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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충청남도

당진-원당리 입한재

by 구석구석 2014.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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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기술센터 뒤에 자리 잡은 원당2리 입한재

 

조선시대 불운의 천재, 구봉 송익필 선생은 임진왜란 당시 면천군 마양촌(현 송산면 매곡리)에서 노년을 보낸 뒤 이곳 원당2리에 잠들었다.

 

 

타고난 멍에를 짊어지고 산 조선시대 철학자 구봉 선생. 그의 묘는 원당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경관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양팔로 감싸 안은 듯한 산자락 안에 위치해 묘에 오르면 원당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잘 정돈된 잔디와 소나무들이 병풍처럼 둘러싼 묘소와 깔끔히 정돈된 사당 입한재에서 후손들의 정성이 엿보였다. 매년 음력 10월1일에는 후손과 당진유림들이 함께 묘제와 제향을 지낸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율곡 이이나 이순신 장군은 우리에게 아주 익숙하지만 구봉 선생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율곡 이이, 이순신 장군, 송강 정철, 토정 이지함 등 조선시대 최고 학자들의 막역한 벗이자 그들이 스승 같은 벗으로 대하며 존중했다 한다.

 

‘조선 500년 유교역사상 최고의 도인’이라 칭송받던 구봉 선생은 서출이라는 신분과 아버지가 기묘사화와 관련돼 죽음을 당하면서 집안 전체가 역도로 몰려 힘든 생을 살아왔다. 그리해 구봉 선생은 벼슬길을 멀리하고 오직 학문에만 매진하며 살았다. 이이, 성혼 등과 사귀며 성리학에 통달했고 예학에도 밝아 김장생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다. 문장도 능해 팔대 문장가의 한사람으로 꼽힌다. 그는 20대 후반부터는 구봉산 아래에서 문호를 열고 후진을 양성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그의 문하에는 김집, 강찬, 김반 등 많은 학자들이 있었다.

 

임진왜란 국난 대비한 다양한 일화

 

이런저런 이유로 역사서에는 자세히 기록되지 않았지만 그에 대한 다양한 일화가 야사로 전해지고 있다.
이순신에게 거북선 제조법을 가르쳐 주었다는 이야기, 임진왜란 당시 이름난 의병장이었던 김덕령을 훌륭한 장수로 가르친 이야기, 남명 조식과 교유하며 임진왜란을 대비했다는 이야기 등 숱한 일화와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일화의 대부분이 임진왜란을 전후해 국난에 대비하고 인재를 양성하는 내용들이다.
이율곡에게 왜군의 침략을 알려준 것도 구봉 선생이라는 일화도 있다. 이율곡의 ‘10만 양병설’ 또한 송구봉의 지혜에서 나온 발상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역사서에는 당쟁에 휘말려 불우한 삶을 살아온 지식인으로만 그려져 있지만 구봉 선생에 관한 다양한 일화와 그가 함께 학문을 논했던 학자들과의 이야기에서 그의 뛰어난 재능과 인품을 엿볼 수 있다.

[자료 : 당진시대 우현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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