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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우리의 행정명은 광덕1리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저우리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한다. 마을 홈페이지도 저우리테마마을로 되어 있다. 저우리라는 이름은 저울에서 유래됐다. ‘비가 저울에 단 것만큼 정확하게 와야지 많이 오면 물난리가 나고, 적게 오면 가물어서 농사가 안 되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저우리로 불리게 됐다는 것. ‘저울→저울이→저우리’로 발음이 변한 것으로 추측된다.
낙동강의 너른 백사장을 앞마당처럼 두고 있는 저우리는 솔숲과 화천서원`옥연정사`겸암정사`부용대 등 안동의 선비 문화를 두루 살펴볼 수 있는 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저우리는 도로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나뉘어져 있다. 광덕교 오른쪽(대구→저우리 방면 기준) 마을에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빽빽이 서 있는 솔숲이 자리 잡고 있다.
저우리의 귀중한 자산이 된 솔숲은 경관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풍치림으로 조성됐다는 설도 있고 강바람을 막기 위한 목적인 방풍림으로 조성됐다는 설도 있다. 서애 류성룡(1542~1607)이 소나무를 심은 뒤 지었다는 시가 전해오는 점을 감안해 보면 소나무의 수령은 족히 몇 백 년은 된 것으로 추정된다. 솔숲의 소나무를 베어 화천서원을 지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저우리에서는 다양한 체험활동을 즐길 수 있다.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로 불리는 안동의 정체성을 보여 주기 위해 마련된 사군자체험관을 비롯해 야생화의 식생에 대해 알아보는 야외체험관, 미술체험관 등을 갖추고 있기 때문. 야외체험관 옆에 자리 잡은 사군자체험관은 양반(문관`무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국궁과 사군자 체험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궁체험에 사용되는 활은 모조품이 아니라 국궁장에서 사용되는 진짜 활이다. 사군자체험은 단순 체험을 너머 교육의 하나로 진행된다. 제대로 된 사군자체험을 위해 머리에 관을 쓰는 것은 기본이고 참가자들은 체험에 앞서 사군자에 대한 교육부터 먼저 받아야 한다.
농장체험도 가능하다. 딸기`토마토`멜론`배`고구마 등의 수확체험 프로그램이 계절별로 마련되어 있다. 체험은 단체뿐 아니라 가족 단위 관광객도 할 수 있다. 체험비는 사군자`미술`야외체험의 경우 1인당 3천~5천원이며 농장체험에는 1인당 1만원 이상이 든다. 체험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홈페이지(http://www.feelandong.co.kr)를 참고하거나 사무장에게 문의(010-9226-4830)하면 된다.
저우리에서는 민박(1박 3만~5만원) 또는 고택체험이 가능하다. 고택체험은 화천서원과 옥연정사에서 할 수 있으며 1박에 15만원이다. 화천서원과 옥연정사는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관리인이 화천서원과 옥연정사 옆에서 거주하며 보살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천서원과 옥연정사를 둘러볼 때는 말소리를 낮추는 것이 예의다. 저우리에서 배를 타고 하회마을을 둘러볼 수 있다. 뱃삯은 1인당 왕복 3천원이다.
서애 류성룡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산길,부용대~겸암정사~옥연정사
경북 안동에서 처음 갈 곳은 풍천면 광덕리에 있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 ‘부용대’다. 하회마을의 서북쪽 강 건너편에 있는 부용대는 안동을 대표하는 유학자 서애 류성룡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곳. 서애는 임진왜란 때 도체찰사로 군무를 총괄하며 이순신을 등용하고 훈련도감을 설치하는 등 국난 극복에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가 정계에서 물러난 뒤 낙향해 말년을 보낸 곳이 바로 하회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뵈는 부용대.
하회마을은 낙동강이 버선목처럼 부드럽게 감싸고 돌아가는 아늑한 풍광 때문에 예부터 물돌이동 또는 하회(河回) 마을로 불려왔는데, 부용대는 낙동강이 마을을 감싸도는 지점에 있어 절벽 위에 오르면 유장하게 흐르는 낙동강과 하회마을 전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부용대에서 하회마을 쪽을 바라보며 오른쪽 숲길로 들어서면 서애의 형이자 역시 유학자인 겸암 류운룡이 지은 ‘겸암정사’가 나온다. 정사(精舍)는 학문을 가르치기 위해 지은 집을 가리키는 말. 산자락이 낙동강을 향해 흐르다 숨을 고른 듯한 좁은 터에 있는 겸암정사의 누각에 올라서도 강 건너로 하회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부용대에 오르면 하회마을의 전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매일신문
안동에는 ‘무겸암 무서애(겸암이 없으면 서애도 없다)’라는 말이 전해져오는데, 겸암이 벼슬에 나서는 것을 마다하고 가정을 지키며 후학을 길러냈기 때문에 서애가 마음껏 정사에 매진할 수 있었다는 뜻이 담겨 있다. 혹자는 겸암이 높은 관직을 하지 않았을 뿐 학문적 식견은 서애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깊어 동생 서애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겸암정사에서 다시 부용대로 나와 왼쪽으로 이어지는 숲길을 따라 내려가면 그곳엔 서애의 공간 옥연정사가 있다. 임진왜란 뒤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서애가 겸암과 교류하며 후학을 기르기 위해 지은 곳으로, 규모는 작지만 대문과 안채, 사랑채, 별당 등이 모두 있어 양반가의 집 구조를 그대로 보여준다. 서애는 이곳에서 임진왜란 당시의 참상을 기록하고 전쟁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는 뜻을 담은 책 ‘징비록’을 썼다. 자녀들에게 조선 중기 대표적 유학자의 삶과 형제간의 우애를 알려주기에 좋은 공간이다.
