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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강원도

정선 고한-삼탄아트마인

by 구석구석 2014.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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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삼척탄좌 정암광업소가 바뀐 예술창작공간

삼탄아트마인 주차장에 도착하자 '아빠! 오늘도 무사히'라고 적힌 '수평갱 850'이 눈에 들어왔다. 선로를 따라 약 500m 정도 수평으로 진입하다 45도 사선으로 내려가게 되는 850항이라고 불렸던 곳이다. 여기서 850은 해발 높이. 수평갱 앞에 놓인 노란색 탄차가 인상적이어서 보는 이마다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1962년 설립된 삼척탄좌는 한때 2천700명의 노동자가 근무했던 국내 최대 규모의 민영탄광. 면적만 해도 3만 9천500㎡. 폐광 후엔 정선군이 이 시설을 소유하게 됐고, 정선군은 다시 민관협치의 일환으로 ㈜솔로몬에 삼탄아트마인(대표 김민석) 운영을 맡겼다. 솔로몬은 2011년부터 녹슬고 버려진 옛 탄광시설을 미술관과 레스토랑으로 리모델링하면서 지난해 5월 24일 대한민국 문화예술광산 1호로 개장했다.

관람은 정문에서 입장권(19세이상 1만 3천 원·청소년 1만 2천 원·경로 및 5~12세 1만 1천 원)을 끊고 들어오자마자 만나는 삼탄아트센터 본관 건물 4층(해발 853m) 로비&전망 라운지에서 시작된다. 이 층엔 입주작가를 지원하는 작가 스튜디오 등 '아트 레지던시 룸'이 있다. 예술체험방으로도 이용할 수 있는 9개의 테마 방을 포함해 각 방은 독특한 스토리와 콘셉트로 꾸며져 있다. 럭셔리한 호텔이 연상됐다. 방 개수가 한정적이지만 일반 투숙객도 예약할 경우, 머물 수 있다.

한 층 아래의 현대미술관 CAM(Contemporary Art Museum)으로 이동했다. 한글로 '캠' 또는 '캐내다'라는 말을 '석탄 또는 예술을 캐내다'라는 의미로 풀어낸 곳이다. 지금은 개관 1주년 기념전 '삼탄삼현(三炭三玄)'이 한창이다. '검을 현(玄·BLACK)'을 주제로 독창적이며 개성 있는 작업을 하는 아티스트 3인(이재삼, 이재효, 박승모)이 초대됐는데, 삼척탄좌가 부활한 삼탄아트마인의 장소성을 잘 살려 냈다.

3층과 2층, 그리고 1층으로 내려가면서도 각종 전시 공간은 이어졌다. 그중엔 삼척탄좌 40년 역사를 보여 주는 '삼탄뮤지엄·자료실'도 있고, 김 대표가 세계 각국을 돌며 모은 작품을 보관 중인 수장고와 기획전을 여는 공간, 그리고 광부들이 화장실 혹은 샤워장으로 사용하던 공간을 설치미술 갤러리로 꾸민 '마인갤러리'도 볼 수 있다.

샤워장을 활용한 '마인갤러리4'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얼핏 봐서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독가스실을 연상시키는 샤워장 수도꼭지에서 전율이 느껴졌다. 게다가 당시 광원들의 건강 상태를 살피는 폐와 척추 엑스레이 필름, 고단한 광부 생활을 짐작게 하는 차용증 등이 전시돼 광부들의 고된 삶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기억의 정원'에 설치된 조형물 '석탄을 캐는 광부' 모습을 배경으로 삼탄아트마인 '레스토랑 832L'과 본관 건물, 키즈카페 DDB, 레일바이뮤지엄이 보인다.


