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동계곡 물 좋기로 유명한 서출동류수의 전형
충북 제천시 백운면 최북단 마을인 덕동리는 원주시와 경계를 이루는 백운산(1,085.7m), 십자봉(983.2m), 그리고 삼봉산(909.1m) 산릉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는 산골 마을이다.
백운산~십자봉~삼봉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모여 큰 계류를 이루는 덕동계곡은 지형이 호리병 병목 모양을 한 곳인 덕동리 입구 구수애(九水涯)부터 시작된다. 구수애는 물줄기가 아홉 구(九) 자로 흘러간다는 뜻이다.
옛날 선인들은 좋은 물을 칭할 때 서출동류(西出東流)인 것을 최고로 쳤다. 바로 덕동계곡 물줄기가 이 항목에 해당된다. 서쪽 십자봉 방면 원덕동에서 모아진 물이 동쪽 구학산 방면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 계곡 입구에서 약 5km 거리인 삼림욕장 못미처 계곡풍광. |
덕동계곡은 지금은 오염과 관광객 입김으로 다소 격조를 잃었지만, 그래도 제천시 관활 내에서는 손에 꼽을 만큼 옛 모습 그대로의 자연미가 살아 있는 곳으로 인기 있다. 아직까지는 계곡을 벗어나 산자락으로 들어서면 더덕과 취나물, 그리고 청정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곰취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불과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이 깊은 산골에서는 호랑이에게 잡혀먹힌 사람의 혼을 달래주었던 풍속인 호식총(떡시루에 칼을 꽂아두는 풍속)이 남아 있던 곳이다.
덕동리 입구 매표소부터 군침을 돌게 하는 담과 깨끗한 계류가 발길을 멈추게 한다. 매표소 왼쪽 아래 덕동계곡 물줄기가 운학천과 합수되는 곳에는 널찍한 너럭바위 옆으로 송림이 우거져 쉬어가기 그만이다. 송림 속 산길로 들어서면 삼봉산 등산도 즐길 수 있다.
매표소를 지나 연화사로 들어서는 길을 따르면 처음에는 길 옆 계류가 시원치 않아 보인다. 그러나 연화사 입구를 지난 곳인 제일수양관 입구에서 덕동산 삼림욕장에 이르는 계곡은 햇볕이 들지 않는 숲터널을 이뤄 시원하게 휴식을 즐길 수 있다. 계류변에 주차공간과 텐트를 칠 수 있는 공터가 마련되어 있다. 계류 건너편으로는 평상시설들이 있어 이곳에 텐트를 칠 수 있다.
계곡 상류 덕동산림욕장에는 하늘을 가리는 낙엽송수림지대 아래에 야영장 취사장 물놀이터 등이 있어 가족단위로 찾기에 그만이다. 야영도 가능하다. 이곳에 텐트를 치고 십자봉과 삼봉산을 다녀올 수 있다.
삼림욕장 상류 원덕동 종점을 기점으로 다리품을 조금 팔면 십자봉 방면 오두리계곡이나 백운산 방면 상학동계곡에서도 더위를 잊을 수 있다. 덕동계곡 지류인 이 계곡들은 승용차 접근이 안 되기 때문에 계곡가에 들어서면 그야말로 적막강산이다.
오두리계곡을 기점으로는 십자봉 정상을 3시간 안팎에 다녀 올 수 있다. 상학동 계곡에서는 백운산 정상을 4시간 안팎에 다녀올 수 있다. 십자봉에서 백운산 방면 5~6부 능선으로 휘돌아 이어지는 임도에 올라도 시원하다. 임도가 지나는 지계곡 계류가 식수로 쓰이는 곳에서 야영을 즐겨도 된다.
본격적인 등산은 원덕동에서 먼저 십자봉에 오른 다음, 오두재~백운산~상학동계곡 경유 원덕동, 또는 십자봉에서 남동쪽인 삼봉산을 경유해 연화사로 하산하는 코스를 즐기면 된다.
숙박 덕동리 입구 삼거리 고향산천(043-6384), 산촌마을(653-1997), 매표소 앞 민박(651-2009), 매표소를 지난 곳인 여주집(011-9095-6329), 아름다운 세상 팬션(651-5251), 덕동 버스종점 매점을 겸한 원덕동슈퍼민박(주인 김영화·651-8047), 느티나무상회 민박(647-1678), 오두치 방면 덕동교 다리 건너 기와집민박(653-0860), 시골민박(651-1651), 야영장을 운영하고 있는 십자봉민박(651-6886) 등 이용.
