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편자도 약이 되는 부산 초재골목
“무릎 아픈 사람들, 신경통을 달고 사는 사람들에게 특효인 말뼈 있어요. 갖은 약재와 함께 달여먹으면 아픈 관절이 씻은 듯 낫는다고 하더구만요. 큰 아이가 올해 몇 살이지요? 밥상머리에서 투정하고 혈색이 안 좋은 녀석이 있다면 개구리 말린 것 한번 써 보지 그래요. 애들 입맛 잡는 데는 이것만한 것이 없다고 하는데…. 간이 좋지 않은 사람에게는 인진쑥과 굼벵이가 딱이에요.”
부산시 중구 남포동. ‘영도다리 밑길’로 잘 알려진 이곳에는 80여년 전통의 ‘초재(草材)골목’이 자리잡고 있다. 초재란 한약재와 민간 처방용 생약재를 가리키는 말이다. 초재 가게 20여곳이 몰려 있는 이곳은 규모 면에서는 서울의 경동시장이나 대구 약령시에는 비할 수 없는 ‘미니급’이지만 웬만한 재료는 대부분 갖추고 있는 ‘만물상회’다.
골목을 들어서자 이름 모를 약재들이 수북이 쌓여있는 초재집들이 반긴다. 가게 앞에 주렁주렁 매달린 것이 꼭 북어 모양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껍질째 벗겨 말린 개구리들이다. 바짝 말린 도마뱀도 매달려 있다. 두꺼비와 자라, 굼벵이는 물론 애벌레로 꽉 찬 벌집들도 저마다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동물 보호론자들이 보면 기겁을 할 장면이다.
골목 안, 파란색 간판의 ‘박가 초재’가 눈에 띈다. 창문에는 ‘말뼈’ ‘굼벵이’ ‘지네’ 같은 글귀가 떡 하니 붙어 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양삼순(70) 할머니가 배달 나간 아들을 대신해 손님을 맞고 있었다. “이 골목을 오래 찾은 단골이라면 어느 초재상이 어떤 증상에 효험 있는 비법을 가지고 있는지 훤히 알 걸요. 관절염 치료에 효과를 보는 집은 어디인지, 어떤 초재상이 당뇨 치료에 좋은 재료 혼합 비법을 가지고 있는지 등등….”
초재상 안에는 온갖 약재들이 즐비했다. 남자에게 특히 좋다는 도마뱀 말린 것, 허리 아픈 데 특효가 있다는 말린 지네 등 동물성 재료부터 시커먼 생강 모양의 ‘저령(猪)’, 몸의 부기를 빼준다는 ‘욱리인(郁李仁)’, 역한 냄새가 나는 ‘패장(敗醬)’ 등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재료들이 상자에 가득 담겨 있었다. 얼추 세어본 재료의 종류만 400여가지에 달했다.
충청도 예산이 고향이지만 시집을 오면서 부산에 정착하게 됐다는 양 할머니는 인삼 판매를 하던 남편(박영수·70)의 친구 가게를 드나들면서 어깨 너머로 터득한 안목으로 초재상을 열었다고 한다. 지금은 아들 박인구(44)씨 내외와 함께 가게를 꾸려나가고 있다.
마침 아들 박씨가 배달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는 “‘믿거나 말거나’식이지만 기상천외한 재료를 구해달라는 고객도 적지 않다”고 했다. “집이 잘 안 팔릴 때는 말편자를 집안에 걸어놓는다거나 남편의 바람기를 잡으려면 고양이 수염이나 쥐꼬리를 구해 남편의 베개 속에 넣어둔다는 식이죠. 요즘 같은 21세기에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싶죠? 하지만 다 나름대로 그럴 만한 속사정이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아오는 손님들인데, 어떻게 그냥 없다고 돌아가라고 해요. 우린 그렇게 못해요.”
난치병 환자부터 남편 바람기 잡겠다는 부인까지 / 민간요법·비방 찾아 발길 이어져
말편자는 어디서 구할까? 박씨는 “경마장에서 구해다 판다”고 했다. 1000원도 받고, 2000원도 받고, 값은 대중이 없다고 했다. 재료가 무엇이든 주문을 받으면 전국 곳곳의 재료상에게 수소문하거나 직접 가서 가능한 한 100% 구해다 준다고 했다. “우리 초재골목의 단골 손님은 부산이나 경남 일대뿐만 아니라 수도권과 강원도, 멀리 제주도에 사는 사람까지 다양해요.” 이곳을 찾는 사람 중에는 약재 공부를 하는 한의과 학생도 적지 않다고 했다.
