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는 까치산이 여럿 있다. 대개 까치가 많이 살고 있거나 까치와 관련된 전설 등이 깃들어 있는 산이다. 경북 청도의 까치산(615m)도 게 중 하나다. 다만 전설보다는 주변의 다른 산에 비해 유독 까치가 많이 살고 있는 게 구별되는 점이다.
자리한 곳은 청도군 운문면과 금천면의 경계지역이다. 흔히 말하는 영남알프스의 북단이다. 산군의 맏형인 가지산을 비롯, 운문산, 억산이 우뚝하고 문복산, 옹강산이 동쪽 울타리를 형성하는 곳이다. 물론 층층이 깎아지른 쌍두봉과 거대한 바위 덩어리인 지룡산, 고깔처럼 뾰족한 봉우리가 인상적인 귀천봉도 여기에 속한다. 달리 말하면 내로라하는 산들의 보고인 것이다.
까치산 역시 그들과 한 무리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산세는 그들에게 미치지 못한다. 현란한 명산과 평범한 야산의 대비라고 할 수 있다. 내세울 만한 멋진 암봉 하나 없고 자랑할 만한 그윽한 계곡 하나 없기 때문이다.
실제 산행을 해봐도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평일이지만 명색이 영남알프스의 끝자락인데도 전혀 사람을 만날 수 없었다. 대신 맞닥뜨리는 것은 깨끗하고 조용한 자연뿐이었다. 나무와 부대끼는 바람의 소리가 그랬고 화들짝 놀라 달아나는 날짐승의 움직임이 그랬다. 따스한 햇살 아래 기지개 펴는 봄의 소리는 더더욱 정겨웠다.
제법 남다른 매력도 눈에 띈다. 운문호를 내려다보는 즐거움이다. 탁 트인 전경은 아니지만 부분부분은 눈이 시리도록 바라볼 수 있다. 지금 찾으면 박무에 묻혀 조는 듯한 모습의 호수를 감상할 수 있다.
조망의 즐거움도 있다. 답사 당일은 흐린 날씨 탓에 마음으로만 느꼈지만 북단의 알프스를 죄다 볼 수 있다. 특히 억산의 하늘금은 최고다. 이런 점을 종합할 때 까치산은 큰 기대를 갖지 않고 찾으면 결코 실망을 주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
코스는 까치산은 물론 방음리 마을을 에워싸고 있는 산줄기 모두를 둘러보는 일주형으로 기획했다. 까치산만 갔다 오기에는 코스가 너무 짧고 또 원점회귀가 마땅찮기 때문이다. 물론 능선의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은 점도 충분히 감안했다.
구체적 경로는 다음과 같다. 청도군 운문면 방음리 새마을동산~방음공동묘지~571봉~까치산~정거고개~613봉~호거대갈림길~대리마을갈림길~495봉~403봉(방음앞산)~보갑사~(방음리)버스정류소 순이다. 걷는 시간은 4시간20분, 휴식을 포함한다면 5시간~5시간30분쯤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산행은 방음리 새마을동산에서 시작한다. 동산은 새마을선진지였던 청도를 기리기 위해 방음리 옛터에다 각종 기념석과 자료들을 시설해 놓은 곳이다. 청도에서 운문사행 버스를 타고 69번 국도를 거슬러 올라갈 때 운문댐을 지나 운문호를 벗어나기 직전 닿는 방음리 마을입구 버스정류소와 붙어 있다.
산행 들머리는 그곳에서 북쪽(운문댐 혹은 청도읍)으로 도로를 따라 3분쯤 가서 만나는 왼쪽의 시멘트 포장길로 연결된다. 그 길은 지난해 준공된 방음 공동묘지 진입로인데 묘지 바로 아래까지 150m쯤 포장돼 있다. 실질적인 산행 들머리 역시 그 길을 따라가야 만날 수 있다. 참고로 묘지 진입로 입구 능선 끝자락에 달려 있는 리본은 무시한다.
