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런거 저런거/이것저것

예수와 관련한 이야기들-성혜포 모세 롱기누스의

by 구석구석 2009. 2. 18.
728x90

 

예수가족 무덤의 진실

 

 예수의 무덤으로 보이는 '예수 가족 무덤'이 예루살렘에서 발견되었다. 디스커비리방송에서 영화 '타이타닉'의 감독 제임스 카메론이 예수 무덤이라는 확신을 갖고 발굴하는 장면을 올해 3월에 방송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졌다. 예루살렘의 구 시가지에서 남쪽으로 5km 떨어진 언덕의 시가지 '다루피옷트'란 곳에서 일하던 작업원이 이상한 입구를 우연히 발견하고 안쪽에서 석회암의 뼈 상자와 인간의 두개골들을 발견했다.

 이스라엘 고고학청에서 전문가들에게 진위 조사를 의뢰했다. 뼈 상자 10개가 발굴되었는데 6개의 상자에 비문이 새겨져 있었다. 비문을 해석한 결과 '누구나 알수 있는 이름'과 '알수 없는 이유'로 조사가 중단됐다고 아리송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 당시 판독한 바에 의하면 마리아, 요셉, 마태, 예수-요셉의 아들, 유다-예수의 아들, 마라의 마리암네 등 6명의 묘비명이 나왔다고 전한다.

 예수의 일가족이 묻힌 가족묘임이 틀림없었다. 이곳은 신약성서에 나오는 사람들의 유골이 한 장소에 묻혀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언가 신성한 곳으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탐험에 동참한 영상 작가 쟈고보빗치와 다큐멘타리 작가 페레그리노 등은묘소나 뼈 상자를 DNA 전문가들에게 보여 철저한 검증을 시도했다.

 이들은 묘소 입구의 둥근 원과 산 모양을 섞어 만든 문장을 조사한 결과 옛날 예루살렘 신전 본체의 니카르노문에 걸렸던것과 똑같은 모형이었다. 유태인의 매장풍습은 유체를 동굴에 1년동안 안치했다가 남아있는 뼈들을 모아 상자에 넣었던 것이다.

 뼈 상자로부터 나온 뼈 조각을 캐나다 레이크헤드대학에 의뢰하여 미토콘드리아의 DNA 배열을 조사했다. 검사대상은 예수와 마라의 마리암네라고 새겨진 뼈 조각이었다. 두개의 샘플은 모자간이나 남매 등의 친족 관계가 아닌것으로 판명됐다. 옛날 유태인들의 유습으로 보아 친가족 아닌 사람이 같이 묻히는것은 부부 관계 뿐이었다. 마라의 마리암네란 성서에서 말한 반려자란 뜻으로서 막달라 마리아를 의미한다.

  십자가처형으로 숨진 예수가 부활하는것을 지켜본 최초의 증인이 바로 그녀였다는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다루피옷트묘에 예수와 마리암네 그리고 예수의 아들 이란 유다의 뼈들이 같이 묻힌것은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하여 유다란 아들을 낳았다는 새로운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란 해석도 있다.

 앞으로 "하느님의 아들 예수가 인간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뒤 부활하여 인간을 영원히 구제한다"는 기독교의 근본 교리가 우리에게 앞으로 어떤 형태로 다가올지 궁금하다.

< 출처=일본 가쿠에사의 월간 'MU', 번역 및 정리=최 호(칼럼니스트)>

 

성해포의 진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 덮었다는 성해포가 이탈리아 토리노 대성당에 보존되어 있다.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향품과 함께 아마포로 쌌더라'는 요한복음 19장 40절에 기록된 바로 그 성스러운 물건이라는 것이다. 길이 4.36m, 폭 1.1m인 이 갈색 아마포에는 놀랍게도 예수의 희미한 얼굴 모양이 남아 있다. 예수가 사망했을 때 곧 바로 얼굴을 감쌌는데 마치 사진처럼 찍혔다는 것이다.

 이를 세상에 처음 알린 사람은 이탈리아 사진작가인 피아다. 그는 1898년 성해포를 일반에 공개했을 때 이 형상을 특수 촬영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2005년 1월 미국 뉴멕시코주 로스 알라모스 연구소의 로저스 박사는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으로 이 성해포를 조사한 결과 진본이 확실하다고 밝혔다. 박사는 "예수가 부활할 때 방출한 강력한 에너지가 성해포에 투영돼 얼굴이 나타났다"는 흥미있는 가설을 내놓았다. 성해포는 한때 이탈리아를 지배했던 사보이아 가의 마지막 왕인 움베르트 2세가 서기 1453년 프랑스의 샤루니란 여성으로부터 양도받아 고이 간직했다고 한다. 두번이나 근처에서 화재가 났지만 위기를 넘겼고,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전해져왔다.

