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고속도로 서전주나들목에서 나간다. 나가자마자 우회전해 1km쯤 가면 오른쪽에 남양 사이버아파트 쪽으로 빠지는 작은 길이 나온다. 여기서 아파트 앞을 지나 2.5km 직진하면 왼쪽에 원반교 물고기마을이 나온다. 전주에서 홍개마을(원반교마을 옆)행 423번 시내버스가 원반교마을까지 간다.
인면어 등 150종 200만 마리…1천만 원짜리까지
각종 농촌체험 연계해 복합테마마을로 변신 중
‘변해야 산다’고들 한다. 주민이 변하면 마을이 바뀐다. 변화를 이끄는 건 새로운 생각과 행동이다. 새로운 발상은 주민의 일상을 바꾸고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관상어 양식으로 이름난 전북 완주군 이서면 반교리 원반교마을은 개인의 아이디어와 열정, 실행력으로 주목할 만한 변화를 겪고 있는 마을이다.
원반교마을 이장 박정인(51)씨가 말했다. “츠음엔 ‘저리 하는 게 잘 되겄다’하고 생각한 사람이 읎었죠.” 부녀회장 김향숙(51)씨가 덧붙였다. “다들 미친 짓이라고 했으니께요. 그리 안해도 먹고 사는디 지장 읎는디 뭣 하러 생고생을 하나 했었다니께요.”
물고기마을 만들기에 미쳐 살던 ‘시답잖았던 젊은이’ 류병덕(48)씨를 두고 하는 얘기다.
원반교마을은 국내에서 유통되는 금붕어·비단잉어 등 관상어의 85%를 생산하는 곳이다. 30년 전부터 양식장이 들어서기 시작해 경작지의 90%가 양식장으로 바뀌었다. “벼농사보다 소득이 한결 나스닝께로 너도나도 달려들어” 논밭을 파내고 양식장을 들였다. 주민들은 양식장 일에만 매달렸다. 부화와 양식으로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었다. 그러다 10여 년 전 관상어 열기가 한풀 꺾이면서 내수면업계 전체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때 그 ‘시답잖은’ 젊은이가 나서서 튀는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 고교 졸업장도 없는 젊은 친구가 마을을 바꿔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새로운 품종을 개발해 국외시장에 진출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려면 우리 마을 브랜드가 필요했죠. 국내 최대 양식장 마을 아닙니까? 마을을 국내외 관광객들이 들끓는 관광지로 개발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본 거죠.”
물고기를 길러 파는 마을에서, 물고기의 모든 것을 보고 배우고 체험하며 즐기는 마을로 바꿔보자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고교 졸업 한 달여를 앞두고 학비가 없어 졸업을 포기해야 했다는 류씨는 “돈 벌어 효도 하겠다”는 일념으로 ‘무작정 상경’을 실행한 뒤 쓰라린 실패를 맛보고 고향으로 돌아와 남들처럼 양식장 일에 뛰어든 가난한 젊은이였다.
‘전국 최고의 물고기 체험마을’을 목표로 그는 일에만 매달렸다. 양식업으로 벌어들인 돈을 고스란히 물고기 체험장 만들기와 새 품종 개발에 ‘쑤셔 박았다’. 마을에서 정신병자로 취급할 정도였다. 기존 시설로 금붕어·비단잉어 양식해 팔기도 바쁜 터에, 그는 아무도 관심 없는 양식장 ‘치장’에 몰두했다. 몇 년 동안 혼자 물길을 새로 내 양식장을 다시 꾸미고, 직접 굴삭기를 운전해 터를 파고 길을 냈다. 수십 종의 관상어들을 대량으로 구입해 대형 수족관들을 만들고 전시관을 꾸몄다. 주민들의 손가락질 속에 체험장은 차츰 모습이 갖춰졌고, 토종잉어와 비단잉어, 이스라엘잉어의 반복교배를 통해 ‘검은 천사’라는 새 품종 개발에도 성공했다.