시멘트길이 끝나면 산길이 시작되는데 무덤부터 먼저 만나게 된다. 이 부분이 이번 산행의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의 등로는 그 무덤을 지나자마자 바로 만나는 세 갈래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크게 꺾이는 길로 연결된다. 직진 방향과 오른쪽 오름길은 또 다른 무덤으로 가는 길이니 들어서지 않도록 한다. 참고로 첫 무덤과 갈림길과의 거리는 불과 2m도 떨어져 있지 않아 첫 무덤을 만나자마자 바로 왼쪽으로 크게 꺾는다(거의 직각 방향)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그렇게 왼쪽으로 꺾었다면 눈앞에 물이 말라버린 아주 작은 개울이 보인다. 등로는 그 개울을 건너 2m 높이의 둑을 올라가 만나는 또 다른 무덤의 오른쪽 위쪽 능선자락으로 열려 있다. 복잡하게 설명했지만 세 갈래 갈림길에서 능선 자락까지는 10m가 채 되지 않는 것을 염두에 둔다.이후 능선 오름길을 따르면 571봉까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이어갈 수 있다. 첫 무덤에서 월성이씨 무덤까지 18분, '운문댐92' 철제 표지기가 세워져 있는 571봉까지 25분이 더 걸린다.
여기서 고백 한 가지. 사실 이 구간은 일반에 소개하기 망설인 부분이었다. 400m 이상을 치고 올라가야 하는 단점은 있지만 인적이 거의 없는 데도 산길이 뚜렷해 산행하는 맛이 여간 상쾌하지 않는 곳이다. 게다가 적당한 크기로 자란 청솔은 발걸음을 더욱 가볍게 하는 점이다. 그곳에서 맡은 풋풋한 솔향은 산을 내려와서도 사라지지 않을 정도였다.
까치산 정상은 571봉에서 남쪽으로 뻗은 능선으로 이어진다. 진행 방향의 왼쪽이다. 571봉에서 13분쯤 걸린다. 정상은 아담한 암봉으로 이뤄져 조망이 시원하다. 방음리 마을과 운문호가 발 아래 내려다 보이고 그 너머 주변의 산들이 둘러보는 눈길에 차례로 들어온다. 참고로 표지목에 새겨놓은 정상의 높이가 틀렸다. 실제는 615m인데 571봉의 높이를 기재해 놓았다.
이후 등로는 남쪽(진행 방향 정면)으로 뻗은 외길 능선을 따르면 된다. 577봉까지 6분, 삼각점이 있는 555봉까지 17분이 더 걸린다.
555봉을 출발, 12~13분 걸려 만나는 Y자 갈림길은 독도주의 지점이다. 여기서 정거고개로 향하는 등로는 오른쪽이지만 무심코 지나치면 왼쪽으로 빠지기 쉽다. 완만하게 진행해 오던 능선이 급격한 내림을 시작한다면 일단 의심하고 주위를 살펴본 뒤 진행하도록 한다. 이후 정거고개를 지나 능선 사면길을 만나는 갈림길까지 마루금을 따르면 된다. 정거고개까지 12분, 사면 갈림길까지 다시 12분이 더 걸린다.
사면 갈림길에서의 등로는 왼쪽의 사면길을 좇아도 된다. 하지만 그 길은 억산의 하늘금을 가장 잘 살펴볼 수 있는 613봉을 거르게 된다. 크게 힘들지 않는다면 능선 마루금을 따르도록 하자. 가까이서 본 억산의 하늘금이 정말 아름답게 다가온다. 삼각점이 있는 613봉까지 20분쯤 걸린다.
613봉에서의 등로는 진행 방향의 정면이다. 다른 방향의 길이 없기 때문에 반반한 등로를 따라가면 된다.
호랑이가 앉아 있는 모습을 닮았다 해서 이름 붙은 바위봉인 호거대(일명 장군봉)는 613봉에서 4분쯤 가면 만나는 오른쪽 갈림길로 연결된다. 워낙 독특하고 뚜렷하기에 멀리서도 식별이 가능한 바위로 이름 높다. 하지만 이번 등로에선 제외됐다. 아쉽지만 눈의 호사로만 만족하자.
