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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강원도

춘천의 뚜벅이여행 - 풍물시장 아리랑골목 망대골목

by 구석구석 2009.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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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과거와 오늘 꿰는 걷기여행


없는 게 없는 풍물시장, 꼬불꼬불 아리랑골목


하늘로 오르는 망대골목, 새벽 3시 번개시장…
 


봄내, 맑은내. 춘천의 우리말 이름이다. 의암댐·소양댐으로 막히기 전까지 소양강은 눈부신 백사장을 적시고 흐르는 투명한 물길이었다. 정철, 김시습, 이사벨라 버드 비숍, 이은상 등이 이 물길을 지나며 감탄사를 쏟았다. 호숫가 도시가 된 지금도 춘천은 걷기 좋은 도시로 꼽힌다. 춘천 도심의 과거와 오늘을 한나절에 꿰뚫는 코스를 걷는다. 약사동 골목길을 비집고 들어가 춘천 패션1번지 명동을 거쳐 소양강 줄기가 내려다보이는 소양정까지, 봄볕 쬐며 한나절 쏘다니기 좋다.


 
“썩어가는 골목에 무얼 볼 게 있다고들 오는지 원”


 
춘천 남부로에서 춘천우체국 건너편 풍물시장으로 들어섰다. 남부로를 따라 나란히 주택가 골목으로 이어진 풍물시장 자리는 옛 약사천 물길을 복개한 곳이다. 가는 날이 장날(2·7일). 뒷골목 주택가까지 인파가 몰려 시끌벅적하다. 담 밑으로 줄줄이 좌판을 벌인 할머니들이 웃고 수다떨어, 봄볕 아니어도 골목 안이 환하다.


 
“들여가유. 아칙에 뜯어온 거래유.” 집에서 기르고 들에서 뜯은 봄나물과 먹을거리, 생활용품을 앞에 놓고 손님을 부른다. 냉이·달래·씀바귀에 칡뿌리·강아지·병아리·메주·봉밀·질금(엿기름)·참기름·뚱딴지·망태기까지 좌판 물건들은 쪼그려앉은 어르신들의 표정만큼 다양하고 흥미롭다. 오리새끼·부엉이도 나온다는 골목이다. 약사천 복원 추진으로 풍물시장은 2년 뒤 온의동 고가 전철길 밑으로 자리를 옮긴다.


 
장터 뒷골목 ‘진보길’로 올라 본격적인 망대골목 탐험을 시작한다. 왼쪽에 유치원을 내려다보며 나무계단을 오르면, 새로 지은 정자 망대정이 나오고 옆으로 전망 좋은 찻집 하늘카페가 있다. 높은 곳은 아니지만, 주변 동네와 대룡산·금병산 등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망대골목 투어를 시작하거나 마무리하기에 좋은 찻집이다. 


 
하늘카페 위쪽 골목으로 들어서면서 망대골목이 시작된다. 망대골목은 일제 때 야산 위에 세운 망대(화재감시탑)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골목 담벼락에 늘어진 개나리는 노란 꽃봉오리에 잔뜩 힘을 주고 있다.


 
낡고 허름한 시멘트돌담, 녹슨 쇠창살과 철조망,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는 골목길 등 1960~70년대 모습을 간직한 산비탈 동네 풍경이 정겹고도 쓸쓸하다. 망대골목 삼거리 ‘기대슈퍼’ 할아버지(69)의 말투도 쓸쓸하다.
 


“썩어가는 골목에 무얼 볼 게 있다고들 오는지 원.”


 
20년 전 가게를 낼 때, 산동네 사람들끼리 서로 ‘기대’며 살자는 뜻으로 이름붙였다는 기대슈퍼는 백화점·편의점에 밀려 애물단지가 된 지 오래다. 문 닫은 ‘망대서민이발관’ 맞은편 골목 계단을 오르면 망대가 있다. 3층짜리 망대에선 요즘도 민방위의 날이면 사이렌이 울린다. 망대 곁엔 사나운 개 한 마리가 터잡고 살며 짖어대 망대골목이 컹컹 울린다.


 

미로 따라 저벅저벅 또각또각 비틀비틀 두런두런… 



다시 내려와 아리랑골목으로 접어든다. 이리저리 구불구불 이어진다 해서 아리랑골목이다. 어떤 곳은 혼자 걸어도 양쪽 담에 옷자락이 스칠 정도로 비좁다. 귀 기울이면, 저벅저벅 또각또각 비틀비틀 두런두런… 골목길을 스쳐간 수많은 소리들이 들려오는 듯하다. 미로처럼 뻗은 골목들은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서로 이어진다.


 
망대골목 주변은 화가 박수근(1914~1965)과 조각가 권진규(1922~1973)가 청년기를 보낸 곳이다. 소방도로를 따라 약사명동주민센터 쪽으로 내려와 춘천교육정보관 옆골목으로 들면 주택 담벽에, 한국 현대 조각의 문을 연 조각가 권진규가 살던 동네임을 알리는 작은 팻말이 붙어 있다.


 
춘천의 옛길과 골목들에 관심이 많은 문화운동가 신용자(56)씨는 “두 분이 살던 곳이 정확히 어디인지는 알려진 게 없다”며 “박수근은 1935년 무렵 이곳에서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으며 중앙시장 공회당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고, 권진규는 춘천고보 시절 5년간(1938~43)을 망대골목 언저리에서 생활했다”고 말했다.
 