당시 유씨는 양식장을 하는 다른 주민들에게 “최고의 물고기 체험장을 만들자”며 주민들의 동참을 요청했지만 “쓸데없는 일을 벌이는 미친X” 소리를 들어야 했다. 물고기마을 개장 6개월여를 앞두고는 교통사고로 전신마비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는 목과 얼굴에 철심을 박은 상태로 퇴원해 일에 매달렸다.
이런 그의 열정을 주민들이 인정하기 시작한 건 지난해 5월 개장과 함께 펼친 ‘제1회 물고기축제’를 통해서였다. ‘시덥잖은 젊은 친구’는 ‘놀라운 젊은이’로 재평가 받게 된다. 닷새 동안 전국에서 무려 3만여 명의 인파가 원반교마을로 몰려들었다.
“겁나게들 몰려오더라고. 마을 생기구 그 난리법석은 츠음이랑게.” “하이고, 애들이고 으른들이고 하튼 으마으마하게들 왔어라.” “공일엔 도로가 맥히고 줄을 나래비로 서부러야.”
주민들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일부 주민들의 생각이 바뀌고 자연스럽게 동참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여기에다 농림부의 향토산업 육성자금 지원 소식이 전해지고, 완주군에서도 ‘파워빌리지’ 사업마을로 선정해 지원에 나서자 주민들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주민 거의 전원이 참가한 가운데 물고기마을 운영위원회가 꾸려졌다. 류씨가 운영위원장을 맡았다. 류 위원장이 말했다. “그동안 들인 열정을 인정받은 것만 해도 큰 보람을 느낍니다.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1만 6천평방m(약 5천평)의 터에 들어선 ‘물고기마을’에선 열대어 등 각종 관상어와 식용어, 토종 민물고기, 인면어 등 희귀 물고기를 포함해 약 150종 200만 마리에 이르는 물고기떼를 만나볼 수 있다. 실내 수족관전시장·부화장·체험장·잔디밭 등을 갖췄다. 먹이주기·물고기잡기 체험, 물고기 목판 탁본체험이 진행되고 가족단위 ‘물고기 주말농장’ 분양도 한다. 주말마다 와서 관찰하고 먹이 주며 기르다 1년 뒤 가져가거나 위탁판매를 하게 된다.
개장 뒤 열 달 동안 10만여 명이 이곳을 다녀갔다. 주요 방문객들은 어린 자녀를 둔 가족과 어르신들, 유치원·초·중학교 단체관람객들이다. 아직은 류씨 개인이 가꾼 시설이 전부지만, 내년부터 본격적인 시설투자가 이뤄지면 ‘전국 유일의 물고기체험마을’의 전모가 드러나게 될 전망이다.
“이제 10분의 1정도 한 거지요. 우선 올해는 양식장 시설 첨단화와 수출기반 확보 등에 집중하고 내년부턴 체험·관광 인프라에 투자가 이뤄지게 됩니다.” 류씨와 주민들의 계획은 야심 차다. 2010년까지 물고기체험장과 벌꿀·배·고구마 등 마을의 특산물, 전주수목원과 천주교 성지인 초남이성지 등 관광거리를 연계한 복합 체험마을을 선보일 계획이다. 마을 농로에 레일을 깔고 소형 관광열차를 운행할 계획도 짜고 있다. 주민 10여명은 이미 ‘변하려면 배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농협기술센터에서 운영하는 농민대학에 다니며 인성교육을 받고 농촌의 미래를 공부하고 있다.
이장 박씨가 말했다. “츠음엔 오해도 있었지만, 인자 함께 가는 것이여. 이제 시작단곈디 화합해서 정말 잘 해볼라요.” 오해와 질시, 타성을 딛고 원반교마을 주민들은 더 큰 변화를 향해 힘을 모아가고 있다.
물고기마을 양식장 수조의 200만마리 물고기들은 값으로 치면 한 마리에 1천 원짜리부터 수천만 원짜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비단잉어·금붕어·철갑상어·향어를 비롯해 각종 열대어들과 30여종에 이르는 국내 토종 민물고기들도 전시하고 있다. 식용을 위한 토종 붕어는 한방사료를 먹여 약용으로 팔기도 한다. 값을 따지기 어렵다는 ‘인면어’도 있다. 잉어과의 변종으로 코 부분이 사람의 눈 모양과 비슷해 인면어로 불린다.
