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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상북도

예천 남본리 개심사터

by 구석구석 2009.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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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읍 남본리 개심사터 5층석탑  

 

예천 번화가로 들어가는 길목인 ‘솔개들’이라 불리는 논 한복판에 자리한  개심사터 5층석탑(보물 제53호)은 고려시대인 1010년(현종 1년)에 건립됐다. 마음을 연다는 뜻의 개심사(開心寺)가 있었던 자리인데 지금은 탑만 외로이 서 있다.

 

2층 기단 위에 5층으로 세워진 이 석탑은 높이 4,3m로 그리 크진 않지만 정연한 비례와 적당한 상승감을 보여주고 있다.

 

2층 기단 중 아래층에는 한 면에 안상(眼像)이 셋씩 나 있고 그 안상 안에 십이지신상이 하나씩 새겨져 있다. 그 위 상층기단엔 각 면마다 가운데 탱주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하나씩 팔부중상이 조각되어 있다. 또 그 위 1층 탑신의 남쪽 정면에는 양 옆에 칼을 잡고 서 있는 인왕상이 새겨져 있다.

 

이 탑엔 탑신과 갑석 처마 밑에 문자가 새겨져 있다.

상대갑석 처마 밑에 새겨진 96자를 해독하면 ‘고려 현종 원년(1010년)에 이 고을 호장(戶長) 임장부(林長富)의 어머니가 부처님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승속(僧俗) 10,000인의 힘을 모아 4월 초파일에 준공했다’는 내용이라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한 도사가 예천의 남산인 잠두산에 올라 지형을 살피니 잠두산이화기를 품고 소년을 죽일 형상을 하고 있어 이를 막기 위해 잠두산 아래에 절을 지었다고 한다.

 

 

 

예천 청포묵 054-655-0264

예천읍 남본리의 ‘전국을 달리는 청포집’은 50여 년동안 묵과 함께 살아온 이필성 할머니(78)가 만든 청포묵이 유명하다. 녹두는 쉬 상하기 때문에 매일 새로 쑤어야 하는데, 이필성 할머니는 요즘도 손수 녹두를 불려 껍질을 벗기고 다시 갈아 녹말을 걸러내 묵을 쑨다. 처음에는 예천향교가 있는 노상동 언덕에서 ‘언덕배기묵집’이란 간판을 달고 묵을 쑤다가 얼마 전 현재의 번화가 한쪽에 가게를 따로 내고 며느리가 손님을 받고 있다.

 

청포묵무침 한 그릇에 된장찌개, 생선구이, 젓갈, 도라지무침 등 10여 가지에 반찬을 곁들인 청포정식이 6,000원. 또 옥색의 청포묵을 곱게 채치듯 썰어 달걀지단과 당근 등으로 맛깔스럽게 꾸미고, 참기름과 양념장을 얹어 먹는 탕평채는 한 접시에 13,000원. 예전에 영남 선비는 하늘거리는 청포묵을 젓가락으로 들어 입까지 가져가는 동안 도포자락에 하나도 떨어뜨리지 않아야 양반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남본리 안동 삼거리 삼정가든의 삼색손두부 054)655-5115

 

▲ 두부모듬 한상

삼색두부전골요리는 예천참우의 곱창, 호박, 양파, 파, 감자, 표고버섯, 팽이버섯 등 싱싱하고 다양한 채소가 특수양념과 어우러지면 얼큰, 시원한 맛이 손님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낸다. 삼색모두부는 흰콩으로 만든 흰두부, 검은콩으로 만든 흑두부, 자색고구마로 만든 자색두부를 따끈하게 썰어서 김치굴뽂음과 함께 곁들여 내어 술안주로 일품이다.

백여 평의 넓은 주차장과 100여평의 실내공간에서 200여명이 동시에 식사할 수 있는 자리를 갖고 있다.

 

예천읍 고평리 정충사 054-654-5682

조선선조 때 명재상 약포(藥圃) 정탁(鄭琢·1526-1605)의 유물을 보존하기 위해 세운 유물각이다. 이황의 문하생이었던 약포는 1552년(명종 7년) 사마시를 거쳐 1558년 식년문과 병과에 급제한 뒤 본격적으로 벼슬길에 올랐다. 1568년(선조 1년)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하고 이조좌랑 등을 지냈고, 1581년 대사헌 때 정인홍과의 불화로 이조참판에 전직됐다.

 

1592년 임진왜란 때엔 좌찬성으로 왕을 호종하여 의주로 피란했으며, 1597년 정유재란 때 늙은 몸을 이끌고 전장에 나가 독려하려는 것을 왕이 말렸다. 약포는 특히 임진왜란 때 이순신·곽재우·김덕령 등 명장을 발탁하는 등 인재를 발굴하는 데 높은 안목을 지니고 있었다.

 

저서에 <약포문집>, <용만문견록>이 있다. 정충사의 약포영정(보물 제487호)은 왕명에 따라 그린 공신 초상화. 또 약포유고 및 문서(보물 제494호)는 임진왜란을 중심으로 기록한 일기, 교지 등으로 임진왜란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꼽힌다. 내성천 건너 호명면 황지리의 도정서원(道正書院)에는 약포선생과 그의 아들 청풍자 정윤목을 모셔 놓은 약포사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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