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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전라남도

순천 해룡면-17번국도-신성리 순천왜성

by 구석구석 2009.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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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리 신성마을

 

 정유재란(1597年) 당시 육전에서 패퇴한 왜군 선봉장 우끼다히데이와 도오다까도라가 호남을 공략하기 위한 전진기지겸 최후 방어기지로 삼기 위해 3개월간 쌓은 토석성으로 왜장 소서행장이 이끈 1만4천여명의 왜병이 주둔 하여 조·명연합군과 두차례에 걸쳐 격전을 벌였던 곳으로 남해안 26왜성중 유일하게 한곳만 남아 있다.
순천왜성은 수륙요충지로서 성곽 규모가 36,480평, 외성 2,502m, 내성 1,342m로 외곽성(토석성)3개, 본성(석성)3첩, 성문 12개로 축조된 성곽으로 검단산성쪽의 육지부를 파서 바닷물이 차도록 섬처럼 만들고 연결다리가 물에 뜨게하여 예교, 왜교성이라 하며 일인들은 순천성이라 부르고 있다.

임진란 패인이 전라도의병과 수군의 용전에 있었다고 보고 전라도 를 철저히 공략키 위해 풍신수길의 야심에 따라 전라도 각처에 진지를 구축해 공세를 강화하였으나 무술년(1598연)8월 그가 급사후 왜성에 주둔해 있던 침략 최정예 부대인 소서행장 왜군과 조·명 수륙연합군 사이에 2개월에 걸친 최후·최대의 격전을 펼친곳이다.

 

순천시가지에서 여수쪽으로 6㎞쯤 가다가 왼쪽으로 6㎞를 가면 200여호가 사는 신성리 마을과 이충무공을 배향한 충무사가 있고 남쪽 200m 지점 광양만에 접한 나즈막한 송림에 위치한 왜성은 유정.권율이 이끄는 육군 3만6천, 진린,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 1만5천병력이 왜성을 비롯 장도등을 오가며 왜군을 격멸했고 이충무공이 27일간을 머물면서 전사 하루전 소서행장을 노량 앞바다로 유인하여 대첩을거둔 유서깊은 전적지로서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역사의 산교육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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