류씨가 10년간 심혈을 기울여 개발했다는 ‘검은 천사’는 그가 가장 아끼는 물고기다. 이름을 ‘검은 천사’라고 붙인 이유에 대해 그는 “물고기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행운과 축복을 안겨주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류씨는 자칭 ‘물고기 아빠’다. “양식장을 오래 하다 보니 내가 길러낸 물고기 한 마리 한 마리가 다 자식처럼 느껴집니다.” 물고기 헤엄치듯 유연하게 사고하고, 먹이를 발견한 물고기처럼 바쁘게 일한다. 그는 “지난해 초 고교과정을 마치고 마침내 졸업장을 받았다”면서 “곧바로 익산 호원대 관광경영학과에 입학해 2년째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하루에 서너 시간 정도 잠을 잡니다. 잠들기 전에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떠오르곤 하지요.” 자나 깨나 물고기 생각에 빠져 사는데, 보고 어루만지고 공부하고 걱정하는 것이 온통 물고기다. 그래서인가. ‘물고기를 자식처럼 여기는’ 유씨를 본 많은 이들은 그가 “물고기를 닮았다”고 말한다.
원반교마을이 물고기 체험을 기반으로 각종 농촌체험을 결합한 종합 관광테마마을로 자리 잡는 건 시간문제로 보인다. 물고기마을 운영위원회가 3년 계획으로 추진하고 있는 체험관광 시설의 기본은 순환열차다. 마을 둘레에, 농로를 이용해 자연 훼손 없이 지름 2km, 길이 10여km의 레일을 깔고 10량 규모의 특수 제작한 소형 객차를 운행한다는 것이다. 20곳에 역을 만들어 각 역마다 양봉농가의 벌꿀 뜨기체험, 배농가의 배따기체험, 고구마 캐기체험 등 철마다 다른 체험프로그램들을 운영할 계획이다. 수련관도 지어 며칠씩 묵으며 공부하고 체험한 뒤 나갈 땐 물고기 박사가 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검은 천사’ 등 개발한 물고기를 수출하기 위해 미국 등지에 직판장을 운영할 계획도 짜고 있다.
2008년 5월초 어린이날·어버이날을 포함한 기간에 제2회 물고기축제를 연다. 기존 체험행사에다 뗏목체험, 음식만들기체험 등 각종 체험행사를 추가하고 먹거리장터 등도 열 계획이다.
배나무가 많아 ‘이서 배’로 이름난 이서면은 완주군 본토와 따로 떨어진 ‘섬’이다. 완주군청과 다른 면들은 전주시의 북동쪽에 있지만 이서면만은 전주시 서쪽에 있다. 군청에 가려면 전주시내를 거쳐야 한다. 김제시와 접해 있어 처음 오는 이들은 김제시에 속한 마을로 착각하기도 한다.
반교리란 이름은 옛날 임금이 행차해 물길을 건널 때 이곳 아낙네들이 소반처럼 생긴 돌들을 날라 모아 다리를 놓았던 데서 유래했다. 이곳은 조선시대 호남권 교통로였던 호남대로가 지나는 지역이다.
한겨레 2008.7 이병학 기자
물고기마을 입장료 2천원. 먹이 1천원(어린이 및 단체엔 무료). 물고기잡기 체험비 2천원(3마리까지 가져갈 수 있음). 물고기 목판 탁본뜨기 체험 1천원. 연중무휴. 오전 10시~오후 해넘이 1시간 전까지 입장. (063)211-8839.
<주변 볼거리>
반교리와 호남고속도로 전주나들목 사이 쯤인 전주시 덕진구 반월동에 한국도로공사수목원(전주수목원)이 있다. 약 34만평방m의 터에 약초원·암석원·죽림원·잡초원·일반식물원 등 9개의 전문 수목원을 갖췄다. 전주수목원으로 불렸으나 지난해 이름을 바꿨다. 입장료는 없다. 이성면 반계리엔 호남지역 천주교 발상지(1784년)라는 초남이 성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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