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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전라북도

익산 낭산면-낭산리 낭산산성 심곡사

by 구석구석 2009.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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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고속도로 익산 IC - 금마 사거리 - 우회전 - 722번 지방도로 - 전북과학고 입구 - 두 갈래 길의 우측도로 - 연동사거리 - 우측 718번 지방도로 - 낭산면

 

전북 익산시 낭산면 낭산리 산48 낭산산성

 

낭산산성은 낭산에서 가장 높은 선인봉을 둘러싼 테뫼식 산성이다.


구성(舊城), 북성(北城), 마한성(馬韓城) 등으로 불리우는 이 성은 익산구지의 기록에 의하면 성 둘레는 1,306척, 높이는 9척이라고 되어 있으나 성의 유래에 관한 기록은 보이지 않고 있다. 성벽에서 백제토기편이 수습되어 백제시대에 건립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낭산산성은 미륵산에서 북으로 약 4㎞ 정도 거리에 있는 상랑부락 뒷산에 자리하고 있는 낭산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낭산의 높이는 162m로 마한성이라 불리워지는 이유는 익산일대가 마한의 도읍지로서 기준왕이 와서 쌓았다는 전설에 의해서이다.

낭산산성에 대한 문헌으로는『익산구지』에 "馬韓城在府西十五里朗山上石築周一千三百六尺高九尺餘"라고 하여 마한성이라 표현하였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이 지역에서 마한시대와 관련된 유물이 발견되지 않고 있어서 마한시대에 축조하였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 성곽의 안에서 백제시대 이래의 유물들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백제시대(百濟時代)에 축조되었던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그리고 『삼국사기』진지왕(眞智王) 3년(578년)조에 "신라가 알야산성을 쳤다"라는 기록이 보이는데 알야산성은 바로 이 낭산산성을 지칭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왜냐하면 『삼국사기』지리지에 의하면 "백제시대의 알야산현을 신라 경덕왕때에 개명(改名)하여 야산현이라 부르다가 낭산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내용에서 알 수 있다.


성은 깬 돌로 쌓은 부분과 토축으로 구성한 산성으로 대부분 붕괴되었으나, 그 흔적은 찿아볼 수가 있다. 둘레는 약 1,059m이다.현재 남편에 남아 있는 석축의 높이는 약 2.8m 가량이 되며, 서쪽과 남쪽, 북쪽에 문지의 흔적이 남아 있다. 우물 한 곳과 2개소의 수구(水口)가 확인되었으며, 성의 동남쪽에는 주춧돌로 보이는 석재들이 있어 건물지로 판단된다.

성의 북편은 거의 정상부에 성벽이 위치하고 있고, 남편은 일부 골짜기를 감싸고 있는 테뫼식 산성으로 남편부는 석축의 흔적이 완연하게 드러나 있으나 북편과 동북편 그리고 서북편은 이러한 석축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있어서 골짜기를 감싸야하는 취약지인 남편부는 석축으로서 성벽을 구성하고 기타 지역은 토축으로서 성벽을 구성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마운틴월드

 


낭산리 176  심곡사 www.simgoksa.co.kr

미륵산 둘레길 6코스인 '복숭아길'에 위치한 천년고찰로 명부전지장보살좌상과 권속(전북유형문화재191호), 칠층석탑(전북유형문화재192호, 대웅전, 목조삼존불상을 지방문화재로 보관하고 있다.

 

 

2012년 6월, 전북 익산시는 미륵산 기슭에 있는 심곡사의 칠층석탑을 수리하고자 해체를 했다. 그 과정에서 중대석에 마련한 사리를 모시는 공간인 사리공(舍利孔)에서 불상 2점이 발견되고, 하부 지대석 사리공에서도 불상을 안치하는 건물 모양 조각인 불감(佛龕) 1점과 그 안에서 삼존불을 포함한 금동불 좌상 7점이 수습됐다.

석탑은 백제, 고려, 조선시대 탑 양식을 모두 간직한 조선 초기의 석탑이며, 불감 역시 같은 시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기단 중대석 출토 불상 2점은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201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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