드리는 퍼포먼스로 이를 구경하는 관객의 스트레스를 말끔히 풀어준다.

 

 

 

중구 정동 3 서울성공회성당

서울유형문화재 제35호(1978.12.18 지정) 

대한성공회 02-730-6611

 

지하철 1호선 시청역 3번 출구로 하차 - 약 100m 직진 후 좌회전 - 약 50m 직진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주교좌성당으로서 조선 성공회 3대 주교인 마크트롤로프(Mark Trollope) 주교가 1922년 영국인 아더 딕슨(A.Dixon)의 설계대로 착공하여 1926년 5월 2일에 미완성인 채 992m²(300평)의 3층 구조로 헌당식을 가졌다. 이후 1993년에 원 설계도를 영국의 한 도서관에서 찾게 되어 본래 모습대로 1996년에 완공하였다.


이 성당 건물은 로마네스크 양식에 한국 전통 건축 기법을 조화시킨 아름다운 건물이다. 외형은 십자가 형태로서 다양한 선이 조화를 이루고 있고 성당 내부에는 좌우로 12사도를 상징하는 돌 기둥이 서 있고 전면 반원형 벽면에 예수 그리스도의 모자이크상이 새겨져 있으며 지하 성당에는 트롤로프 주교의 유해가 안치된 동판이 새겨져 있다.

 

 

▲ 서울 근대건축물 10선인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 중구 정동에 자리잡은 이 건물은 트롤로프 주교에 의해 1922년 완성됐다. 당시 정동은 개항기 서양 선교사와 외교관들이 머물던 특별 지역이었다. 십자형 평면의 로마네스크 양식과 한국식 격자무늬창이 어우러진 모습에서 한국 전통문화를 존중했던 영국인 트롤로프 주교의 포용성이 돋보인다.

 

덕수궁 02-779-5310 www.ocp.go.kr

덕수궁은 원래 궁터가 아니었다. 태조의 계비였던 신덕왕후(神德王后) 강씨(康氏)의 무덤인 정릉(貞陵)이 있던 곳이다. 태종 때 이 능이 옮겨지고 그 자리에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이 집을 지어 살았다. 이후 임진왜란 때 경복궁을 비롯해 대부분의 궁궐들이 타버려 의주(義州)까지 피난 갔다가 되돌아온 선조가 거처할 왕궁이 없자, 왕실의 개인 저택 중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이곳을 임시 행궁(行宮)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중화전

덕수궁 대한문을 들어가니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다리가 보인다. 이 금천교는 '

궁궐을 드나드는 모두가 맑고 바른 마음으로 나랏일을 살피라는 뜻'에서 명당수를 흐르게 하고 놓은 돌다리로 2개의 무지개 다릿발이 드리워진 다리다. 

덕수궁에서 즉위식과 조회를 비롯한 중요한 행사를 치르는 정전인 중화전에는 문무백관의 위치를 나타낸 품계석이 세워져 있다. 건물 내부에는 왕이 앉는 의자가 있다. 이 건물은 보물 제819호로 관리하고 있다. 

 

중화전은 고종 광무 6년(1902) 건립되었다. 이 건물은 처음 중층의 장대한 규모로 세워진 건물로, 2층으로 조성된 월대 위에 정면 5칸, 측면 4칸의 규모였다. 그러나 1904년 화재 뒤 재건되면서 단층 건물로 축소 되었다. 본래는 중화전을 둘러싸고 길게 행랑이 연결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어느하나 남아있질 않다. 중화문 위쪽에는 광명문이라는 현판이 붙은 정각이 있다. 흥천사 동종과 자격루등이 그 아래에 보전되어 있는데... 이 건물도 본래는 함녕전의 정문이었던 것을 일제때 지금의 자리로 옮겨서 전시각으로 사용하고 있다.