 하지만 성해포를 둘러싼 진위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이게 진짜'임을 주장하는 성해포들이 수없이 등장했다. 가장 신뢰도가 높은 토리노 성당의 성해포는 두차례나 과학적인 검증을 거쳤다. 성해포의 흔적을 토대로 그려진 예수의 얼굴은 기독교도는 물론 온 세상 사람들의 존경받는 예수의 상으로 전세계에 널리 퍼졌다.

 예수가 못 박힌 십자가의 파편과 예수가 잔으로 썼다는 성배, 예수의 옆구리를 찌른 성창(聖槍), 그리고 성해포 등 예수와 관련있는 유물들은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전세계에서 숱한 기적을 만들어왔다.

 < 출처=일본 가쿠엔사의 월간 'MU', 번역 및 정리=최 호(칼럼니스트)>

 

모세 / 구 소련 연방 비밀 문서엔 개인아닌 집단으로 해석

 

이집트에서 노예로 핍박받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탈출해 평생 소원이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찾아 나선 모세는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까?

 1991년 구 소련 연방국 해체시에 유출된 비밀 문서인 흑성서(黑聖書)의 모세에 관한 기록은 성경 정전과는 사뭇 다르다. '제 6 모세의 서'와 '제 7 모세의 서'를 어렵사리 해독한 연구진은 모세는 개인이름이 아닌 집단 명칭으로서 '마누(MANU)'와 같이 인류의 시조나 만물의 시원(始源)을 의미한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모세는 "볼지어다. 내가 내 손의 지팡이로 하수를 치면 그것이 피로 변하고, 하수의 고기가 죽고 그 물에서 악취가 나리니…."(출애굽기 7장 17,18절)라면서 남다른 기적을 보여줌으로써 이집트의 왕 파라오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을 얻어내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로서 우뚝 섰다.

 성경 정전의 출애굽기에 기록된 모세의 10계는 하느님과의 약속이지만 '제 6, 7 모세의 서'에서 다룬 모세의 5계는 모세가 '검은 신'에게 일방적으로 명령하는 형식이다.

 흑성서의 모세 5계의 내용은 이렇다. 1. 그대(신)는 나(모세)를 제외하고 다른 이를 주인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2. 그대는 항상 나와 함께 해야하며 우리들(인류)이 그대의 상(像)을 만들지 않아도 되도록 행동하라. 3. 그대는 함부로 나타나서도 안되며 우리들이 그대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도록 주의하라. 4. 달이나 태양이 정한 것처럼 매달 7, 14, 21, 28일에 일하면 안된다. 우리들이 안식을 취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5. 우리들을 약속의 땅까지 인도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날까지 나는 그대를 봉인(封印)하여 잡아둘 것이다.

 1.2 조는 '유일 신'이 아닌 '유일 주인'에 관한 규정이다. 모세는 우월적 지위에서 '검은 신'과 일방적인 계약을 맺었던 것 같다. 3조는 모세가 지도자로서의 권위를 확보한 규정이다.  모세는 과연 누구였을까. 흑성서의 말대로 또다른 절대자였을까. <

출처=일본 가쿠엔사의 월간 'MU', 번역 및 정리=최 호(칼럼니스트)>

 

예수 옆구리 찔러 피가묻은 기적의 롱기누스의 창

 

 히틀러가 연합군에 항복하기 직전인 1945년 초. 독일 U보트 한 척이 아르헨티나에서 400km 떨어진 남극의 한 협곡에 정박했다. 이 배엔 히틀러의 특명을 받은 해군 결사대 58명이 타고 있었다. 이들은 히틀러가 끔찍이 아끼던 성스러운 물건 하나를 비밀리에 싣고 와 남극의 얼음 동굴에 숨겼다고 한다. 바로 롱기누스의 창이었다.

 이 창은 예수가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 때 카시우스 경비대장이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예수의 옆구리를 찔러 그 피가 묻었다는 기적의 물건이다. 그 뒤 여러 독재자들의 손을 거치며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고 전해진다.

 로마의 시저는 갈리아 원정 때 이 창을 갖고 다니며 승전을 거듭했으며, 서유럽 기독교를 통일한 카알 대제도 이 창을 늘 옆에 두었다. 승리를 보증하는 기적의 창으로서 모든 독재자들이 지극히 소중하게 모셨다.

