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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전라남도

담양 담양천을 따라서-죽녹원 관방제림

by 구석구석 2011.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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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천변 2㎞에 이르는 아름다운 숲

산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기 이전에는 어떤 나라든 숲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숲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 그 자체와 동의어였고, 숲에 대한 인위적인 노력이 필요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들은 일찍이 숲의 중요성을 알아보고 그것을 보존해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노력했다. 조선 숙종 때에는 국가 용도의 목재를 안정적으로 얻기 위해 우량한 소나무림을 선정해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봉산(封山)’제도를 시행했다. 산의 입구에는 금표(禁表)를 새겨 나무를 함부로 베지 못하게 했다.

 

반면 마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숲을 조성한 사례도 많다. 해안가에서는 바람과 모래를 막기 위해 바람에 강한 나무를 심었다. 남해 물건리의 방조어부림, 보길도 예송리 방풍림이 대표적인 예이다. 홍수를 예방하기 위해 호안림(護岸林)을 조성한 경우도 있다. 함양 상림과 담양의 관방제림이 대표적이다.

 

관방제림은 담양읍을 휘감아 흐르는 담양천 북쪽 제방에 조성된 숲이다. 담양천은 영산강의 최상류다. 길게 쌓은 제방은 담양읍 남산리 동정마을에서 수북면 황금리를 거쳐 대전면 강의리까지 2㎞에 걸쳐 이어져 있다. 전체 면적은 10만2921㎡(3만1000평)에 달한다.

 

‘관방제림(官防堤林)’이라는 이름은 ‘관에서 조성한 제방의 숲’이라는 뜻이다. 이 같은 이름이 붙은 것은 담양부사 성이성이 1648년부터 해마다 제방을 수축하면서 제방에 나무를 심어 수해를 방지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철종 5년에는 부사 황종림이 국가 재정으로 연인원 3만여 명을 동원해 제방을 수리하고 나무를 더 심었다. 그 뒤 제방 보수공사를 하면서 꾸준히 나무를 심고 관리해 대략 700여 그루가 식재되었다 한다. 지금은  420여 그루가 남아 있다. 큰 나무의 수령은 300~400년이나 되고, 작은 나무도 150여 년에 이르고 있다.

 

관방제림의 일부는 학술적·역사적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 제366호로 지정되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구역에는 185그루의 노거수가 자라고 있다. 관방제림을 구성하고 있는 나무의 종류로는 푸조나무 111그루, 팽나무 18그루, 벚나무 9그루, 음나무 1그루, 개서어나무 1그루, 곰의말채, 갈참나무 등이 있다.

 

이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푸조나무는 얼핏 보면 느티나무와 비슷하다. 둘 다 느릅나무과에 속하므로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푸조나무는 곰병나무라고도 한다. 갈잎큰키나무에 속하며 큰 나무는 20m에 달한다. 주로 남부 지방의 들이나 산기슭에서 자란다. 줄기가 곧고 수형은 느티나무처럼 우산 모양으로 넓게 퍼진다. 나무 껍질은 회갈색이고 세로로 얇게 갈라지며, 노목은 비늘조각처럼 벗겨진다.

 

어린 가지는 털이 있다. 잎 모양은 달걀형·좁은 달걀형이며 가장자리에 날카로운 톱니가 있다. 암수 한 그루로 수꽃은 어린 가지 밑부분의 잎겨드랑이에서 나온다. 암꽃은 어린 가지 윗부분의 잎겨드랑이에 1~2개씩 달린다.

 

둥근 달걀형의 열매는 길이가 7~8mm이며 검은색으로 익는다. 열매는 단맛이 나고 먹을 수 있다. 목재는 건축재·조선재·기구재 등으로 쓰인다. 수액에는 독성분이 있다.

 

푸조나무는 성장이 빠르고 뿌리를 깊게 내리는 습성을 가지고 있어 호안림의 수종으로 안성맞춤이다.