풍천면 광덕리20 옥연정사 玉淵精舍 중요민속자료 88호
054-857-7005, 010-4334-2770 www.hahoehouse.co.kr
옥연정사는 하회마을에 있지 않고 건너편 서쪽 절벽 아래에 있다. 하회마을 삼거리에서(하회로 들어가지 마시고) 예천 구담 방면으로 1km정도 와서 부용대 방향으로 좌회전 - 광덕교 지나서 바로 좌회전해서 1~2분 정도 오면 된다. 하회마을에서는 나룻배 (편도 2,000원)를 타고 올 수 있다.
서애 선생은 원지정사를 지은 뒤에 마을이 가까워서 번거롭고 그윽한 분위기를 누리지 못하여 강 건너 부용대 기슭에 터를 잡아 놓았으나 가세가 빈한하여 정사를 마련코자 하였으나 지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탄홍(誕弘)이란 스님이 그 뜻을 알고 건축을 맡고 재력을 부담하겠다고 자원하여 1576(선조9년)에 착공하여 10년만인 서애선생 45세 때인 1586(선조19년)에 겨우 완공하였다. 선생은 그 후 부용대 서쪽 기슭에 있는 형(겸암선생)의 정사인 겸암정사를 부용대 층길을 이용하여 오가며 형제 사이의 정을 나누었다. 그리고 1605년(선조38년) 낙동강 대홍수로 하회의 삼칸초옥을 잃고 이곳에 은거하며 임진난을 회고하여 징비록(국보 132호)을 서술하셨다.
세심재(洗心齋)
서당채 주역계사편 중 의혹종사어사 이서기만일이(意或從事於斯 以庶幾萬一爾) ; 여기에 마음을 두어 만에 하나라도 이루기를 바란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리고 마루 감록헌은 왕희지의 '우러러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아래론 푸른물 구비 바라보네'라는 시어에서 따온 것이다. 감록헌 마루를 가운데로 두고 좌우 방 1칸이 있으며 서애선생께서 서당으로 쓰신 곳이다.
원락재(遠樂齋)
친구의 내방을 기다린다는 뜻으로 원락재(遠樂齋)라 하였는데, 이 명칭은 논어(論語) 중 '이른바 먼 곳으로부터 벗이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有朋이 自遠方來하니 不亦樂乎(유붕, 자원방래, 불역락호)아라는 뜻에서 따온 것이다. 그리고 2칸 마루 애오헌은 도연명의 시에 '吾亦愛吾廬(오역애오려), 나 또한 내 오두막집을 사랑하노라' 한 시어에서 따온 것이다. 서애선생께서 이 방에 기거를 하시며 징비록을 서술하셨다.
고가옥 전통 체험 가능 (1박2일)
전체 집 구조는 4채로 구성이 되어 있으며(대문채, 완적재, 원락재, 세심재) 고택체험은 '세심재'와 '원락재'를 이용하고 있음.
* 체험실 : 세심재(4인이하 방 2개, 감록헌 마루), 원락재(8인이하 방 1개, 애오헌 마루)
* 아침식사 및 다례(茶禮), 사군자 체험 가능
* 연락처 : 017-526-0410 / 010-4334-2770
* 체험비용
1) 세심재(4인 이하) 120,000~150,000원
2) 원락재(6인 이하) 160,000~200,000원
※ 입실 14:00부터 퇴실 11:00까지
광덕리 16-2 화천서원
겸암 류운룡 선생의 학덕을 흠모한 유림이 이곳에 선생의 위패를 봉안하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 정조 10년 (1786) 에 세운 서원이다.
정조 10년(1786)에 건립하여 9월에 겸암 류운룡선생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자인 동리 김윤안공과 종손자인 졸재 류원지공을 배향시켜 100여년 이상 춘추로 향사를 지내오다가 대원군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 서원의 훼철을 아쉬워하던 후손들은 1966년부터 기금을 모아 건물을 짓고 사림들의 공론을 모아 1996년 5월 2일 복설고유를 거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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