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10동 300-6 삼성산성당 02-875-2271
신림역 3번 출구 방향 - 약 330m - 승리교 - 약 1.5km - 우회전 - 약 620m - 삼성산성당 도착
삼성산은 1839년 기해박해 때 새남터에서 군문 효수(軍門梟首)의 형을 받고 순교한 앵베르 주교와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가 1843년부터 1901년 11월 2일 명동성당 지하 묘소로 모셔 질 때까지 묻혀 있던 묘자리이다.
한국 천주교회 사상 처음으로 이 땅에 발을 디딘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1801년 신유박해로 순교한 후, 30년만인 1831년 조선의 천주교회는 중국 북경 교구에서 독립해 '조선 교구'로 설정된다. 이어서 1836년과 1837년 사이에 프랑스 선교사인 모방, 샤스탕 신부와 앵베르 주교가 입국 한다.
앵베르 주교는 지방을 돌아다니던 중 외국 선교사들의 입국사실이 알려지면서 교우들에 대 한 탄압이 가열되자 수원에서 가까운 어느 교우집에 몸을 숨기었다. 여기서 그는 모방, 샤 스탕 두 신부를 불러 중국으로 피신할 것을 권하였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단념하고 몸조 심을 당부하여 각기 소임지로 돌려보냈다.
바로 이즈음 한 배교자의 책략으로 거처를 알고 포졸들이 들이닥쳤다. 그는 화(禍)가 여러 교우들에게 미칠것을 염려하여 스스로 잡힌 몸이 되고 두 동료 신부들에게도 "착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해 목숨을 바칩니다"라는 말로 자헌치명(自獻致命)을 권유하였다. 자헌치명이란 박해중 교우 스스로가 관이나 관헌에게 자수하여 신앙을 고백한 후 순교하는 것을 가리킨다.
기해박해(1839년)가 시작되고 세 명의 외국인 사제는 38년 전 주 신부가 그랬던 것처럼 새 남터에서 이슬이 되는데 이때 앵베르주교의 나이 43세, 모방 신부와 샤스탕 신부는 35세로 동갑이었다. 이들의 시체는 사흘 동안 버려져 있다가 한강변 모래통에 묻히고, 후에 교우들의 노력으로 인해 큰 궤에 넣어져노고산에 매장되었다.
그리고 4년 후, 당시 파수를 피해 유해를 훔쳐낸 교우 중 하나인 박 바오로가 가문의 선산 인 관악산 줄기 삼성산에 유해를 이장한다. 삼성산에 1843년부터 1901년까지 58년간 묻혀 있던 세 성직자는 1925년 7월 25일 시복되었다.
1970년 5월 김수환 추기경과 노기남 대주 교, 오기선 신부는 이곳이 세 분의 매장지임을 확인하고 이를 기념하는 소형 비석을 그 자 리에 세웠다. 또, 1981년 9월에는 신림동 본당 교우들에 의해 구상 시인의 헌시와 비문이 새겨진 현재의 비석이 세워졌다.
1984년 한국 천주교 2백주년을 기해 세 성직자가 시성의 영광에 오른다. 이를 기념해 사적 지 부근의 땅 1만 6천여 평을 매입, 1989년 그 유해를 다시 천묘해 축성식을 가졌다. 그리고 1992년 신림본동 본당에서 분리, 삼성산 본당이 신설됐다.
신림10동 산78 삼성산성지 02-875-2271
삼성산(三聖山) 성지는 기해박해(1839년)때 새남터에서 서양인 성직자로는 처음으로 천주교를 전교했다는 이유로 사형을 선고받아, 1839년 9월 21일(음 8월 14일)에 군문효수의 극형으로 순교한 프랑스 선교사 성 라우렌시오 앵베르 범(范) 주교와 성 베드로 모방 나(羅) 신부, 성 야고보 샤스땅 정(鄭) 신부의 유해가 모셔진 곳이다.
신림역 3번 출구 방향 - 약 330m - 승리교 - 약 1.5km - 우회전 - 약 1.6km - 삼성산성지 도착.
신림10동 318번지 약수사(藥水寺)
약수사(藥水寺)는 대한불교 조계종 직할교구에 속해있는 사찰로서 산세가 수려하고 숲이 많 아 일찍이 남쪽의 금강산으로 불리웠으며 기암괴석이 장대하며, 골이 깊은 경기 오악(五嶽) 의 하나인 관악산 언저리 신림동에 위치해 있다. 본래 신림동은 마을에 숲이 무성하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조선시대까지 경기도 시흥군이었 다가 1963년에 서울에 포함되었다.
최초 창건연대는 세종대왕 3년에 무명대사가 창건하였다. 그후(고종 17년)에 명성왕후가 법 당을 중창하여 영험한 기도 도량으로, 신심 깊은 기도처로, 시주의 발길이 끝없이 이어졌다 고 한다. 그 뒤 1923년경에 화재로 인하여 전소된 것을 당시 주지스님인 영원 대사께서 다 시 불사를 일으켜 오늘날과 같은 수행납자들의 공부도량이 되었다.
1995년 설법전 중창불사를 다시 시작하여 1998년에 중창불사를 회향하고 신심깊은 불자들의 기도도량으로, 시민선방으로, 심신수련장으로 휴일에는 관악산을 찾는 시민들에게도 편안한 휴식처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신선하고 깨끗한 약수는 인근의 시민들과 불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가람 배치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왼쪽에 응향각이 있고, 정면은 설법전이 있으며, 동쪽으로 삼성각이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안에는 본존불인 석가모니 불 상과 좌우에 지장보살상, 관음보살상이 모셔져 있다. 그뒤에는 석가후불탱화, 칠성탱화, 신 중탱화, 지장탱화, 산신탱화가 있다.
삼성산 호암산성능선
신림13동 721-2 신림굴참나무 천연기념물 제 271호 / 1982년 11월 4일 지정
수고 17m, 가슴둘레 2.5m
이 나무는 참나무과에 속하는 굴참나무로 수령이 1,000년이나 되는 노거수이다. 이 같은 참나무류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잘 자라는 수종인데, 오랜 세월동안 인위적인 식재와 육림으로 자원을 확보하지 않고, 필요에 따라 여러가지 방면으로 활용만 되었다.
특히 우리나라 전래의 숯을 참나무로 구웠으므로, 자연번식으로는 수요에 충당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 나무와 같이 수형이 좋고 수관폭이 방대한 노거수는 남아있는 것이 드문 실정이다.
전설에 의하면 강감찬 장군이 이 곳을 지나가다가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자라서 현재와 같은 커다란 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인근에는 장군이 별당으로 사용하였다는 칠불사가 있으며, 연2회 음력 7월 1일과 10월 1일 수명 보존(목신)과 동리의 평안을 위하여 고사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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