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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서울 한강

서울 종로-견지동 조계사 보성사터

by 구석구석 2009.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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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지동 45번지 조계사 종무소 02-732-2183

국세청옆에 위치 

국화축제 http://blog.daum.net/choogal/16515053 

 

조계사는 대한불교 직할교구 본사로서 조계종 총무원, 중앙종회 등이 자리하고 있는 한국 불교의 중심 사찰이다. 원래 고려 말(14C말엽) 현 수송공원(전 중동고등학교 위치)에 창건된 사찰로서 화재로 소실(연대미상)되었다가 1910년 한용운, 이희광스님 등에 의해 각황사란 이름으로 중창되었다.

 

그 뒤 태고사로 개칭되어 1936년 한국 불교의 최고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다가 1954년 일제의 잔재를 몰아내려는 불교정화운동이 일어난 후 지금의 조계사로 바뀌었다. 조계산은 중국 선불교의 육대 조사인 혜능대사 (638-713)께서 주석하셨던 산의 이름이다.

 

육조 혜능대사는 여러 선사 가운데에서도 특히 존경받는 분으로 그 일생과 가르침은 끊임없이 연구되어 수행의 지표가 되고 있다. 오늘날 조계사는 한국불교와 그 대표 종파인 조계종의 주요 사원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조계사 법당은 불교행사의 중심 장소로서 거의 일년 내내 법문이나 염불, 강좌, 또는 제사라든가 그 밖의 의식들이 거행되고 있다. 조계사 법당 뒤에 자리한 건물은 조계종 총무원으로서, 조계종단 전체를 관할하는 행정기관인 만큼 다양한 행사와 활동으로 분주하다. 1층의 불교회관은 전시회나 각종 행사장소로 이용되고 있으며, 이 건물 안에 자리한 불교신문사에서는 주간으로 불교 신문을 발행하고 있다. 법당 앞에는 1930년에 조성된 7층석탑이 있다.

석탑 안에는 부처님의 사리가 봉안되어 있는데, 이 사리는 스리랑카의 달마바라 스님이 1914년 한국에 모셔온 것이다. 이 석탑 양편에는 석등이 자리하고 있으며 법당을 바라보면서 왼편으로 종각이 보인다.

 

종각에는 큰북과 범종, 운판과 목어가 있어 아침 저녁 예불 때마다 울린다. 이는 비단 사 람들 뿐만 아니라 부처님의 깨달음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모든 중생들을 위한 것인데 큰북은 네발 달린 짐승을, 범종은 타락하거나 지옥의 고통을 받는 이들을, 운판은 하늘의 날짐승을, 목어는 물에 사는 짐승을 제도하기 위한 것이다.

 

종각 옆에는 1991년 말에 완공된 제 1문화교육관이 있다. 이 곳 문화교육관에서는 대체로 기도나 법회를 중심으로 활동을 해온 기존의 사원기능을 보다 확대하여 결혼식이나 세미나, 강연회, 연극공연, 음악제, 전시회와 같은 여러 문화행사가 열린다. 조계사 마당에는 오백 년이 된 백송 한 그루가 있다. 높이 12m, 둘레 1.67m로서 천연기념물 제9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법당 정면에는 사백년된 24m 높이의 회화나무가 있어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제 2문화교육관에 위치한 조계사 교화사무국은 한국 사찰 중에서 유일하게 본사에만 구성되어 있는 불법홍포 전담기구로서 2년제 불교대학을 운영하며 부설로서 초심자를 위한 기초교리 강좌, 경전연구강원, 다양한 취미생활을 위한 문화강좌 등의 교육업무를 관장하고 있고 매월 2회 조계 사보(신문)를 발간, 신도 및 일반불자들에게 불교계 소식과 불법을 전파하고 있으며, 특시 사찰관리 및 업무 전산화를 위해 전산실을 운영하고 있다.

 

조계사 산사체험 종무소 02-732-2115

조계사는 국제문화도시인 서울의 도심 한가운데서 휴식과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전통 사찰의 면모를 갖추고 있는 도량으로 새벽4시부터 밤 늦은 시간까지 내국인, 외국인, 불자, 일반인 모두 들러서 쉬어갈 수 있으며 불교관련 행사에도 참여할 수 있다.

조계사는 지리적으로 경복궁, 인사동을 잇는 문화벨트 안에 위치하고 있어 하루 평균 3백~4백여명의 외국인들이 방문하고 있다. 각기 다른 목적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을 위하여 프로그램을 세분화하여 운영하며 짧은 일정으로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도 한국불교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였다.

 

수송동 44 보성사터 

 

 보성사는 1910년 말 창신사와 보성학원 소속 보성사 인쇄소를 합병하여 만든 천도교 계통의 인쇄소이다. 3.1운동 동시 2만장의 독립선언서를 인쇄한 곳이기도 하다. 당시 보성사 사장이었던 이종일은 공장 감독 김홍규, 총무 장효근 등과 함께 1919년 2월 27일 이곳에서 독립선언서를 인쇄하여 자신의 집으로 운반한 뒤, 다음날 전국 각지에 배포함으로써 독립운동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보성사는 30평 2층 기와 벽돌집으로 전동 보성학교 구내에 있었으며, 보성사의 소유주이기도 했던  천도교 교주 의암 손병희의 특명으로 육당 최남선이 초안을 집필하고 민족대표 33인이 서명한 독립선언서를 넘겨 받아 사장 이종일, 공장감독 김흥규, 총무 장효근이 1919년 2월 27일 밤에 3만5천매를 인쇄 하였다. 일본측의 형사에게 발각되는 위기도 있었으나 족보책이라고 위장하여 위기를 넘겼다. 3월 1일에는 윤익선과 이종린, 이종일, 김홍규 등이 지하 신문인 조선독립신문 1만부를 게속 발행하였다. 일경은 보성사를 즉각 폐쇄하였으며, 1919년 6월 28일 밤에는 불을 질러 태워버린 이후 터만 남아 오늘에 전한다.

보성사는 현 종로구 조계사 경내에 있으며, 기념비와 동상은 조계사 후문 맞은편 근린공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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