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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전라북도

고창 734번지방도-용산리 선운리 소요산

by 구석구석 2010.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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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소요산(逍遙山) 자락은 소요대사, 연기조사, 도선선사 등 당대 고승들이 머물렀고 수많은 문장가들이 태어난 곳이다. 그러나 선운산의 명성에 눌려 숨죽여 왔다. 다행히 최근 고창군에서 소요산(444.2m) 등산로를 개설하고 미당시문학관을 연계하는 ‘이야기가 있는 천리길 탐방로’를 조성해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특히 고인돌길(8km), 풍천장어길(10km), 질마재길(14km), 소금길(13km) 잇기와 연기지구 농촌용수개발사업의 일환으로 개설된 100m와 300m 농수로터널체험 프로그램 등을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다.


 

 

 

 

고창이 낳은 한국문학계의 거목 미당 서정주의 작품과 생애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문학관을 들었다. 육필원고, 사진자료 등 1만5000점이 전시되고 13세까지 살았던 생가도 복원했다.

 

 

미당서정주의 생가

 

선운리 안현마을(미당 서정주 선생 묘소)일대는 노란 꽃이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다. 석양에 비친 꽃밭은 마치 황금빛 카핏이 깔려 있는 듯 착각마저 일으킨다.

 

미당 서정주 문학관과 묘소, 질마재 고개, 선운산 도로변 등 일대 4만 5천평(꽃밭 조성2만 8천평)이 지금 국화로 뒤덮여 있다. 꽃대끝에 달린 꽃망울에선 노란 잎이 활짝 벌어져 벌써 꽃잎을 떨굴 지경이다. 4월의 선운사 동백꽃, 9월의 공음면 학원농장의 메밀꽃, 선운사 상사화로 이어지는 고창의 꽃잔치를 늦가을 국화가 이어가고 있다.미당 서정주 선생의 생애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리며 말들이 많지만 흐드러지게 피어난 국화꽃들은 아무런 죄가 없다.

이곳에 심어진 국화는 국화중에서 가장 향기가 진하다는 화단국(옥국)으로 3, 4월에 삼목 재배하고 5월중 본밭에 정식하여 꽃을 피웠다. 개화기는 10월 말에서 늦가을 무서리가 올 때까지 개화하는 만생종 품종으로 향이 진하며 꽃이 여러겹으로 되어있고 작아서 용도가 아주 많다.

 

고창국화축제의 특징은 타 지역의 국화축제와는 달리 순수 민간단체에서 국화꽃을 피워 관광객들에게 선을 보이고 있는 점이다. 사실 고창국화축제는 김제 ‘지평선축제’에 이어 도내에서는 두 번째로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는 가을축제로 전국에 알려져 있다.

소요산은 고창의 젖줄 인천강을 사이에 두고 높이가 같은 선운산 경수봉과 마주보고 있어 형제봉 또는 걸출한 문장가들이 많이 배출됐다는 의미로 문필봉이란 별칭을 얻었다. 보천교의 창시자 차경석, 인촌 김성수, 미당 서정주 등이 그 산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 동학혁명의 주인공 전봉준 장군 부친이 소요산 암자에서 글공부하며 길몽을 꾸고 전 장군을 잉태했다고 전해 온다.

 

소요사는 풍수지리상 제비가 깃든 연소혈(燕巢穴)로 소요산 목울대 부근(동쪽 암벽 아래)에 자리한 사찰로 백제 위덕왕 때 소요대사가 개창해서 얻은 이름이다. 신라 경덕왕 때 고승인 연기조사가 화엄사 중창과 고창의 소요사 등 많은 사찰을 창건했으며, 출생지가 고창 흥덕이라는 설과 하늘에서 연을 타고 우리나라에 왔다는 설도 있다. 정현도 인천강지킴이 회장의 말에 따르면 연기저수지 옆에는 연기조사가 창건해 한때 38개 암자를 거느렸던 연기사 터가 있다고 한다.

 

원광대 유승훈 교수에 의하면 조선 중기의 고승 소요대사의 부도를 백양사에서 발견했는데 추사 김정희가 쓴 소요사란 현판이 분실돼 안타깝다고 했다. 소요사는 조선시대 중기까지 대대로 이름난 승려들이 배출된 절로 정유재란과 6·25때 소실되었다가 최근에 다시 지었다.

 

소요대사는 담양출신으로 13세에 백양사에서 불도에 입문하여 서산대사에게서 신지(神旨)를 깨우쳤으며 백양사 주지와 조실을 지냈다. 저서로 <소요당집>이 있고 그의 부도는 장성 백양사, 담양 용추사, 지리산 연곡사 등 세 곳에 있다.