등로는 역시 왼쪽 방향. 3분쯤 가면 또 다른 갈림길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613봉을 오르지 않고 우회한 사면길이다. 이후 진행 방향 정면의 마루금만 좇으면 581봉을 거쳐 대리마을 하산로가 있는 안부사거리, 그리고 보갑사 하산로가 있는 능선 분기점에 닿게 된다. 중간에 만나는 좌우의 사잇길은 무시한다. 518봉까지 10분, 안부사거리까지 15분, 다시 무덤이 있는 493봉까지 2분, 495봉까지 30여분이 더 걸린다. 581봉은 개집 우리 같은 녹슨 철창이 봉우리 오른쪽에 있고, 따뜻한 바람이 난다는 풍혈이 그 철창 오른쪽에 있는 곳이다. 581봉을 내려서면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거대한 바위 덩어리의 산은 운문사 입구에 우뚝 선 지룡산이다.
495봉에서의 등로는 두 갈래다. 사정상 조금 일찍 하산하겠다면 왼쪽의 지능선길을 따르면 된다. 산행 종점인 보갑사까지 25분쯤 걸린다. 여유가 있다면 오른쪽의 능선을 따르도록 한다. 시간은 20여분이 더 걸리지만 운문호를 다시 만날 수 있고 무엇보다 하산을 부드럽게 이어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등로는 진행 방향 오른쪽의 뚜렷한 능선을 좇으면 별 무리 없이 보갑사 아래 복개 주차장에 내려설 수 있다. 산사랑연구회가 방음앞산이라 명명해 놓은 표지목이 있는 403봉까지 25분, 보갑사 아래 복개 주차장까지 20분이 더 걸린다. 참고로 방음앞산의 높이는 산사랑연구회가 적시해 놓은 430m가 아닌 403m다. 안말음에서 방음리 버스정류소까지는 마을 진입로를 따른다. 정류소까지 6분쯤 소요된다.
산행 문의 051-461-4161, 박낙병 산행대장 011-862-6838. 글·사진=진용성 기자 ysjin@busanilbo.com
# " 방음산이라고요? 그런 산 없는데요… "
'방음산은 없었다?'
"뭐라 방음산이라고요. 듣지 못했는데! 어디 있다고요? 지룡산 맞은편이라고요. 어 그런 산 없는데…글쎄요 저는 금시초문입니다." 운문면 신원리 김종목 이장님의 말이다.
"방음산요? 우리가 4대째 여 살고 있고 내 나이도 육십여덟인데 그런 산 들어본 적 없어요." 운문면 방음리 홍영의 이장님의 말이다.
산&산의 이번 주 목적산은 당초엔 까치산과 방음산이었다. 계획 경로 역시 두 산을 잇는 일주코스로 기획됐다. 그래서 답사 또한 그 두 산을 잇는 코스로 진행됐다. 하지만 신문에 난 최종 타이틀은 '청도 까치산'이었다. 바로 방음산이 빠진 것이다. 연유는 위의 이장님들이 말한 것과 같은 이유에서다.
가능한 자료를 다 찾아보고 탐문도 해보았으나 방음산에 대한 어떤 언급도 찾을 수가 없었다.
물론 비슷한 한 가지는 있었다. 방음리 마을 안쪽에 자리잡은 보갑사 현판이었다. 그 현판엔 이렇게 적혀 있다. 방음동산보갑사(芳音洞山寶岬寺). 혹시나 싶어 주지에게 물었다. "5년전 저가 이 절을 세우면서 그냥 붙인 겁니다. 특별히 사료에 근거해 붙인 것은 아닙니다."
여러 산행기를 보면 방음산이 어딘지 모르고 지나갔다는 내용이 많이 나온다. 어떻게 보면 지극히 당연한지 모른다. 없는 산을 지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러 방음산의 위치를 표시해 놓은 산행기가 있다. 주로 개념도 상의 581봉을 지칭하는 경우다. 극소수지만 일부는 무덤이 있는 493봉을 지칭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두 봉은 방음리보다는 신원리에 가깝다. 마을 앞산을 두고 남의 지역 이름 부르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은 고래로부터 내려오는 관습에서 유추할 수 있다.
하지만 일말의 가능성은 열어두기로 하자. 혹 금천면 박곡리에서 방음산이라 부를 수도 있으니까 …. 진용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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