 

관방제림은 인간과 나무가 어떻게 조화로울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예다. 인간의 손으로 인공식재했지만 인위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다. 처음에는 제방 양쪽에 줄을 맞춰 심었겠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적자생존이 진행되다 보니 자연스런 숲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위로 반듯하게 뻗는 나무보다는 삐뚤빼뚤한 가지와 잎이 풍성한 수종이 대부분이어서 인공의 느낌이 별로 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5월의 신록을 즐기기 위해서 둑길을 천천히 걷는다. 노인도 있고,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엄마도 있고, 다정하게 팔짱을 낀 연인도 있다. 아이들은 나무 사이에서 술래잡기를 하며 뛰놀고, 어른들은 빙그레 미소 지으며 그 모습을 지켜본다. 아무도 급할 일은 없다.

 

그 위에서 5월의 신록이 빛과 그늘의 절묘한 점묘화를 그려낸다. 바람은 수많은 나뭇잎을 흔들어 쉴 새 없이 협주곡을 연주한다.

 

사람들은 나무 사이를 걷다가 다리가 아프면 벤치에 앉는다. 평상 위에서는 동네 노인들의 내기 장기가 한창이다. 자신 있게 내지르는 “장이야!” “멍이야!” 하는 장군멍군 소리도 흥겹다.
관방제림 옆으로 흐르는 담양천은 깊지는 않지만 깨끗하다. 담양천은 군청에서 수질 관리를 꾸준히 하고 있어 징검다리 사이로 송사리, 피라미 등이 떼 지어 헤엄친다. 물가에는 창포, 마름 같은 수생식물이 잘 자라고 있다.

 

산책을 하다 보면 배가 고플 수도 있다. 그러면 만성교와 향교교 구간의 ‘관방천 국수거리’에 들러 물국수 한 그릇을 시켜 먹으면 된다. 관방제림과 죽녹원만 보고 국수를 먹지 않으면 이곳의 정취를 반밖에 느끼지 못한 것이다.

 

대나무 평상에 앉아 맛깔스런 전라도 김치에 시원한 물국수 한 그릇을 먹으면 세상 시름이 별것 아니다. 담양사람들은 막걸리 안주로 삶은 달걀을 수북이 쌓아 놓고 먹는데, 이를 안주로 텁텁한 막걸리 한 잔을 들이켜면 세상이 다시금 돈짝만해진다. 10여 개 국수집이 자리잡은 국수거리는 담양 떡갈비와 함께 지역 명물로 떠오르고 있다.

 

이처럼 둑길의 오래된 나무와 수변공간이 조화를 이룬 관방제림은 인간과 나무가 어떻게 공생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숲은 2004년 산림청에서 주최한 ‘제5회 전국 아름다운 숲 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월간산 2009.7 김규사진작가 

담양8경중 7경 '죽녹원' 

관방제림과 영산강의 시원인 담양천을 끼고있는 향교를 지나면 바로 왼편에보이는 대숲이 죽녹원이다. 죽녹원 입구에서 돌계단을 하나씩 하나씩 밟고 오르며 굳어있던 몸을 풀고나면 대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대바람이 일상에 지쳐있는 심신에 청량감을 불어 넣어준다. 또한 댓잎의 사각거리는 소리를 듣노라면 어느 순간 빽빽히 들어서있는 대나무 한가운데에서 있는 자신이 보이고 푸른 댓잎을 통과해 쏟아지는 햇살의 기운을 몸으로 받아내는 기분 또한 신선하다.  

죽녹원 안에는 대나무 잎에서 떨어지는 이슬을 먹고 자란다는 죽로차(竹露茶)가 자생하고 있다. 죽로차 한 잔으로 목을 적시고 죽림욕을 즐기며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오른 대나무를 올려다보자. 사람을 차분하게 만드는 매력또한 가지고 있는 대나무와 댓잎이 풍기는 향기를 느낄수 있을 것이다.

죽녹원 / 한국관광공사

죽로차는 대나무 숲에서 자라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는 녹차와는 달리 농약과 화학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무공해 녹차로서 은은한 향과 맛이 뛰어나 품질과 가격 등에서 최고의 명차로 친다. 