박씨는 “재료는 대부분 산지에서 직접 사오거나 손으로 직접 캐고 잡은 것”이라며 “서로 믿지 않으면 초재골목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오래전부터 거래해 왔고, 나름대로 효험을 봤다는 단골과 거래하기 때문에 중국산을 국산이라고 속여 팔 일도, 살 일도 없다는 것. “모든 재료는 자연에서 얻은 방식 그대로 사용하지. 가공이 없다니깐. 자연에 속한 인간의 몸인데, 자연의 것으로 다스리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무에 있겠소.” 양 할머니가 거들었다. “아범아, 우리 가게가 영화에 나온 얘기도 좀 해 드려라.” 2002년 말 조인성과 장혁 등이 출연해 개봉됐던 한·중 합작영화의 촬영 장소로 ‘박가 초재’가 스크린에 잠깐 비쳤다는 박씨의 설명이 이어진다.
원래 초재골목은 남포동 방면 좌우 도로에 좌판과 천막을 친 노점상이 모여들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싸고 질 좋은 약재를 구해 이곳을 찾았던 사람들의 입소문이 나면서 널리 알려졌고, 1998년 부산시 청사 이전으로 도로가 정비되면서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고 한다.
한창 잘나가던 시절만 해도 40여곳의 초재상이 북적거리며 명성을 날렸지만, 지금은 20여곳이 남아 있다. 의학이 날로 발전하고 주변 상권도 열악해지면서 초재골목을 찾는 사람의 발길은 크게 줄었다. 하지만 요즘처럼 계절이 바뀔 무렵이면 주말을 맞아 이곳을 찾는 주부나 중·장년층 단골로 골목이 적잖이 북적댄다.
이곳 골목의 초재상은 대개 2대에 걸쳐 가게를 지키고 있다. 수익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누군가는 자리를 지키며 초재골목의 명맥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라고 한다. “요즘이야 하루가 다르게 신약이 개발되고, 가까운 한방병원에서 한약 처방을 쉽게 받을 수 있지만 예전에는 어디 그랬나요? 이곳에서 구하는 재료를 섞어 만드는 치료제가 날렸지요.” “과학적으로 얼마나 효험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옛 조상들의 삶을 통해 하나둘 터득되고 전수된 치료법들 아닙니까. 우리 앞산과 뒷산, 들녘마다 솟아나던 자연의 치료제잖아요.” 상인들의 자랑이다.
생소한 약재 이름, 발가벗긴 몸을 드러낸 개구리의 모습을 보고 그 효험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예 초재골목을 찾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강산에 사는 촌로의 손끝에서 얻어진 오랜 경험이 누군가의 원기를 회복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이곳 초재거리는 마지막 희망이 될 것이다. 새로움과 변화에 편승하기에도 바빠 무엇인가 사라진다는 것이 그다지 슬픈 일도 아닌 시대. 부산 영도다리 초재골목에서 할머니의 약손과도 같은 예스런 처방 약재들을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다시 물어본다. “그러니까, 이 말뼈가 어디에 좋다고요?”
주간조선 1954호 정혜연 KNN 방송작가
남포동1가 62번지 자갈치건어물시장
남포동 지하철역에서 영도다리쪽으로 가는 길에 한약재거리를 만나게 되는데, 한약재거리에서 자갈치시장으로 가는 길목에 건어물시장이 위치한다.
전국 최대규모로 자갈치시장과 영도대교 사이 남항 바닷가에 있는 건어물시장은 김, 멸치, 오징어, 문어, 대구포, 굴비, 새우, 미역 등 마른 해산물이 다양하여 손님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특히 일본인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재래도매시장이다. 아직 주차시설이 없는 관계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한국관광공사
일제 강점기인 약 70년 전에 어업 연합회로 출발한 [자갈치 건어물시장]은 남항 해안이 매립되고 영도대교가 개통되었던 1934년 11월 부터 상가가 조성되었다. 해방 후에는 수산업 협동조합으로 발족하였다. 현재는 상가번영회(051-245-9355)를 중심으로 하여, 180개 정도의 점포에 300명 정도가 상업에 종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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