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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전라남도

담양 수북면-한재 병풍산 국제천측관측소

by 구석구석 2009.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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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병풍 능선 따르는 담양 최고(最高) 명산

 

병풍산 산행은 담양이 기점이다. 광주에서는 담양행 버스가 10분 가격으로 운행하여 접근이 편리하다. 전주-순창-담양 간 버스도 수시운행한다. 담양까지 온 다음에는 수북면 성남야영장행 버스를 타야 한다. 1일 3회(11시, 14:20, 16:50분) 운행한다. 산행 들머리까지는 좀 멀지만 수북면 24번 국도상에는 담양시내버스가 7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대각동~투구봉~병풍바위~천자봉~대각동 8km 답사

 

한국지명사전에 보면 병풍산이란 이름을 가진 산이 무려 20개쯤 된다. 그럼에도 담양 병풍산의 존재가 의외인 것은 추월산이 워낙 유명해서일 것이다. 담양호를 끼고 솟은 강파른 비탈의 바위산 추월산의 그림자가 담양의 다른 산이름을 몽땅 뒤덮고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그간 등산꾼들간에 널리 알려진 100명산이나 심지어는 400명산 책자 속에도 담양 병풍산이 소개돼 있지 않은 것 같다.

▲ 병풍산 동릉 북사면에 만발한 상고대.

 

병풍이란 이름이 붙은 산의 거의 모두가 그렇듯, 담양 병풍산도 여러 폭 병풍처럼 선 바위절벽을 가졌다. 물론 설악산이나 금강산의 그것처럼 웅장 거대하지는 않지만 주변 거의가 뭉실뭉긋한 야산 무리여서 그 가운데 솟은 병풍산을 담양사람들은 거리낌 없이 ‘도도하다’거나 ‘석성을 이루었다’는 류의 수식으로 묘사하고 있다. 

 

춘삼월에 뜻밖의 설경에 취해 

산 기슭으로 다가드는 먼뎃 길가에서 보아서는, 병풍산의 바위병풍은 하늘선을 그저 보일 듯 말듯 일그러뜨리는 작은 요철로 드러날 뿐이었다. 산행기점을 삼을 대각동 마을까지 다가가 바라보기에도 그저 산정 근처에 회색빛 바위절벽이 ‘성냥갑만한 크기’로 가로세워져 있는 정도였다. 그러나 막상 그것의 정수리에 올랐을 때 우리는 놀라고 말았다. 여러 폭 병풍을 이룬 암릉의 가장 높은 곳에서 느껴지는 절벽의 높이는 아찔하여 뒷걸음치게 했고, 거기서 펼쳐진 풍경은 아스라이 넓기도 넓어, 절로 눈이 가느스름하니 감겨왔다.

전혀 기대하지 않은 선물도 받았는데, 이 춘삼월에 상고대가 만발해 있었던 것이다. 병풍산릉의 7부 능선 위쪽의 북사면은 몽땅 분칠한 듯, 아니 희디희게 만발한 벚꽃으로 뒤덮인듯하여 눈이 부셨다. 3월11일 이 날 병풍산은 아마도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이었을 것이다.

▲ 병풍산 정상. 삼각점이 박혀 있고 주변 조망이 좋다.

 

아침에 굵은 춘우가 뿌리기에 산행을 연기하려 했으나 담양 산꾼 이충배씨(47·담양산악회 총무)가 “산에서 비 맞기는 다반사 아니냐”며 산행을 강권했다. 그 덕분에 코앞의 절경을 놓치는 어리석음을 간신히 면했다.

병풍산은 담양군 수북면과 장성군 북하면의 경계선상에 걸쳐 있다. 해발 824.6m로 담양서는 가장 높은 산이다. 1:25,000 지형도 담양 도엽의 병풍산(824.6m)에서 서쪽 대치고개 지나 능선 줄기를 짚어가 보면 장성 도엽 685.2m봉에도 병풍산 표기가 돼 있다. 헷갈리지 말기 바란다.

 

▲ 청소년수련원 내의 길고 넓은 산책로. 이 길의 끝에서 계곡 소로로 접어든다.