민박료 3~4인용 작은 방 40,000원~50,000원, 7~8인용 큰방 70,000원 이상. 민박집 마다 백숙(30,000원), 청국장·백반(5,000원) 등을 판다. 원덕동슈퍼민박에서 꿀, 청국장, 각종 약초술 등을 판다.
시즌(6월1일~10월30일)에는 덕동 삼거리 계곡 입구 매표소에서 쓰레기처리 수수료를 받는다. 대인 1,000원(제천시민 800원), 소인 500원.
기타 민박문의 백운면사무소 043-640-4186.
덕동리 생태숲 문의 (043)220-5500, 산림과학박물관 홈페이지 http://cbforest.net
산수국은 화장을 한다
산수국(山水菊), 그늘에서 자라는 높이 1m 가량의 작은 꽃이다. 얼굴은 더 작아서, 눈곱만하다. 풍성한 관능미를 뿜어내기엔 부족한 꽃이다. 그래서 산수국은 우산처럼 작은 꽃들이 한데 모인 산방꽃차례(?房花序)로 핀다. 그걸로도 모자라, 벌과 나비가 그녀의 화장한 얼굴을 보고 찾아올 수 있도록 가장자리엔 탐스런 ‘허꽃’을 달았다. 산수국은 노력 끝에 얻은 아름다움으로 살아남았다. 7월은 산수국이 절정인 때다. 체험코스 ①에서 볼 수 있다.
딱딱한 수트를 택한 화살나무
여린 줄기마다 화살날개처럼 생긴 단단한 덧옷을 입은 식물. 코르크질의 덧옷을 조금 떼어 씹어보면 아무런 맛도 나지 않는다. ②번의 화살나무는 실은 누구보다 여린 새순을 지녔다. 홑잎나물이라고 불리는 이 부드러운 잎은 봄철 입맛을 돋우는 데 제격이다. 초식동물들이 이 여린 잎을 함부로 탐할까봐, 화살나무는 스스로 맛도 없고 모양도 딱딱한 겉옷을 걸친 것이다.
향수로 무장한 산초나무
향기도 때론 무기가 된다. 산초나무는 잎과 열매에서 강한 향을 내뿜어, 잎을 탐하는 곤충이나 애벌레가 다가오지 못하도록 한다. 9월이면 까맣게 익는 열매는 찧어서 향신료로 쓴다. 줄기엔 단단한 가시를 달고 있는데, 최근 열매를 따려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가시의 크기도 더욱 커졌다. 흔히 혼동하는 초피나무와 달리 산초나무는 잎 끝이 뾰족하고, 가시가 어긋나게 나 있다. 산초 잎을 뒤집으면 잎을 정신 없이 먹어대는 호랑나비 애벌레를 쉽게 볼 수 있다. ‘샤넬 넘버 5’의 강한 향기에 무뎌진 남자처럼 산초의 향기를 이겨내고 적응한 동물이다.
화려한 가면을 쓰는 개다래
개다래의 잎은 때로는 화려한 가면으로 변신한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시기인 6~8월까지 개다래의 초록빛 잎은 얼룩덜룩한 색으로 바뀐다. 잎사귀 전체가 하얗게 변하는 경우도 있다. 열매를 공격하는 곤충들이 화려한 잎의 무늬를 보고 정신을 빼앗기는 동안, 개다래는 잎사귀 뒤에서 은밀하게 꽃을 피운다. 체험코스 ④에서 볼 수 있다.
까칠한 두릅과 뾰족한 억새
두릅과 억새에게 섣불리 다가섰다가는 상처를 입기 쉽다. 독특한 향이 있어 산나물로 인기 있는 두릅은 4~5월 새순을 따려는 사람들의 손길을 피하기 위해 온 몸에 가시를 달았다. 큰 짐승에 대항할수록 가시도 커지는 법, 두릅의 몸에 돋아나는 가시도 점점 굵고 억세진다. 억새는 몸 자체를 뾰족하고 까칠하게 만들어 자신을 보호하는 식물. 억새엔 톱니처럼 깔쭉깔쭉하게 베어져 들어간 자국이 있는데 이를 ‘거치’라고 한다. 까칠하기가 이를 데 없으니 함부로 건들지 말자. 두 식물 모두 ⑤번 코스 주위에서 드문드문 자란다.