 

선조가 1608년 2월에 지금의 즉조당(보물 제820호)로 에서 승하하고, 광해군이 즉위하면서 덕수궁은 왕궁으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광해군은 즉위 직후 덕수궁을 경운궁으로 이름을 바꾸고 잠시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겼다가 되돌아 오게 된다. 그러나 광해군은 인목대비와 반목을 하면서 선조의 계비(繼妃)인 인목대비만을 남겨두고 창덕궁으로 옮기고,1618년에는 인목대비를 유폐시키면서 경운궁을 '서궁(西宮)'이라 낮추어 부르게 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인조가 즉조당에서 즉위하면서 왕궁은 이곳에서 완전히 창덕궁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집무실 및 접견실로 사용하던 서양식 건물도 보인다. 이 석조전 건물은 “

서양신고전주의 양식의 3층 돌집으로 광복 후에는 미소 공동위원회장과 국립박물관, 국립현재미술관을 거쳐 궁중유물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함녕전 정문이었던 광명문에는 흥천사 범종과 창경궁 보루각의 물시계인 자격루가 전시되어 있다. 이 자격루는 조선의 표준시계로 시간에 따라 쥐, 소, 범의 12띠 동물이 나타난다. 이 자격루는 세계 최고 시계로 국보 제229호이다.

 

덕수궁 내에는 위에서 소개하지 않은 건물이 많이 있다. 석어당, 덕흥전, 정관헌, 즉조당, 준명당 등이 있다. 아름다운 단풍을 구경하고자 덕수궁 내부 돌담길을 걸어보았다. 아직 단풍잎은 많이 물들지 않았으나 거니는 사람은 많다.

 

아름답게 단풍이 든 나뭇잎 아래에서는 고풍적인 담장과 단풍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멀리서 바라보는 단풍과 어울리는 중화전의 모습, 붉게 물든 단풍과 준명당과 즉조당의 아름다운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한국의 아름다운길 100선에 선정된 덕수궁돌담길

 

덕수궁 돌담길에서는 단풍잎이 떨어져도 치우지 않아 가을의 아름다운 낭만을 즐길 수 있다.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니 현재의 덕수궁 담장이 예전에 있던 담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도 있다. 예전에 있던 담장과 현재의 담장이 많이 차이가 난다. 예전 담장은 상당히 큰 돌로 성곽을 쌍은 듯 싸여 있고 담장의 두께도 예전 것이 더 두껍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덕수궁의 돌담길을 걸어보면 깊어가는 가을 아름다운 여인들도 많이 볼 수가 있다. 잎이 떨어진 돌담길을 많은 사람이 거닐다 보니 낙엽이라는 흔적을 잘 알지 못할 정도로 부서져 있다. 올가을도 얼마 있지 않으면 추억 속으로 사라질 것 같다. 

자료 - ⓒ 2007 OhmyNews 박하용

 

덕수궁 수문장 교대식 
 오전 10시55분 서울시청 서소문 별관 앞, 갑자기 북소리와 나팔소리가 울려 퍼진다. 덕수궁 정문 앞으로 삼삼오오 외국인들이 모여 들기 시작했다. 11시 정각, 덕수궁 수문장 교대식이 시작됐다. 양측 부대의 參下(참하ㆍ조선시대 부지휘관)가 암호를 통해 신분을 서로 확인하자 여섯 번의 북소리가 울리고 承政院(승정원) 注書(주서)가 지켜보는 가운데 열쇠함이 건네진다. 이어 양측 수문장이 巡將牌(순장패)를 교환하고 마주선 양측의 군사들이 군례를 행하는 것으로 15분에 걸친 교대 의식이 마무리됐다. 교대식이 끝나자 많은 외국 관광객들이 수문장과 함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들은 우리 전통의상과 취타대의 음악소리에 감탄사를 터뜨렸다. 덕수궁 수문장 교대식은 이제 ‘서울 관광 1번지’로 알려질 만큼 외국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시간은 오전 11시, 오후 2시, 3시로, 하루 총 3회 진행된다. 외국인뿐 아니라 광화문과 청계천을 찾은 한국인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수문장 교대식에는 모두 46명의 행사요원이 참여한다. 2006년까지는 공익근무요원들이 교대식을 진행했지만 현재는 이벤트 회사가 용역을 맡았다. 교대식 요원들은 오전 9시30분에 출근해 오후 5시30분까지 근무한다고 한다. 이들 중 3명은 군 의장대 출신이다. 요원들의 월급은 100만원 남짓. 그래도 “한국의 아름다운 전통을 외국인들에게 보여준다는 사명감으로 임하고 있다”고 말한다.  사랑을 완성하는 완벽 데이트 코스 덕수궁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의 분관인 덕수궁미술관은 1938년에 '이왕가미술관'이란 이름으로 설립되어 국립현대미술관이 1986년에 과천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48년간 한국 근대미술의 산실로 군림하던 곳이다. 덕수궁미술관이 들어선 덕수궁 석조전 서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관 건물.