 이 창과 히틀러의 인연은 1938년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병합되었을 때로 거슬러 간다. 히틀러는 첫 공식 일정으로 1938년 비엔나의 호프부르그 궁전에 도착, 보물관에 들러 유리 상자속에 모셔논 성스러운 창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번쩍 들고 나왔다. 그 뒤 그는 2차 세계대전 중 이 창을 늘 곁에 지니고 다녔다. 덕분인지 한동안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히틀러의 자살과 독일의 패전으로 전쟁이 끝나고 롱기누스의 창은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다시 호프부르크 박물관에 반납돼 전시중이다.

 하지만 히틀러 추종자들은 이것이 진품이 아니라고 믿고 있다. 실제로 1974년 '성창 기사단'이란 모임이 독일 뮌헨에서 비밀리 열렸다고 한다. 이들은 남극에 숨겨져있는 롱기누스의 창을 회수하기 위한 별똥대를 조직했다. 미션 앤타티카(남극 작전)'라는 암호명이었고, 히틀러 맹신자였던 하르트만을 단장으로 4명의 결사대가 조직됐다.

 이들은 뮌헨을 출발해 마드리드를 거쳐 상 파울로로 날아가 그곳에서 수륙양용 비행정을 타고 남극 호프만 산맥 협곡 동굴에 도착했다. 멀고 험난한 길이었지만 고생한 보람이 있었을까. 남극 동굴속 강철문이 35년만에 열리면서 빨간 가죽손잡이가 달린 청동색 창이 신비한 옛 모습을 다시 드러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진품' 역시 행방이 묘연하다. 전시중인 창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히틀러가 정말 남극에 숨겼는지, 그 숨긴 창을 찾았는지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 출처=일본 가쿠엔사의 월간 'MU', 번역 및 정리=최 호(칼럼니스트)>

 


 

 

예수의 쌍둥이 동생
예수에게 쌍둥이 형제가 있었다? 예수의 쌍둥이형제가 인도로 가 기독교를 전했다는 가설이 끊이지 않고 제기되고 있다.

 이같은 가능성은 성경외전(外典)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데 바로 '사해 문서'가 그 근거다. 초기 기독교가 자리를 잡고 교세를 확장한 것도 예수와 쌍둥이 동생의 열정적인 노력 덕분이라는 것이다.

 요한 복음서의 세곳에 나오는 '디디모'는 희랍어로 '쌍둥이'란 의미다. 그렇다면 이 또하나의 형제는 누구일까? 1945년 이집트 나일강의 항아리에서 발견된 파피루스 고사본에 의하면 예수의 최대 비밀인 '숨겨진 말씀'에서 예수가 "토마스는 나의 쌍둥이 형제"라고 솔직히 밝혔다는 것이다.

 유대교의 전통적인 관습에 따라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사망했을 때 친족으로서 토마스가 손과 옆구리를 어루만졌으며 3일만에 부활했을 때 이를 증명했다고 한다. 또 예수 부활후 12사도들이 포교를 위해 각 지역으로 흩어졌는데 토마스는 예수의 권유로 인도로 향했다고 한다. 힌두교가 막강한 교세를 자랑했던 남인도의 마루바루 해안에 기원 52년 들어선 토마스파의 교회가 그 증거이다.

 토마스의 영향 때문일까? 신기하게도 불교와 기독교는 기본 틀은 다르지만 각론에선 유사점이 많다. 예수는 요하네로부터 물의 세례를 받고 황야에서 40일간 단식하면서 악마를 물리치는 수련을 겪었으며, 부처는 출가후 6년이란 긴 고행끝에 보리수 밑에서 깊은 명상에 들어가 49일만에 득도했다.

 종말론에서도 불교는 7년 7월7일간 계속된 재앙이 끝난 뒤 미륵보살의 출현으로 태평성대가 올 것이며 기독교는 신의 분노로 천지가 피바다가 될 것이지만 유일신인 하느님의 힘으로 천년왕국이 도래한다고 말하고 있다.

< 출처=일본 가쿠엔사의 월간 'MU', 번역 및 정리=최 호(칼럼니스트)>

 

성경의 외전

 

'다빈치 코드'가 히트하면서 성경의 정전(正典)과 다른 내용인 외전(外典)과 위전(僞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외전 '요베르 서'에서 천사들이 모세에게 알려준 천지창조는 이렇다.