개미를 속이는 산벚나무
잎을 자세히 살펴보자. 잎맥이 시작하는 자리에 두 개의 점이 있다. 확대경으로 보면 이건 그냥 점이 아니다. ‘밀선(蜜腺·꿀샘)’이라고 불리는데, 움푹 패인 것이 항아리처럼 생겼다. 이 작은 항아리는 일종의 속임수다. 산벚나무는 여기에 아주 약간의 꿀을 모아놓고, 개미를 불러모은다. 개미들은 산벚나무의 밀선에 괴여있는 꿀을 먹다가 그래도 배가 고파지면, 진딧물을 먹기 시작한다. 산벚나무는 개미를 꾀여서 손 끝 하나 까딱하지 않고 눈 앞에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는 현명한 나무다. ⑥번 코스에 있는 정자에 올라서면, 계단마다 산벚나무가 떨군 검은 버찌들이 카펫처럼 깔려 있다.
인정사정 없는 신갈나무
주로 ‘참나무’라고 불리는 신갈나무는 인생 자체가 전략과 투쟁의 역사다. 작은 도토리 열매에서 싹을 틔워 약 30m의 거목으로 크려면, 빛과 물이 많이 필요하다. 신갈나무는 전사(戰士)처럼 자란다. 이웃 나무에게까지 뿌리를 뻗고, 가지를 감아 양분을 거침없이 빨아들인다. 자식인 도토리 열매는 가능한 멀리 굴려 보낸다. 다른 먼 곳에 뿌리 내려야 잘 번식하기 때문이다. 냉정한 신갈나무지만, 그래도 고마운 점은 있다. 옛날 조상들은 신갈나무 잎을 주워 짚신이나 고무신 안에 깔았다. 상쾌하고 시원한 잎이 신발 속 답답함을 없애주기 때문이다. ‘신발에 잎을 깔았다’고 해서 ‘신깔나무’라고 불리던 것이 신갈나무로 굳어졌다. 숲을 산책하다 신갈나무 잎을 발견하거든 한번쯤 ‘깔창’으로 사용해봐도 좋겠다. ⑦번 코스에서 만날 수 있다.
악착같은 담쟁이
담쟁이는 혼자 높이 자라지 못하는 식물. 햇빛을 받기 위해선 다른 식물에 붙어 올라가거나, 담벼락에 붙어 줄기를 뻗어나가는 수밖에 없다. 담쟁이는 살아남기 위해, 어디에도 악착같이 붙어있을 수 있는 ‘흡반’을 개발했다. 개구리 발가락을 닮은 이 작은 흡반에 의지해 담쟁이는 몸을 가늘고 길게 늘려나간다. 생존의 무기가 꼭 클 필요는 없다. 작은 생물들일수록 놀랍도록 강력한 생존도구를 만들어낸다. ⑧번 코스에 들어서면 키 높은 나무들을 휘감은 담쟁이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찾아보자
덕동 숲에선 참까마귀부전나비와 호랑꽃무지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호랑꽃무지는 지금 한창 짝짓기 철이라서, 두 마리가 함께 붙어 다니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참까마귀부전나비는 숲 속의 또 다른 생존전략을 보여주는 곤충이다. 부전나비가 낳은 알은 단백질과 호르몬이 풍부해 개미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개미들은 알 껍질의 영양분을 얻기 위해 알이 부화할 때까지 대신 키워준다. 개미와의 ‘공생’을 이용해 힘들이지 않고 육아를 하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산딸기와 뱀딸기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늘진 곳에 열매 맺는 뱀딸기를 따서 식물줄기에 꿰어보자. 예쁜 팔찌가 탄생한다. 그늘이 따갑다면, 나뭇잎을 주워 고깔을 만들어도 좋다. 소나무 잎을 바늘처럼 사용해 엮으면 누가 써도 그럴듯한 요정모자가 된다. 엄남희 충청북도 산림환경연구소 숲 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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