 

 1 르네상스 양식이 엿보이는 덕수궁미술관과 덕수궁 석조전 동관. 한눈에 봐도 클래식하다. 2 덕수궁 안 산책로./   박성연

미술관 1층은 시청각실과 사무실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2·3층이 전시 공간이다.  덕수궁미술관은 원칙적으로 음식물 반입을 금한다. 따라서 여유로운 피크닉 타임을 즐기기는 어려울 듯. 대신 매점에서 간단한 음료나 과자류 정도는 판매하고 있다. 석조전 뒤뜰은 인적이 드문 연인의 인기 데이트 코스이니 참고하자.  

 

 1.경부 고속도로를 타게 된다면,한남대교를 바로 넘어 남산터널을 넘으면 종로2가다. 탑골공원앞의 종로2가 사거리에서 좌회전해 시청쪽으로 가면 된다.
2. 88도로를 탄다면 반포대교를 넘는게 빠르다. 반포대교를 넘고 남산1호터널을 넘으면 신세계백화점 앞으로 나오게 된다.여기서 직진한 다음 롯데앞의 사거리에서 시청방향으로 좌회전하면 된다. 

 DATA>> ●02-779-5310∼2 ●09:00∼17:30(월요일 휴관) ●입장료1000원 

박성연

 

 

정동 스타식스 맞은편 지하 1층 이빠네마 02-779-2757 

런치(11:00~14:30) 1만7000원, 디너(17:30~22:00) 2만6000원

 

 브라질 정통 바비큐 추라스코를 맛볼 수 있는 이빠네마는 이국적 정취가 물씬 풍긴다. 브라질에서 건너온 요리사뿐 아니라 손님들의 테이블에서 직접 고기를 곧바로 잘라주는 서버 역시 브라질 현지인이기 때문. 이빠네마는 이런 이색적인 풍경뿐 아니라 코스별로 다 먹은 후에는 자신이 원하는 고기를 무한정 먹을 수 있어 특히 고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생선초밥, 과일, 회, 샐러드 등 20여 가지의 샐러드바 또한 무한 리필. 종류별로 다양한 음식들을 무한정 먹을 수 있으니 뷔페나 마찬가지다.

 

디너에는 9가지 메뉴가 코스별로 나온다. 소등심, 양갈비, 닭다리, 칠면조 등으로 특히 브라질바베큐가 인기다. 양념된 고기를 꼬지에 꽂아 브라질식 바비큐 기계에 넣고 숯불에 구워내는 요리로 담백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이다. 우리 입맛에 맞게 현지 음식보다 덜 짜고 고소한 것이 특징이다.  

 

 

 

홀이 시원하게 뚫려있어 많은 사람이 모여도 갑갑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4명부터 30명까지 수용가능한 7개 룸을 갖추고 있어 회식장소로도 적당하다.  

  백혜선 기자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