 

'150억년 전 대폭발이 일어나 우주가 탄생했다. 모든 에너지의 끝없는 팽창이 계속되었으며 먼지와 가스가 뭉치고 충돌하면서 은하계와 행성이 탄생했다.'

 

이는 놀랍게도 현대물리학의 빅뱅 이론과 기묘하게 일치한다. 요베르 서는 또 '천사들이 가꾸어 왔던 지구의 자연에 대한 보살핌을 인간에게 위탁했는데 인간들이 환경을 파괴하기 시작하자 창조주로부터 추방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 성서 외전에 묘사된 부활한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

 

 

또 정전엔 '누가 누구를 낳고…'로 시작하는 창세기는 외전에서는 '세스는 여동생 아스라를 아내로 맞아…, 에노스는 누이 에놈을 아내로 맞아…' 등 구체적인 동족혼을 열거하면서 이같은 근친혼이 당시 금기 사항이 아니었음을 적시하고 있다.

 

외전 '슬라브 에녹'서에서는 '니르의 처 소포님이 남편과 만나지도 않았는데 임신했다'고 말해 동정녀 마리아의 예수 탄생을 일찍이 예언하고 있다.  정전에는 예수의 소년 시절에 관한 행적이 전혀 없지만 신약 외전인 '예수의 유년 시절 이야기'에는 소년 예수의 초능력을 증언하고 있다. 5세의 예수가 다른 아이에게 "너는 나무처럼 말라 죽는다"고 말하자 전신이 말라 죽어갔다고 한다.

 

외전 '니고데모 복음서'에 의하면 로마 총독 빌라도는 예수의 죄를 심하게 다루지 않으려 했으나 유대 민족의 끈질긴 고발 때문에 사형 언도를 내렸다고 한다. 예수는 부활하면서 '묘를 열고 잠에서 깨어나듯 살아나서 도시로 나아가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났다'고 한다.

 

외전인 '시리아 어바루그 묵시록'에는 최후의 심판에 관해 기록하고 있는데 '신의 예지를 인류의 예지로 승화시켜 인류를 파멸로부터 구원한다"고 파멸보다는 구원을 강조하고 있다. 

일본 가쿠엔사의 월간 'MU'

 

베일에 싸인 예수의 행적

 

예수는 전세계를 누빈 선교사였을까? 성경에 있는 예수의 삶에 관한 기록은 선교 시작부터 수난기까지 3년뿐이다. 소년기와 청년기에는 과연 무엇을 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19세기 인도 최북부 라다크의 히미스에서 고문서 하나가 발견됐다. 놀랍게도 미궁에 빠져있던 '예수의 생애'에 관한 기록이었다. 30세 이전의 예수의 행적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이 고문서에 따르면 예수는 14세 때 대상(隊商)과 함께 인도에 와서 불교 경전을 공부했다고 한다. 당연히 수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인도 선교에 나선 예수는 파키스탄의 다구시라에서 왕과 그 형제들을 개종시켰다. 아시아에서 '유스 아사후'란 이름으로 알려진 예수는 불교를 연구하면서 갖가지 기적을 보여줌으로써 메시아로서의 여러 발자취를 인도에도 남겼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예수는 카시미르에 도착해 사망할 때 까지 아시아의 여러 곳을 여행했으며 참 진리를 터득한 뒤 지상의 육체를 떠나 빛을 발하면서 하늘로 향했다는 전설이 남아있다.

 

에루살렘 성서연구소의 오코너 신부는 "인도교회는 사도 토마스에 의해 창설되었다"고 증언했으며, 카시미르의 한 교수는 "외국에서 온 예언자이며 설교자인 유스 아사후가 '나는 처녀의 몸에서 태어난 신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다가 지상의 육체를 벗고 빛을 따라 하늘에 올라갔다"고 증언했다.

 

독일의 수도녀 엔메릭은 꿈에서 예수의 생애에 관한 계시를 받았는데 "예수는 수난의 3개월전 동양의 신인 멘스라를 만나 기독교를 전도했으며 죽은 자를 살리는 기적을 보였다"고 일기에 적고 있다.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여러 나라에서 수많은 경전을 익히고 깊은 명상을 한 예수였기에 기독교가 세계적인 종료로 발전한 것이 아닐까. 예수는 위대한 여행가이자 종교 연구가였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힘들 것 같다.

< 출처=일본 가쿠엔사의 월간 'MU', 번역 및 정리=최 호(칼럼니스트)>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