죽림성당(근대문화유산) 지나 약사리고갯길로 간다. 예전 효자동·석사동 주민들이 시내를 오갈 때 걸어 넘던 고개다. 미싱가게, 강냉이 튀기는 집, 톱가게 등 옛 점포들이 남아 있다. 50년간 미싱가게를 하며 “미싱에 청춘을 다 바친” 김순돌(79)씨가 2차선 차도로 변한 고갯길을 가리켰다. “옛날엔 이 고개가 장터였지. 장날이면 고갯길로 사람들이 들어차 콩나물시루 같앴어.”


 
옛길을 돌아 나오면 길은 첨단 패션 거리로 이어진다. 중앙시장을 거쳐 연결되는 명동거리는 춘천 패션1번지다. 곳곳에 드라마 <겨울연가> 촬영지임을 알리는 팻말을 세웠다. 상권이 80~90년대 전성기 같지는 않으나 여전히 젊은 남녀들로 붐빈다. 요즘 새로 뜨고 있는 거리는 명동 윗골목 브라운 5번가다. 멀티플렉스인 프리머스시네마 앞 쉼터까지 의류·구두·네일아트전문점·이탈리아식당·커피전문점·북카페·과일주스 가게들이 들어찼다.


 
극장 옆골목엔 마임·마술 등 공연단체들의 연습장이 있다. ‘미공간 봄’은 개성 있는 젊은 작가들의 실험적 작품들을 주로 선보이는 무료 전시관이다. 전시중(23일까지)인 ‘한우 전문’ 사진작가 김시동씨의 소 사진들이 영화 <워낭 소리>의 감동을 일깨운다. 4월4일부터는 평범한 황혼 어르신들의 사랑 이야기를 편지·영상·녹취·사진으로 전시하는 ‘연애편지전’을 연다.


 
봄냇가에 선 ‘소양강처녀상’이 실루엣으로


 
또다른 문화공간을 만나러 도청 쪽으로 걷는다. 강원일보와 한국은행 사이 골목 끝에 춘천문화원 정문이 있고 그 맞은편 모퉁이의 카페 ‘아름다운 사람’이 호젓하다. 좌회전해 오르면 큰길 건너편에 마임의집·미술관·봄내극장이 한데 모인 춘천예술마당이 있다. 마임의집에선 매주 토요일 저녁 7시 마임 공연을 한다. 전통 한정식집 온소반을 지나 옥천길로 오르면 도청 앞에 이른다. 여기서부턴 문화유적지 탐방이다. 도청 앞에 위봉문이 있다. 1646년 현 도청 자리에 있던 문소각으로 들던 솟을대문이다. 전란과 화재로 중건을 거듭하다 1972년 현 위치로 옮겨지었다.


 
아파트 토목공사장 옆 기와집골은 옛날 만석꾼들이 살던 부자동네였다. 지금은 낡고 초라한 집들이 실낱같은 골목길을 품고 떼지어 앉아 있다. 한편엔 일본인 관광객이 끊겨 썰렁한 <겨울연가> 촬영지도 있다. 10분 정도 내려와 탑거리로 들어 서부시장 앞으로 나서면 고려 때 탑인 춘천칠층석탑(보물)이 솟아 있다. 기단이 땅속에 파묻혀 있던 것을 파내 옆으로 옮겨 세운 것인데, 세월의 상처를 많이 입었다. 큰길(소양로)로 나와 10여분 소양교 쪽으로 오르다 충원사 팻말 보고 번개시장길 골목으로 든다.


 
번개시장은 매일 새벽 3시에 장이 시작돼 오전 9시면 끝나는 재래시장이다. 자그마한 공터와 뒷골목으로 좌판과 노점 40여곳이 들끓다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아침에 시간을 내 따로 들러볼 만하다. 가던 길 더 가면 ‘만신’ 간판을 단 점집들이 많은 골목을 지나 오른쪽으로 선정비·송덕비·불망비들을 한데 모은 비석 무리가 나온다. 그 옆길로 5분 오르면 봉의산 자락 소양정(도 문화재자료 1호)이 있다.

 

봉의산(301.5m)은 춘천의 진산이다. 정상 주변에서의 전망이 좋지만, 소양정에서도 소양강 물줄기 일부를 바라다볼 수 있다. 소양정은 소양강변에 있던 것을, 홍수 피해가 잦아 위로 옮겨 지은 것이다. 정자에 오르니 봄바람 잔잔하고 해는 소양호 중도 너머로 기울었다. 봄냇가에 선 ‘소양강처녀상’이 실루엣으로 확 다가왔다. 여기까지 6㎞를 걸었다.
 


◈ 여행쪽지
 

남춘천역에서 남부로의 춘천우체국 앞까지 가는 버스가 수시로 있다. 10분 거리. 춘천역은 폐쇄됐다. 택시로 춘천 도심 주요 지역을 2천~3천원에 갈 수 있다. 도심에서 들를 만한 곳으로 국립춘천박물관, 공지천 조각공원 등이 있다. 춘천박물관에선 각종 유물 상설전시외에 4월19일까지 ‘사진으로 본 고인돌의 세계’ 전시회가 열린다. 조각공원 옆 에티오피아 참전기념관 2층의 커피자판기 커피가 맛있다. 에티오피아에서 가져온 커피를 쓴다.

 

먹을 만한 곳으로 남부로 남부막국수(033-254-7859)·명가춘천막국수의 막국수와 총떡(각 5천원), 중앙로2가 원조닭불고기집(033-257-5326) 닭숯불구이(1인분 8천원), 옥천동 은소반(033-244-6116, 점심·저녁시간에만 영업)의 전통한정식(1인 1만7천원부터) 등.

 

/춘천시청 관광과 (033)250-3089. / 한겨레신문 춘천 /글·사진 이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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