이번에는 건물 바깥으로 나와 삼척탄좌의 중심시설, 조차장을 활용한 '레일바이뮤지엄'으로 향했다. 삼탄아트마인으로 들어오면서 본 거대한 권양기가 우뚝 솟아있는 바로 그 건물이다. 건물 자체가 하나의 박물관이었다. 갱도 산책이라는 프로그램으로 관람 복도를 만든 게 시설의 전부였는데 세월을 거슬러 묻어 나는 탄광의 역사를 눈으로,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행위예술가 신용구의 작품 흔적으로 보이는 마로 만든 붉은색 꽃이 갱도와 어우러지면서 묘한 느낌을 전달했다. 게다가 레일바이뮤지엄 실내에 흐르는 '글루미 선데이'의 애잔한 선율은 갱도를 걷는 내내 가슴을 파고 들었다.

▲ 4분에 1회씩 20t의 석탄을 끌어올리고, 1회에 400명씩 지하 채탄현장으로 끊임없이 광부들을 실어보내던 옛 삼척탄좌의 중심시설 조차장이 있던 삼탄아트마인 '레일바이뮤지엄' 실내 전경. 금방이라도 움직일 것 같은 탄차와 수직갱의 철 구조물, 강철로프, 움직이지 않는 컨베이어 등 그 모든 게 하나의 역사이자 예술작품이 되었다. 관람객들은 한쪽에 만들어진 철골 복도를 따라 갱도를 돌아보게 된다.

 

'레스토랑 832L'에 들렀다. 그렇다. 832 역시 해발 832m를 의미한다. 이곳에선 모든 게 해발로 표시된다. 탄광의 기계들을 제작, 수리하던 공장동 건물로 사용하던 건물답게 프레스, 도면 같은 것도 그대로 둔 채 리모델링했다. 레스토랑 메뉴엔 파스타나 돈가스, 피자도 있지만 탄광에 들어간 광부들이 즐겨 먹었다는 '광부 도시락'도 포함됐다.

본관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 안에 '더덕 판매'를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관의 도움 없이 민간에서 100% 운영하는 탓에 더덕이라도 팔아서 재정에 보탬이 되고자 했던 것일까? 김 대표에게 단도진입적으로 물었다. 그가 들려준 답이다.

"아트센터에서 왜 더덕을 팔고, 취나물을 팔고, 곤드레를 팔겠어요. 지역과의 상생인거죠. 지역 일거리 창출인 거죠. 지역 주민들 걸 우리가 팔아 줘요."

지역상생이라는 말이 확 와닿았다. 내친김에 어떻게 유지되는가도 질문했다. 김 대표는 "오는 10월이면 손익분기점을 넘어섭니다. 그것도 1년 만에요. 놀랍지 않습니까?"라며 사뭇 긍정 마인드를 표현했다. "운영비로 13억 원이 들어가는데 우리가 1년에 13억 원을 벌면 되잖아요. 그러려면 당연히 전시가 좋아야겠지요. 고정관념만 버리면 대박도 터트린다고 봐요. 영국 테이트모던 같은 곳은 자립하잖아요."

평생을 예술품 수집가로 살아온 김 대표, 그는 왜, 이곳에 투자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일까? "죽을 때 하나라도 가져갈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마음을 비우면 행복해요.수집가는 가치를 남긴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공유하는 시대를 넘어 공공적으로 가야 합니다."

김 실장도 비슷한 말을 했다. 삼탄아트마인엔 옛 시설만 있는 게 아니라 채우고 만들어 가는 공간과 시간, 사람이 있다고. 문화예술광산 1호, 삼탄아트마인의 실험이 꼭 성공하길 바라면서 함백산 만항재 '산상의 화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글·사진=부산일보 2014. 8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잘 데와 먹을 곳

삼탄아트마인(033-591-3001) 내 '아트 레지던시 룸'에 묵는다면 더 여유가 있겠지만 하이원리조트(1588-7789), 하이캐슬리조트(033-560-7712), 메이힐스리조트(033-590-1000), 오투리조트(콘도 및 유스호스텔·033-580-7000)도 근거리에 있다. 삼탄아트마인 내 '레스토랑 832L'은 아침, 점심, 저녁식사가 다 가능하지만 예약제로 운영되고, 인근 만항마을엔 닭백숙집이 많다. 특히 '만항할매닭집'(033-591-3136)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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