 

병풍산 산행은 대개 서쪽 한재골이나 대치에서 시작한다. 산정까지 쉽게 다다를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산 동쪽 국제청소년수련원이 있는 대각동계곡 길이 다소 길기는 해도 운치가 있었다. 다시 간다고 해도 이 수련원쪽 길을 택할 것이다.

 

담양읍 서쪽 수북면 소재지에 들어 우회전, 곧장 달렸다. 저 앞으로 삼각 피라밋 형상의, 병풍산 남쪽으로 마주서서 대각동 골짜기를 이루고 있는 삼인산(三人山)이 뵈므로 이를 지표 삼으면 된다. 삼인산이 왼쪽 앞으로 바투 다가들며 대방제 저수지 옆을 지난다. 그 저수지 꼭지점의 도로 오른쪽에 제법 널찍한 주차장이 있다(N 35°18′44.3″ E 126°54′29.9″). 여기에 주차하고 산행을 시작한다. 곧장 청소년수련원 안까지 깊이 들어가서 산행할 계획이었으나 정문에서 “하산하는 경우 이외엔 연중 등산객 출입을 허용하지 않는다”며 앞을 막았다.

주차장 옆 개울에 걸쳐진 짧은 콘크리트 다리를 건너 넓은 대나무 사잇길로 걸어 올랐다. 대숲에 이어진 굵은 참나무 숲길도 시원스럽다. 5분 남짓이나 걸었을까. 산비탈을 가로지른 임도로 올라섰다. 곧장 산비탈을 질러 오르는 삼인산 등산로 입구엔 10여 개 표지리본이 나풀거린다. 삼인산으로 올라 병풍산으로 종주해 가보는 것도 좋겠지만, 그냥 임도 따라 주욱 수련원쪽으로 걸었다. 병풍산릉이 한 걸음 더 눈앞에 다가와 있다.

 

국제천체관측소  061-382-7456.

담양 병풍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국제천체관측소(구 성암천체관측소)는 1986년 문을 연 우리나라 최초의 사설 천문대다. 이곳엔 150mm 굴절망원경 1대와 80mm 굴절망원경 4대와 CCD 카메라도 보유하고 있다. 천문대가 속해있는 국제수련원은 85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숙박시설이 갖추어져 있어 학교 단위의 대규모 단체 견학엔 매우 유리하다. 그러나 소규모 단체나 개인은 빈 일정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이용하기가 좀 까다로운 편이다.

 

부속시설로는 자연박물실, 암석원, 심신단련장, 식물원, 수영장, 등산로 등이 갖추어져있다. 수북면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청소년수련원 이정표를 따라 3km쯤 들어가면 나온다. 

 

병풍산도 둘, 투구봉도 둘? 

수련원 구역 내로 들자 양쪽을 큼직한 바윗돌들로 단을 지어 쌓은 산책로가 곧게 뻗었다. 한참 걸었다 싶을 즈음 두 갈래로 길이 나뉜다(N 35°18′42.1″ E 126°53′47.3″). 여기서 오른쪽의 리본들이 매달린 길로 가야 한다. 곧 넓은 길은 끝나고 계곡을 건너 정자각 옆의 오솔길로 접어들게 된다.

작은 계곡 옆을 따라 정겨운 경사와 굽이로 이어지던 길은 갑자기 널찍한 공터로 인도되었다. ‘마운데미’란 팻말이 선 이곳을 담양 이충배씨는 ‘만남의 광장’이라 일러준다. 마운데미란 지명은 경상도에도 전라도에도 있으나 무슨 뜻인지는 짐작하기 어렵다. 땅이름사전에도 그저 어디에 그런 지명이 있다는 것만 일러줄 뿐, 의미 해석은 없다.

▲ 천자봉 남릉에서 돌아본 병풍산릉.

 


 강풍이 휘몰아쳐서 광장 옆, 문을 열어둔 간이주점의 비닐막 안으로 잠시 피신했다가 길을 이었다. 비닐막 옆까지 콘크리트 포장도가 서쪽 한재골 방면에서 올라와 있어 놀랐다. 저 아래에 차단기가 설치돼 있어 무시로 차가 오르내릴 수는 없는 길이라고 한다.