 

 전국에서 유일한 대나무를 주제로 한 대나무축제는 1999년부터 매년 5월에 열리고 있다. 담양 대나무축제는 죽녹원과 죽향무대에서 열린다. 행사는 주로 공연과 장기자랑이 주다. 가요콘서트, 7080그룹사운드, 대숲음악회, 인형극, 비보이댄스, 안데스음악, 난타공연, 무술시연, 판소리한마당, 우도농악 등이며, 대나무악기연주회도 열린다. 상설 운영되는 체험행사는 대나무 마당놀이, 대나무 죽마놀이, 수상자전거타기, 대나무뗏목타기, 한지공예, 대나무전통낚시, 죽로차 시음, 대나무 활쏘기, 부채 만들기, 대나무 도자기, 대나무 그림그리기(대담미술관) 등이다. 자세한 행사 일정은 홈페이지(www.bamboofestival.c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봄이면 대밭에는 땅심을 뚫고 나오는 죽순의 모습에 숨을 죽이게 된다. 작으면서도 힘 있는 모습으로 땅을 뚫고 나오는 죽순과 알을 품는 텃새들의 모습은 대나무골 테마공원의 아름다움과 경건함을 더해준다. 또한 대나무 사이사이에 빨갛게 익어가는 앙증맞은 산딸기가 우리를 더욱 기쁘게 한다. 

 

 담양읍 객사리211-34 진우네국수 061-381-5344 

담양읍내 죽녹원 건너편엔 아름다운 숲이 있다. 천연기념물 제366호로 지정된 관방제림이다. 조선 중기 인조 때 홍수를 막으려 조성된 풍치림이 지금껏 보존돼 울창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300년 이상 된 벚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등이 2km 가량 늘어섰다. 그 방제림 앞에 '진우네집 국수'가 있다. 둑방의 허름한 평상에 앉아 국수 한 그릇으로 허기를 달랠 수 있는 곳으로 50년 가까이 국수를 말아왔다.

 

진한 멸치국물에 퉁퉁한 중면을 말아내는 이 집은 추억까지 함께 맛보려는 사람들로 늘 성시를 이룬다. 흔한 국수 한 그릇이 만인이 인정해준 별미가 됐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처럼 어려운 시절 3000원에 근사한 외식을 즐길 수 있다는 점도 이 집의 큰 매력 중 하나다. 

 

지금의 가게 앞은 본래 죽물시장이 열렸다. 이 장터에서 송순덕씨(작고)가 좌판을 깔고 30년 동안 국수를 말아 팔다가 시장이 사라지며 가게를 냈다. 간판도 없던 국수집은 큰 아들의 이름인 '진우네'로 불리다가 15년 전 그 이름 그대로 간판을 걸었다. 처음 국수를 말던 송순덕씨는 세상을 떴고 지금은 아들 이진우(45)씨가 손맛을 잇고 있다. 

 

진우네 국수 맛의 비결은 좋은 재료를 써서 오랜 시간 육수를 우려 내는 지극 정성에 있다. 멸치에 무, 청양고추, 양파, 대파, 마늘 등을 넣고 열댓 시간을 우려 낸 육수 맛이 진하면서도 개운하다. 여기에서 비법은 세 가지. 온종일 은은하게 끓여내는 불조절과 멸치, 그리고 고추가 그것이다. 

 

이 집 국수의 또다른 특징은 면발. 소면보다 굵고 우동면보다 가는 중면을 임실의 새싹국수를 사용한다. 굳이 중면을 고집하는 이유는 옛날 잔치집의 면 맛을 재현하고자 함이다.

 

이 집에서 국수보다 더 맛있다는 게 있다. 바로 삶은 계란이다. 일명 '약계란'으로도 불리는데, 멸치 육수에 삶은 까닭에 흰자위 조차도 누르스름하다. 맛 또한 싱겁지 않다. 달걀에 멸치 육수가 배어들어 부드러우면서도 짭잘하다. 주말이면 하루 2500~3000그릇씩 국수를 파는 진우네 덕분에 아예 주변에 국수거리도 형성됐다.

 

스포츠조선2009 김형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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