 

 

 ▲ 남릉에서 본 소요산과 연기저수지. 월간산

정상에서 북쪽은 곰소만과 죽도 너머로 드넓은 서해와 내변산의 산줄기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서쪽으로 눈을 돌리면 선운산이 한눈에 잡히고, 동쪽은 가까이에는 화시산, 그 너머로 내장산·방등산·입암산이 아스라이 마루금을 그린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무가 하얗게 밀려오며 소요산을 감싸는 장관을 연출한다. 북쪽은 미당 서정주가 유년기 고향사람들의 풍속을 산문양식에 담은 여섯 번째 시집 <질마재 신화>의 무대다.

 

연기마을에 있는 보천교의 창시자 차경석 생가 터와 묘소

차경석은 증산교 교주 강일순의 수제자로 1921년 정읍 대흥리에 본부를 둔 보천교를 세워 한때 신도가 650만 명으로 세력이 커져 일본총독인 사이토 마코토가 찾아갔을 정도였다. 지금은 생가 터와 묘소만 쓸쓸히 남아 인생무상을 말해 준다.

 

연기마을에서 동쪽 나무계단을 올라서면 묘소가 반기는 완만한 소나무 능선길이다.

바위 능선을 걸으면 ‘연기마을 0.9km’, 남쪽 수변산책로를 알리는 이정표를 만나고 고스락에 올라서면 서쪽의 선운산이 손짓한다. 팔각정에 오르면 사방이 탁 트여 훌륭한 조망대다(연기마을에서 40분 소요). 북쪽으로 연기저수지와 소요산, 서쪽은 선운산, 동쪽은 바위가 어우러진 능선이 한눈에 잡힌다.

 

남쪽의 인천강 볕의 병바위 옆에는 변인천 형제가 초막을 짓고 어진(仁)고을 수령은 물(川)을 잘 다스려야 한다고 주창했던 곳이다. 주변엔 아홉 개 바위가 있고, 걸출한 인재가 배출된 길지다.

길이 희미해지는 잡목 숲에서 수월산을 눈앞에 두고 산비탈을 빙 돌아가면 수월산삼거리를 만나고, 고스락에 오르면 산줄기가 북쪽으로 이어진다. 선운저수지 옆으로 흉물스런 석산개발 현장이 보이고 북쪽은 소요산이 다가온다. 넓은 등산로를 걸으면 콘크리트 포장도로인 연기재 사거리에 닿는다(연기마을에서 2시간40분 소요). 서쪽 연기마을과 동쪽 쇄점을 잇는 고개다.

 

콘크리트 길을 20여 분 오르면 고즈넉한 소요사가 중생을 맞는다. 입구의 거대한 암벽에 수많은 글씨를 새겨 자연을 훼손시켜 놓았다. 마치 수문장 또는 사찰의 일주문처럼 소요사를 지키는 거대한 바위에 수많은 이름이 새겨졌다. 인간의 부질없는 욕망을 엿볼 수 있다. 소요산 품에 안겨 있는 고즈넉한 소요사의 감로수로 목마름을 달랬다(연기마을에서 3시간 소요). 스님은 출타 중이고 벌들이 사찰을 지키고 있있다.

 

우리는 조망이 탁 트여 시원한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대웅전 앞 평상에서 땀을 식히며 오찬을 즐겼다. 10분쯤 오르면 대삼각점이 있는 소요산 정상에 닿는다(연기마을에서 3시간10분 소요).

 

북릉으로 하산하다 암봉을 만났고, 삼거리에 서면 북쪽은 미당시문학관이 있는 서당마을이다. 오늘 산행은 연기마을이 있는 남릉으로 잡았다. 사람의 흔적이 적은 호젓한 길을 걸으면 연기저수지 아래 검은 기와집이 날머리다. 곧이어 연기마을의 들머리를 지나 연기교 옆 강나루풍천장어집과 연기교에 닿는다(소요산에서 1시간20분 소요). 월간산 2009.8 김정길

 

강나루풍천장어(대표 김보연·063-561-5592)는 연기교를 지나 소요산 들머리에 있다. 넓은 주차장과 야외 벤치가 있는 장어요리 전문식당으로 장어 1만6,000원, 장어탕 7,000원, 장어완자 찜 9,000원. 복분자주 1병 8,000원.

 

선운사 입구에는 어느집이 맛이 있다고 하기가 무색한 풍천 장어집이 즐비하다. 이중 맛길회관(063-561-3421)은 고창산 갯벌 양식장어구이 맛도 그만이지만 참나물, 콩나물, 부추, 호박, 생채를 넣어 막된장으로 비벼먹는 보리밥이 일품이다.
30년째 식당을 해온 이묘순씨의 손 맛이 그대로 묻어나 시골의 맛과 고향의 맛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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