 

바위가 드러나기도 한 가파른 길로 접어들자 바람이 씻은 듯 잦아든다. 주능선을 앞에 바람막이로 둔 덕분이다. 좌우로 방향을 틀어가며 천천히 오른 능선길 끝엔 무덤 2기가 있고, 그 바로 뒤에서 암회색 절벽이 나선다. 이 절벽 위가 투구봉이란다. 지형도상 투구봉은 병풍산 정상 서쪽 약 3km 지점에 624m봉에 표기돼 있는데, 이 지역 사람들은 해발 755m쯤 되는 이 봉우리를 투구봉이라 부르며 딱 큰 호박만한, 혹은 투구처럼 생긴 표지석도 ‘심어’ 두었다.

암벽을 타고 투구봉 정상으로 곧장 오르는 길은 없다. 무덤 바로 아래의 능선 사면길을 따라 200m쯤 동쪽으로 가로질러 가서 능선에 올라선 다음(N 35°19′07.1″ E 126°52′58.4″) 왼쪽 암릉을 타고 가야 이 투구봉 정상에 다다를 수 있다.

설화는 만발했으나 안개가 자욱하여 바로 아래의 무덤만 겨우 뵐 뿐이다. 기다리다가 병풍산정으로 향했다. 돌탑이 선 봉우리 지나서 조금 더 나아가면 삼각점도 설치된 병풍산 정상이다(N 35°19′17.9″ E 126°53′15.7″). 나뭇가지가 스칠 때마다 상고대가 우루루 배낭이며 재킷 위로 떨어진다. 누런 억새가 안개 속에서는 은근한 빛을 내는 것 같다.

정상 동쪽 200m 지점의, 상석도 갖춘 무덤이 덩그마니 앉은 널찍한 암반 공터 동쪽으로 나서 보니 엄청난 절벽이다. 마침 구름장이 걷히며 상고대가 일제히 광채로 빛난다. 해가 따스하게 비추자 진정으로 벚꽃 길 속을 걷는 것 같다. 이제부터 줄곧 내리막인데, 한쪽 사면이 상고대로 허연 기나긴 산릉이 저기 용구산 지나 끝없이 이어져가고 있다. 툭, 툭 길이 급경사로 떨어지며 광대한 조망이 펼쳐지는 지점마다 서서 우리는 기성을 지르며 흥분을 삭였다.

설화나 상고대 장식을 걷어내고 본다면? 그래도 이 산은 원래 가진 틀이 멋있어서 언제든 눈을 실망시키지는 않을 것 같다. 뒤돌아보니 병풍산 정상부의 절벽이 햇살에 광채로 빛나고 있다. 

 

천자봉에서 원점으로 하산 

 

▲ 상고대가 핀 3월의 병풍산 능선길을 가고 있다.
천자봉(天子峰·725m·실제로는 약 745m)이란 팻말이 선 봉(N 35°19′30.1″ E 126°54′00.6″)에서 곧장 용구산 방향으로도 길이 뚜렷하다. 그러나 그쪽까지 가면 하산 후 원점으로 되돌아가기가 다소 번거로워서 그냥 오른쪽 지능선으로 접어들었다. 잠시 수평에 가깝게 뻗어나간 지능선 중간의, 자그마한 소나무가 두 그루 선 암부에서 뒤돌아본 병풍산 정상 능선 동편 아래의 공간은 웅혼한 울림이 느껴지는 웅장미까지도 갖추었다. 휘고 삐치고 내리그은 능선의 멋 또한 대단하다. 병풍산 자체의 경관은 여기서가 최고였다.

암부에서 내려선 이후 길이 가팔라진다. 큰 무덤 2기를 지나며 완경사의 잘 가꾼 송림지대를 가로질렀다. 곧장 능선만 따라 가다가 천자봉으로부터 약 1.5km 되는 지점의 갈림길목(N 35°18′46.5″ E 126°54′42.6″)에서 오른쪽 리본이 많이 매달린 샛길로 내려가야 한다.

10분 남짓 뒤에 누렁개가 컹컹 짖어대는 도로변 식당 오두막집으로 내려섰다. 5시간 남짓한, 춘삼월 눈꽃놀이 산행으로는 걸은 거리나 소요시간으로도 딱 알맞은 정도였다. 병풍산 풍경이 여전히 눈앞에 삼삼하니, 이제 진달래나 철쭉꽃이 만발할 때까지는 아무 산에도 가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월간산 /글 안중국 차장, 사진 허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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