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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강원도

화천 간동면-배후령 오음리 간척리 베트남참전용사 유촌막국수

by 구석구석 2009.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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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동면 오음리에 베트남 참전용사 만남의장

강원도와 화천군은 베트남 참전용사 회원들 상호간에 만남과 소통의 공간을 통해 우의와 친선을 도모하고 베트남 참전용사 회원들의 자긍심을 고취하며 향수를 느끼도록 하기 위해 과거 군훈련장에 베트남 참전용사 만남의 장을 조성.

 

국내 최초의 유일한 파병용사 공원시설인 베트남 참전용사 만남의 장은 1998년에서 2000년까지 조성계획을 수립하고, 행정절차의 이행, 설계완료 등을 마무리 하였으며, 2001년부터 2006년까지는 1단계 사업으로 참전기념관, 추모비, 상징탑, 내무반체험장, 식당, 야외전투장비, 전술기지, 훈련체험장, 피크닉장, 대운동장(연병장), 소운동장, 구 취사동(복원) 등을 공사 완료했다.

 

 

 

2단계 사업으로 베트남의 구찌터널, 전통가옥 등 베트남마을을 재현했으며, 중대전술기지를 보강 완료했다. 시설면적은 총 140천㎡의 부지에 5만3,000㎡의 건축면적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총 180억여원(국비 68 지방비 112)이 투자됐다.

 

이곳에 들어선 주요시설로는 베트남 전쟁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참전기념관, 연면적 2,113㎡ (지하 1층, 지상 3층)의 전시실, 군 내무반 체험시설(3동/120명 동시 수용가능), 취사장 및 식당, 베트남전에 참전 전사한 장병추모비, 평화와 화합 전쟁 없는 평화로운 미래를 의미하는 상징탑. 베트남 전쟁을 승리로 이끈 대표시설인 구찌터널과 전통가옥(6동) 등을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연장 157m의 구찌터널은 한국인의 신체구조에 맞게 실내 구조를 변형하여 조성하였음. 여기에는 무기제작소, 작전회의실 등 체험전시실을 6개소 설치하여 볼거리를 제공하했다. 현재 남아 있는 유일한 시설의 구 취사동은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 재현(매점, 식탁, 배식대, 빼찌카2, 가마솥, 냉장고, 취사병숙소)하여 개방할 예정이다.

 

간동면 오음리는 춘천의 최북단 배후령 고개를 넘어 겹겹이 산으로 둘러 쌓인 아담한 분지이며, 봄에는 심한 바람이 불어 “바람버뎅이”라는 지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베트남 참전용사 훈련장 조성은 43년전인 1965년 봄 제7보충단이 창설되어 있다가 이전하고, 베트남 파병을 위한 실전대비‘파병훈련장’으로 설치되어, 우리 나라가 처음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하면서 많은 젊은이들이 이곳을 거쳐 베트남 전장으로 떠났다.

 

  평화수호참전기념탑(앞)과 베트남 참전기념관.

 

베트남 참전은 1965년 비둘기 부대를 시작으로, 1973년 전쟁이 끝날 때 까지 총 7개 부대에 32만여명이나 베트남으로 파병되었으며, 이 훈련장을 이용한 부대는 비둘기, 백구, 은마, 맹호, 백마, 십자성부대 등 6개 부대였다. 따라서 파병장병의 90% 이상이 이 훈련장에서 훈련을 받았으며, 장병들의 땀과 체취와 애환이 배어 있는 역사적인 장소로 알려져 한편 화천군은 이 만남의 장과 함께 인근의 비목공원, 파로호 등과 연계된 통일안보관광의 테마관광지로 새롭게 부각되면서, 관광소득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강원신문 2008.10 오형상기자

 

유촌막국수  용화산 팬이면 반드시 이 집 단골 

대한민국 국민 중 60세 전후의 남성들 상당수는 화천군 간동면 ‘오음리’라는 지명을 잘 알고 있다. 1960~1970년대 베트남전쟁 한창이던 시절, 당시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다. 그때 참전했던 장병들은 그 누구든 이곳 오음리를 거쳐야만 했다. 이곳에서 훈련을 받았다는 뜻이다. 그런 사연으로 이곳 죽엽산 자락에는 ‘베트남참전용사 만남의 장’을 조성해 놓았다. 전시실을 둘러보고 당시의 전투 상황들을 영상물로 볼 수가 있다.

 

바로 이곳, 간동면 면사무소 정문 바로 맞은편에는 30명이 겨우 앉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전형적인 시골마을식당 ‘유촌막국수(033-442-5062)’가 있다. 이 식당은 이미 많은 산꾼과 깊은 인연이 닿아 있는 집이다. 화천을 대표하는 용화산(878m)을 위시, 화천의 산으로 산행하는 사람들이 면사무소 넓은 마당을 주차공간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하산길에는 자연스럽게 ‘유촌막국수’로 모이게 되고 막걸리 한 잔을 걸치게 된다고 한다. 집주인 임윤정 할머니가 차려내는 막국수는 차림도 수수하고 맛도 소박하다. 빛깔 짙은 양념이 보이지 않는다. 막국수 5,000원.


 

 

 

 

파로호횟집  ‘물 반 고기 반’ 파로호반의 쏘가리·산천어 전문점


강원도 화천땅은 전쟁과 평화를 떠 올리게 하는 고장이다. 한국전쟁을 떠 올리게 하는 파로호, 베트남전쟁을 되씹게 하는 땅 오음리가 그러하다. 조금만 더 북쪽으로 올라가 보면 ‘평화’라는 이름의 댐이 쌓여 있다. ‘평화의 댐’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남북 대치에서 북쪽으로부터의 수공(水攻)을 막겠다고 높이 높이 쌓아 올린 댐이다.
 
파로호는 1944년 일제가 대륙 침략을 목적으로 만든 인공호수다. 한국전쟁 중이었던 1951년 4월 19일부터 5월 20일까지 한 달 동안 파로호에서 국군 6사단과 해병대 1연대 장병들이 UN군의 지원을 받으며 중공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 전투에서 중공군 3만여 명의 병력이 파로호 속으로 수장되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전사(戰史)가 있다. 당시의 이승만 대통령은 직접 이곳을 시찰하고 적을 크게 물리친 호수라는 뜻으로 파로호(破虜湖)라는 휘호를 내렸다.
 

평화의 댐을 쌓기 이전, 파로호는 ‘물 반 고기 반’으로 낚시꾼들의 천국이었다. 서울에서 이곳까지 낚시꾼들을 수송하기 위한 정기노선버스가 하루 두 편이 있었다니, 당시의 명성을 잘 대변해준다. 지금 파로호 물가 구만리에는 7개 업소가 영업을 하는 파로호횟집타운이 있다. 이들 업소 중 파로호횟집(033-442-3123)을 찾았다.

 

식탁에 자리를 잡고 보니 통유리 밖으로 파로호가 펼쳐져 있다. 넓은 강폭 건너편으로는 평화의 댐, 동남에 솟아 있는 해산(1,194m)으로부터 우측으로 두류봉(430m), 병풍산(796m)이 한눈에 들어온다.

 

업주 김기호(56)·홍성숙(53)씨 내외는 2대째 이곳을 지키며 살고 있다. 이들 부부가 들려주는 ‘파로호와 물고기’에 얽힌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웠다. 이 집안 2대가 살아온 내력은 바로 파로호의 역사같이 느껴졌다. 쏘가리는 시세, 산천어(1kg·회,매운탕) 3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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